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5/12/11 14:53:56
Name 박진호
Subject [공모]"옆집에서 들리는 스타 소리" 성기자의 취재 파일
*본 글은 현실과는 무관한 픽션입니다.
*본 글은 현실과는 무관한 픽션입니다.

파이러포룸

“대이변 신예 이우주 우승”
오늘 벌어진 로지텍배 스타리그 결승에서 신예 이우주(테란)가 최강플토 홍창의(프로토스)를 3대 0으로 꺾
고 감격의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우주의 전략과 홍창의의 물량에 승부로 예상 되던 이번 결승은 예상외로 전략 대 전략의 양상으로 모든
경기가 치러졌다. 이우주가 첫 경기와 둘째 경기를 각각 몰래 팩토리와 전진 8배럭으로 비교적 쉽게 가져간
것에 비해 세 번째 경기에 나온 홍창의의 질럿 포톤 러쉬는 프로브가 잡히는 등의 실수가 겹치며 간단히 막
히는 바람에 비교적 허무하게 승자가 가려졌다.
경기에 앞서 전문가들은 대부분 개방형이고 스타팅 포인트가 5개나 되어 압도적으로 프로토스에게 유리한
‘오적암살단’이 첫 경기와 마지막 경기의 맵으로 지정된 데다가 이전까지 4번이나 결승 무대에 올라온 경
험이 있는 홍창의의 압도적인 우세를 점쳤었다.
우승자 이우주는 “결승전이라 긴장이 많이 되었지만 첫 경기에 전략이 성공하고는 긴장이 사라졌다. 같이
전략을 짜주고 연습해준 팀원들과 보살펴준 감독님, 그리고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라며 감
격의 우승 소감을 전하였다.
이전 대회까지 4번의 결승에 올랐지만 모두다 준우승에 그쳤던 홍창의는 이번 대회에서도 준우승에 그치며
다음 대회 우승을 기약하였다.

성유제 기자 butter@estars.com


PGR22 자유 게시판

그의 전략에는 날이 서 있다.[5]                                       LiverofFlame
테란의 새로운 희망 이우주 선수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근영내사랑
아무도 예상 못했던 승리기에 더욱 기쁩니다[2]                     yg][서테란
당신은 여전히 최강플토입니다.[13]                               느끼하지않아요
이우주 우승!![126]                                                           UzOO.com


디씨아웃사이드 스타크래프트 겔러리

대구 간 애들 불쌍해 죽겠다.
이번 결승전 최악[27]
헝아들 이번 결승전 어떻게 생각해?[13]
홍창이는 맵발로도 안되는가. (알바 짜르지마)[3]
리버가 20킬 했을 때 각 해설자들의 반응[1]
우주리는 이거 봐주는거 아냐?[423]



“삐릭 삐리릭 펑. 쉬잉 쾅”
드라군이 마인에 폭사하는 소리, 탱크가 시즈 모드를 하고 포를 쏘아 대는 소리가 울렸다.
‘으 시끄러워.’
간 밤에 먹은 술의 기운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창의는 배게를 뒤집어 쓰고는 벽을 타고 넘어 들어오는 소리
를 애써 무시하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테란의 공격 소리는 그 위력만큼이나 매섭게 창의의 귀를 파고 들었
다.
“아, 진짜 이사를 가던가 해야지. 이 놈의 아파트는 벽이 비어 있나, 왜 이렇게 방음이 안 돼! 이 봐, 소리
좀 줄여요.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잖아.”
창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옆 집 쪽 벽을 손으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침대에서 나온 보람도 없이
옆집에서 흘러나오는 테란의 공격 소리는 그치지를 않았다.
“이 거 완전 스타 삼매경에 빠졌나 보군, 좋아 오늘 결판을 보겠어.”
창의는 잠옷 위에 점퍼를 하나 걸치고는 집을 나와 옆 집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띵동,띵띵띵띵띵동.”
신경질 적으로 초인종을 연신 눌렀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뭐야, 정말 너무하는 군. 이봐요!”
참 다 못한 창의는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문 좀 열어! 야 이 자식아. 문 안 열어?”
문을 두드리며 소리지르기를 몇 분간 계속 했지만, 문은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좋아, 너 두고 보자. 아 진짜 더러워서 이사를 가던가 해야지.”
창의는 대답 없는 문과의 실랑이를 멈추고는 아파트 복도 난간에 팔을 괴고는 점퍼에 있는 담배를 꺼내 물었
다. 창의가 내뿜는 담배 연기는
뉘엿뉘엿 져가는 서산 쪽 붉은 해를 향해 사라져 갔다.
‘하하, 벌써 해가 지는군. 젠장.’
“저기 홍창의 선수, 안녕하세요?”
“네?”
정취를 깬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순간 창의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밖에 나와 계셨군요. 지금 일어나셨나 봐요.”
“여기는 또 어떻게 알고 찾아 왔어요.”
“하하, 기자가 모르는 게 어디 있습니까. 기사거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갈 수 있지요.”
“난 할 말 없으니 당장 가요.”
창의는 성유제 기자를 무시하며 꺼져 버린 담배 공초를 허공에 던졌다.
“홍창의 선수. 지금 사람들은 홍창의 선수의 인터뷰를 듣고 싶어서 난리가 났습니다.”
“아니, 진 놈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다는 겁니까. 한두번 지는 것도 아니고. 할 말 없어요. 가요.”
창의는 유제를 밀치고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 저 홍창의 선수. 선! 아!”
황급히 닫히는 문을 향해 뻗은 유제의 손이 문틈에 끼어 버리고 말았다.
“뭐야. 이런. 괜찮아요?”
창의는 문을 열고 유제의 손을 확인 하였다. 유제의 검지손가락 끝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아이고 아파라.”
유제는 자신을 돌아본 창의를 보자 많이 아픈 척 소리를 질렀다.
“피가 나잖아. 젠장. 들어와 대충 붕대라도 감아요.”
“하하, 고맙습니다. 아아.”
유제는 계속 엄살을 피며 창의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있소. 붕대 있으니 알아서 감으시오.”
“네. 감사합니다.”
유제는 구급함 속에 있는 붕대를 꺼내 한쪽은 입에 물고 한쪽은 왼손을 이용해 자신의 손가락 끝에 감기 시
작했다.
“호차의 서수, 우우우”
“아니 또 뭐요.”
유제는 붕대를 자르려 몸을 꼬다가 붕대에 엉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정말 별 걸로 다 사람 귀찮게 만드는군.”
창의는 유제에게 감긴 붕대를 풀고는 어설프게 감겨진 손가락에 다시 붕대를 감겨 주기 시작했다.
“하하 이런 영광이.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집이 작군요. 혼자 사십니까?”
“집이 작던 크던 혼자 살던 둘이 살던 당신이 알바가 아니잖소.”
“아니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프로게이머신데 그에 비해 집이 너무 누추해서. 아아.”
창의는 일부러 강하게 붕대를 조였다.
“지금 나를 놀리는 거요.”
“아닙니다. 전 정말 홍창의 선수가 우리나라, 아니 세계, 아니 우주 최고의 프로게이머라고 생각해요.”
“참나. 맨 날 결승에서 지는 놈이 무슨 최고라는 겁니까.”
“최고죠. 실력만큼은. 원래 승패와 실력은 관계가 없는 것이니까 말이죠.”
“됐어요. 게임은 승부의 세계에요. 승리가 곧 실력이란 말입니다.”
“그거야 이기고 싶어도 못 이길 때 쓰는 이야기죠. 이길 수 있는데도 지는 경우에는 해당 되지 않죠.”
유제의 말을 듣는 순간 창의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요?”
“그냥 그런 말들이 있어요. 도대체 왜 홍창의 선수는 결승만 가면 지는 것인가. 준결승까지는 그렇게 승승
장구하고 완벽한 경기를 보여주다가 왜 하필 결승전만 가면 그토록 허무하게 지는 것인가. 뭐 한 두 번은 긴
장이다, 운이 없었다 하겠지만 5번이나 그것도 연속으로 지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금 내가 일부러 져주기라도 한다는 거야!”
창의는 유제를 밀쳐 내며 소리쳤다.
“진정하세요. 그냥 그런 말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 결승 후에는 더 그런 말들이 많아졌어요. 홍창
의 선수가 지기에는 너무 상황이 유리했다는 거죠.”
“꺼져. 당신 기자 맞아? 그렇게 할 일이 없어? 겨우 인터넷으로 찌질거리는 자식들한테 낚여서 여기까지
찾아 온 거야?”
“물론 기자 맞지요. 그래서 저도 그냥 찾아 온 것이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 조사를 하다가 몇 가지 의문 나
는 점이 있길래, 홍창의 선수에게 물어 보러 온 겁니다.”
유제는 웃으며 몸을 추슬러 앉았다.
“됐어. 당신이 의문스러운 게 뭐던간에 난 당신한테 할 말 없어. 나가.”
창의는 유제를 끌고 현관으로 내밀었다.
“집에 빚이 많더군요. 그리고 지금은 다 갚았다고.”
끌려가며 유제는 말을 꺼냈다. 창의는 유제를 끌던 손을 풀었다. 집안에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옆집에서 스
타 유닛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에서 누가 스타를 하나 보군요. 이 집 방음 시설이 형편없네요. 아니 소리를 너무 크게 켜 놓고 해서
그런가? 프로브가 미네랄 캐는 소리까지 들리네.”
“그.. 그건 내가 받은 상금으로 갚은 거요.”
창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말을 꺼냈다.
“그렇군요. 스폰서도 없는 팀에서 인센티브를 많이 줬나 봐요. 5번의 준우승 상금으로는 약간 벅찼을 텐데.”
“지금 내가 게임을 져 준 대가로 받은 돈으로 우리집 빚을 갚았다고 의심하는거야?”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요 앞 경비 아저씨를 만나서 물어보니 최근 홍창의 선수를 누가 자주 찾아왔다
고 하시던데. 그런 이유에서였나요?”
창의는 유제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유제는 얼굴을 감싸 쥐며 말을 꺼냈다.
“쯔쯔. 이런 저글링에 입구가 뚫렸나 보군요. 옆집 스타하시는 분 이거 힘들겠는데요. 프로브가 계속 터집
니다 그려. 그럼 전 이만. 다음에 또 찾아뵙죠.”
유제는 붕대가 감긴 손으로 거수경례를 하고는 집을 나갔다. 창의는 유제가 나간 현관을 보며 멍하니 서있었
다.
“펑, 펑펑. 삐릭. 띡. 두둥.”
옆집에서는 게임을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입구를 잘 막고 있었어야지.”




며칠 후.
“여.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아직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집이시죠?”
“누. 누구신지?”
자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은 창의는 정신이 없었다.
“파이러포룸 성유제 기잡니다. 집에 계시는 거 맞죠? 할 얘기가 있으니 1시간 후에 집으로 찾아 가겠습니다.”
“뭐야! 당신. 나 집에 없어. 오지마!”
“뚜뚜뚜.. 띵동.”
전화가 끊기자 마자 초인종 벨이 울렸다.
“젠장! 또 누구야.”
창의는 현관으로 가 잠긴 문을 끌렀다. 열린 문 앞에는 유제가 서 있었다.
“서프라이즈!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이런.”
창의는 반사적으로 문을 닫았으나 문틈으로 들어오는 유제의 팔이 빨랐다.
“아니 또 손에 피를 보게 하실 겁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유제는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왔다.
“그 때처럼 또 말도 안 돼는 소리 할 거면 당신 아주 초죽음이 될지 알아!”
“잠시면 됩니다. 이런 옆집 사는 분은 또 스타를 시작했나 보군요. 시끄럽지 않아요? 옆집에 가서 따져 보
지 그래요.”
“아주 고약한 놈이에요. 몇 번을 찾아갔는데 집에 뻔히 있는데도 절대로 만날 수가 없어. 아주 대 놓고 무
시한다니까.”
“그렇군요. 보니까 옆집 스타 소리 큰 게 아니라, 이 아파트 방음 시설이 엉망인거 같군요. 아마 우리 하는
얘기도 다 들리겠죠? 이런 목소리를 낮춰야지.”
유제는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왜 찾아 온 거요?”
“홍창의 선수한테 재미있는 걸 들려드리고 싶어서요.”
유제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조그만 카세트를 꺼냈다.
“며칠 전 홍창의 선수 집에 왔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어서요. 준비를 했습니다.”
유제는 카세트를 작동 시켰다.
“치이익.”
“재밌게도 옆 집 분. 아니 옆 집 아이. 홍창의 선수는 안 만나주는데 저는 만나 주더군요.”
“치익 그러니까 언제쯤이었어?”
카세트에서는 유제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연이어 한 아이의 목소리가 나왔다.
“음 2주일 전?”
“그러니까 옆집에서 1억 어쩌구 한 게 2주일전이란 말이지?”
“엄마가 안와서 무서워서 잠을 못자고 있었어요. 그래서 깨어 있었어요.”
“그래,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 볼래?”
“그러니까 술에 취한거 같은 아저씨 둘이서 1억 어쩌구 얘기랑 게임 그러니까 스타 얘기랑 하는 거 같았어
요.”
“다른 건 기억 안나?”
“음, 한 아저씨가 꼭 3대0으로 져야 되냐고 그러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치이익.”
유제는 카세트 정지 버튼을 눌렀다. 창의는 굳은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날 집에 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옆집에서 그렇게 생생하게 스타 소리가 들리는데 당연히 옆
집에서도 이 집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겠지? 아주 생생하게. 그렇다면 혹시 옆 집 사는 분이 홍창의 선수와
또 최근 홍창의 선수를 자주 찾아오던 그 어떤 사람과의 대화를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당신 원하는 게 뭐야!”
창의는 소리를 질렀다.
“쉿. 옆집에서 또 소리를 듣겠습니다. 목소리를 낮추세요. 전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유제는 웃으며 자신의 입 앞에 검지 손가락을 세웠다.
“그래. 사실이에요. 게임을 져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오.”
창의는 모든 걸 포기한 듯, 담담히 말을 꺼냈다.
“언제부터였습니까? 3번 째 결승전? 4번 째 결승전?”
“내가 정인혁 따위에게 질 거 같아? 그것도 2번씩이나?”
“흠 처음부터였군요. 이거 놀랬습니다. 정저그 2연속 우승 신화가 조작이었다니.”
“이미 다 조사했겠지만 당시 우리 집은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엄청난 빚을 지고 모든 가족이 뿔
뿔이 흩어진 상태였소. 난 어떻게든 집안을 일으키려고 노력했지. 하지만 내 상금은 아버지의 빚에 비해선
새발의 피였소. 어떻게 알았는지 그쪽에서 접근을 해오더군. 난 그 이후로 어떻게든 결승전에 올라갔지. 그
리고 지는 게임을 했어. 사람이 절실해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더군.”
“신기하군요. 왜 그쪽 팀은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 부으며 승부를 조작했는지. 차라리 홍창의 선수를 이적
시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젠장. 당신도 알잖아. 대기업이 스폰을 하면서 노리는 건 광고 효과라는 걸. 그들에게는 온 세상의 이목을
끌만한 주인공이 필요했겠지. 나 같은 늙은 아저씨는 스타성이라는 게 없잖아. 중요한건 실력이 아니라 인기
라고. 희대의 미남게이머들의 극적인 우승만큼 아름다운 드라마가 어디 있겠나. 꿋꿋이 결승전에 올라와서
져주는 데 굳이 팀으로 영입할 필요가 없지. 게다가 그 팀은 선수 빼오기를 너무 많이 해서 비난이란 비난은
모두 듣고 있는 상태였다고.”
“그렇군요. 그랬었던 거군요. 하하하..헉.”
창의는 유제의 멱살을 잡았다.
“비웃지 마.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내 전부를 버린 거란 말이오.”
창의는 힘없이 멱살을 잡은 손을 풀고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발. 비밀로 해줄 수는 없겠소? 스타리그 전체를 위해서 말이오. 이 사실이 공표된다면 그동안 무수히 많
은 사람들이 이뤄 놓은 것을 한 번에 무너뜨려 버리게 될 수도 있지 않소? 당신이 원한다면 그냥 내가 조용
히 은퇴하리다.”
“재미있군요. 그래도 스타리그는 사랑하신다. 정정당당한 승부의 세계를 돈 몇 푼에 팔아버린 장본인께서.
정말 스타리그를 생각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동안 쌓아왔던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일까요?”
“.......”
“사실 저는 홍창의 선수와 달리 스타리그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요. 정말 스타리그를 위한다면 이런 비리
는 모두에게 알려야겠죠. 최대한 빨리. 뭐하러 홍창의 선수를 이렇게 찾아 왔겠습니까. 홍창의 선수가 사죄
하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용서하기 위해서? 아니죠.”
“도대체 어쩌자는 거요?”
“이런 건 어떻습니까. 따지고 보면 이번 사건에 증거라고는 이 테이프 밖에 없어요. 막상 목소리의 주인공
인 옆 집 아이는 이런 사정을 알만한 나이가 아니더군요. 5살이나 되었나. 스타도 잘 못하고. 하하.”
“그래서...”
“이 테이프 사시죠.”
“뭐?”
“빚도 다 갚으셨을 테니 1000만원 정도는 여유가 있으시겠죠?”
“젠장.”
“옆집 아이는 스타대회가 있는 줄도 모르는 것 같던데요. 집에 케이블이 안 나와요. 인터넷도 안 되고. 고
물 컴퓨터로 컴퓨터랑 스타를 하는 거였더군요. 이 테이프만이 스타리그와 당신의 명예를 위협하고 있는 유
일한 위험 요소라는 것이죠.”
창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좋소.”
“폰뱅킹 되시죠?”
유제는 창의에게 계좌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창의는 전화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됐소.”
“잠시만요, 확인을 해야지요.”
유제 입가에 미소를 띄며 전화를 꺼냈다.
“잔액 1046만 3401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한배를 탄 거군요.”
유제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됐소.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마시오. 그리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당신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걸 명심
하시오.”
창의는 유제의 손을 치며 악수를 거절했다.
“하하하, 걱정마세요. 난 홍창의 선수 팬입니다. 이번 대회는 꼭 우승하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스타리그의
발전을 위해서는 홍창의 선수가 꼭 우승하셔야 해요. 혹시나 그쪽에서 또 그런 제의를 한다면 저한테 말씀하
세요. 이번에야 말로 당신의 우승을 보고 싶으니까요.”
유제는 뿌리쳐진 오른손을 천천히 거두며 여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창의는 말없이 유제를 지나가 현관문을
열고는 유제를 처다 보았다.
“가요, 가.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지 마세요. 따지고보면 다 홍창의 선수를 위해서라니까요.”
유제가 집 밖으로 나가자 창의는 털썩하고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아, 사람이 이렇게 까지 망가져 버리는군. 저런 애송이 기자한테 당하다니.’
“윙, 치이익.”
긴장이 풀려버린 창의의 귀에 다시 옆집의 스타크래프트 게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제발 조용히 좀 해! 내 말 들린다는 거 다 알고 있어, 이 자식아.”
창의는 벽을 긁으며 옆집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소리는 여전히 계속 되었다.
“조용히 하라고!”
창의는 소리치며 옆집으로 가 현관문을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지 않자 이제는 발로 문을 차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문을 발로 차다 지쳐버린 창의는 문에 기대어 쓰러졌다. 고개를 숙이고 숨을 헐떡이는
창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저기 무슨 일이세요?”
양손에 시장에서 사온 물건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몇 개씩 들고 있는 아주머니가 창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창의는 행여 자신이 울고 있던 것을 들킬까봐 고개를 다시 숙여 눈물을 훔친 후 일어났다.
“아니, 도대체 시끄러워서 살 수가 있어야죠.”
창의는 어색한 목소리로 화를 냈다.
“이 아파트가 워낙 후져서 방음이 하나도 안 되는데, 맨날 소리를 잔뜩 키워 놓고 게임을 하고 있으면 어쩌
라는 겁니까.”
창의의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이를 어째. 정말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주머니는 급히 비닐봉지를 땅에 놓고 핸드백을 열어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따고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
이 열리자 스타 유닛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려 왔다. 소리가 작아지고 잠시 후 아주머니가 남자아이를 데리고
현관으로 나왔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도, 제가 평소에는 직장 때문에 밖에 나가 있어서 신경을 못 썼어요.”
‘이럴 수가.’
창의는 아주머니가 아이에게 하는 행동을 보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수화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아주머니의 손짓을 받은 후 놀란 표정을 짓더니 창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
고는 다시 아주머니에게 손짓을 하였다.
“이 아이가 청력이 안 좋아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크게 했나 봐요. 죄송하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전
해달랍니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애를 잘 챙겼어야 하는데.”
“아.. 아니. 뭐 괜찮습니다. 앞..앞으로 안....그.. 그러신다면야.”
창의는 혼란스러운 나머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저... 저기 근데. 이 아이는 아예 듣지를 못하는 것인가요?”
“아니요. 아주 큰 소리는 조금 들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소리를 키웠나보네요.”
“그.. 그렇군요. 그..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기요. 잠시만.”
“네?”
“홍....... 잠시만요.”
아주머니는 아이와 손짓을 주고 받더니 말을 이었다.
“홍창의? 홍창의 선수 아니냐고 아이가 물어보는데요?”
“아. 네 맞습니다만.”
창의의 대답을 들은 아주머니는 다시 아이와 손짓을 주고 받았다.
“아이가 홍창의 선수 팬이라고 싸인을 받고 싶다고 하는데요. 폐를 끼치고 이런 부탁을 해도 되는지.”
“네, 뭐 괜찮습니다.”
아주머니의 손짓을 받은 남자아이는 기쁜 얼굴을 하고는 집 안으로 사라졌다가 종이와 펜을 들고 나타났다.
“이름이?”
“성길이요. 민성길.”
창의는 종이에 크게 싸인을 하고는 ‘성길이에게’라고 덧붙였다.
“여기요.”
창의의 싸인을 받은 아이는 기뻐하며 길게 아주머니에게 손짓을 하였다.
“아이가 이번 대회 너무 아쉬웠다고 다음 대회는 꼭 우승하길 빈다고 하네요.”
“아, 예. 감사합니다.”
“하여튼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아이에게 신신당부 할게요. 죄송합니다.”
“..네...뭐 괜찮습니다. 뭐... 그... 그럼 전 이만.”
창의는 대충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뛰어 들어가 유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너 이 자식. 감히 나를 속여?”
“아니, 홍창의 선수 무슨 일이세요?”
“이 테이프 가짜지!”
“아이쿠, 벌써 들켜 버리다니.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아셨어요? 흠 내가 말을 너무 많이 지어냈나. 홍창의 선
수 성격이랑 정황상 했을 것 같은 대화로 조카랑 잘 만들었는데.”
“이 자식, 너 죽었어.”
“진정하세요. 진정. 테이프가 가짜라고 해도 칼자루는 제가 쥐고 있습니다. 홍창의 선수가 쥐어 주신 칼자
루 말이죠.”
“무슨 소리야!”
“세상이 좋아져서인지 요즘 핸드폰은 이런 기능도 있더군요.”
수화기에서 기계버튼 조작음이 들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칙......하지만 내 상금은 아버지의 빚에 비해선 새발의 피였소. 어떻게 알았는지 그쪽에서 접근을 해오더
군. 난 그 이후로 어떻게든 결승전에 올라갔지. 그리고 지는 게임을 했어. 사람이 절실해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더군.......칙......”
“.......”
창의는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뭐, 여기다가 홍창의 선수가 저한테 보내준 송금 내역이 더 해지면 이보다 완벽한 증거는 없겠죠? 아, 아.
걱정마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전 스타리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이 사실은 무덤까지 비밀로 간직하죠.
1000만원이나 벌었는데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어요?”
“으아!!”
창의는 소리를 지르며 전화기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



며칠 후 유제의 방.
“안녕하세요. 전 감독님이시죠? 성유제 기잡니다. 홍창의 선수 문제 때문에요. 아. 네. 제 계좌번호 보냈는
데...걱정마세요. 철통 보안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기를 빕니다. 네. 네. 그럼 안녕히.”




3개월 후.

파이러포룸

“홍창의 6번의 도전 끝에 생애 첫 우승”
홍창의(프로토스)가 5전 6기의 신화를 이룩했다.
상암월드컵구장에서 펼쳐진 삼다수배 스타리그에서 최강플토 홍창의가 3회 우승을 노리던 정저그 정인혁을 최
종 스코어 3대2로 꺾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지금까지 5번의 결승에 올라 5번 모두 지며 2인자 징크스에 시달렸던 홍창의였지만 오늘만큼은 예전에 보였던
결승에서의 무기력한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중략..
홍창의는 “우승의 영광을 부모님과 감독님께 돌린다. 그리고 특별히 옆집에 사는 잘 듣지 못하는 한 아이게
감사한다.”라고 우승 소감을 이야기하였다.
덧붙여 우승 상금의 전액을 농아를 위한 복지 단체에 기부한다는 뜻을 전하였다.

성유제 기자 butter@estars.com


“어디 글을 마저 써볼까. ...정말 바래왔던 우승, 너무나 기쁩니다. 전 믿고 있었어요. 이제 당신 앞에는 당
신이 이뤘던 준우승보다 더 많은 우승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글쓴이 ‘느끼하지않아요’.”
유제는 모니터 앞에서 자판을 두들기더니 마지막으로 경쾌하게 엔터키를 쳤다. 모니터에 떠 있는 창의의 응원
글목록을 보는 유제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따르릉”
유제의 품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 네. 기부 때문에 전화했었습니다. 네. 계좌번호가 어떻게 되죠? 네. 아. 2000만원입니다. 네.
익명으로 해주시고요. 감사합니다.”

*본 글은 현실과는 무관한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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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3
05/12/12 23:53
수정 아이콘
기자의 관점에서 읽은 소설은 또 다른 재미가 있네요^^
저도 순간 아이디를 박지호라고 보았답니다; 하하;
정말 잘 읽었습니다^^
쪽빛하늘
05/12/14 14:28
수정 아이콘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멋진 소설입니다...
05/12/11 15:09
수정 아이콘
스크롤의 압박이 있긴 했지만 글에 빠져들어서 긴줄도 모르고 읽었습니다 1등자리를 차지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실력이신데요
박진호님의 글의 장점은 사실적이다에 큰 장점이 있는것 같네요
박진호님 직업이 무엇인지 알고싶네요
설마 작가는 아니시겠죠 ㅋ
요새 별로 박진호님의 글을 못봤었는데 오래간만에 봐서 반갑네요
다시 추게로 가서 박진호님의 글좀 보고와야겠네요
SlayerS_'S.Y'
05/12/11 15:18
수정 아이콘
정말 대단하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추게에도 3개의 글이 있더군요....
글 읽기 싫어하는 제가 벌써 2개나....
한상빈
05/12/11 15:57
수정 아이콘
읽기전 글쓴이의 아이디를 박지호라고 본건 저뿐인가요;;
못된녀석...
05/12/11 16:05
수정 아이콘
와아... 재밌네요..
근데 이해가 안가는게 한가지 있는데, 마무리부분에서 성유제기자가 홍창의선수를 속인부분과 마지막에 계좌번호관련된 부분이 좀 이해가 안가요..ㅜㅜ
설명좀..
05/12/11 16:07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PGR22에서 센스를 느꼈습니다~
솔로처
05/12/11 16:19
수정 아이콘
강력한 수상후보군요. 뭐..어차피 한번은 검증된 작품이니.
05/12/11 17:36
수정 아이콘
며칠 후 유제의 방.
“안녕하세요. 전 감독님이시죠? 성유제 기잡니다. 홍창의 선수 문제 때문에요. 아. 네. 제 계좌번호 보냈는
데...걱정마세요. 철통 보안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기를 빕니다. 네. 네. 그럼 안녕히.”
이 부분.....
홍창의선수한테 준우승을 강요한게 전감독이란 뜻이에요 ?
05/12/11 18:07
수정 아이콘
TM님// 전감독은 대기업팀의 감독이겠죠
그 대기업팀은 홍창의선수에게 져달라고 하고 돈을준거죠
아케미
05/12/11 18:25
수정 아이콘
결국 공모로 돌리셨군요. ^^ 다시 읽어도 좋네요.
지니쏠
05/12/11 19:43
수정 아이콘
그니깐 전감독님이 져달라고 사주한거고, 유제의 기자분이 홍창의선수의 테입을 들려주며 1000만원을 요구했겠죠. 이 2천만원은 다 기부했고..
사상최악
05/12/11 20:29
수정 아이콘
결국 유제의 기자는 홍창의 선수의 진짜 팬이었던 건가요...
유제의 기자와 옆집 아이의 관계도 뭔가 있는 거 같고...
어쨋든 잘 읽었습니다.
못된녀석...
05/12/11 23:43
수정 아이콘
와...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니 성유제기자가 정말 좋은사람이고 최고네요... 아까는 이해를 못했는데.
글쓴분의 상상력과 필력이... 가히 본좌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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