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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8/28 23:38:32
Name 비내리는숲
Subject 천하제일고수
무협 소설을 읽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무협 작가들의 절반 이상이 독자들의 대부분이 꿈꾸는 로망이 있다. 천하제일고수. 광세무적의 주인공이 한 명이든 열 명이든 환상적인 초식으로 상대를 눕히고 최고의 영웅이 되는 장면을 분명 그릴 것이다. 그 누구도 상대가 되지 않고 그 누구도 승부를 걸 수 없는 고수, 천하에 적이 없으며 그 스스로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고수. 천하제일고수.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보는 사람은 분명 그런 꿈을 꾼다. 내가 게이머가 된다면, 놀라운 피지컬과 심리전으로 결승에서 상대를 찍어누른다면, 그리하여 인터뷰에서 이런 도발을 하고 경기 후 이런 인터뷰를 하고.. 그런 꿈을 꾸는 팬들 분명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최강이 나타나길 원한다. 또한 최강을 상대로 도전하여 승리할 수 있는 선수가 나타나길 원한다. 단순 대리만족일지라도 꿈 꾸는 것엔, 낭만을 바라는 것엔 댓가가 없다.

이영호가 그렇다. 그는 현존 최강자다. 이 '현존 최강'이란 단어는 굉장히 오글거리는 단어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그만큼 가슴을 뛰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결국 주인공이 존재한다. 마지막에 서 있는 존재가 있다. 그를 그 리그의 최강자라 불렀다. 하지만 최근 그 리그들의 최강자가 있다. 이영호,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초창기부터 스타 본 사람들에게 어찌 보면 어린애일 수도 있는 그가, 현존 최강이다. 천하제일이다.

테란의 트렌드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것은 저그와의 관계에 따른 변화이다. 임요환처럼 컨트롤을 중심으로 변칙적인 전략을 통해 흔들고 또 흔드는 경우가 있었다. 서지훈이나 최연성, 이윤열처럼 생산 위주의 플레이를 통해 상대 저그를 짓누르던 때가 있었다. 여러 전략들이 물론 오고갔고 모두 컨트롤이 뒷받침 되었지만 결국 생산력 중심의 플레이를 했다. 발군은 최연성이었다. 서지훈은 묵직했으니 딱딱했고 이윤열은 자유스러웠으나 틈을 보였으며 최연성은 그 모든 것에 임요환이 장점마저 흡수했지만 가끔 타이밍을 놓쳤다. 결국 그 대치점엔 저그가 있었다. 상성상 저그는 테란을 무서워해야 한다. 그리고 저그는 그렇게 많은 영웅들이 등장하지도 않았다. 조진락, 변태준, 마재윤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들은 테란에게 플레이를 '강요'시켰다. 아이러닉하게도 저그 때문에 테란의 대표 트렌드가 등장했다. 한동욱이 우승할 당시에 조용호는 한동욱의 대치점에 있었다. 상성이 맞지 않았기에 결국 한동욱에게 우승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아쉬운 일이지만 한동욱은 운이 나쁘지 않았다. 스타일의 상성상 조용호보다 우위에 있었기에 쉽게 우승을 가져갈 수 있었다.

마재윤이 몰락하고 이제동이 등장하면서 팬들은 '절대시대'를 예고했다. 이제동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저그였기 때문이다. 택뱅이 난립하던 때도 있었지만 택뱅을 이제동의 위에 놓을 수는 없는 것이 프로토스이기에 가지는 한계를 이제동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동은 순식간에 이 판을 점령했다. 프로리그 저그전 연승으로 인해 '저그만 잡는 저그'로 평가받던 때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간단하게 그 공식을 깨부순 것이 이제동이다. 전천후 병기, 마재윤으로 인해 다시 부흥했던 저그 역사의 마지막 주자, 저그의 최종형태. 그것이 이제동이다. 저그의 가치는 프로토스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저그는 테란을 얼마나 많이 깨부수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이제동은 당대 모든 테란들을 아래로 여겼다. 이영호만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스타크래프트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영호는, 결국 이영호는 이 판의 역사를 뒤집어버린 최종병기로 평가받는다. 그는 테테전, 테프전, 테저전 모든 종족전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끌어냈다. 마재윤이 '눈에 보이는' 심리전을 즐겨 썼다면 이영호는 그것을 한층 더 발전시켜 '심리전 없는 경기'는 생각치도 못하게 만들었다. 이영호를 상대하기 위해 심리전을 연구해야 하고 이영호를 상대하기 위해 기본기를 닦아야 한다. 그 어떤 것도 부족하다면 이영호는 그 작은 틈을 파고든다. 더 많은 자원을 먹는데도, 더 많은 팩토리를 돌리는데도 이영호에게 생산에서 이길 수가 없다. 드론 수를 아무리 조절해도 이영호에게 수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다. 아무리 효율적인 생산을 하는 프로토스라도 에드온이 하나만 붙은 이영호의 생산에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닌다. 주도권을 놓치 않는 선수, 상대에게 끌려가기보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끌어당기는 경기를 하는 이영호다. 스타 역사상 이런 선수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영호다.

오늘 경기를 보며 나는 느꼈다. 테란의 트렌드는 굉장한 변화가 있었다. 분명, 저그는 테란과의 수싸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동의 장점은 판단력이다. 그는 이제껏 그 어느 저그도 가지지 못한 피지컬을 가졌으며 그 어떤 저그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판단력을 가졌다. 그 어떤 수싸움을 걸어오더라도 그 무시무시한 피지컬과 판단력으로 상대를 기가 질리게 했다. 하필이면 상대 테란이 이영호였을 뿐이다. 그야말로, 상대의 모든 것을 뚫어보고 상대를 자신의 플레이에 끌어당기는 선수. 굳이 무협식으로 따지자면 태극의 원 안에 상대의 모든 공격을 파훼하고 그러다 찌른 한 방이 상대의 헛점이 되는 완전무결한 테란이었을 뿐이다. 가장 완벽한 저그가, 불행히도 가장 완벽한 테란을 만난 것이 잘못이다. 이영호는 하필이면 자신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선수가 저그였고 그것은 인정받든 인정받지 못하든, 그 자신을 천하제일고수로 불리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영호는 그 자신의 트렌드를 창조해낸 위대한 선수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술을 먹으며 봤습니다. 순간 순간 놀랐고, 흥분을 견디다 못해 씁니다. 오타를 쓰고 고친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문장 연결이 말도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취했습니다. 하지만 견딜 수 없어 씁니다. 천하제일고수를 눈앞에서 본 결과입니다. CJ와 삼성칸의 팬인데도 이영호의 경기를 본다는 것 자체로 대행운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마모씨에 대한 내용이 거북하실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마모씨를 증오합니다. 믿음이 컸던 만큼 증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스타1의 역사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지만요. 그래서 마모씨 이름을 쓸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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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29 00:34
수정 아이콘
정말 바야흐로 리쌍의 시대네요
동시대 최고의 두명의 최강자라..참 재밌어요
예전에는 항상 누구혼자서 본좌하고 독주체제였는데..
이영호를 단독본좌다라고 칭할수없는건 이제동선수때문이겠죠.
리쌍중에 누가 더 낫다라고 단정짓긴 힘들거 같아요..
스타판의 끝물이 아주 재밌게 흐러가네요
sHellfire
10/08/29 00:50
수정 아이콘
한편의 무협소설같은 글이네요.
읽다보니 새삼 이영호가 대단한 선수라는걸 느꼈지만 역시 아직은 이르죠.
스타리그와 wcg마저 정복한다면 정말 '천하제일고수'라 칭할만 하겠죠. (안돼~ 이놈의 꼼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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