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7/03/04 03:56:25
Name The xian
Subject 일주일의 드라마 - StarCraft League, Must Go On.
[들어가기 전에]

● 돌아왔습니다. 휴식(?)은 오늘 부로 종료합니다. 게시판에, 말로는 좀 쉬어야 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지병이 있었던지라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치료가 늦게 끝났으면 몇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달은 족히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치료가 빨리 끝났습니다.

● 이 글의 의도는 특정 선수를 응원 또는 폄하하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그저 일주일 동안 앓아 누워 있다가(;;)
새벽녘에 일어나 어제 경기 소식과 다른 소식을 듣고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현재 상황에 대해 그냥 나름대로의 느낌을 살려
정리해 본 글입니다.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 참고로, 저는 격투기 경기를 즐겨 보는 편이며 실제 수련을 가끔 하기도 합니다. 물론 경기는 할 수 없습니다. 취미일 뿐입니다.


I. DEJA VU - 언젠가 보았던 장면


남제 2005. 프라이드 라이트급 결승전. 고미 다카노리vs 사쿠라이 '마하' 하야토 경기.

한 번의 테이크다운 허용에 의해 백 마운트를 잡히는 위기를 맞이하고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맞던 사쿠라이.
관록과 용기로 백마운트 상태를 벗어나 다시 스탠딩을 만드는 데에 성공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고미의 무자비한 원투 펀치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KO패하고 만다.


고미 다카노리. 불패 신화를 가진 최강 챔피언의 등장. 누구도 그의 절대 지배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를 소개하는 등장 화면에 새겨진 '천하무쌍(天下無雙)' 이라는 광오한 칭호조차 영예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양 어깨를 둘러싼 GP 챔피언 벨트와 체급 챔피언 벨트가 그의 위대한 업적을 빛내고 있었다.


무사도 10 메인이벤트 경기가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라운드 기술 하나는 뛰어났지만, 전적도 눈에 띄지 않았던데다가 지루한 경기 운영으로 악평까지 들었고,
라이트급의 절대강자인 고미에게 1라운드에 실신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비관적인 평을 들었던 선수.


마커스 아우렐리오.


그런 그가 암 트라이앵글 초크로 고미를 실신시켜 버렸다.

턴버클에 올라가 손을 높이 치켜드는 - 고미의 전매특허인 - 승리 세레머니와
메인 이벤트 승리자의 영예는 고미의 몫이 아니었다.

절대 강자. 고미의 명성에는 지울 수 없는 상흔이 남았고, 고미의 팬들에게는 충격만이 남았다.


II. DEJA VU - 다시 현실이 된 장면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3 결승전. NaDa vs Maestro.

롱기누스 II 의 공방전에서 Maestro는 NaDa를 궁지로 몰아넣었고 결국 5시 멀티를 초토화시키며 승리를 가져간다.
네오 알카노이드에서 절대 타이밍으로 반격의 발판을 만드는 데에 성공하지만,
NaDa는 결국 리버스 템플에서 한 번의 빈집털이에 완전히 무너지며 Maestro에게 챔피언을 넘겨 주고 만다.


Maestro. 현존 최강 선수를 넘어 역대 최강 선수로 발돋움할 것임을, 모두가 그의 지휘를 받는 저그 군단에게 쓰러져
타이틀을 넘겨주게 될 것임을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아닌 신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마신(魔神)이라는 달갑잖은 명칭조차 영광의 칭호로 받아들여졌다.


GOM TV MSL 결승전이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그전이 좋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푸켓 관광을 갔다는 이유로 이기기를 포기했다는 악평까지 들었고
프로토스 팬들에게조차 프로토스의 재앙인 Maestro에게 3:0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비관적인 평을 들었던 선수.


Bisu. 혹은 김택용 선수.


그런 그가 0:3이 아닌 3:0으로 Maestro에게 완승을 거두었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자리도,
그리고 모든 스포트라이트도 Maestro의 몫이 아니었다.

역사상 두 번째 양대 리그 동시 석권 기회는 날아가 버렸고, Maestro의 팬들에게는 충격만이 남았다.



III. StarCraft League, Must Go On.


언젠가 보았던 현실이 나에게 다가왔다 스러지면서, 강한 각인을 남긴 지 하루.

갑자기 찾아온 감기로 인해 며칠 동안이나 내 머리를 떠돌던 고열은 겨우 사라졌지만,
그리고 이런 일들이 있었던 것도 하루가 지난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지만,
내 앞에 앞으로 펼쳐질 광경 중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Maestro는 NaDa의 스타리그 결승 불패신화를 꺾었고,

Bisu는 Maestro의 멈출 줄 모르던 지휘봉을 꺾었다.



Maestro는 과연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지,
NaDa를 필두로 한 위대한 전설을 쓴 게이머들은 다시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인지,
Bisu는 과연 앞으로도 프로토스의 계보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론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결론이 없는 소리라고 해서 모두 소모적이거나 쓸모없지는 않다. 나름대로 괜찮고 나름대로 의미도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앞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과정을 판단하는 것은 좁고 험한 길이라 그러한 길을 가는 이들은 적고, 대부분은 결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저, 나중에 결과가 나왔을 때에, 몇몇 과정을 가지고 판단했던 이들의 글이 그 때 가서 읽혀지게 되면
그것이 소위 '성지'가 되느냐, '역성지'가 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팬심이 발동하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차피 애정이 가는 선수와 팀이 있어야 이 판에 대한 애정도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외치는 소리' 들 속에서,

스톰 피하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저글링 떼와 같은 팬도 아닌 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팬 행세를 하고,
폭정의 그늘에서 자신이 말하는 선수 대신 자신이 절대자인 양 착각하는 무개념한 광경만 보지 않는다면,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StarCraft League, Must Go On.


IV.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다


뜬금없지만, 이러한 상상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즐거움을, 그리고 그 세계를 송두리째 뺏어가 버리려는 이들이 싫다.
그들에게는 돈이 중요할 것이다. 이권도 중요할 것이다. 기업의 이익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소비자들이 공급자나 생산자 못지 않게 잇속을 따지는 세태에서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도 간단한 수단은 고객에게 돈으로 능히 살 수 없는 것을 제공하는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을려나 모르겠다.

요 일주일의 시간에서처럼 StarCraft League는 승부를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팬들에게 제공해 주고,
그로 인해 StarCraft League의 수익이 나는 것이건만, 협회는 그런 것을 돈과 권력의 차원으로만 재단하느라
승부의 본질을 망각한다. 그것이 협회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다.



그들에게는 계획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결정적으로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속성을 이해하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

게임회사에 있는 경영진들보다도 더.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속성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게임과 관련된 사업을 벌이겠다고 청사진을 내놓는다는 것도
오만 방자한 짓인데, 그 동안 E-Sport를 이끌어 왔던 이들을 헌신짝처럼 무시한다는 것은 그보다 백배 천배 더 오만한 일이다.


계획만으로, 다른 스포츠와 똑같이 하면,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협회의 오산이고 오만이다.


아직 이름 없는 게임인인 나조차 굴뚝산업으로 돈을 번 굴지의 기업들이 그런 무개념으로 게임판에 들어와 억 소리나게 돈을 까먹거나
사업부를 철수시키는 광경을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십 번도 더 봐 왔다. 대박을 낼 것처럼 그럴싸하게 포장도 하고 정부 지원도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 게임들조차 막상 돌려 보면 그들의 실력 부족과 콘텐츠 부족으로 몇십 억의 손해를 내고 회사를 공멸시키는 광경도 계속 봐 왔다.


무엇보다 협회가 등에 업고 있는 '프로게임단 운영업체' 라는 존재 역시 자신의 수가 틀려지면
E-Sport에서 아예 발을 빼 버리는 것쯤은 쉽게 해치울 수 있는 존재라는 걸 협회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아마 알고는 있을 것이다. 협회도 같은 족속들이니.

하지만 분명한 건, 협회는 '프로게임단 운영업체'들을 자신이 조종할 수 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협회여. 민심(民心)을 들어라. 더 늦기 전에.

아직은 StarCraft League 가 멸망할 때가 아니니.



- The xian -
* anistar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3-05 12:00)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7/03/04 04:14
수정 아이콘
협회여. 민심(民心)을 들어라. 더 늦기 전에.
아직은 StarCraft League 가 멸망할 때가 아니니.

협회의 의견도 충분히 옳다고 생각되지만 아직 시기상조라 생각합니다^^;;;
원팩입스타™
07/03/04 11:51
수정 아이콘
저는 논쟁에 지쳐서 잠시 떠나신게 아닌가 했더니 몸까지 안좋으셨던 건가요? 몸과 마음의 건강 빨리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The xian님이 써주시는 좋은 글 계속 읽을수 있을 테니까요. ^^

좋은 글에 리플이 많이 안달리네요. 이런 글에 리플 많이 달아줘야죠. ^^
07/03/04 12:21
수정 아이콘
제가 방송사 입장이라고 해도 억울 할거 같습니다.
솔직히 협회가 기여한게 얼마나 있다고...그 어려운 시절부터 꾸려온 그들을 이렇게 냉대할 수 있는지...
07/03/04 18:30
수정 아이콘
역시 The Xian 님 대단해...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488 "이 멋진 세계로 나를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15] 네로울프11062 07/04/15 11062
487 FP를 이용한 게임단 평가입니다. [19] ClassicMild9447 07/04/14 9447
486 허영무. 부지런함의 미학. [19] 김성수14426 07/04/03 14426
485 3인의 무사 - 오영종, 박지호, 김택용 [20] 나주임10555 07/04/02 10555
484 양방송사 개인대회 순위포인트를 통한 '랭킹' [27] 信主NISSI12265 07/04/01 12265
483 FP(Force Point) - 선수들의 포스를 측정해 보자! [40] ClassicMild11410 07/04/01 11410
482 김택용 빌드의 비밀 [42] 체념토스18519 07/03/31 18519
481 광통령, 그리고 어느 반란군 지도자의 이야기 (3) - 끝 [35] 글곰11041 07/03/11 11041
480 [추리소설] 협회와 IEG는 중계권에 대해서 얼마나 준비를 했을까? [40] 스갤칼럼가12340 07/03/10 12340
479 쉬어 가는 글 – PGR, 피지알러들에 대한 믿음2, 그리고… [20] probe9310 07/03/08 9310
478 드라마 [9] 공룡9148 07/03/05 9148
477 마에스트로의 지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35] 연아짱17630 07/03/05 17630
476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13] 초코머핀~*11593 07/03/02 11593
475 MSL 결승전에 대한 짧은 분석. [3] JokeR_11240 07/03/04 11240
474 일주일의 드라마 - StarCraft League, Must Go On. [4] The xian8670 07/03/04 8670
473 [설레발] 광통령, 그리고 어느 반란군 지도자의 이야기 (2) [30] 글곰11686 07/03/03 11686
472 최연성과 마재윤은 닮았다. [17] seed12149 07/03/02 12149
471 마재윤선수의 '뮤탈 7마리' (in Longinus2) [48] 체념토스18390 07/02/28 18390
470 잃어버린 낭만을 회고하며... 가림토 김동수 [21] 옹정^^10431 07/02/27 10431
469 임요환의 패러다임 그리고 마재윤의 패러다임 [20] 사탕한봉지11766 07/02/27 11766
467 제 관점에서 바라본, 마재윤의 테란전 운영 [27] A.COLE13221 07/02/25 13221
466 마재윤을 낚은 진영수의 나악시 두번 [30] 김연우15277 07/02/25 15277
465 이윤열vs마재윤 1경기 롱기누스2 마재윤의 라르고 그리고 프레스티시모 [23] 그래서그대는13578 07/02/25 1357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