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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2/03 16:02:27
Name jerry
Subject 스타유전.....(답글에 대한 감사글.)
내가 스타를 하게 된 이유(허접의 스타 유전입니다)
답글에 대한 감사글이기도 하고요...


10여년 가까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인천을 떠나있던 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졸업 이후에 인천으로 소환되었다. 그 사고의 원인으로
대학을 가까스로 졸업했던 차라, 막상 할일이 없었다. 배운게 도둑질
이라고 대학 다니면서 하던 아르바이트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매일 3시에 출근하고 12시 넘어서 퇴근하는 생활이 계속 되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인천을 떠나있던 차라 친구도 없었고, 외로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가끔 서울로 올라가서 나는 친한 후배와 레드얼럿을 즐기곤
했다. 퇴근길에 우연히 들른 게임방에서 나는 처음으로 스타크래프트를
접했다. 오후엔 학생들을 가르치고, 술한잔 할 사람이 하나 없는 인천
에서 밤마다 게임방에 들르는 생활이 계속 되었다.

단순히 그 종족이 멋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프로토스를 선택하고
용감무쌍하게 배틀넷에 접속해서 대전을 벌였다. 스타크래프트를 배틀넷
을 통해 처음 배운 나는 치욕스런 결과를 맛보았다.
배틀넷 전적 44전 44패. 건물을 지을줄도 모르고, 유닛들의 기능들도 전혀
모르는 나는 무참한 패배를 통해 게임을 배웠다.

ally가 무언지도 모르는 한심스런 나를 우리팀들도 배신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다보니 어느덧 천승이 넘는 기
기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혼자서 게임하는 사람의 실력이 그렇게 쉽게
늘지는 않는 법. 매일 하이텔 스타크래프트 게시판에 들러 고수들의 이런
저런 전략을 살펴보았지만 실력은 답보상태. 항상 한번 이기면 한번 지고
이런 식이었다. 그때 게시판 담당자인 루키님의 이름을 처음 보았다.
어어, 레더라는게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이 생겼는데 이미 삼십이란 나이가
훌쩍 넘어버린 내 손가락이나, 재능이 젊은 친구들을 따라가기는 불가능한
법. 하여서 나는 고만고만한 직장인들이 내기게임을 한다고 하면 그 속에
끼어 짭짤한 수입(기껏해야 그날 술얻어 먹는 것이지만)을 올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때쯤(2000년 중순) 직장인들 사이에도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불었다. 현대 자동차에 다니는 친한 후배가 있는데 이 친구가 일
하는 곳에도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불어 으레 회식을 한 후에는 과장부터
일반사원까지 게임방으로 직행한다는 것.

헌데 이 친구가 어느날 급히 나를 불러낸 것이었다. 자기 동료들과 큰
내기를 했는데 날보고 용병 노릇을 해달란 것이었다. 울며겨자먹기로
대단한 고수(?)가 있다는 송도 근처의 게임방으로 찾아갔다. 후배는 그
고수의 팀과 큰내기를 하고 결전을 치루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싸움은 전 맵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후배는 정확히 맵의 반을 포톤캐논으로 도배해놓았고 상대편은 반대쪽을
성큰으로 도배를 해 놓은 것. 더군다나 상대방이 있는 쪽으로 슥 돌아가
보니 맵핵까지 쓰고 있었다. 그 날 나는 직장인 스타의 놀라운 단면을 보았
다.

그들은 무한맵의 미네랄을 전부 쓰지 않으면 결코 게임을 끝낼 것 같아 보이
지 않았다.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후배를 잠깐 밀어내고 자리에 앉아
놀고있는 하이템플러 80여마리를 합체시키고 조용히 상대방의 기지로 어택 땅을
실시했다. 게임은 10분만에 끝났다.

이 게임을 보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나는 후학(?)을 양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기 시작했다. sbs 엔지니어로 있는 사촌동생에서 시작하여
여자친구까지(지금의 마눌..-_-;) 전부 스타크래프트에 물들게 했다. 특히
사촌동생과는 수백번의 러쉬 연습과 겐세이 연습을 통해 배틀넷에서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지금은 손가락이 곱아 은퇴를 했지만 사촌동생은 웨이브계의
달인이 되었다. 특히 미니맵만을 보고 상대방의 테크트리를 완전히 무시한 채
무조건 풀업 저글링을 풀어대는 그의 솜씨는 신기에 가까와졌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했던가. 한번은 상대방이 캐리어 15대를 거느린 상황에서
싹 밀어버려 엘리시킨 적도 있었다. 상대방이 엘리된 후에 15대의 캐리어가
목적지를 잃은채 쓸쓸히 방황하는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우물안 개구리들끼리의 즐거움에 취해있을때
나는 처음으로 강적을 맞딱뜨리게 되었는데 그들은 내가 경외의 대상으로 삼던
유한맵의 레더 랭커들이었다. "직장인은 무한맵" "무한맵은 직장인"
"엘리되더라도 미네랄 펑펑 쓰다가 엘리되리라~" 하는 정신에 살던 우리들이
동대문구의 낯선 게임방에서 회포를 풀다가 만나게 된 그들.
기껏해야  BC BE BH 정도의 단축키밖에 쓰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그들의 손놀림
은 신기에 가까웠다.(나는 이때 저그로 종족을 바꾼지 한달 정도 되었었다)
그들은 배틀넷에서 1승을 올리고 낄낄거리는 우리에게 경기를 신청했고
강자의 아량으로 무한맵에서의 경기를 허락해주었다.
부시시한 외모. 지저분한 머리카락 사이로 빛나는 눈. 꼬질꼬질한 운동화.
그들은 진정 대학교 주변의 게임방에서 기생하는, 비상을 꿈꾸는
잠룡 같아 보였다. 아마도 계속되는 시소게임에 손이 근질근질하던 그들은 자신
들의 영토로 침입해서 낄낄거리고 있는 이방인들이 그리 곱지 않게 보였던 것
이다. 이른바 그 유명한 양민학살이 시작되려는 찰라였다.
비록 캔커피 내기에 불과했지만 게임이 끝나고 우리를 비웃을 그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했다.

그러나... 게임은 시작되었고 사촌동생과 나는 손가락이 곱아서 서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ALLY를 신청했다. 아, 진정한 고수는 대전에 앞서 상대방의 기부터
이렇게 죽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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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간만에 긴글 쓰려니...힘드는군요. 쬐금이라도 재미 있다면 조금 쉰 후에
다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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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두근두근.. 재미있을거 같네요..^^
아하하 jerry님 재밌게 읽었습니다. 나중에 저도 해설이 어느정도 안정될때쯤 이런 에피소드를 정리해서 올려 보고 싶어요.
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