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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16 10:50
명나라는 전력을 다해 도와줬지만 ,광해군은 명나라를 제대로 돕지 않았고 오히려 청나라와도 친하게 지냈죠.
뭐 국제정세상 어쩔수없는 일이긴 하지만 신의가 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하실수도 있을듯합니다.
06/08/16 11:31
지수냥님
지수냥님의 시각은 광해군, 인조 당시 서인이 가지고 있었던 전형적인 논리에 해당합니다. 명나라가 우리나라를 전력을 다해 도와준 건 아닙니다. 오히려 명나라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일본군 못지 않은 패악을 끼치고 다니기도 했지요(약탈이나 부녀자 강간 같은거요) 그래서 일반 백성들은 명나라 군사나 일본 군사나 똑같이 생각했다고 합니다. 실제 명나라 군사가 일본군을 대파한 적도 없구요. 그러니 명나라가 우리나라를 전력으로 도와준 거라고 볼 수 는 없습니다. 그당시 이미 명나라는 환관과 당쟁으로 나라가 쇠약해진 상태였고 분에 넘치게 우리나라에 파병을 했으며(일종의 과시욕?) 그 과정에서 당쟁이 더욱 극심해 지고, 결국은 신흥 국가인 후금에게 밀려난 꼴입니다. 멸망 과정(명청 교체기라고도 하죠)에서도 명의 장수였던 모문룡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 땅으로 들어와서 여러가지 패악을 저지르는데 광해군은 모문룡과 명 군사를 압록강 유역의 조그만 섬으로 몰아넣는 걸로 대처를 합니다. 명의 장군을 아주 국경 밖으로 몰아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육지로 올라와서 다시 백성들을 괴롭히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죠. 아주 적절한(그 당시 상황으로서는) 대처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의니 뭐니 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이 이제 곧 명 자체가 소멸될게 뻔한 상황에서 명나라에 신의지키는데 우리나라의 국운을 걸수 있겠습니까? 안그래도 임진왜란때문에 타격은 받을 대로 받은 이후인데 다시 청과 대대적인 전쟁을 한다는 건 말이 안돼죠. 그건 말 그대로 지배층의 위신을 위한 명분에 백성들을 희생시키는 꼴 밖에 안됩니다. 광해군의 업적은 중립외교라는 당시 사대부의 인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탁월한 외교적 식견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수적으로도 국방력을 강화시킨다던지(효종 때 나선정벌에 파병한 조총부대도 광해군이 창설한 겁니다.) 동의보감이나 실록 편찬을 통해 문화적인 기여를 한 것, 경기지역에 한해서이긴 하나 대동법을 실시(이건 선조 말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당시엔 이미 광해군이 대리청정을 하던 시기입니다. 이 대동법 실시 초기에는 그 원래 의미가 잘 지켜져서 땅을 가진 자에게만 과세하고 땅을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공납의 부담을 덜어주어 백성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한 것 등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다만 광해군 자신도 출신상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관계로 자신의 집권에 도움을 준 대북인사들에 좀 지나치게 의존을 했던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습니다. 즉 자신이 중심을 잡고 좀 더 명확히 자신의 의견대로 국정을 운영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 정도겠지만 제 생각에는 이 역시도 광해군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다라고 봅니다. 대북파를 아예 무시했다가는 자신의 정권조차 안정될 수 없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죄가 있다면 지나치게 강경한 입장의 대북인사들의 꼬장꼬장함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붕당정치에 대한 설명이 잘되어 있는 다른 책을 참고로 해 보시면 될 겁니다. 붕당정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책한권 써도 모자랍니다. 이미 왕권이 약해지기 시작한 건 연산군이 중종반정에 의해 물러나면서 부터 시작되는 거니까요. 반정이라는 거 자체가 왕조 국가하에서는 사실 반역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한 여기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맹자의 사상에 대해 설명해야 하니 패스...하기로 하죠. 진짜 광해군의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국방력 강화에 힘쓰고 전후 재건에 노력하다 보니 백성들의 노역을 강제 동원하는 일이 많았고 그로 인해 뱅성들의 인심을 조금 잃게 된 것 정도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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