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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8/30 06:19:10
Name DEICIDE
Subject 스타크래프트소설 - '그들이 오다' 55화 (최종화)
2005년 5월 8일 5시 35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강민의 의도와는 달리, 경기는 너무도 길어졌다. 첫 리콜의 성공으로 테란 본진을 거의 초토화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강민도 밀고 올라오는 테란의 병력이 피해를 꽤나 입었다. 다행히 후속 생산된 아비터로 방어해 냈지만, 테란도 앞마당을 돌리며 서서히 살아났다. 결국 서로 멀티를 하고 상대의 멀티를 공격하는, 로스트템플의 거의 모든 자원을 소모하는 초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강민의 아비터를 잡기 위해 테란도 고스트와 핵미사일까지 등장했고, 강민도 최종 테크트리를 사용하며 테란을 맞상대했다.

  “강민선수!!! 강민선수!!! 5시 섬멀티에 프로브 리콜!!!”

  전 맵의 자원은 고갈되었다. 6시 지역에 넥서스를 짓고 400의 자원을 모으던 프로브들은, 난입해 들어오는 벌쳐를 피해 마지막으로 자원이 남아 있는 섬멀티 지역으로 리콜되었다. 해설진들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면 강민!!! 자원이 남아있는 5시 지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해설진의 격양된 목소리와 함께 5시 섬멀티 지역에 넥서스가 소환되었다. 아비터는 다시 테란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떠났다. 잔뜩 흥분한 김동수 해설이 테란의 상황을 물었다.

  “테란, 테란에게 남은게 무엇인가요? 자원은 있나요? 자원!!!”

  테란에게 남은 유닛이라고는 베슬 한 기와 예닐곱 기의 벌쳐가 전부었다. 또한 주요 생산건물이 모두 파괴되어, 남은 건물이라고는 12시 미네랄멀티 지역에 있는 누클리어 사일로가 붙은 커맨드 센터와 그 주변에 건설되어 있는 서플라이 디팟, 커벌트 옵스가 붙은 사이언슬 퍼실리티, 그리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배럭스 2개 뿐이었다. 자원상황도 개스는 펑펑 남았지만, 미네랄은 98에서 완전히 멎어 있었다. 6시 본진에 자원이 남아 있었지만, 12시 미네랄 멀티 지역의 커맨드를 날려서, 벌쳐로 지금 완성되어 있는 넥서스를 파괴하고, 그 커맨드에서 SCV를 한기 한기 생산해서 살아나기에는 프로토스가 회복하는 시간이 훨씬 빨랐다. 게다가 강민에게는 아비터도 한 기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면 강민 승리입니다! 3종족 통틀어, 베슬의 이레디에잇에 피해를 입지 않는 일꾼은 프로토스의 프로브뿐이죠! 베슬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김동수 해설이 자신있는 목소리로 승리를 확정지었다. 넥서스가 완성되고, 5시 지역에서 프로브들이 미네랄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기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기잉- 푸슝-”

  그 때, 2개 남아 있던 배럭스 중 하나가 5시 섬멀티 지역 외곽에 안착했다. 한 개의 배럭스는 서서히 5시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5시 지역에 내려앉는 배럭스! 앗, 무엇을 생산합니다!!!”

  그러더니, 배럭스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목격한 김동수 해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다급히 외쳤다.

  “아아아!!! 지금 혹시 누클리어 사일로에 핵미사일이 남아 있나요?”

  그러나 그런 것을 채 확인하기도 전에, 베슬이 다가오더니 넥서스에 EMP 쇼크웨이브를 날렸다. 퍼헝 하는 소리와 함께 넥서스의 쉴드가 말끔하게 벗겨지고 말았다.

  “아아!!! 이거 핵 쏘겠다는 건데요!!!”

  그 때, 배럭스에서 고스트가 생산되어 나오자 마자 클로킹했다. 그리고, 배럭스가 공중으로 리프트되었고, 아까부터 서서히 다가오던 배럭스 하나가 그 옆에 도착했다. 그리고, 강민의 화면에도, 경기를 보는 해설진의 화면에도, 전 인류가 시청하고 있는 모든 화면에서도, 동시에 짤막한 문구가 떠올랐다.

  <Nuclear lunch detected.>

  “아아아!!!!!!!! 핵미사일 조준중!!!!!!!”

  강민은 클로킹 되어 있는 고스트를 볼 방법이 없었다. 넥서스 머리 위에 바쁘게 점멸하는 붉은 점을 보며, 강민의 심박도 함께 빨라졌다..

  “아, 강민!!!!! 지금 고스트를 볼 방법이 없어요!!!!!”
  “아아, 강민!!!!!! 이걸 어떻게……”

  순간, 6시 앞마당 언덕 지역에 있던 강민의 아비터가 천천히 다가왔다. 아차 싶은 김동수 해설은 거세게 고함을 질렀다.

  “아, 그렇죠!!! 강민!!! 아비터로 얼리면 됩니다. 스테이시스 필드로 고스트를 얼려버리면 핵미사일은 취소됩니다!!!”

  하지만, 아비터의 마나는 이제 120 정도에 불과했다. 스테이시스 필드를 쓸 마나는 오직 한 번 뿐이었고, 두 개의 배럭스에 가려진 고스트의 위치는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말 그대로, 무조건 찍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강민!!!!!! 핵 떨어집니다! 어서 판단해야죠!!!”
  “아아, 강민!!!!”

  대체 어디인가. 어디에 있을까. 강민은 엄지손가락으로 T를 눌렀다. 그리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딸깍.”



2005년 5월 8일 5시 50분
?


  강민은 빛 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한 빛이었는데, 눈은 부시지 않았다. 둥둥 뜨는 느낌이 편안했다.

  “뚜벅. 뚜벅.”

  그리고, 누군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연성이었다. 경기장에서 보던, 험한 모습의 연성이가 아니었다. 얼굴도, 옷차림도 깨끗한 연성이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수천, 수만명의 목소리로 연성이 물었다. 낯설지 않은 굉음이었다.

  “강민.”

  강민이 대답했다.

  “강민. 천동설이라고 알고 있나?”

  온몸의 세포를 흔드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연성이 물었다.

  “그래. 옛날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이었지.”

  강민이 대답했다.

  “아니, 그것은 지금 인류도 똑같지. 그들이 전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연성이 강민의 대답을 부정했다.

  “그런가.”

  강민이 대답했다.

  “이해하기 힘들군. 인류는 굉장히 지혜로우면서도, 굉장히 미련하다는 것을 말이지. 새로운 것을 엄청나게 쏟아내지만, 과거의 똑같은 잘못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어. 너도 그런가?”

  연성이 물었다.

  “그렇지. 나도 고쳐야 할 잘못들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사람이지.”

  강민이 대답했다.

  “네가 지금 인류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또다시 미련하게 교만함을 반복할 것이다. 그것이 두렵지 않은가?”

  연성이 물었다.

  “두려워.”

  강민이 대답했다.

  “인류에는 언제나, 과거의 잘못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그’가 있다. 아무리 참혹하고 괴로운 일을 겪어도 반성하지 못하는 ‘그들’ 말이다. 지금은 다른가?”

  연성이 물었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지. 언제고 그랬듯, 항상 그래왔듯이…… 험난함을 이겨낸 인류에게는……”

  강민이 대답했다.

  “……어김없이 그들이 올거야.”

  강민이 말을 맺었다.


2005년 5월 8일 6시 00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쿠오오오오……!!!”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스스로를 깨닫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건물이 마구 흔들렸고, 경기장에서는 돌 부스러기들이 진동으로 인해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늘에서는 외계인들의 모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머리 위로 추락하고 있었다.

  “쿠오오오오오……!!!”

  맹렬하게 추락하는 거대한 우주선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선수들은 지진이 난 듯이 흔들리는 그 진동에 바닥에 넘어졌다. 아니, 그들은 마치 기절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쿠오오…… 쿠오오…… 쿠아아아아!!”


  강민은 떨어져 내리는 우주선을 보고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맹렬히 떨어져 내리던 우주선은 이제 강민에게 부딪히기 직전이었다.

    “팟!”

  그 순간, 파앗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우주선은 빛의 가루 같은 것으로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그 빛살 가루들은 강민의 머리카락, 목덜미, 팔 등을 쓸며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경기장에 우두커니 서 있던 외계인들의 몸도 빛의 가루로 산산히 흩어져 내렸다.

  “스르르르……”

  땅으로 굴러 떨어진 빛의 가루들은 바람에 쓸려 가듯 곧 그 빛을 잃어갔고, 서서히 사라져갔다. 강민을 덮어버리듯이 흩어져 내리던 빛살 가루들도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거짓말처럼, 정말 아무 것도 남지 않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

  강민은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 위에는 푸르스름한 하늘이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득한 동녘 저쪽에서 어슴프레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강민은 천천히 두 팔을 내렸다. 그리고 동이 터 오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빛나는 아침 태양은, 어쩌면 무심할 정도로 어둠을 걷어내며 서서히 솟아올랐고, 길고 긴 밤을 보낸 인류를 따뜻하게 비추었다.




Epilogue

  경기에 지고 돌아온 강민은, 노트북을 열고서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결국 스타크래프트 세계 선수권 대회 본선에도 참가해보지 못하고, 대한민국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후……”

  이제는 힘에 부치는 것을 느꼈다. 전 세계적으로 스타크래프트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가 되고 나서부터, 너무도 많은 팀과 선수들이 경쟁하면서 갈수록 그 안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란 힘들어졌다.

  “딸각.”

  강민이 마우스 버튼을 누르자, 커뮤니티의 글 제목들이 쭉 화면에 표시되었다.

  <이제는 강민을 스타 실력으로 말해야 할 때>
  <강민 까는 놈들, 진짜 개념좀 차려라 ㅅㅂㄹㅁ>
  <횽아들, 이제 광민도 프로게이머 접고 물러나야 하는거 같아>
  <축 강민이 지니 와이리 좋노>
  <광빠지만, 요즘 광민의 플레이를 보면 답답하다.>
  <오늘 광민이 질수밖에 없었던 이유>
  <스타 앞으로 5년안에 망한다>
  <객관적인 프로토스 본좌는?>
  <[파포뉴스] 프로게이머 강민 은퇴 발표해……>

  강민은 그 2~3페이지에 걸친 그 제목들을 한참 동안이나 골똘히 바라보았다.

  "……“

  그리고, 조용히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

  “……인류를 죽이는 진짜 적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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