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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06/22 10:59:34
Name 라벤더
Subject [살짝 늦은 리뷰]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던 2시간여의 기록
- 경기 리뷰 20070621 곰TV MSL 8강 진영수 vs 김택용

 전 올드팬입니다. 그것도 소위 '치고 올라오는 어린 선수들'을, 잘하는 걸 알면서도 대놓고 마냥 응원하지 못하는 꽤 보수적이고도 못된 올드팬입니다. 그래서 두 선수의 경기를 보기 전까지 저는 그저, '얼마나 잘하나 한 번 보자'하는 또 그런 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선수 대결의 승리자와 4강에서 맞붙게 될 박태민 선수를 응원하는 입장이라서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여튼, 전 그렇게 비호감과 호감 그 중간 어디쯤의 어정쩡한 곳에 두 선수 모두를 놓고 경기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삼각지대, 그 맹점의 힘 at 데스페라도

 초반 찌르기 성공 후 김택용 선수는 약간 의외의 타이밍에 의외의 위치에의 멀티, 이른바 '최연성 식의 확장'을 3시 지역에 가져갑니다. 아모리와 아카데미와 엔지니어링베이를 한 번에 올린 테란이 겨우겨우 한 방을 모아서 조금은 이른 타이밍에 치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멀티를 몰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턱 밑까지 조여들어온 테란병력을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뚫어낼 수 있었던 힘도 결국, 막 돌아가기 시작했던 12시 멀티가 아니라 자신의 진영과 상대의 진영을 같은 거리에 두고 있던, 그래서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도 상대가 전혀 알지 못했던 3시 지역 멀티에 있었던 것입니다. 3시 지역의 존재를 몰랐던 테란은 아무리 물량 좋은 상대라지만 그 정도의 물량이 쏟아져 나와 조이기를 뚫을줄은, 그리고 조이기를 뚫자마자 아비터까지 뽑을 여유를 상대가 가지게 될줄도 몰랐던 것이죠. 그렇게 데스페라도에서의 첫 전투는 자원의 힘을 바탕으로하여 뚝심과 조합으로 밀어붙인 프로토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줍니다.


49 퍼센트의 과감함과 51 퍼센트의 조심성 at 파이썬

 같은 전략을 두 번 쓰지 않을거란 확신이 있었을까요, 테란은 원팩더블 이후 엔지니어링베이가 아닌 두 번째 팩토리를 먼저 올리는 선택을 합니다. 만일 프로토스가 무난한 옵드라 체제가 아닌 다크나 리버를 통한 빠른 견제를 생각했다면 테란은 충분히 위험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과감한 판단 후 테란은, 자신의 진영에 터렛을 아낌없이 지어줍니다. 말하자면 '안전모드'로 부팅하여 병력을 모으기 시작한것이죠.
 벌쳐 4기의 프로토스 앞마당 난입 후 프로브 5기를 잡아준 플레이는 이제 막 8시 멀티를 돌리기 시작한 토스에게 확실한 불안을 심어줍니다. 센터로 나가있던 드라군들이 회군하다 마인에 2기가 폭사한 것도, 엇박자로 떨어진 다크템플러가 큰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한 것도 모두 프로토스를 다급하게 만들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그 다급함은 길게 자리잡고 있던 탱크라인의 끝쪽과 테란 앞마당을 공격하면서 가시화됩니다. 하지만 터져나오기 시작한 테란의 물량을 감당해내기엔 부족한 병력이었습니다. 이후는 모든 멀티에 아무 피해를 입지 않은 테란의 완승, 복수는 시작됩니다.


올인을 눈치챈 두 기의 프로브 at 로키

 테란이 무난하게 이기는 맵이 파이썬이었다면, 프로토스에게 그런 맵은 바로 세 번째 전장 로키였습니다. 파이썬에서 토스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듯이 로키에선 테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는 것입니다. 일대일 박빙의 상황에서 그런 맵이라면, 2경기에서 1승을 따라간 진영수 선수 보다는 어쩐지 쫓기는 입장이 되어버린 김택용 선수쪽이 상대가 뭘하는지 더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 궁금증을 풀어 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버그인지 컨트롤에 의한 것인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배럭 짓는 scv를 때리던 프로브는 운 좋게도 테란 진영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배럭이 올라가는 것을 발견하죠. 기밀로 치면 1급 국가 기밀 정도의 사실을 알아낸 그 프로브는 (경기화면에 잡히지는 않지만) 마린들에 의해 사라지게 되지만, 토스는 사이버네틱스 코어가 아닌 포지를 먼저 올리면서 방어에 치중합니다.
  1급 기밀을 들킨 테란은 파이어벳과 메딕을 준비하여 한 타이밍을 노립니다. 이왕 올인하는거 확실하게 올인하자는 생각이었는지 일꾼을 모두 집결시켜 이끌고 나옵니다. 헌데, 계속해서 테란 입구를 서성이던 프로브 한 마리가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죠. 또 한 번의 치명적인 기밀 누설이었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뒤였습니다. 테란 입구를 지키던 프로브의 활약으로 토스는 캐논을 늘리고, 일꾼은 일꾼으로 막고 캐논으로 병력 강제 공격을 해줍니다. 결국 테란의 병력과 일꾼은 몰살됩니다. 자칫 알고도 못 막을 수 있었지만, 그 정도로 허술한 '혁명가'는 아니었던 것이죠.


위기 뒤의 기회, 기회 뒤의 위기 at 몬티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3경기의 기습 전략을 가뿐하게 막아낸 프로토스는 2:1의 우위에 대한 자신감이었을지, 평소 기습 전략을 잘 쓰지 않는 자신의 이미지를 '역이용'하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상대 진영의 위쪽에서 전진 게이트를 준비합니다. 질럿 한기가 프로브의 도움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도, 테란은 조용히 자기 할 일만 하고 있는 상태. 한 경기만 더 내어주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기 때문이여서인지, 테란은 멀티보다 팩토리를 먼저 가져가는 선택을 합니다. 첫 마린이 질럿을 발견하였고 이윽고 나온 동료마린과 일꾼들을 동원하여 첫 질럿을 잡아냅니다. 두 번째 질럿이 마린들을 골고루 때리고 우왕좌왕하면서 잡히는 동안, 센스있게도 테란은 중간길로 보내놓은 scv로 팩토리를 지어 상대의 진영으로 넘깁니다. 자신의 진영 쪽은 세 번째 질럿을 넘기려고 시도하던 프로브를 잡으면서 어느정도 정리된 상황.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토스는 본진에 게이트를 짓고 전진게이트에서 생산된 드라군을 실어오려 하지만 이미 벌쳐 두 기에 의해 프로브가 몰살되었습니다. 침착한 위기대처와 의도된 것인지 순간의 판단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센스있는 전진팩토리에 의해 승부는 다시 원점이 됩니다. 야구에서 흔히들 말하는 '위기 뒤의 기회, 기회 뒤의 위기'라는 말이 떠오른 경기였습니다.


섣부른 예측의 무서움 at 데스페라도

  4경기 내내 엇박자 견제용으로 혹은 정면 힘싸움 때 살짝 보여주었던 다크템플러 카드를, 프로토스는 집중력 넘치는 방어력을 아낌없이 보여준 테란을 상대로 마지막 경기에서 드디어 꺼내듭니다. 초반 두 기의 질럿이 팩토리를 짓는 일꾼을 잡아내고 테란의 더블도 확인하면서, 경기는 첫 번째 데스페라도와 마찬가지로 테란에게 급박하게 흘러갑니다. 헌데 첫 번째 데스페라도처럼 하지 않고, 조금 더 과감하게 두 번째 팩토리를 먼저 올리는 판단을 합니다. 다크템플러 두 기가 나온 타이밍과 함께 테란진영에서는 엔지니어링베이가 올라갑니다. 이윽고 셔틀은 출발하고, 테란은 스캔도 터렛도 없는 '무방비상태'에 놓여집니다. 승리의 확신을 안고 떨어진 다크템플러들은 테란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때론 과감하게, 때론 지나칠 정도로 안전하게 5경기까지 쌓아올린 테란의 공든 탑은 그 마지막의 비수에 찔려 순식간에 처절히 무너져 내립니다.

  무난한 사업드라군을 예측했던 것일까요. 무뎌진 경계심과 섣부른 예측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너무나 잘 보여준 두 선수의 마지막 경기의 승리는 김택용 선수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초반찌르기'와 '데스페라도'를 넘지 못한 진영수 선수는 결국 8강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별 감흥없이, 크게 기대하지 않고 봤던 경기라 그런 것일까요. 5경기를 멋지게 채워준 '화신'과 '혁명가'가 참으로 고맙습니다. 다섯 경기를 지켜보면서, 그저 경력 적고 어린 선수들이라고만 생각했던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경기 감사합니다. 김택용 선수의 두 시즌 연속 4강 진출을 축하하며, 이제 어쩌면 마냥 올드선수만을 응원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한, 진영수 선수의 앞으로의 활약도 크게 기대해봅니다.




덧) 이 멋진 선수들의 경기를 오늘도 볼 수 있다니, 모두! 칼퇴근합시다 :)

덧2) 처음 쓰는 리뷰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오타 지적 / 태클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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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22 11:53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어제 두선수는 정말 날카로웠습니다.
앞으로 두선수가 멋진 라이벌이 될것 같습니다.

세대 교체가 되는 느낌입니다.
pennybest
07/06/22 12:02
수정 아이콘
글 잘 보고 갑니다^^
분석 글 멋져요~
[NC]...TesTER
07/06/22 12:02
수정 아이콘
眞과 龍의 대결이군요.
nameless
07/06/22 12:22
수정 아이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올드팬이 나와서 얘긴데 저도 올드팬인데 이상하게 올드들보다 새로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에게 희열을 느낍니다.

올드들이 만들어놓은 이 양질의 토양에
새로 치고 올라오는 파릇파릇한 새싹같은
신진 선수들의 눈부신 선전도 기대해 봅니다.

두선수 앞으로도 기대 해 봅니다.
꼬꼬마
07/06/22 13:57
수정 아이콘
김택용 선수 경기를 보면 최연성 선수가 생각납니다.몰래멀티의 힘...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몰래멀티를 해내는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5경기는 사업 훼이크가 컸죠.요새는 잘 안쓰는 전략이어서 먹혀든거 같네요.
不平分子 FELIX
07/06/22 18:26
수정 아이콘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어제경기는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단판제도 좋지만 확실히 단판제는 프로리그, 다전제는 개인리그.
이런식으로 하는 것도 재미있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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