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과 유혹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변명이다. 좋은 유혹은 단지 구미가 당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적당한 변명 거리도 함께 제공한다.
영화 <트랜스포머>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차에 타면서 메간 폭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무릎에 앉을래?"
이 말을 듣고 곧이 곧대로 따를 사람은 없다. 심지어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도 따르지 않는다. 그 말을 그대로 따르는 순간 상대를 좋아한다는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절한 변명 거리가 있어야 한다.
"시트가 고장 나서 가끔 스프링이 튀어나와 찌르거든. 위험해서..."
그럼 상대는 마지 못해,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는 표정으로 무릎에 앉는다.
사실상 모든 유혹은 이 구도를 바탕으로 돌아간다. "밥 먹을래? 영화 볼래? 산책 갈래?"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던가?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런데 나 보러 나올래?"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맘에 드는 사람의 취향과 욕망을 알면 유혹하기가 쉽다. 너무 보고 싶었던 전시회, 개봉만 기다리던 영화, 10년 넘게 팬질 중인 가수의 콘서트 티켓, 특히 구하기 힘든 해외 가수의 내한 공연 티켓... 이런 걸 흔들면서 "같이 보러 가지 않을래?"라고 말하면 없던 호감도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겉으로는 "난 콘서트를 가는 거지 널 보러 가는 게 아니야."라는 티를 내겠지만, 어쨌든 당신도 보게 되어 있다.
게다가 호감의 원천 중 하나는 공감이다. 그리고 공감은 '경험의 공유'다. 기대하던 콘서트를 함께 본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고, 맛있는 걸 함께 먹었던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는 건 인간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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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무섭게 말하자면 "인간은 변명 거리만 있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준 심리학 실험이 바로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다.
밀그램은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를 실험한다며 참가자를 교사와 학생 2그룹으로 나누었다. 학생은 의자에 묶인 채 전기 충격 장치가 연결되었고, 교사는 학생이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생도, 전기 충격 장치도 가짜였다.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은 인간의 도덕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밀그램은 아무리 명령이 있어도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심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 생각했다. 수치로 말하자면, 피실험자들이 450V까지 전압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65%의 피실험자가 450V까지 전압을 올렸다. 심지어 그동안 학생을 연기한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도 전기 충격은 계속되었다. 실험 진행자가 "괜찮아요. 실험을 계속하십시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이유는? 그저 상관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수많은 학살을 저지른 악마라기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 가까웠다. 한나 아렌트는 그런 아이히만을 관찰한 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끌어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썼다.
밀그램의 실험과 아이히만의 사례는 책임없는 자유가 얼마나 무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잘 보여준다. 책임이 없다는 것은 적당한 변명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게 있을 때 인간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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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인간은 변명 거리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즉 당신과 데이트를 나갈 수도 있다. <대부>에서 돈 콜리오네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설득과 유혹의 1등 전략이라면, '적절한 변명 거리'는 2등 전략 쯤 된다. 거부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거부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 "잠깐 나올래?"라고 하지 말고 "별 보러 가자."라고 말해보자. 그런 되도 않는 변명 거리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든다.
덧. 만약 이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면, 내가 제시한 변명 거리가 충분히 적당하지 않았는지 돌아보도록 하자. 나는 아주 아주 그럴 듯한 변명 거리가 필요하더라... 하...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7-1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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