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0/09/02 22:53:19
Name lightstone
Subject 기생충, 그 씻을 수 없는 냄새 (수정됨)
아직도 잊지못한다. 처음 봤을 때 그 냄새를,

119구급대원에 의해 들것에 실려온 그의 모습은 정말 누가봐도 행려자의 모습이었다. 행려자가 무엇이냐 그냥 걸뱅이였다. 
전체적인 모습은 이불을 안은채 집에 누어있던 모습을 그대로 들것에 옮겨 온 것 같았다.
이불은 씻은지 5년 이상은 되었을까? 너덜너덜한 그 이불은 곰팡이가 여기저기 피여 있었다. 
이불이 그런데 옷은 하물며 어떨까, 빨래는 커녕 해질대로 해져 색깔조차 유추할 수 없었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기름으로 반지르르 하얗고 하얀 비듬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눈을 몸으로 옮기자 간경화로 인해 얼굴을 포함한 온 몸은 노랗게 부종으로 인해 탱탱 부어 있었고 발 끝은 당뇨로 괴사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창문너머로 들어오는 그 이를 보고 측은지심이 들려나는 찰나에 
문을 열자마자 내 콧가에 들어오는 냄새는 본능적으로 내 표정을 찡그리게 했다. 
나를 쳐다보는 의료진과 구급대원들은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듯이 신기하게 오히려 나에게 동정을 표했다. 
그러고 나서 본능적으로 표정을 피며 오히려 최대이 따뜻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교양이 있다는 것이 어떤 건지 우리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급대원들이 그렇게 따뜻하게 나를 대한적도 처음이었다. 
그 교양있고도 차분한 말속에 우리는 서로 
'제발 다른 병원으로 가줘', '제발 이 병원에서 받아줘'
를 최대한 들키지 않게 몇 마디 주고 받으며  그 이를 최대한 서로 반대편으로 밀어냈다. 
그때, 힐끔 응급실 안을 지켜봤을 때 내 주위 의료진들은 나의 말에 무언의 응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사람들에게 본심이 들킬까 병원에 들어와도 된다고 말을 했을 때, 
구급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주위 의료진은 눈빛에서 레이져를 말을 안해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환자를 어디에 눕힐지 담당 간호사 정해지는 순간이 오자,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팽팽한 긴장이 응급실을 채웠다. 

우리는 모두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교양이라는 거대한 공기속에 구태여 표면적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그 이는 치료를 마치고 들것에 나가며 나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연신 했지만, 그 말은 정말이지 하나도 안들어왔다. 
처음 맡아보는 그 지독한 냄새에서 빨리 벗어나 그 자리를 뜨고 싶기만 했다. 

사람은 한 발자국 떨어져서 사람을 사랑하기 쉽지만 가득안으며 사랑하기에는 힘들다는 것을. 
역시나, 나도 똑같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안다. 
인터넷 속 세상은 법이 없어도 살아갈 사람들만 모인 것 같은데 현실 속 세상은 왜 다 이모양인지.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7-09 16:06)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낭만원숭이
20/09/02 22:57
수정 아이콘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글읽는 동안 집중이 잘되고, 글쓴 분의 감정이 느껴지네요!
무언가
20/09/02 23:05
수정 아이콘
몰입해서 무슨 상황을 상상하며 글을 읽기가 되게 오랜만이네요..
gantz9311
20/09/02 23:0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개개인이 가지면 좋은 이상과 막상 맞이하는 현실에는 큰 차이가 있죠 언제나...

인터넷이 활성화 되고 모두가 '옳은 길'에 대해 과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현 세대인것 같네요. 다들 잘 알지만 어쩔수없이 벌어지는 네트워크와 현실과의 괴리..

현재 한국 인터넷의 모든 사람들이 PC와 내로남불에 잠식되어있죠. 이보다 더더욱 심하게 잠식된 미국에선 억압된 개개인의 생각과 반항이 터져서 트럼프 4년을 초래했는데 한국에서는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요?
차기백수
20/09/02 23:11
수정 아이콘
짧지만 뭔가...임팩트있는 글이네요 추천
20/09/02 23:38
수정 아이콘
글 잘 쓰시네요. 추천 눌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자루스
20/09/02 23:42
수정 아이콘
아... 참... 수고하셨습니다....
구혜선
20/09/02 23:42
수정 아이콘
글쓰신 정도는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 냄새를 참고도 받아주고 치료하는게 대단한거죠. 사람들이 어찌 다 부처나 성인군자 일 수 있나요. 그렇게 쓰신 건아니지만 사람 속마음까지도 한없이 착하길 강요한다면 그게 잘못된 거라 생각합니다.
길고양이
20/09/02 23:50
수정 아이콘
불편한 진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그 말씀하신 '교양' 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능의 충실한 동물과의 차이랄까.. 고생많으십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ArcanumToss
20/09/02 23:5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창문넘어로 -> 창문 너머로
말을 건냈다. -> 말을 건넸다.

말할 때마다 입에서 똥냄새가 뿜어져 나오던 사람을 상대해야 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진짜 죽을 맛이었습니다.
저는 버틸 수가 없더군요...
lightstone
20/09/03 00:02
수정 아이콘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사영우
20/09/02 23:5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동화에서 가난하고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을 봐왔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난하다고 착한건 아니라는것 과 힘들수록 악착같다는것 들을 알게 되갑니다.
측은지심과 이타심을 교육받고 자라왔지만
지나고 보면 이용당했다는 생각과 조금 더 매몰차게 했으면 나에게 이득이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저 알고도 교양있는척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거나
주위에 눈치를 받더라도 조금 편하고자 하는 선택이 남을뿐 인것 같습니다.

저는 여건이 된다면 내 자신에게 여유가 있어 왠만하면 교양있는척 타인을 받아 줄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존콜트레인
20/09/03 04:08
수정 아이콘
그 반대에 가깝죠.. 가난한데 착한 사람들이 너무 없어서 동화속에 등장하는 겁니다.. 가난하다고 다 뒤틀린 성격들은 아니라는 거죠.
20/09/03 00:14
수정 아이콘
잔잔하게 스미는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안군-
20/09/03 00:23
수정 아이콘
그 "교양"이 누군가에게는 위선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그것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윤활제죠...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리니
20/09/03 00:53
수정 아이콘
똑같이 사람은 자신의 범위 밖의 일이 되면 눈을 돌려버리죠. 책임 소재나, 명분의 범위 밖으로 밀어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고귀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저기서도 담당 간호사가 정해지면 대부분의 뒷일을 하고 또 간병인 같은 쪽으로 일이 이양되면 냄새나는 시간은 그쪽으로 넘어가겠죠. 다른 병원으로 가진 않겠지만 다른 영역으로 가고 멀어지겠죠. 당연한 겁니다. 다 그렇게 희망하는 사람의 본심이죠.
HYNN'S Ryan
20/09/03 02:30
수정 아이콘
난 언제 이렇게 글 쓸 수 있을까..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MirrorSeaL
20/09/03 02:3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카이다이빙
20/09/03 07:37
수정 아이콘
글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바둑아위험해
20/09/03 08:43
수정 아이콘
글 읽으면서 그 상황에 몰입되어 인상쓰고 숨을 참으며 보게 되었네요....!
20/09/03 09:03
수정 아이콘
온라인으론 현실의 느낌, 그 중 냄새는 전달이 안되죠. 그런 감각이 없는 세상이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9/03 11:16
수정 아이콘
인터넷에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저도 반지하집에 20분 정도 머문적이 있는데
냄새때문에 코가 아픈 기억이 있어요
대화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 괴롭더군요
은때까치
20/09/03 11:2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JP-pride
21/07/10 17:46
수정 아이콘
와 정말 잘읽었습니다.
최근 본 글 중 가장 인상깊은거같아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 같습니다.
2021반드시합격
21/07/11 21:00
수정 아이콘
사람은 한 발자국 떨어져서 사람을 사랑하기 쉽지만 가득안으며 사랑하기에는 힘들다는 것을.

올해 읽었던 문장 중에 가장 마음을 울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오르캄
21/09/28 16:34
수정 아이콘
타인에게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내 영역은 깨끗하거나 안전하길 바라죠.
어릴 때는 말과 삶의 거리가 가까워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러길 바라지만 저 스스로도 참 어렵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나이먹으니 말이 줄어들게 되네요. 허허...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210 [콘솔] 양립의 미학 - <천수의 사쿠나 히메> 평론 및 감상 [35] RapidSilver7866 20/11/20 7866
3209 브라질리언 왁싱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들? [48] Brasileiro11127 20/11/24 11127
공지 추천게시판을 재가동합니다. [6] 노틸러스 23/06/01 24159
3207 우리가 요즘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는 몹쓸 상상들에 대하여 [39] Farce247042 20/11/15 247042
3206 나이 마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대하는 자세 [54] 지니팅커벨여행218725 20/11/12 218725
3205 (스압주의)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책 가격이 정말 내려갈까? [130] 아이슬란드직관러207867 20/11/10 207867
3204 1894년 서양인이 바라본 조선 [47] 이회영205378 20/11/09 205378
3203 영화 "그래비티"의 명장면 오해 풀기 [39] 가라한203337 20/11/06 203337
3202 주님, 정의로운 범죄자가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58] 글곰51495 20/10/06 51495
3201 예방접종한 당일에 목욕해도 될까? [66] Timeless42457 20/10/06 42457
3200 학문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의 무게 [55] Finding Joe42953 20/09/23 42953
3199 사진.jpg [36] 차기백수42740 20/09/23 42740
3198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갖는 의미 [131] cheme43891 20/09/21 43891
3197 이번 생은 처음이라(삶과 죽음, 악플 & 상처주는 말) [9] 세종대왕27636 20/09/20 27636
3196 마셔본 전통주 추천 14선(짤주의) [137] 치열하게37271 20/09/18 37271
3195 금성의 대기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71] cheme25781 20/09/16 25781
3194 어느 극작가의 비명 [4] 겟타쯔24438 20/09/14 24438
3193 오늘은 정말 예쁜 날이었어요 [36] 及時雨30554 20/09/13 30554
3192 일본 반도체 왕국 쇠망사 1 [67] cheme34648 20/09/11 34648
3191 영창이야기 [39] khia24340 20/09/10 24340
3190 올해 세번째 태풍을 맞이하는 섬사람의 아무 생각. [33] 11년째도피중25689 20/09/05 25689
3189 기생충, 그 씻을 수 없는 냄새 [25] lightstone30289 20/09/02 30289
3188 10년전 우리부대 대대장 가족 이야기 [38] BK_Zju28021 20/09/01 2802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