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이전 질문 게시판은 새 글 쓰기를 막았습니다. [질문 게시판]을 이용바랍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0/09/29 23:12
5.16 은 제2공화국인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 시절의 사건인데요.
이때는 의원내각제로 총리가 거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 5.16 사건이 일어나자 장면 총리는 몸을 숨긴채 행방불명되었고 윤보선 대통령은 법률상의 군통수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사실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은 한국전쟁 당시 대전협정에 의해서 미군사령관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군측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부대를 반란군으로 보고 진압을 위해 미군 1개 대대와 한국군 제1야전군 일부병력을 출동시키고자 대통령의 승인을 받으려 했으나, 이를 반대했다고 합니다. 또한 미 국무부에서는 쿠데타의 주동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반공친미적인 성향을 가진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았구요. 이후 5. 21에 장면총리가 내각총사퇴서를 발표하고 군사혁명위원회에 정권이양을 의결한 것을 보면 5.16 쿠데타가 빨리 인정을 받은 것이 성공한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10/09/30 00:22
실질적인 병력 운용은 사단장까지입니다..(그것도 상비사단..향토나 동원은 자기 병력이 거의 없다고 봐야죠...)
중장, 대장은 실상 자기 병력이 없어요...
10/09/30 10:01
625 이후로 군인에 대한 사회적 위치가 많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의 희생으로 625를 막았지만 실상 정권을 잡은건 이승만과 그를 추종하는 정치인들이였습니다. 군인들은 정치인들이 자기들을 밑에 두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박정희도 대표적인 정치인을 싫어하는 군인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위아래를 존중하기로 유명했고 2군 부사령관의 신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을 당시 사실상 수도권엔 병력이 없었습니다. 전두환 당시 수방사같은 수도방위시스템이 구축된건 사실 쿠데타를 막기 위함이였지 수도방위가 목적이 아니였습니다. 쿠데타 당시 장면내각은 특히 군대를 무시했고 마침 국민들의 지지 또한 이승만 정권과 다르게 높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령관급 이상의 고위 군인들이 아무도 막지 않은건 사실 누군가는 군인의 위상을 다시 625처럼 높여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명분은 1-3군 병력을 뒤로 빼면 북한의 도발이 예상된다 이지만 실상은 막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죠. 당시 625를 겪은 중장급 군인들은 전역을 앞두고 있어 군인의 정권창출 오히려 반겼으면 반겼지 반대하진 않았습니다. 쿠데타 이후 박정희는 장도영 육참총장을 의장으로 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었고 여긴 예비역 군인들 포함한 32명의 군인들이 소속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군인의 시대죠. 그이후 알래스카추출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보다 윗군번들은 대부분 제거되고 박정희는 의장으로 추대되고 박정희 독재시대가 열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