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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7/19 21:16:18 |
Name |
글곰 |
Subject |
奇談 - 첫번째 기이한 이야기 (1/2) |
한창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가끔씩 게시판에 괴담이 올라오곤 합니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솔직히 즐겁습니다. 괴담류를 좋아하거든요. 게다가 최근에는 그런 괴담이 한가득 모여있는 모 블로그를 발견하고는 며칠 동안, 때로는 사무실에서 상사의 눈을 피해 가며 독파하기도 했습니다. 와오, 등골이 서늘해지고 오싹해지는 것이 정말 좋더라고요. 공포와 반전이야말로 괴담의 진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괴담이라고 해서 꼭 짧으란 법이 있나 싶어서 키보드를 두다다다 두드려 봅니다. 다만 몇 분에게만이라도 재미있게 읽히면 좋겠네요. 의도치 않은 낚시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리면 이 글은 제목에도 있듯이 반토막입니다. 나머지 반토막도 얼른 두드려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문득 찾아보니 피지알 게시판에 댓글이 아닌 글을 가장 마지막으로 쓴 게 2007년입니다. 근 3년만에 쓰는 글이라 어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네요. 부디 즐겁게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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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편의점은 횡단보도 바로 앞에 있어 목이 좋다. 저녁이면 엄청나게 몰려드는 손님들을 상대하며 정신없이 바코드를 찍다 보면 어느덧 근무시간이 지나가버리곤 한다. 이놈의 아르바이트를 때려치울까 생각한 적도 종종 있지만, 다른 곳에 비해 시급을 조금 더 쳐 주는지라 쉽게 그만두기가 힘들다. 어쨌든 등록금은 벌어야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평소에 비해 훨씬 한가했다. 장마철 비가 내리다 못해 숫제 퍼붓듯이 쏟아진 덕이다. 주중이라면 급하게 뛰어들어 우산을 찾는 손님이라도 꽤 있었겠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아예 사람들이 길거리를 다니지 않았다. 매일 오늘만 같으면 이 일도 할 만하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멍하니 유리문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산 두셋이 나란히 서서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씩 차가 지나가며 물이 튀었다. 잠시 후 신호가 바뀌고 우산들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노란 우산, 파란 우산, 검은 우산. 순간 왼쪽에서 무언가가 갑작스레 나타났다. 미처 놀라기도 전에 노란 우산이 공중으로 날았다. 속도를 줄이지 못한 트럭에 치여 우산의 주인은 그대로 튕겨나 버렸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는 끼익 소리가 들렸다. 우산의 주인이 길바닥으로 떨어지자마자 빗길에 미끄러진 차가 그대로 그를 덮쳤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늦었다. 몸집이 작은 우산 주인이 트럭 바퀴에 짓뭉개지는 끔찍한 광경은 이미 내 망막에 선명하게 남은 후였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밖은 부산스러웠다. 나는 다리를 움직였다. 마치 내 다리가 아닌 것처럼 어색했다. 유리문을 열자 습기가 확 끼쳐왔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몇몇 모여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길바닥에 누워 있는 그가 보였다. 누워 있다기보다는 너부러져 있다고 해야 할 상태였다.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노란색 고무장화를 신은 아이였다. 기껏해야 일고여덟 살로 보였다. 팔과 다리가 기묘한 각도로 놓여 있었다. 그녀의 눈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는 듯 떠진 체였다. 얼굴에 새빨간 피가 흥건했고 머리 아래로 비와 섞여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원래는 하얀 색이었을 블라우스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펼쳐진 노란 우산이 반대쪽 차선에 떨어져 있었다. 지나가던 승용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우산을 살짝 밀어내며 제 갈 길을 갔다. 우산이 힘없이 구르며 다시 이쪽 차선으로 넘어왔다. 멀리서 경찰인지 구급차인지 모를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다리에 감각이 없어서 마치 공중을 걷는 것만 같았다.
다음날에도 여전히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 천둥과 번개까지 동반한 지독한 날씨였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가판대에 남은 신문을 모아서 훑었다. 두어 개 신문에 조그마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피해자는 인근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인 이 모 양. 빗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신호위반 차량에 치여 즉사. 가해차량은 사고 후 도주하다가 오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다시 사고를 일으켜 건물을 들이받으면서 운전사 장 모 씨도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 장 모 씨는 음주운전으로 추정되며 경찰은 혈액 감식 중. 딱딱한 문체로 써진 건조한 기사였다. 나는 신문을 덮었다. 어제 보았던 사고 당시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피와 비에 물든 처참한 시신의 모습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했다. 나는 그 모습을 털어버리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편의점에 들어오던 손님이 그런 나를 흘끔 보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나는 멍하니 맥주 두 캔과 오징어 하나의 바코드를 찍고 거스름돈을 내주었다. 손님이 나가자 편의점 안은 다시 한적해졌다. 밤이 깊어지도록 손님은 여전히 뜸했고 나는 단지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일부러 부산을 떨면서 과자와 음료들을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의식적으로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문 바로 밖에 횡단보도가 있기 때문이다. 종종 번개가 치고 멀리서 천둥이 울렸다.
딸랑. 문에 붙은 방울이 울리면서 다시 손님이 들어왔다. 검은 양복을 단정히 입은 서른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하지만 우산이 너무 작아서 그런지 온통 비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바짓단 아래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남자는 우산을 접으면서 뭐라고 혼자 투덜거리더니 온장고로 가서 커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값을 치르더니 난데없이 물었다.
“혹시 최근에 이 근처에서 사고 난 거 있습니까?”
“예?”
나는 전혀 내 목소리 같지 않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목소리가 터무니없이 높고 갈라져 나왔다. 남자는 흠칫 놀라더니 곧 싱긋 웃었다.
“알고 계신 모양이네요. 혹시 목격자이신가요?”
“예? 아, 예. 아니 뭐, 그냥 어제 일하다가 우연히......”
“으흠. 어제였군요. 교통사고였습니까?”
“예. 트럭에 치여서 그만.......”
그때쯤에야 이 사람이 누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문기자 같은 사람일까? 하지만 비록 비에 푹 젖었을망정 이 눅눅한 장마철에 양복 재킷을 입고 넥타이까지 단단히 메고 있는 품을 보니 기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공무원이나 회사원처럼 보였다. 내 의문을 눈치챘는지 그는 살짝 어깨를 들었다 놓으며 말했다.
“별로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다른 일이 있어서 지나가다 우연히 사고가 난 걸 알게 되어서요.”
그 때 다시 문에서 딸랑 방울이 울렸다. 동시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일순간 주변이 암흑으로 둘러싸였다. 형광등부터 냉장고 불빛까지, 편의점 안의 불빛이 한꺼번에 꺼진 것이었다. 아무런 조짐이나 징조도 없이 갑자기. 나는 너무나도 놀라 비명마저 지르지 못했다. 유리창 너머에서 비쳐드는 노란 가로등 불빛만이 어슴푸레하게나마 문간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곳에 희뿌연 그림자가 서 있었다.
번쩍이는 번개에 실루엣이 뚜렷하게 보였다. 작은 키에 왜소한 몸집. 그리고 한손에 들고 있는 우산. 계산대 앞의 손님이 그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번개에 비친 작은 인영(人影)의 옷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팔은 이상한 모습으로 비틀려 있었다. 나는 그 인영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맙소사. 그림자가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순간 공포심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온몸의 열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면서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그림자를 향해 손님이 한 발짝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곧, 한없이 짙고 습한 어둠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문득 눈을 떴다. 머릿속이 멍하고 눈앞에 짙은 안개가 낀 것 같더니 곧 제정신이 들었다. 나는 계산대 가장자리를 붙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주변은 어두웠고 세찬 빗소리 사이로 드문드문 말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문 쪽을 쳐다보았다. 손님이 이쪽으로 등을 돌린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 어깨 너머로 조금 전의 키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여전히 불은 꺼진 채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까와는 달리 전혀 무섭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의 목소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손님과 그림자는 작고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알 수 있었다. 가끔씩 울음소리가 나기도 했고 때로는 뭔가 웃음 비슷한 기색이 섞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저 평온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모습이었고 나는 그런 그들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비쳐 손님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희뿌연 인영은 그림자가 없었다. 대신 흰색과 붉은 색이 뒤섞인 옷 너머로 흐릿하게나마 반대편이 비쳐보였다. 이거 다시 기절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바보 같은 생각마저 들었지만 내 정신은 멀쩡했다.
그 때 손님이 몸을 일으키더니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깜짝 놀라는 사이에 그는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그대로 스쳐 지나가 음료수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뭔가를 가지고 돌아오더니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서서 그 손에 들린 초코우유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계산해 주실래요?”
오랜 아르바이트 생활 탓에 습관이 몸에 밴 것일까, 나는 절반쯤 무의식중에 바코드 기계를 들어 초코우유의 바코드를 찍었다. 그리고 천 원짜리 지폐를 받고 이백오십 원을 거슬러 주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대사가 목구멍까지 솟아올랐다가 간신히 가라앉았다. 손님은 초코우유 팩을 약간 열고 빨대를 꽂더니 다시 문간으로 갔다. 그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 인영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자.”
그림자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곧 꼴깍꼴깍 우유를 마시는 소리가 났다. 손님은 허리를 굽히고 그림자의 머리에 손을 대더니 앞뒤로 움직였다. 아마도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면 말이지만. 그리고 무어라 속삭이는 것 같았지만 목소리가 작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일 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런 예고도 알림도 없이 갑자기 우유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림자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와 동시에 사방의 전등이 깜빡이더니 불이 들어왔다. 다시금 새하얗게 밝아진 편의점 안에서 나는 바닥에 떨어진 우유팩에서 흘러나오는 초코우유만을 쳐다보았다. 나는 뒤늦게야 웅웅거리는 소리가 다시 나기 시작한 것을 깨달았다. 냉장고가 재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손님은 가만히 그림자가 사라진 곳을 응시하더니 천천히 바닥에 떨어진 우유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말했다.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는 우산도 쓰지 않고 왼손에 우유팩을 들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계속>
<div class="adminMsg">* 박진호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3-11-2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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