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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15 11:34
아.. 제가 이걸로 글 올리려고 인터넷에서 이 광고 찾아볼라고 했는데 찾을수가 없더군요.
거기에 마침 집에 스캔도 고장나서 스캔도 못하고.. 하도 답답하던 찰나였는데, 이렇게 질문올리시니 짧은지식으로 댓글달아봅니다. 책과 광고에 대해서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개소리'입니다. 역시 조선일보 광고 답더군요. 일단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뒤로하더라도, 거기에 쓴 광고 카피는 김구선생님과 김일성을 동일선상에 놓았다는겁니다.-_- 김구선생님은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48년 남북협상에 나선 것인데, 그 광고 카피에는 "국가 건설 강력 반대"라는 개소리로 일관하고 있죠. 한마디로 앞뒤모르고 나대는 한 외국인 개소리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46년에 이승만의 정읍발언에서 이승만은 1차 미소공위가 무기한으로 휴회되고, 어떠한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남한만의 단독국가를 수립해야 한다고 말하죠. 그 이후에 48년 UN소총회에서 남한만의 단독선거 명령이 떨어지게 되고, 그게 분단의 원인이 되어서 48년 8월 15일날 반쪽자리 정부가 탄생하게 된거죠. 즉, 우리나라 분단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승만도 굉장히 큰 축을 담당하고 있으십니다. 대단한 분이죠. 그 이후에도 국가수립 이후 최고의 과제였던 친일파청산과 토지문제 해결에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죠. 46년에 북한은 민주개혁이라고 하여 토지문제를 청산하면서, 토지와 친일파를 엮어서 아예 청산을 해버립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48년에 만들어진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를 이승만은 국회프락치사건이나 깡패를 동원하여 반민특위를 습격함으로서, 원래 2년 계획이였던 반민특위를 1년만에 해체해 버립니다. 그리고 50년에 와서야 농지개혁을 단행하죠. 그나마 여기서 농지개혁을 했기 때문에 6.25에서 우리나라 농민들의 환심을 사서 북한의 침략에 겨우겨우 버티게 된 거죠. 6.25도중에도 이승만은 52년에 발췌개헌이라고 불리는 개헌을 함으로서, 당시 국회에서의 선거로 뽑혔던 대통령을 국민 직선제로 바꿉니다. 일반적으로 87년 민주항쟁 이후 우리가 직선제를 쟁취했다고 좋아하지만, 이승만이 한 직선제 개헌은 단순히 그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기회주의적인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이죠. 그나마 한국전쟁 당시 잘했다고 생각되는거는, 53년에 했던 포로 해방인데, 이 포로 해방으로 땡깡부리면서 53년에 한미수호방위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6.25전쟁 종반에도 이승만은 북진통일론을 외치면서, 북한을 뭉개고 우리가 군사적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 이후에 54년에는 역사상에 정말 저질 코메디급의 정치의 단면, 사사오입 개헌을 하시죠. 그렇게 대통령이 되신 이후에는 정권 말기적 현상을 보이는데, 경향신문 폐간이나, 조봉암 사형사건등으로 인심을 잃고, 결정적으로 3.15부정선거를 계기로 4.19혁명을 통해 물러나게 됩니다. 한마디로 김구와는 다릅니다. 정말 기회주의적이고, 독재적이고, 독선적인 인물입니다. 민족에 대한 애착은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단순히 빨갱이에 대한 척살만이 그의 목표인양... 그리고 참 신기한게, 48년 당선 -> 52년 재선 -> 54년 발췌개헌으로 삼선가능성 마련 -> 56년 삼선 -> 60년 3.15부정선거로 독재 노림 61년 쿠데타로 집권 -> 65년 재선 -> 67년 삼선개헌 -> 69년 DJ와의 사투끝에 삼선 -> 72년 유신독재.. 정말 독재자는 똑같은 모양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역사를 보는 시각과, 그를 얻기 위한 방법이 똑같은지....
08/08/15 11:39
제가 아는 바로는..
이승만 대통령은 임시정부에서 축출 당했던 인물로써, 미국 도피 후 광복 후 미군의 힘을 등에 업고 다시 한국에 입성 합니다. 그리고 임시정부의 대표였던 김구 선생님은 48년 4월 남북 분단이 가시화 되는 시점에 이 문제를 막고자 평양으로 남북연석회의에 참석 합니다. 이 때 김구 선생님이 남한에 없는 틈을 타 이승만 대통령이 48년 6월 단선, 단정을 주장 합니다. 그 때의 여론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지만, 친일파와 이승만 대통령 간의 이해 관계가 맞아 진행 되죠. 또한 당시 한국을 지배하던 미국은 이미 한국을 지배했던 노하우(?) 가 있던 친일파에게 높은 자리를 맡기죠. 미국은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을 거의 같은 나라로 인식했습니다. 식민지 생활에 대한 이해가 없었죠. 따라서 그 때 결성된 경찰 중 80 % 는 일제 시절 때 순사였던 사람이 그대로 이어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남한 만의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유는 친일파 가 한국에서 기득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대 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공산당이며, 이것이 반공 사상이였죠. 이와 같은 사상을 바탕으로 친일 민족반역자 처벌 운동가들은 대부분 반공 세력으로 누명을 쓰고 사라집니다. 그들은 대부분 독립운동가 였지만, 독립 후에도 친일파들에게 다시 한번 당한 것 입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이어져 온거죠. 이승만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유주의와 경제주의를 받아들였다는 점을 강조 합니다. 식민지 생활을 마치고 과거 청산이 중요했는지 미군에 의한 자유주의가 중요했는지는 개인의 판단 이겠죠. 요즘 조선일보가 이승만과 박정희 살리기에 열중 합니다. 이번 정부를 기회삼아 친일파라는 단어를 아예 우리나라에서 없앨려고 노력 하는 걸로 밖에는 안보이지만요..
08/08/15 11:44
독립운동은 뭐 미국의 힘을 빌자는 의미에서 어느 정도 좋았습니다. 임시정부에서도 어쩄든
상당한 입지를 가졌던 사람이고. 물론 권력을 잡자 변신크리. 뭐 김영상도 권력잡기전에는 정의의 대변자요, 목숨을 걸고 싸우는 민주화투사였지 않습니깡.
08/08/16 02:52
전쟁이 났을때 자기는 라디오로는 안심하라며 녹화 방송을 반복하고 정작 자기는 국외로 도망친 인물이죠.
그러면서 한강 다리까지 끊어주시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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