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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10 20:23
맨유가 b급팀과의 경기에서 전반에 3점먹고 후반에 루니가 5점넣서 이기면 그건 루니가 지배한경기지 맨유가 이길경기라고 평가하지않습니다.
11/05/10 20:29
프로리그 결승에서 3대0으로 지던 순간 한 선수가 4세트를 기적적으로 따내고 그 이후 3대4 역스윕했습니다. 그렇다면 물론 승리를 이끈 건 그 팀의 선수들이겠지만, mvp로 뽑히는건 4세트에 나온 선수겠죠? 이순신장군이 그런 역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순신장군의 업적을 폄하할 생각도 없고 과장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그가 해왔던 업적은 분명히 임진왜란 승리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11/05/10 20:37
떡밥이 잠시 나왔던거 같은데..
군사력이 망한상태 맞습니다. 병력동원 자체는 가능했지만 장비 일체를 자비로 마련해야 했던 상황이니 전시에 충분히 무장이 가능했을지도 의문이고 제대로 된 군사훈련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미숙련 징집병을 통제할 하사관 집단이라 할 갑사는 갑사로 따로 부대로 편재하면서 사라졌습니다(...) 그에 비해 일본군은 주력인 아시가루가 조선군의 징집병 개념이 아니고 자체로 무사계급의 최말단이지만 어쨌건 무사라고 불리는 숙련병들이었고. 200년간의 내전경험으로 조총만이 아니라 단병접전에서 '붙어서 이길수가 없다'란 자조적인 한탄을 이끌어낼 정도였죠. 장비나 보급 모두 영주들이 책임지는 상황이었으니 무장이 부실할 리도 없고.
11/05/10 20:45
그나마 있는 군사력도 대립제와 수포제가 창궐하면서 갑사 자체도 편제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상 소멸한 상태에 가까웠고 당대 기록에도 병사들이 장비를 갖추는것보다 빌려입는걸 선호하는 판이라 전쟁이 닥쳐서 당시 생산력으로 부랴부랴 벌충한다고 하기엔 너무 급박했지요.
즉 정상적인 보급이 유지되는 선이라면 조-명 연합군이 딱히 일본 이길수 있었을것이다 장담할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순신장군이 보급로를 차단했기 때문에 일본이 전력투사에 상당한 제한을 받은거지요. 눈시 BB님 연재물에서도 나타나듯이 말이죠. 더구나 찝어주셨듯이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장수들 새로 임관시키고 시스템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준비는 했지만 제승방략체제 자체가 전면전과는 거리가 먼 계획이었습니다.
11/05/10 20:49
눈시BB님이 앞으로 연재할 이야기시지만 명량에서 말도 안되는 승전을 하고 이후 조선수군 재건과정등을 보면 이걸 이순신 말고 누가 할수 있겠느냐, 하고 아시게 될겁니다. 에초에 초장부터 원균이 판옥선 100척을 쫄아서 바다에 버린 상황에서 기동전으로 수전 승리를 일궈내며 병력 재건한것도 이순신이고. 그 재건하라고 나라에서 제대로 지원도 못해줬죠. 병력자원만 육군으로 쏙쏙 빼갔지.
11/05/10 21:10
일본의 조선침략군은 일본군사력의 일부분아닌가요? 토요토미가 전국통일직전이라 도오토미군이 곧 일본군사력이다라고하기에도 임진왜란이후 세키가하라전투를 보더라도 임진왜란에 전혀 영향을 받지않은듯한 군사력건재였구요. 당시 조선이야 전국토가 유린당하고 전쟁을 하고싶지않아도 어쩔수없이 전국민이 전쟁터로 갈수밖에없는상황이었고 일본내에선 전쟁하기싫어서 조선으로 건너가지않은 유력영주들도 상당했죠.
11/05/10 21:23
보통 고대 사회의 국력이란 곧 인구를 뜻하고, (통일)중국 : 한국 : 일본의 인구비는 20:1:2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고대미술 전공하시는 분이 말씀하신 건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네요) 당연한 얘기지만 명이 자신의 전력을 동원하지 않았고, 일본 또한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일본이 조선의 두 배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때 전쟁에서 동원한 양 측의 전력비는 대충 50:50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얘기는 양쪽의 기술적 차이, 무사의 숙련도, 원정에서의 불리함 등은 고려하지 않았을 때이지만요. 그렇지만 그러한 요인들을 모두 고려한다 하더라도 당시 조명 연합군이 일본에게 '이길 수 밖에' 없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단정짓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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