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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5/15 09:42:45
Name [NC]...TesTER
Subject [일반] [세상읽기]2008_0515
[테스터의 세상읽기]2008_0515

이 세상엔 수많은 일들이 발생합니다. 또한 수많은 정보도 생겨나고 소멸되죠. 우리 앞에는 너무나 많은 일과 정보들이 있어, 그것을 모두 수용하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가끔 한번 정도는 생각하고 싶은 일들, 같이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아주 편하게... 이 세상읽기는 정답이 없습니다. 또한 누구의 말도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바쁘시더라도 한번 쯤은 생각해 볼 만하다는 것. 이것으로 족합니다.


1. 역사 교과서 개정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어제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정책’ 이란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 참석해 편향적으로 기술된 교과서에 대한 수정 방침을 밝혔습니다.

김 장관은,

”우리는 자랑스러운 근현대사를 가졌는데 이를 헐뜯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의 역사 교과서나 역사교육은 다소 좌향좌 돼 있지 않나 한다. (각계의 요구로) 지난해에만 300군데를 고친 것으로 아는데 이미 교과부 차원에서 역사 문제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고 말했습니다.

교과부는 최근 고교 2, 3학년이 배우는 한국근현대사 검정교과서 6종과 초중고교 사회 교과서 15종의 내용, 각계 기관들이 수정을 요구했던 부분들을 취합해 수정 대상 항목을 정리하는 적업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국사 교과서 편찬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도 향후 교과서 집필 및 검정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전통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기로 했고, 기획재정부는 33개 기관과 함께 사회 교과서 경제 분야에서 고치거나 보완해야 할 부분을 정리해 6월 중순까지 교과부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내용이 수정되고 보완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교과부 장관의 말대로라면 현재 역사나 경제 관련 교과서가 좌향좌 돼 있다고 말한 만큼 김 장관의 논리대로 우향우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사실’ 에 기반을 둔 후대의 ‘평가(해석)’ 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 ‘평가’의 기준이 바뀌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기도 한데요, 어떠한 집단이나 세력의 이익과 정치적 수단으로서 그 기준이 바뀐다면 우리는 ‘역사’라는 허울에 갇혀 있을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히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2. 선별복당, 과연?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회담 이후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 의원들의 한나라당 복당에 관한 문제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내 친이 계열 대부분이 ‘복당 절대 불가’ 라는 원칙에서 한 발짝 물러서 ‘선별 복당’ 이란 카드를 내 놨는데요, 대통령의 특명이 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 내에서도 아직 ‘선별 복당’ 이란 것에 대해 의견 일치가 어려워 보이고, 선별 기준 또한 애매모호할 것으로 보입니다.

절대 복당 불가라는 원칙에서 물러선 강재섭 대표는,

“지난해 대선에서 다 고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못 받을 이유는 없으나 아무나 받아들일 수는 없다. 당의 정체성과 윤리적 기준에도 맞고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 등을 심사해야 하지 않겠느냐”

고 설명했습니다.

한나라당 내 친박 계열의 김학원 의원은 일괄 복당을 주장했으나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결정됐고, 선별 복당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다소 재미있는 부분은 강 대표의 임기를 두고 나오는 말인데요, 강 대표의 임기는 전당대회 전 까지지만 이번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 의원의 복당으로 그 입지가 매우 약해졌습니다.

결국 키는 박 전 대표가 쥐고 있는데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심히 궁금해집니다.



3. 오해 살 일 또 한 청와대

청와대가 행적 착오로 12일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 전국 주요 사찰에 대통령 명의의 축전을 보내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통상 부처님 오신 날에는 청와대가 주요 사찰에 대통령 축전을 보내왔는데요, 이번 정부에서는 행정 착오로 안 보낸 것입니다.

여권과 불교계에 따르면 청와대가 부처님 오신 날 직전에 축전을 보내려고 했으나 주요 사찰 대부분이 산속에 있어 부처님 오신 날 다음 날 도착할 것 같아 아예 발송을 취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산속에 있는 사찰에 축전이 도착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여 미리 축전을 보냈어야 했는데 청와대는 이를 판단하지 못하고 결례를 범한 것이 되었습니다.

청와대는 부처님 오신 날에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 강남구 문화체육과장을 통해 대통령 연등을 달아준 감사의 표시로 시주금 봉투를 보냈는데요, 일반 편지 봉투에 붓펜으로 ‘이명박 대통령’ 이라고 적은 것으로 전해졌고, 봉은사 측은 돌려보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음 날 청와대 측은 청와대 불자모임(청불회) 회장인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직접 찾아와 사과를 하고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습니다.

안 그래도 오해 살 일을 많이 하는 청와대가 이번에 또 불교계의 오해를 살만한 일을 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불교계가 많이 상처받은 것 같습니다.



4. Wise Dragon의 역사 빽테클(http://cafe.daum.net/koreanandjapanese)

매주 목요일에는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글을 쓰시는 Wise Dragon님의 글을 주 1회 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주신 Wise Dragon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동아시아의 훈족

미지의 민족 훈(Hun)

2천 5백 년 전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유라시아 초원민족의 이동과 투쟁에 관해 '흑해에 살던 키메리아인은 스키타이에게 쫓기고, 스키타이는 맛사게다이에게 쫓겼으며, 맛사게다이는 외눈 종족 아리마스포이에게 쫓겼다. 아리마스포이의 너머에는 황금을 지키는 괴조 그뤼포스의 무리가 산다' 라는 기록을 남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민족 그뤼포스의 무리는 스키타이를 비롯한 유럽계 유목민들을 아시아의 서쪽 끝으로 밀어냈다. 그리스인들조차 두려워했던 기마민족 스키타이를 서쪽으로 밀어낸 그들은 과연 누구였는가? 그 의문은 몇 백 년이 흐른 뒤 그들 바로 훈족이 직접 유럽에 나타남으로써 풀리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그들이 나타나자 성서에 예언된 지구의 종말이 온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독일의 ZDF TV의 역사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그 점을 다루기 위해 유목민의 정체와 이동 경로를 추적하여 Q 채널로 방영한 적이 있다. 한 부분을 인용해 보면,

"유럽에 폭풍같이 밀려들던 훈족은 서양 역사상 큰 수수께끼의 하나이다. 훈족은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도대체 이들은 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질러 미지의 땅으로 진출했을까? 이 원정의 배후에는 어떤 비밀이 도사리고 있을까?"

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훈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유럽인들이 궁금한 점인 동시에 내가 궁금한 점이다.

훈족은 현대인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존재이다. 그들은 유럽사에 4세기 말경 갑자기 등장해서 게르만족을 이동하게 했으며, 유럽인들의 생각에 세계 최고 제국인 로마를 유린했고,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당시 로마인들은 당시에 널리 퍼진 성서의 종말론 때문에 훈족을 악마가 보낸 군대라고 믿었다. 그래서 굳이 훈족의 유래에 대해 깊이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그 결과 훈족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과거 훈족이 있었던 지방의 고고학적 인류학적 성과와 여러 학자들의 연구들을 통해 그 수수께끼가 점차 풀리고 있다.

훈족의 조상 흉노(匈奴)와 서진(西進)

세인의 주목을 끈 고고학적 인류학적 발굴성과들은 훈족의 기원이 동아시아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의 연대기에 이미 기원전 300년 비옥한 계곡을 끊임없이 침범한, 중앙아시아 북쪽의 야만종족이 나온다. 중국인들은 이 침입자를 '흉노(匈奴)'라고 했다. 나중에 유럽에서 일상적인 단어가 된 '훈(Hun)'이란 명칭은 아마도 여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훈족의 조상 흉노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지금도 학자들 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볼 때 흉노는 투르크계, 몽골계 그리고 북방민족들로 구성된 국가이었으며, 언어도 투르크어계의 언어를 사용한 사실이 중국의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자료로 판단하면 적어도 흉노의 지배층은 투르크계 민족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의 무제에 의하여 중국에 복속된 흉노는 한나라 성립 이전에도 끊임없이 중국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민족이었다. 심지어 흉노의 위협 때문에 진시황은 기원전 215년에 몽염으로 하여금 흉노정벌과 만리장성을 구축하게 하였다. 진나라가 중국대륙을 통일한 시기에 흉노국도 기원전 209년경에 성립하였다. 중국이 최고통치자를 황제(皇帝)라고 부르는 명칭과 같이 흉노도 자신들의 최고통치자를 선우(單于)라고 하였다. 선우의 의미는 "통치권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는 뜻이었다. 흉노국의 1대 선우인 두만(頭曼)은 흉노국을 성립하고 제2대 선우인 모돈(冒頓)은 재위기간동안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대제국을 형성하였다. 모돈선우는 막강한 힘을 앞세워 동으로는 동호(東胡), 서로는 월지(月氏)와 오손(烏孫), 북으로는 혼유(渾庾), 굴사(屈射), 정령(丁零), 격곤(隔昆)과 신리(薪犁)를 복속시키고 남으로는 중국으로부터 오르도스지역을 회복하였다. 모돈선우에 의한 국토확장은 동으로는 만주, 북으로는 바이칼호, 서로는 아랄해, 남으로는 중국의 위수(渭水)와 티벳고원까지 미치었다. 모돈선우 이후 제3대 노상선우(老上單于), 제4대 군신선우(軍臣單于) 재위기에는 전성기를 맞아 한나라를 빈번히 침공하였으며 노상선우 때에는 서쪽으로는 이리강(伊犁江)유역까지 진출하여 대월지(對月氏)를 다시 평정하고 남으로는 한의 수도인 장안을 위협하였다. 또한 흉노는 그 세력권을 서역(西域)으로 확장시키면서 타림분지를 중심으로 이 지역의 오아시스 국가를 복속시켰다. 그들의 정복 활동은 한마디로 파죽지세(破竹之勢)였고,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흉노도 수 백 년 동안 불안한 정세 속에서 많은 분쟁과 전투가 잇따른 끝에 그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서기 350년에 극악한 인종 박해를 받고, 벌써 몇 세대를 그 땅에 살았던 흉노는 결국 사라지고 만다. 살아남은 흉노는 우선 북쪽으로 도망친다. 그들의 이동을 가속화시킨 것은 끔찍한 기후 변화였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만나면 초원은 황폐해진다. 눈이 끊임없이 내리고, 악천후의 적응력이 뛰어난 들소조차도 선 자리에서 동사한다. 유목민은 생사의 기로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서기 373년, 유목민들은 북쪽 피난민이 늘어 초원에서의 삶을 지탱하기 어려울 만큼 인구가 최대로 증가한 상태에서 몹시 추운 겨울을 맞고 처참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초원 지대의 얼음이 녹을 겨를도 없을 만큼 여름은 짧았고, 양식은 거의 바닥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늦은 봄의 어려운 시기에 어린 가축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중국인들이 기억하는 것은 바로 여기까지이다. 그 후 흉노는 남쪽은 튼튼한 방어 수단이 된 만리장성과 중국 때문에 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길, 즉 서쪽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바로 유목민의 숙명인 생존을 위한 이동을 하게되는 것이다. 그들은 알타이 지역을 지나 아랄해와 카스피해 그리고 흑해를 지나 유럽의 카르파티아 산맥 분지까지 쭉 뻗어 있는 초원 지대를 따라간다. 그리고 유목민이 그 훈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유럽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시기가 열리는 것이다.

공포에 떨게 된 유럽

서기 375년, 광활한 아시아로부터 온 야만적인 기마(騎馬) 집단이 동쪽 국경을 유린하자, 살인과 고문 그리고 불탄 마을에 관한 충격적 소식이 그들보다 먼저 도착했다. 로마 세계권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다. 약탈이나 하는 아시아의 기마 유목민이 어떻게 해서 세계 제국인 로마를 유린하고, 군사적으로 초강대국인 찬란한 고대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었는지 그들 정주민족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럽인들은 기마병과 말이 그렇게 혼연일체가 된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로마의 연대사가들은 반인반마(半人半馬)의 괴물이라 해도 훈족만큼 자기의 말과 일체가 되어 자라지는 못할 것이라고 표현한다. 훈족의 말들은 강인하고, 많은 짐을 운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까다롭지도 않다. 그 말들은 혹독한 겨울에 눈 속에서도 먹이를 직접 찾는다. 훈족 기병대의 가장 큰 장점이 여기에 있었다. 로마인과는 반대로 훈족 기병대는 과외 비용 없이 일 년 내내 출동할 수 있었고, 예비 말도 충분했다. 훈족의 전사 한 명이 말 일곱 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훈족 한 사람이 말 여러 필을 동시에 부리는 것을 보면서 아연 숨이 차서 제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훈족에게는 로마인이 상상도 못했던 신(新)기술이 있었다.

당시 로마인들을 압도해 버린 아시아 유목민의 신기술은 네 가지였다. 첫째는 나무 안장이었다. 유럽인들의 눈에 말과 기수가 한 몸으로 보이는 것은 안장 때문이었다. 훈족의 안장은 로마인의 안장처럼 말의 몸통에 가죽끈으로 잡아매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훈족의 안장에는 나무 버팀목이 있었다. 앞뒤로 높이 올려진 우뚝한 기둥과 안장머리는 말이 움직일 때마다 기수에게 안정감을 준다. 이에 반해 로마의 둔중한 기병들은 전투 도중 균형을 잃고 낙마해 때때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둘째는 등자였다. 훈족은 아시아에서 올 때 안장 외에도 새로운 전쟁 기술을 풍부하게 가지고 들어왔다. 그때까지 유럽에 알려져 있지 않았던 등자도 그 중의 하나였다. 훈족은 장시간 말을 탔을 때 생기는 다리의 피로감을 예방하는, 발을 받쳐 주는 가죽 밴드나 발주머니를 안장에 부착했다. 기수는 안장에 단단하게 앉아 다리를 고정시키는 발판(등자)을 이용하여 달리면서 사방으로 화살을 쏠 수 있었다.

셋째는 새로운 활이었다. 훈족이 보여준 또 하나의 무기는 특이하게 제작된 활이었다. 탄력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훈족의 활은 당길 수 있는 중간 부분과 활의 현에 놓인 화살의 끝 사이 폭이 꽤 짧았다. 이 활은 아래쪽보다 위쪽이 더 많이 구부러져 있었는데, 이는 기병이 자유자재로 손을 놀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 때문에 이 활은 ‘복합곡궁’ 혹은 ‘불균형의 반사궁’이라 불렸다.

넷째는 삼각 철 화살이었다. 훈족은 아시아에서 낯선 화살도 들여왔다. 손잡이에 특별한 구멍이 뚫려 있는 훈족의 화살은 공중에서 여러 가지 소리를 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 소름끼치는 소리 때문에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유럽 병사들 사이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는 했다. 화살촉은 삼각형 모양의 뾰족한 철이었고 화살의 길이는 대략 60∼80센티미터였는데, 그것은 저승사자의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 꽂힌다. 화살의 파괴력은 치명적이었다. 그것이 무서운 소리를 내고 나면 곧 가죽으로 만든 로마의 갑옷을 종잇조각처럼 뚫고 큰 상처를 입혔다. 훈족의 활은 60미터 떨어진 거리의 목표물도 명중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훌륭했다. 덕택에 훈족의 전사들은 칼, 창으로 싸우는 전통적인 병사의 사정거리를 벗어나 공격할 수 있었다. 훈족은 적과 직접적인 접촉없이 공격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이런 신기술은 유럽을 더 쉽게 이기게 해주었다. 즉 유목민족인 훈족은 확실히 군사적으로 정주민족인 유럽인들보다 우월했다. 훈족을 지금까지의 전투방식으로 이길 수 없음을 깨닫자, 유럽인들은 절망했다. 유럽인들은 이 같은 전투방식에 적응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소비했다. 인명 피해가 갈수록 늘자 로마는 방어 수단을 강구했다. 하는 수 없이 군사들에게 쇠사슬로 만든 갑옷을 입히기 시작한 것이다. 군인들은 자신의 몸을 방어하기는 쉬웠지만, 움직이거나 싸우기에는 부적당한 것이었다. 어쩌면 오랜 평화의 시대를 보낸 로마와 투쟁의 역사인 훈족과의 전쟁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5세기경 아틸라(Attila)가 훈족의 왕으로 있을 당시에는 지금의 헝가리인 트란실바니아를 본거(本據)로 하여 주변의 게르만 부족과 동고트족을 굴복시켜 동쪽은 카스피해에서 서쪽은 라인강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훈족왕 아틸라(Attila)와 훈 제국의 몰락

훈족은 5세기에 우랄로부터 론 지방에까지 이르는 드넓은 제국을 주로 자신들과 손을 잡은 민족들이나 자신들에게 종속된 민족들을 통해서 다스렸다. 그러나 이 주목할 만한 사람들 중에서 소수의 전문 역사가를 제외한 헝가리 외부 사람들에게 그 이름이 알려진 이는 한 사람뿐이다. 그 예외적인 인물이 바로 아틸라(Attila)이다. 그의 이름은 1500년 동안 일반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왔다. 아틸라는 불과 8년 동안만 훈 왕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당시 그가 발휘하는 군사력은 대단하여 동서 로마 제국을 거의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갔다. 한때 그는 콘스탄티노플 성벽 앞까지 쳐들어가 막대한 양에 달하는 황금 공물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후 당대 사람들은 다양한 민족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이끌고 저 멀리 오를레앙까지 진격하는 그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었다. 그 이듬해 그는 로마에 진격해 번창하던 이탈리아 도시들을 하나하나 점령해 나갔다.

후세 사람들은 대체로 아틸라를 피에 굶주린 폭군으로 묘사해왔다. 하지만 그 묘사가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에 관해 서기 449년, 동로마 사절단의 일원으로 아틸라의 궁정에 머무른 적이 있는 그리스인 프리스쿠스(Priscus)의 관찰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다른 유럽인들과는 달리 아틸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비교적 객관적인 단서이다. 프리스코스에 의하면 훈족은 자신들의 왕 아틸라를 ‘하늘의 아들’로 여겼다. 하지만 아틸라와 일반 훈족 사이에는 유럽의 왕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엄청난 격차의 신분 차이가 없었다. 프리스쿠스의 말을 인용해 보면.

"아틸라는 왕관을 쓰지도 않았고, 옷은 수수했다. 그의 칼, 신발, 마구(馬具)에도 금장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나무잔으로 술을 마셨고, 나무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었다. 아틸라는 훈족 내부의 다툼을 듣고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

"아틸라는 수염이 적었다. 아틸라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키가 작았다. 코는 아주 납작했다."

라고 했다. 그의 말에는 그가 유럽인이 아니라는 인종적인 견해도 들어있다. 물론 이같은 관찰만으로 모든 것을 단정지을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아틸라가 그 유목민 왕의 본명인 것도 아니다. 현대의 학자들은 종족적으로 몽골인보다는 터키인을 닮은 이 특이한 민족이 어떤 언어를 썼는지 이리저리 추측할 뿐 딱히 확정짓지 못한다. 명백히 알려진 것은 꽤 많은 고유명사뿐이다. 이런 단어도 이민족 언어인 로마어나 고트어, 혹은 그리스어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아틸라’라는 이름은 세월이 흐른 후에 붙여졌을 것이다. 아틸라 자신은 고트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아틸라’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인들은 훈족의 왕이 실제로 어떻게 불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그에 관한 모든 이름은 아틸라로 통일되어 있고, 지금 인용하는 프리스코스의 기록은 그에 관한 것으로써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프리스코스는 아틸라와 그 친척들을 매우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던 사람인 까닭이다. 그는 아틸라를 자세히 묘사하면서 아틸라 궁정의 생활 방식과 훈족의 관습에 대해서도 관찰했다. 그러면서 훈족들에게서 매우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에 의하면 손님을 집주인의 아내와 동침하도록 배려하는 훈족의 관습도 야만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자기들을 찾아온 손님에게 최대한의 우의와 친절을 베풀려 하는 유목민의 심성이 먼저 느껴진다. 아틸라는 그런 문화권 속에서 유목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유럽인들을 호령했다.

아틸라는 게르만(German)족의 전설, 신화의 내용에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힐데브란트의 노래(Hildebrandslied), 발타리우스(Valtarius), 니벨룽겐의 노래(Das Nibelungenlied), 영웅서사시집(Das Heldenbuch), 위드시드(Widsith) 등에는 아틸라와 훈이란 단어가 빠짐없이 나타난다. 아틸라는 아틸라(Attila), 아틀리(Atli), 에첼(Etzel) 등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게르만족의 각 언어로 표현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들 신화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아틸라의 훈족은 항상 제 3자 입장에서 나타난다는 점과 절대적인 힘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아틸라는 453년에 독일공주 일디코(Ildico)와 결혼을 하였다. 그는 불행히도 결혼식날밤에 죽게 되는데 아마도 그의 사인은 주독(酒毒)인 듯하다. 요르다네스의 말을 인용해 보면,

"결혼식 후 아틸라는 축하연 자리에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는 등을 대고 침대에 누웠고, 술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때 그의 코에서 한바탕 피가 쏟아졌다. 그러나 피는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고 목으로 흘러들어, 그는 질식사했다. 침실에서 전혀 기척이 없자, 다음날 경비병들은 불안해져 침실로 들어갔다. 그때 그들은 피를 잔뜩 흘리고 죽어있는 아틸라를 발견했다. 외상은 없었다. 그리고 베일을 쓴 채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신부를 발견했다."

라고 했다. 이날 밤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아틸라의 인생을 둘러싼 뒷말은 이미 무성하다. 453년 혼인 초야에 게르만 아내의 팔에 안겨 맞은 수수께끼 같은 죽음에서 동시대인들은 그가 사랑 행위를 한 후 아내에게 단도로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틸라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거대 제국은 그 성립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다. 그의 죽음 이후 훈족은 아틸라에 견줄 어떤 후계자도 내지 못했기 때문에 정권이 와해되었다. 누군가를 조종할 수 있고 매혹할 수 있는 아틸라의 위험하고도 천재적인 재능이 후손들에게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정치적인 노련함과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미래상이 부족했다. 결국 피곤에 지치고 지휘력이 없어진 훈족 전사들 중 몇몇은 러시아의 남쪽과 크림 지역에 정착해 불안한 유목생활을 포기했다. 다른 훈족은 초기 출병 후에 벌써 프랑스와 스위스 혹은 헝가리에 정주했다. 그들은 그곳에 거주하던 민족과 융화했고, 유럽의 반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다른 훈족은 그들이 왔던 동쪽의 초원지대, 중앙아시아의 평원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들은 유목민의 숙명 때문에 그들이 유럽에 왔던 것처럼 다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난 것이므로 정주민족들이 말하는 멸망은 아니었다.

훈족에 대한 바른 해석

훈족이 유럽 진출 때문에 발생하게된 민족 대이동은 그들의 서진(西進) 때문에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 영토 안으로 이동하는 시기를 이르는 말이다. 이 엄청난 사건은 유럽이 고대로부터 중세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세계사적 의의가 지적될 수 있다.

첫째로 국가체제(國家體制)의 원리적인 변화이다. 즉 소박한 공동체의식과 화석화된 고대국가형으로부터 중세적인 국가가 탄생되는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교의 보편화이다. 셋째로 게르만족인 프랑크족의 지배하에 있던 곳에서 초기 봉건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훈족이 아니었다면 유럽의 중세는 그만큼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런 훈족의 역할을 무시하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

게르만족의 공포의 화신인 드라큘라의 전설을 살펴보면 드라큘라는 훈족의 자손이라 되어 있다. 드라큘라의 전설이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밖에 없다. 훈족의 자손이어야 듣는 사람에게 더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유럽인들이 보는 훈족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실제 훈족을 만나서 경험한 프리스쿠스는 그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다. 이는 그들이 전쟁에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파괴자였으나, 그들의 문화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의 풍습에 손님이 밤에 집주인의 아내와 동침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들은 이 정도로 손님에게 우호적이었고, 또 수공업에 대한 그들의 능력과 지식이 수준 높은 경지에 있었다는 것은 여러 곳에서 증명된다. 고도의 문명 국가 옛 페르시아 제국의 오리엔트 예술품과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분묘 출토품은 그들의 기술이 이미 실용적인 도구들을 넘어 과시벽과 장식 취미를 발휘하는 수준에 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유럽인들과 현대의 사람들이 훈족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당시에 성서의 예언 때문에 발생한 종말론에 따라서 그들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그들의 문화나 민족적인 면이 밝혀지고 있는 현대에는 그들을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훈족은 유목민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유럽에 온 이유는 정주민족들의 영토확장이란 의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유목민으로서 기후 변화와 식량 부족 등의 생존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에 입각해 정주민이 아니라 유목민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봐야 한다. 현대 학자들은 유목이라는 것이 농경에 비해 결코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정주민족은 문명민족, 유목민족은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비(非)문명민족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이제는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때 유목민 훈족의 진정한 면이 보일 것이다.

그럼...



5. 오결디(오늘의 결정적 한마디)

나도 잡아가시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관련돼 사법처리 하겠다는 경찰 방침에 누리꾼들이 반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경찰청 홈페이지는 어제

“나도 잡아가라”

는 누리꾼들의 항의가 폭주하면서 한때 접속이 중단되기도 했는데요, 대부분 실명으로 항의를 하고 있어 그 여파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천만인 잡혀가기 운동’을 벌이는 가운데 경찰청 등 인터넷 게시판에는 연일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집회 시위가 불법 행위로 변질되면 법과 원칙에 따라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다시 한번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천만 명이 잡혀가면 큰 일이지요..


6. 오늘의 솨진

”모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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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루
08/05/15 09:49
수정 아이콘
뉴라이트가 국회의원이 되더니 이제 아주 대놓고 작업들어가시네요,
2MB가 자기 지지층은 진짜 철저하게 챙기는듯 하네요.
여자예비역
08/05/15 10:00
수정 아이콘
역사교육이 무너지겠군요.. 제발 아이들이 지금처럼 진실을 알아 볼수 있는 눈을 잃지 않기를.......
Magic_'Love'
08/05/15 10:04
수정 아이콘
일제 시대는 축복의 시대였다..... 라고 고치고 싶으신 마음 억제하시느라 많이 힘드실 겁니다.
Zakk Wylde
08/05/15 10:05
수정 아이콘
2MB 정말로 대단합니다.. 축전을 보낼 생각조차 안 한것 같네요.
오늘의 사진 모형은 아닌것 같네요.

차 사진 보니 차 사고 싶네요. 한대 살까...;;
퍼플레인
08/05/15 10:06
수정 아이콘
저희 세대에 다시 5.18과 4.19가 폭동이라고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르는 꼴을 봐야 되는 겁니까.....
기사를 보니 '자랑스러운 근현대사'운운하던데 그러면 일제시대가 근대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내용이 실릴수도 있는겁니까...

갑자기 고기에 쌀밥에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던 남한 사람들이 부러워 자수했다는 남파간첩의 이야기가 실려있던
국민학교 시절의 도덕교과서 생각이 나는건 왜일까요?

부처님오신날 해프닝은... 이건 뭐 할 말이 없습니다.
honnysun
08/05/15 10:06
수정 아이콘
아 역시 역사는 재밌습니다.
잘 읽고 가요~
성야무인
08/05/15 10:24
수정 아이콘
국사교과서야 1980년대 제가 배웠던 때로 돌아가겠죠. 5.16도 혁명이고 조선, 동아는 일본에 앞장서 강제폐간되었고, 5.18은 언급하기 힘드니까 그냥 삭제해버리고, 전통은 혼란된 한국을 바로잡은 영웅으로 취급되겠죠. 명성왕후는 민비로 고쳐져서 권력때문에 러시아에 붙어서 죽을수밖에 없던 존재고, 대원군은 세대를 못읽고 일본은 받아들이지 못한 찌질스 정도 취급되는 역사교과서가 되겠군요. 부처님 오시날 해프닝은 그야말로 행정을 잘 모르는듯, 조금만 신경쓰면 될일인데 말이죠. 그리고, 선별복당이라 친박계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는듯합니다. 말이 선별복당이지 말그대로 친박연대의 국회교섭권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이니까요. 이러면, 친박연대의 힘은 무력화 되고, 입당한 숫자에 따라 비례대표도 자기 뜻대로 한 사람만 넣으면 되니까, 친이계로써는 일석2조의 효과를 얻는것 같은데, 절대 가능할것 같지는 않습니다~~
snookiex
08/05/15 10:26
수정 아이콘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역사교과서를 고친다니 좀 불안하긴 하네요. 일본처럼 극우로 고치긴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의 납득 못할 내용이 들어갈 듯한 불안감이...
higher templar
08/05/15 10:56
수정 아이콘
좌향좌라...거참...

궁금한게 있는데요 북한이 중국처럼 증시가 생기고 북한에 투자하는 펀드가 생기면 거기에 제가 투자하면 국보법 위반으로 잡혀나가요?
콜록콜록
08/05/15 11:03
수정 아이콘
역사 이야기 정말 재밌군요.. 항상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역사는...
서늘한바다
08/05/15 11:08
수정 아이콘
시작부터 잘못된 일제시대가 긍정적으로 묘사가 될수도 있다니.... 정말 의식은 어디에...
누구에게 애국하고 나라를 위해서 일하라고 말할수있는지...
타나토노트
08/05/15 11:44
수정 아이콘
지난주에 있었던 어떤 교회 행사에는 직접 영상까지 보내더니 국가 행사라고도 할 수 있는 부처님오신날에는 축전도 안 보냈다.
정~~~~말 대단하군요. 역시 교회장로가 대통령 되서 그런건가요.
오늘은 개신교가 주도한 조찬기도회에 코엑스까지 직접 가서 참석했군요.

크리스마스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두고보겠어!!!!!!!!!!!
戰國時代
08/05/15 11:58
수정 아이콘
3번은 절대로 실수가 아닐 겁니다.
축전을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보내는 것도 아니고, 실무자는 다년간 같은 일을 해온 공무원들인데 저런 실수를 할 리가 없습니다.
밀가리
08/05/15 11:58
수정 아이콘
역사 잘 읽었습니다. 문득 에이지오브엠파이어2가 생각나는군요. 아틸라시나리오가 있었죠.

아마 추측하건데, 최소 르네상스시기 전까지는 동방>서방아니였을까요.
김솔직
08/05/15 12:42
수정 아이콘
역사교과서 건드리면 정말 거리로 나갑니다.
물빛은어
08/05/15 13:25
수정 아이콘
화환을 대운하로 보낼 연습을 하느라 늦었나 보네요.
자신들이 말한 것처럼 늦을것같음 하루 먼저 보냈어야지..
그 화환 하나 날짜 못맞추시는 분들께서 대운하, 아니 대수로를 만든다면서 '하루 먼저 보내면 될것'이란 말을 솔선수범하지 못하다니..쯥...
HoSiZoRa
08/05/15 13:27
수정 아이콘
"좌향좌" 되어있는걸 "우향우" 시키겠다?
그들이 "좌향좌"가 잘못되어있다고 생각되면 "직진(중립)"으로 만들 생각을 해야지
"우향우"를 한다니요... 생각이 모잘란건지 없는건지...
"'그들이 말하는 "잘못"을 남들이 말하는"잘못"으로 바로잡겠다'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으로 밖에 안들리네요...
오소리감투
08/05/15 14:43
수정 아이콘
1. 대통령이 과거사를 덮고 가야 한다니까 교과부가 알아서 기는 형편이군요 ㅡ.ㅡ;;

2. 지금 미국산소고기다, 대운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다, 공공부문 민영화다, 민생에 관련된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참 한가하신 분들이에요...


4. 재밌게 보았습니다.. ^^

5. 천만인 잡혀가기 운동 훌륭합니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돼야 할텐데, 이메가의 개가 됐으니 황당한 노릇이죠..
08/05/15 19:35
수정 아이콘
밀가리님// 그다음엔 유럽최악의 재앙이었던 몽골족이 등장합죠~
최소한 근대이전까지는 동방>서방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가는게 매일 개그입니다. 아침에 시선집중들으면 웃음도 안나옵니다.
08/05/15 23:51
수정 아이콘
오늘도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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