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배너 1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2/11/06 17:54:57
Name 마스터충달
File #1 1.jpg (93.7 KB), Download : 11271
File #2 2.jpg (109.0 KB), Download : 11291
Subject [LOL]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케리아는 오열했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다,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데프트와 포옹을 마치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덜덜 떨리는 두 손을 어찌하지 못했다. 얼마나 간절했을지, 얼마나 분했을지, 비슷한 높이까지 오른 적조차 없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차마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나는 저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던가?

내 삶은 감사하게도 행운이 넘쳤다. 간절히 원하면 대부분 이루어졌다. 원하는 대학에 붙었고, 군대에서는 사단 최고 땡보 자리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어디가서 군대 생활 빡세다는 얘길 나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있다. 정말 간절히 원했을 때 감사하게도 세상은 내게 그것을 허락해주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나도 오열하고, 소리지르던 시절이 있었다. 취업 전까지 긴 백수 시절을 지나며 수백 통의 불합격 문자를 받아야 했을 때.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을 집안 사정으로 보러 가지도 못하게 됐을 때. 그러고 보니 좋아하던 여자애가 베프랑 사귀기로 했다는 얘기를 베프에게 직접 들어야 했을 때도 있었다. (아마 이때 제일 크게 울었던 것 같...) 그때는 나도 엉엉 울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좌절 앞에서 오열하지 않게 되었다. 다 큰 어른이 사람들 앞에서 엉엉 울어봤자 분위기 곱창내는 것밖에 안 되기도 하고, 그렇게 열내봤자 나만 손해인 경우가 더 많으니까. 내 잘못이 되는 게 잘하지 못하는 것보다 두려운 일이 되기 시작하면, 좌절 앞에서 눈물 흘리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러다 나중에는 멘탈을 추스른다는 변명으로 마음을 속이게 된다. '이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닐 거야. 이루지 못해도 상관없어. 이건 분명 신 포도일 거야.'

사실 별 수 없다. 오열한다고, 정말... 정말 간절히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건 없다. 결국 성공은 실력과 운이 결정한다. 성공을 부르는 시크릿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오열하느라 힘 빼느니 그냥 묵묵히 내일도 타선에 나서는 게 사실 더 낫다. 인생은 토너먼트가 아니다. 케리아의 커리어도 올해가 끝이 아니다. 월즈는 2023년에도 있다. (있죠? 라이엇?) 아마 똑똑한 사람이라면 빨리 멘탈 추스리고 다시 노력하자고 말할 거다.

그런데 나는 오열하는 케리아가, 두 손을 덜덜 떨었던 모습이 부러웠다. 예전에 월즈 토너먼트에서 패배하고 손을 덜덜 떨었던 페이커를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다 이룬 사람이 아직도 저렇게 승리를 갈망하는 구나.' 이렇게 다가왔다. 그런데 오늘 케리아의 오열은 다르게 다가왔다. 아직 이뤄내야 할 것이 남았기에, 그의 오열에서는 갈망이 아니라 좌절이 느껴졌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는 살면서 다시 저럴 수 있을까? 멘탈이 부서질 정도로 꿈을 향해 들이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부서지고 오열한 뒤에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케리아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혼자서는 쉽지 않겠지. 하지만 케리아 곁에는 비슷한 마음을 겪었던 페이커가 있지 않은가. 힘들 때는 그저 곁에 누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그러니 오늘의 좌절을 꼭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건 믿음의 영역이다.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근거를 두고 말하는 예측이 아니다. 그냥 믿는 거다. 오늘의 눈물로 내일의 씨앗을 싹 틔울 거라고. 그런 게 팬심이 아닐까 싶다.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케리아의 눈물이 케리아가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 믿는다. 그러니 부디 그의 눈물을 나쁘게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 태평양 건너 대한민국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그 눈물을 몹시 부러워한 사나이도 있었으니 말이다.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게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6-18 11:36)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 게시글로 선정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2/11/06 17:58
수정 아이콘
최선을 다한 선수에 대한 멋있는 글 감사하고 추천드립니다.
22/11/06 18:00
수정 아이콘
케리아의 남다른 승부욕이 보이더군요. 저렇게 간절히 원하는 승리이니 분명 내년엔 저 자리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겁니다.
니하트
22/11/06 18:00
수정 아이콘
추천
주인없는사냥개
22/11/06 18:02
수정 아이콘
조홍이 결국 원담의 목을 베었듯이 케리아에게도 빛나는 순간은 올겁니다
아이군
22/11/06 18:02
수정 아이콘
페이커가 수많은 다른 프로게이머의 좌절의 원흉이죠....

그 중의 대표격이라는 데프트가 한풀이하는 마당에서
케리아는 베릴이라는 큰 산 앞에서 다시 한번 좌절합니다.

이렇게 드라마가 또 다른 드라마를 만드는 거겠죠
미카엘
22/11/06 18:03
수정 아이콘
조홍...
아유카와마도카
22/11/06 18:04
수정 아이콘
명승부가 펼쳐지니 좋은글들도 넘쳐나는군요
이경규
22/11/06 18:04
수정 아이콘
월즈 앞으로도 계속 출석할 선수니까 잘 이겨낼거라 믿어요
쿼터파운더치즈
22/11/06 18:05
수정 아이콘
너무 와닿네요
'그의 오열에서는 갈망이 아니라 좌절이 느껴졌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는 살면서 다시 저럴 수 있을까? 멘탈이 부서질 정도로 꿈을 향해 들이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부서지고 오열한 뒤에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제가 유달리 스포츠 경기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 본문 문구 때문이거든요 나는 더이상 저렇게 못할거같은데, 아니 저렇게 높은 위치에 가본적도 없는데, 저 선수들은 자기들의 모든걸 내던지고, 기뻐하고, 좌절하면서도 다시금 도전하는구나하면서 뭔가 부럽고 뭉클하고..막 안에서 뭐가 올라오고 그래요
좌절하는 선수들은 다시 일어나길 바라고, 승리한 선수들은 기쁨과 환호를 마음껏 만끽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니하트
22/11/06 18:13
수정 아이콘
사람들이 그래서 스포츠를 좋아하죠 대리만족 용으로.. 페이커가 가장 많은 인기가 있는 이유도 이 선수에 몰입해서 기뻐했던 그리고 지금도 기뻐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만큼 해낸게 많고 대단하다는 것.. 페이커가 좌절시킨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케리아도 언젠가는 그런 입장이 될수도 있을겁니다.
마스터충달
22/11/06 21:08
수정 아이콘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그런 기분입니다. T1도 그렇지만 DRX의 소년만화 같은 우승 스토리를 봐도 막 안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기분이 들어요.
비상하는로그
22/11/06 18:05
수정 아이콘
두팀 모두 고생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응원하는 T1에게 마음이 더 가는건
어쩔수가 없네요ㅠ
5명 모두 힘내라고 얘기 하고 싶습니다
이치죠 호타루
22/11/06 18:05
수정 아이콘
잘 할 거라 믿습니다. 믿음은 현실이 될 겁니다.
22/11/06 18:07
수정 아이콘
근데 솔직히 이번에 그 페이커보다도 전 데프트가 더 간절했을거같아요. 페이커도 오랜만에 결승 진출이지만 데프트는 첫결승에 첫 우승입니다. 데프트야 말로 가장 좌절을 많이 겪었던 선수였죠.
리니어
22/11/06 18:07
수정 아이콘
질문)
오늘 5세트가 끝나고 나고 다른 선수들 보다 더 아쉬워 하셨던 모습이 보인거 같습니다. 그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괜찮다면 여쭤보고싶습니다.

답변) 솔직히 보시고계시는 팬분들이 많으셔서 좀 더 포장해서 말하고 싶지만 인터뷰에서 제 감정을 솔직하게 지금 당장에 느껴지는 감정을 말하자면
그냥 제 인생에 회의감이 느껴지는 시리즈였던거 같아요. 이번결승. 그리고 너무 아쉽고 분해서 좀 그렇게 울었던거 같고.. 네 울었던거 같습니다.

케리아 번아웃만 안왔으면 좋겠네요
노련한곰탱이
22/11/06 18:11
수정 아이콘
저는 티원 팬도 아니고 DRX팬도 아닌데 마지막 데프트가 케리아 안아줄 때는 눈이 시큰할 정도더군요.

여기서 늘 얘기하지만 클라스가 증명된 선수는 언제든 증명해보일 수 있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케리아는 오늘 못하지도 않았네요;;
phenomena
22/11/06 18:12
수정 아이콘
제갈량과 주유..
앨마봄미뽕와
22/11/06 18:15
수정 아이콘
뱅이 15 월즈 준비할 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우승 못하면 하늘이 우리를 버리는거다. 라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그 정도의 좌절감이 아니었을지...
22/11/06 18:19
수정 아이콘
디알엑스 응원했지만 케리아 넘 멋있었습니다 내년 분명 기대됩니다. 조홍님의 명언이 딱 들어맞네요
푸와아앙
22/11/06 18:22
수정 아이콘
케리아의 눈물을 보고 이 선수의 우승을 꼭 보고싶어졌어요. 더욱 티원의 우승이 간절해지네요.
고생하셨습니다 티원.
에너지
22/11/06 18:34
수정 아이콘
내년에 제우스가 케리아 우승 시켜줘야죠. 너무 멋진 경기였습니다.
Winterspring
22/11/06 18:39
수정 아이콘
케리아 오늘 진짜 진짜 지이~인짜 잘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잘할 거라 믿습니다.
기술적트레이더
22/11/06 18:41
수정 아이콘
경기못봤는데 그냥 여기 질문합니다.
티원이 못한겁니까 디알이 잘한겁니까?
LCK 시청만 10년
22/11/06 18:44
수정 아이콘
DRX가 잘했습니다
지켜보고있다
22/11/06 18:50
수정 아이콘
롤알못인 제가 보기에는 정말 한끗차이였어요
그냥 매 순간순간 살얼음판 느낌이고
엎치락 뒤치락이 길어질수록 얼음은 얇아지죠.
요슈아
22/11/06 19:00
수정 아이콘
티원에게 훨씬 행운이 따랐다는건 확실합니다.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요 이건.
프로페시아
22/11/06 19:03
수정 아이콘
drx가 메타에 대한 해석이 앞섰습니다
카바라스
22/11/06 21:08
수정 아이콘
DRX는 4강보다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티원이 못한건지는 모르겠는데 제우스는 못한게 맞는거 같습니다. 본인이 올시즌 보여준거에 비해서 너무 폼이 떨어져보였음. 밴픽은 전반적으로 DRX가 조금씩이나마 더 잘한거 같고
No.99 AaronJudge
22/11/06 21:19
수정 아이콘
저는 한끗차이였다 생각합니다
둘 다 잘했지만, 디알엑스가 더 뛰어난 팀이었습니다
22/11/06 22:31
수정 아이콘
디알이 잘했고 티원은 운이 좋았습니다
Winterspring
22/11/06 23:15
수정 아이콘
제가 보기엔 10명이 다 잘했어요.
공염불
22/11/06 18:43
수정 아이콘
고생했습니다. 티원
그리고 편하게 결승 보게 해 준것 만으로도
제 맘속에 티원은 우승팀입니다.
이웃집개발자
22/11/06 18:4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고맙습니다. 선수들에게도 좋은 기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QuickSohee
22/11/06 19:48
수정 아이콘
오열하는 모습과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보는데 맘이 참 아프더군요. 그래서인지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꼭 보고싶어졌습니다
22/11/06 22:09
수정 아이콘
페이커의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과 케리아의 오열
삼블 시절 데프트가 삼화에 무너졌던 모습이 떠올라서 울컥했네요
페이커, 20drx 모두 화이팅
튀김우동
22/11/06 22:32
수정 아이콘
케리아의 스토리도 이렇게 쌓여가겠죠.
아픈만큼 더 단단해지고 멋있어질거에요.
케리아 화이팅.
은때까치
22/11/06 22:55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저렇게 온몸을 내던져 본 사람만이 보이는 저런 몰입감 때문에 저희같은 팬들이 미쳐버리는거죠.
잘했다! 멋있다! 형이 응원한다!!! 내년에도 잘 부탁해!
사다하루
22/11/06 23:23
수정 아이콘
저는 '진인사대천명' 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오늘 경기가 딱 그런 경기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명의 선수 모두 해야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다 했고..
다만 이번에는 drx가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할까요.
진심으로 열명 모두에게 우승컵을 주고 싶은 경기였습니다.
그래서, 티원 선수들에게도 힘내라는 말은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 말이 전혀 필요 없는 것 같아서요.
오히려 선수들을 보면서 나도 힘내야지 싶은것이..감사하네요..흐흐
내년에도 또 봅시다. T1!
모나라벤더
22/11/07 18:58
수정 아이콘
많이 공감하는 글입니다. 추천합니다. 케리아 선수가 잘 털어내고 이겨내서 좋은 모습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케리아, 티원 파이팅!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640 [풀스포] 사펑: 엣지러너, 친절한 2부짜리 비극 [46] Farce14606 22/12/13 14606
3639 팔굽혀펴기 30개 한달 후기 [43] 잠잘까16202 22/12/13 16202
3638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걸 [20] 원미동사람들12816 22/12/12 12816
3637 사랑했던 너에게 [6] 걷자집앞이야12213 22/12/09 12213
3636 게으른 완벽주의자에서 벗어나기 [14] 나는모른다13458 22/12/08 13458
3635 [일상글] 나홀로 결혼기념일 보낸이야기 [37] Hammuzzi12278 22/12/08 12278
3634 이무진의 신호등을 오케스트라로 만들어 봤습니다. [23] 포졸작곡가14017 22/12/08 14017
3633 현금사용 선택권이 필요해진 시대 [107] 及時雨15515 22/12/07 15515
3632 귀족의 품격 [51] lexicon14289 22/12/07 14289
3631 글쓰기 버튼을 가볍게 [63] 아프로디지아13898 22/12/07 13898
3630 아, 일기 그렇게 쓰는거 아닌데 [26] Fig.113802 22/12/07 13802
3629 벌금의 요금화 [79] 상록일기15786 22/12/04 15786
3628 배달도시락 1년 후기 [81] 소시15772 22/11/27 15772
3627 늘 그렇듯 집에서 마시는 별거 없는 혼술 모음입니다.jpg [28] insane13501 22/11/27 13501
3626 IVE의 After Like를 오케스트라로 만들어봤습니다. [7] 포졸작곡가13203 22/11/27 13203
3625 CGV가 주었던 충격 [33] 라울리스타14302 22/11/26 14302
3624 르세라핌의 antifragile을 오케스트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16] 포졸작곡가14284 22/11/25 14284
3623 토끼춤과 셔플 [19] 맨발14462 22/11/24 14462
3622 [LOL] 데프트 기고문 나는 꿈을 계속 꾸고 싶다.txt [43] insane14471 22/11/21 14471
3621 나는 망했다. [20] 모찌피치모찌피치14519 22/11/19 14519
3620 마사지 기계의 시초는 바이브레이터?! / 안마기의 역사 [12] Fig.114224 22/11/18 14224
3619 세계 인구 80억 육박 소식을 듣고 [63] 인간흑인대머리남캐15826 22/11/14 15826
3618 [테크 히스토리] K(imchi)-냉장고와 아파트의 상관관계 / 냉장고의 역사 [9] Fig.113556 22/11/08 1355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