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3/07/20 13:59:02
Name white
Subject [잡담] 열려진 공간에서의 글쓰기
대학교 1학년때 친구들과 말도안되는 얘기로 논쟁을 벌였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기기만 한...

논쟁의 주제는 굳이 붙이자면 우유...라고나 할까요.

사건의 발단은,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려고 들어간 한 카페에서
한 친구가 흰우유를 시키면서 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주문한 흰우유의 맛을 본 그 친구는
"이건 분명 xx 우유야...맛이 비릿한것이 틀림없어" 라는 말을 시작으로
흰우유가 각 브랜드별로 맛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는 브랜드 별로 흰우유는 각기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냥 거기서 끝났으면 간단했을 것을
또다른 한 친구가 반론을 제시하면서 얘기가 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친구의 의견은,
한국에서 자라는 젓소가 거기서 거기고, 환경도 거기서 거기고,뜯어먹는 풀도 거기서 거기고,
그리고 우유를 만드는데 있어서의 과정(고온살균 이던가요?) 도 거의다 비슷하니 맛이 특별히 다를 수가 없다는 것 이었습니다.

결국, 저희는, 모두 편의점으로 몰려가
흰우유를 브랜드별로 골라 들고 시음을 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말았습니다.

근데 참 신기한것이
우유가 맛이 다 각기 다르다는 설명을 이미 충분히 들어서 일까요...
정말 우유들마다 맛이 약간씩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까 우유는 맛이 다 거기서 거기라던 친구 녀석도 약간씩 맛이 다르다는것에 동의하는 눈치였구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아까까지도 잠자코 있던 한 친구가 끝까지 모든 우유의 맛은 다 똑같다고 우기기 시작하는 것 이었습니다.

다들 맛이 다르다는데 동의하는 분위기에서
그것도 우유를 같은 자리에서 같이 마시고 난후에 그런 의견을 피력하니
갑자기 분위기가 착 가라앉으면서
그 친구에게 다시 우유를 맛볼것을, 그리고 어떻게 맛이 같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를
따져 묻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우유맛이 다르다고, 같다고, 미리 사설을 많이 늘어놓았던 친구들은
참을 수 없어하는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그 친구는 끝까지 한 의견을 고수하더군요
우유맛이 다 똑같다구요...
맛을 보고 나니 더더욱 똑같다구요...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하기 시작하는 것 이었습니다.

"너희가 맛을 보고 각기 다른 맛이 난다고 느끼는 우유를 내가 같은 맛이 난다고 얘기하면 안되는거냐,
너희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맛이 같은걸 어쩌라는 거냐....공산국가도 아니고, 다수의 의견이 그렇다면, 소수도 그 의견에 따라가야 하는건 아니자나
내 의견은 내 의견일 뿐이고, 너희들 의견은 너희들 의견일 뿐이지...."

솔직히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만, 대강 저런 내용이었습니다.

말도 안되게 흰우유의 맛에 대해 논하던, 그것도 편의점에서, 저희의 논쟁의 종착점은...
결국 "사람마다 같은 음식을 놓고 느끼는 맛은 서로 다를수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pgr을 보면서 가끔 저때 일이 생각이 난답니다.

열려진 공간에서의 글쓰기...

내가 쓴 글에 다른 분들이 서로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반론을 제시할 수 있는건 너무나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나만 보려고 쓴 글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는 공간에서 글을 썼다면 말이지요.

또, 이렇게 열려져 있는 공간에서, 나와는 아주 특별하게도 다른 시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것 또한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내가 특정하게 무언가를 목적삼아 가입하고 있는 동호회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가볍게 의견을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죠.

그래서, 글을 쓸때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바로
내가 쓴 글에 대한 책임감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요즘 댓글이란건 참 신기한 물건(?) 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엔 그냥 원문에 충실한 댓글이 달리다가도, 조금의 지적이나, 다른 시각의 글들에 의해, 순간적으로 성향이 확 변하는 글들이 쏟아지기도 하고,

서로를 가리키고 있던 막대기의 끝이, 댓글이 달리고 달릴수록,
날카로운 창끝으로 변해 서로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상처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죠.

또, 어떤때에는 아예 집에서 밤새 막대기의 끝을 갈고 갈아서,
어디 누구하나 걸리기만 해봐라, 라는 심보로 날카로와진 창끝을 무기삼은 댓글로
무장하시어 상대방을 마구 아프게 하는 글들을 볼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고등학때 무슨 시나리오인가를 가지고 서로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꼭 지켜야 할 사항으로 해주셨던 말씀이 있었는데요,

하나는, 누구누구씨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라는 식의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발언을 꼭 앞에 달것.

또하나는, 상대방의 의견이 아무리 말같지 않다 느끼더라도 중간에 끊지 말것.

또하나는, 미소띤 얼굴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 볼것.

마지막은, 토론이 끝난후에는 꼭 웃으며 악수 할것 이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글을 써서 나의 의견을 전할때는, 상대방을 바라볼 수도, 그가 어떤 뉘앙스로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알길이 없습니다.
그저 내가 읽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고, 동의하고, 흥분하고....그런식이죠.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쓰는 표현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나도 그에게 똑같이 마구 상처를 주는 얘기를 해버리는 것은 잘하는 행동일까요...

어떤 사람이 쓴 글의 내용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마구 심하게 말해 버리면,
그 사람은 너무 크게 상처를 받아, 더이상 온라인상에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올리는 글이 주는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알고 계시나요....

적어도 내가 올리는 글이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읽을지도 모르는 열려진 공간에 올라갈
글이라면, 본인이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주 하는 얘기....pgr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때도 분명히 논쟁이 있었고, 그 논쟁의 중심에 서는 인물도 지금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무수히 달리는 댓글 속 논쟁의 끝은 지금과 많이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번에 homy님이 하신 말씀....
pgr이 더 좋은 공간이 되느냐 아니냐는 우리가 올리는 글 한줄, 단어 한개에 달려있다던...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의 공통분모
게임을 사랑하시고, 게이머 들을 사랑하시고....

항상 잊지 말아주세요.

우리에게는 그런 공통분모가 있다는 사실을요.
지금 벌이고 있는 논쟁의 당사자도 결국은 같은 이유로 이곳에 왔을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내가 남에게 글몇줄, 단어 몇개로 주게되는 상처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요....

항상 즐겁고 괜찮은(^^) pgr이 되기를 희망하며,
이상입니다...

꼬리말 1. 글을 읽고보니, 먼 말을 쓰려고 했는지 원....쿨럭...먼산 (*--)
꼬리말 2. 날이 많이 더워진다는데, 다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07-21 19:21)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안전제일
03/07/20 14:02
수정 아이콘
실제로 요즈음의 우유들은 맛이 다 다른것 같더군요(뭐그리 들어가는게 많은지.--;;;)
그러나 뭐든 익숙해지면 다 소화잘된다는..쿨럭-(아앗!이런 댓글을 달면 쓰신분께 죄송하잖아!퍼억-)
03/07/20 14:10
수정 아이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kid 올림..
항즐이
03/07/20 14:13
수정 아이콘
homy 님 이에요 ^^
그리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03/07/20 14:16
수정 아이콘
항즐이님// 수정하였습니다....이런 실수를...부끄러워라 *^^*
도망가야지....도망....샤샤샤샥~~~~~~(((((--)~
03/07/20 14:21
수정 아이콘
근데, 맛은 측정이 가능하잖아요? 분명히 조금씩은 다르다고 느낍니다만....-0-
안개사용자
03/07/20 14:26
수정 아이콘
가끔은 격렬한 논쟁보다 글을 아끼는 것이 어떤 때에는 문제해결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저 자신에 대한 생각이 요새 제 머리를 맴돕니다.
부디 여기 계신 어느 누구라도 글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받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03/07/20 14:30
수정 아이콘
white님하고 휴가 같이 가면... 대화 중에 참 배울게 많겠다, 싶네요. ^^
pgr 여름 캠프 안하나?
03/07/20 14:38
수정 아이콘
글을 읽고나니 왜 맛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지는 걸까요(아앗; 참아야지^^;;)
정말 자신이 쓴 글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생각만 있다면 논쟁은 훨씬 줄어들텐데요. ^^
03/07/20 14:45
수정 아이콘
white님 말씀이 맞습니다.. 가끔, 댓글 하나가 글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저도, 지금도 그렇지만, 댓글 쓰는 게 조금 부담스럽답니다.. 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nostalgia
03/07/20 14:48
수정 아이콘
기계가 아닌 다음에야 의견이 다른건 당연하다고 생각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모 우유비닐팩 커피우유가 젤 맛있습니다. ^^ 스트로우로 힘차게 찔러서 먹으면 캬~~~ 좋은 주말들 되세요.
03/07/20 14:48
수정 아이콘
이거 추게로 강추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 같을수는 없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때론 모두들 애써 잊고있는건 아닌지...
ataraxia
03/07/20 15:01
수정 아이콘
요즘따라 나와 다르다는것에 느끼는것이 많습니다...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고..It`s different..Like You & Me
에리츠
03/07/20 15:43
수정 아이콘
좋은 말씀 잘들었습니다.^^
white님 같은 분이 pgr의 외도(?)를 붙잡아주시고 다른 회원분들을 다독거려 주셨기때문에 pgr이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했는지 모르겠네요.


(--참고로 전 흰우유를 못먹습니다..캬하;;)
아뵤^o^
03/07/20 16:41
수정 아이콘
추게로 가자~~~~~
03/07/20 18:41
수정 아이콘
누구나 한번쯤 읽어봐야 할 글이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군요. 추게로 갔으면 하는 글이네요.
러블리제로스
03/07/20 20:34
수정 아이콘
좋은글이네요^^ 사실 전 우유의 맛이 다르다는걸 중학생때부터 알고 있었답니다 -_-v 우유를 좋아하는 편이라서요..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려면 역시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야 하는거죠..
03/07/20 21:50
수정 아이콘
p.p님//온게임넷 결승전 관람은 잘하셨는지 모르겠네요.
p.p 님이 만약 참가하시는 행사가 있다면, 저는 무조건 갑니다, 설령 겨울캠프라도요 ^^; 남부지방 비가 많이온다고 하던데, 빗길 조심하시고 한주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ClassicalRare
03/07/21 22:45
수정 아이콘
정말 누구나 한번쯤 봐야 할 글인거 같아요. 느낌이 확 올 정도로^_^
그리구요 white님 이 글 엄.아.모라는 카페에 퍼가고 싶은데 허락해주세요^_^ 기다리겠습니다.;;
03/07/22 00:01
수정 아이콘
ClassicalRare님// 쪽지 드렸습니다. ^^
Hewddink
03/07/22 13:38
수정 아이콘
화이트님 원츄~~ !! ㅇ0ㅇb
매직핸드
03/07/22 14:29
수정 아이콘
멋집니다. 정말 150% 동감 가는 글입니다.
모두 자기가 하는 말, 쓰는 글에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IntiFadA
03/07/22 17:39
수정 아이콘
매일 매일 PGR에 들어오면서도(주로 열어놓고 일합니다...회사에서) 전 왜 이 좋은 글을 이제야 보게 된 것일까요...?
white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원츄입니다~~ ^^
03/07/23 05:13
수정 아이콘
그렇죠. 각자의 의견은 항상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다름이 서로에게 어떻게 인정 받아 가느냐의 문제인것 같습니다.
가끔 여러 게시판들에서 보이는 눈살 찌푸리는 댓글들은 다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마운 배움이군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공지 추천게시판을 재가동합니다. [6] 노틸러스 23/06/01 27319
3614 사진다수) 1년간 만든 프라모델들 [26] 한국화약주식회사9671 22/11/05 9671
3613 야 너도 뛸 수 있어 [9] whoknows9117 22/11/05 9117
3612 [바둑] 최정 9단의 이번 삼성화재배 4강 진출이 여류기사 최고 업적인 이유 [104] 물맛이좋아요9433 22/11/04 9433
3611 이태원 참사를 조망하며: 우리 사회에서 공론장은 가능한가 [53] meson8833 22/11/02 8833
3610 글 쓰는 걸로 먹고살고 있지만, 글 좀 잘 쓰고 싶다 [32] Fig.18792 22/11/02 8792
3609 따거와 실수 [38] 이러다가는다죽어12777 22/11/02 12777
3608 안전에는 비용이 들고, 우리는 납부해야 합니다 [104] 상록일기12931 22/10/30 12931
3607 술 이야기 - 럼 [30] 얼우고싶다11942 22/10/27 11942
3606 [테크히스토리]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무빙워크 셋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은? [16] Fig.111768 22/10/19 11768
3605 어서오세요 , 마계인천에 . (인천여행 - 인트로) [116] 아스라이12010 22/10/21 12010
3604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59] 김은동12911 22/10/21 12911
3603 술 이야기 - 위스키 어쩌면 1편? [80] 얼우고싶다12172 22/10/18 12172
3602 [과학] 2022 니콘 작은세계 사진전 수상작 소개 Nikon Small World Competition [17] AraTa_PEACE11828 22/10/17 11828
3601 40대 유부남의 3개월 육아휴직 후기 (약 스압) [28] 천연딸기쨈12001 22/10/12 12001
3600 [테크히스토리] 너의 마음을 Unlock / 자물쇠의 역사 [10] Fig.111465 22/10/05 11465
3599 [역사] 고등고시 행정과(1950~1962) 역대 합격자 일람 [20] comet2112932 22/10/10 12932
3598 [역사] 한민족은 어디에서 왔는가 [40] meson12822 22/10/03 12822
3597 내가 너를 칼로 찌르지 않는 것은 [24] 노익장13016 22/09/28 13016
3596 참 좋은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38] 及時雨12431 22/09/27 12431
3595 [테크히스토리] 80년 동안 바뀌지 않던 기술을 바꾼 다이슨 / 청소기의 역사 [4] Fig.112418 22/09/20 12418
3594 전쟁 같은 공포 [25] 시드마이어15433 22/09/27 15433
3593 [일상글] 24개월을 앞두고. [26] Hammuzzi14643 22/09/26 1464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