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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24 00:27
네이버 사전 펌입니다.
요약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 본문 10·26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살해된 뒤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는 사건수사와 군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10·26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 사전 접촉하였다. 그리고 12월 초순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연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였다. 한편, 총장의 연행에 저항할지도 모르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에게 유인되어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되었다. 연회 도중 총장의 연행사실이 전해지자 정병주·장태완 등의 육군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하였으나, 이미 전두환이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 후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진전은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세력은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하여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에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총장연행을 재가하게 설득하였다. 결국 최규하는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하였고, 이후 신군부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 사건의 주도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사태는 집권세력에 의하여 정당화되었으나, 그후 김영삼정부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하였다. --------------------------------------------------------------------------------------------------------------------------------------------------------------------------- 이걸 보니 전대갈 지지세력이 꽤 많았네요.
10/02/24 00:29
하나회의 힘과 전두환의 카리스마(?)의 합작품이겠죠.
정말 인복하나는 타고난 사람입니다. 머 복이아니라 자기사람 만드는 기술이 워낙 뛰어나다고 볼수도 있고요. 제가볼땐 대통령보다는 조폭 오야붕을 했으면 더 어울렸을꺼같다는;;
10/02/24 00:37
책으로 보지 마시구 저도 요새 제5공화국 보고있는데 1편부터10편까지만 보시면 1212사태에 대해 아주 자세히 배우실수 있습니다.(인물이름까지 외워집니다..)
10/02/24 00:42
전장군의 다른 훌륭하신(?)업적들에 대해 말하자면 입만 아플정도로 많지만 12.12사태야 뭐 그당시 사회분위기가 워낙 어수선하고 하던때니
권력다툼의 일종으로 별 신경쓰지 않고 까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물태우는 폭풍처럼 까고 싶군요.. 내부 쿠테타 때문에 전방 부대를 동원하다니-_-;;
10/02/24 00:56
전두환은 단순 운이 좋아서 그자리 차지한게 아니고 516당시부터 육사생도들 516쿠데타 지지 시가행진을 이끌어내면서 박정희의 총애를 듬뿍받았던 이른바 양자 였습니다.
당시 박정희의 쿠데타에 대한 군내 지지는 그렇게 높지않았습니다만 시가행진이후 분위가 완전히 반전되죠. 하나회도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정권차원에서 지원해주는게 없으면 단순 친목단체죠. 진급도 동기중에 탑이었고 특전사창설맴버로 베트남전에서 상당한 전공도 있는걸로 압니다. 따라서 이런 이유등으로 군내 육참총장하고 맏먹는 노른자위인 보안사령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겁니다. 그런 이유등으로 선배들이라고 만만히 대하지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10/02/24 01:10
아웅님// 박대통령 사망 전만 하더라도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박정희가 수족처럼 사용하기위해 전략적으로 키운 보안사령관 전두환 이 셋이 서로를 견재하면서 어느정도 권력이 균형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대통령의 사망과 함께 차지철과 김재규가 제거되면서 전두환 홀로 남았다는데 있죠. 누가 뭐라할 것이 없이 자연스럽게 권력의 중심이 된겁니다. 여기다가 전두환이 투스타였지만 보직이 보안사령관이었다는게 중요합니다. 박대통령 사망이후 개엄령이 발동됐고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박대통령 사망사건 조사총책임자인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되는데 이 직책이 권력이 막대해서 견제할 세력이 없어진 전두환에게는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어버린거죠. 여기에다 하나회 특히 그중에서도 확실하게 행동력을 보여준 9사단장 노태우(전방부대병력동원), 수경사 30경비단장 장세동(수경사 내부교란), 1공수여단장 박희도의 활약(?!! 국방부 & 육본 점령)에 힘입어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당한겁니다. PS. 제 아무리 쓰리스타라도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었죠. 포스타인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총장님을 포함해 반란군에 대항했던 수경사령관 장태완 장군님과, 공수특전사령관 정병주 장군님을 서빙고 분실로 끌고가 고문하고 후에 이등병으로 강등시켜서 불명예제대를 시켜버렸는데 누가 전두환에게 반기를 들겠습니까?? -_-;;;
10/02/24 01:15
권력이 서로 견제하다가 나머지 2명이 제거되면서 혼자남았다는 것,
자신의 뒤를 끝까지 보좌해줄 하나회라는 사조직이 있었던 것. 그리고 당시 군정보를 꽉쥐고 있는 보안사령관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현 기무사) 정보를 어떻게 이용하고 혼란을 줘야되는지. 그리고 감찰기관,정보기관을 어떻게 이용해야되는지 잘 알려주는 사례라고 볼수있죠.
10/02/24 04:34
찬양자님// 난 사람은 난 사람이죠. 저도 어릴때 아버지가 경호실에 계셔서 청와대에서 전대통령(그때 어린이들은 전부 대통령 할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나이도 젊었을땐데 크크) 이랑 사진도 찍고 했는데 그 어린애가 보기에도 뭔가 범접하기 힘든 그런 기운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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