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계획했던 여행의 2/3정도는 마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세렝게티 초원 약을 팔까, 킬리만자로 산 약을 팔까 고민하다가 킬리만자로로 정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킬리만자로 등반이 더 멋진 경험이었거든요.
약간 일기처럼 쓴 글이라 말투는 양해 부탁 드립니다.
존댓말로 바꿔봤더니 너무 글 맛이 없어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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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산을 오르는 거점 도시는 모시(Moshi)다.
모시에 도착해 투어업체에서 잡아준 숙소에 짐을 풀고 내일 산행을 같이 할 가이드와 같이
온 짐을 들쑤셨다.
킬리만자로 산이 그렇게 만만한 산이 아니라 어느정도의 장비는 필요하다.
나야 애초에 산행을 결심하고 떠난 여행이 아니기에 충분한 물품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필요한 물건은 전부 빌리고, 사고, 필요 없는 물건은 전부 숙소에 맡기는 등등의 행위를 1시간에 걸쳐 끝냈다.
하다 못해 등산용 양말조차 빌렸다-_-;
세상 문제는 대부분 돈으로 해결 가능하다.
아 시작하기전에 투어 업체에 대해 잠깐 얘기해보자.
역시나 별처럼 많은 킬리만자로 등반 업체.
업체를 고르는데 항상 먼저 문제되는 건 금액이다.
현지에 도착해 몇 군데 알아본 결과 중간업자 없이 $1,400불의 오퍼까지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택한 XXX 투어(XXX Tour)는 1인 Machame Route 5박6일에 $2,055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돈이란 건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항상 그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1,400으로는 그 비싼 킬리만자로 입산비를 제외하면
절대로 제대로 된 장비, 포터/가이드등에 대한 적당한 봉급, 고객에 대한 적절한 대접 등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결국 중점적으로 본 건
1. 금액(모순 같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싼게 좋죠-_-)
2. KIATO(Kilimanjaro Association of Tour Operatos) 가입 여부
나와 같이 산에 오를 멤버들에 대한 인간적인 처우가 보장된 업체인가에 대해 알수 있다.
3. XXXXAdvisor 리뷰(...)
4. 메일 회신에 대한 친절함 정도
5. 그 외 몇가지 잡다한 이유
로 인해 XXX 투어 당첨.
자, 주사위는 던졌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올라가 봅시다.
킬리만자로 산행 1일차
킬리만자로 산을 오르는 메인 루트는 보통 7개로 나눈다.
하지만 90%의 등반은 마랑구(Marangu)와 마차메(Machame) 루트를 통해 이루어진다.
고로 나머지 루트는 일단 제껴두고 2개만 자세히 살펴보자.
마랑구 루트가 대중적인 이유는 크게 나눠서 하기와 같다.
1. 상대적으로 쉬운 난이도 때문이다(그래서 Coca Cola 루트라고도 부른다).
2. 가장 짧은 일정, 4박5일로 등반이 가능하다.
3. 유일하게 Hut이 있는 루트다. 텐트에서 잘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게 얼마만큼의 값어치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알 거다.
4. 싸다. 짧은 일정으로 인한 비용절감 뿐 아니라 텐트 등을 나를 필요가 없기 때문에 포터의 수도 줄어든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마랑구 루트를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면 다들 마랑구 루트로 가지 왜 딴 루트로 가냐?하면 단점이 극명하기 때문이다.
바로 산의 절경을 즐기는데 적절한 루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텐트가 없어서 왔던 길을 그대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경치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산을 오르는 건 단순히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행위가 아니다. 물론 정상을 찍는 것도 중요하긴 하고;
어쨌든 온 과정을 즐겨야 한다.
그래서 마랑구 탈락. 그러면 내가 택한 마차메 루트는 어떤 곳인가 하면,
말 그대로 적절한 루트다.
경치는 끝내주고, 난이도는 적당히 어렵고, 5박6일 or 6박7일로 등반할 수 있고.
마차메 루트는 Whiskey route로도 불리는데 가이드 말로는 그 만큼 독하고 힘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난 패기롭게 5박6일 루트로 정했다. 경험 상 산행과 고통은 짧게 굵게 가는게 항상 좋았다.
시작해보자.
Machame Gate(1800m) -> Machame Camp(2835m)
나와 같이 산을 오르는 팀은 총 7명이다.
가이드 1명, 요리사 1명, 웨이터1명-_-, 포터4명
웨이터가 별게 아니고, 기본적으로 포터와 똑같은 역할인데 따뜻한 물을 준비해 주거나, 식사시간 알려주는 그런 역할이다.
(왜 이렇게 세세하게 나누냐 하면 팁 기준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에 포터가 5명이나 포함될 거라고 해서 굉장히 놀랐는데,
바로 첫날밤에 텐트, 음식, 자재 등을 보고 납득했다. 인정합니다. 반성합니다.
킬리만자로 산은 일반 플라스틱 물병 반입 금지다. 사람들이 하도 다 마시고 던지고 하는 일이 많아서;
저렇게 가방에 넣고 빨아마실 수 있는 물통을 준비했다.
최종적으로 내가 나를 짐은 8kg. 25L 가방 하나다.
나를 정상까지 데려다 줄 가이드 Julio.
첫 날 등반은 어렵지 않았다. 비가 조금 와서 습하긴 했지만 고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길이 험한 것도 아니고, 경사가 심한 것도 아니고.
첫 거점 Machame 캠프에 도착해서 미리 팀원들이 설치해 놓은 텐트에 짐을 풀었다.
그런데 옆...팀의 인원수가 심상치 않다-_-
나는 개인적으로 노랑군단이라고 불렀는데 서양인 10명 그룹투어였는데, 팀원의 수만 70명이라고 한다.
거기에 전원 접이식 침대, 개인 화장실도 4개(개당 $150)나 가지고 다닐 정도로 부유한 팀이었다.
내 가이드 말로는 저 정도면 인당 못해도 $6,000~7,000은 지불해야 될 거라고 하던데.
첫 거점에서의 경치. 산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자기 고객들이 올라오니까 다 모여서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그러고보니 오늘 내 생일이다-_-나도 껴서 같이 축하나 받을까 하다가 말았다.
생일 선물로 정산등반을 받고 싶다. 아니면 케익이라도...
자자.
산행 시간 : 4시간
산행 복장 : 반바지 / 반팔, 바람막이
킬리만자로 산행 2일차
Machame camp(2835m) -> Shira Cave Camp(3750m)
밤 새 비가 내렸지만 아침에는 날이 개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킬리만자로 산 정상 Uhuru Peak.
멀고도 높구만...진짜 갈 수 있을려나.
문제가 하나 있다면 잠을 거의 못잤다는 거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게 아니고 그냥 예민한 체질때문이다.
진짜 나도 가끔 이런 내가 싫다-_-
오전 7시에 먼저 출발하는 노랑군단 고객들. 나는 7시30분에 출발한다.
저 멀리 보이는 메루산. 탄자니아에서 2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때까지만해도 멋도 모르고 끝내주는 경치에 취해서 속으로 '역시 마차메 루트' 이러면서 즐거워했다.
진짜 날씨가 종잡을 수 없다. 금방 구름이 끼고, 개고,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한다.
오늘부터는 국제나이로 33살이다.
고도 4천미터에도 비둘기는 있습니다.
어쩌면 생명의 최종진화형은 바퀴벌레가 아니라 비둘기 아닐까?
한폭의 그림 같은 경치
밥을 잘 먹지 못한 내 생명을 책임져줬던 초콜렛 브라더스. 벌써 3개 먹고 남은 수량이다.
산행 시작하기 전에 가이드가 미니마트에서 계속 초콜렛 더 사라고 더더더더 라고 해서,
아니 뭐 일케 많이 필요하냐고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할텐데 라고 궁시렁 거리면서 담았는데
-_-5일차에 다 먹었음
Shira Cave가 있어서 캠프 이름이 따라온거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구름이 계속 밀려오고 말고를 반복한다.
정말 다행인건 아직까지 고산병 증세나 특별한 이상 증상이 없다는 거다.
아름답구나. 아침에 도저히 식욕이 돌지 않아 빵 한조각만을 억지로 쑤셔 넣었는데
가이드가 오더니 오늘 7~8시간은 걸어야 할텐데 더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진짜 도저히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진짜 억지로 핫초코 2잔과, 초콜렛을 입에 쑤셔 넣으면서 없는 에너지를 만들어야 했다.
최초 2시간은 폴대조차 쓸 수 없는 말 그대로 바위를 기어오르는 길이다.
1차 언덕 등반 완료. 하늘에서 구름을 내려다 보는 기분이 이런 걸까나.
시키는 놈이나 시킨다고 뛰는 놈이나...
중간 지점 카랑가 캠프 도착. 여기서 하루 머무느냐 마느냐가 마차메 루트 5박,6박을 나누는 경계가 된다.
노랑 군단은 여기서 하루 잔다고 한다. 나도 짐 다 던져버리고 여기서 쉬고 싶었지만
5박6일 일정을 선택한 나한테 그런 미래는 없다. 나아가자.
저 멀리 마지막 목표 바라푸 캠프가 보인다.
사람들이 왜 개인화장실을 신청하는 줄 알겠군.
저녁에 화장실가다 발 한번 삐끗하면 바로 한국 직행할 수 있겠는데?
정상 우후루 픽까지 7시간이라...
세상 모든 것이 내 아래에 있는 느낌이다.
이 캠프의 문제는 고도도 고도지만 바람이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춥고...
그리고 머리가 이제는 정말로 고통을 넘어 불타는 듯한 느낌이다.
오늘 새벽 12시에 일어나서 출발한다고 하는데 정말 가능한걸까?
근데 나 왜이렇게 목소리가 밝지? 진짜 머리가 거의 깨져가고 있고,
잠은 잠대로 며칠동안 제대로 못자서 거의 죽어가고 있는데...
12시에 텐트에서 나와 차와 팝콘을 억지로 쑤셔 넣고 가이드한테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진통제와 두통약을 준다. 약을 먹고 약기운이 돌기를 조금 기다리다가 출발 시간이 예정보다 조금 늦어졌다.
있는 옷, 없는 옷을 다 껴입고 헤드램프 하나와 달빛만에 의지해 출발한다.
시작 전 팝콘을 먹는데 계속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되뇌였다.
하지만 출발한 순간부터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호흡에 신경쓰며 가이드의 뒤를 따라갈 수 밖에.
이 추위와 바람 앞에서도 사람이 졸릴 수 있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한발 한발 옮기면서도 내가 깨어 있는건지 잠들어 있는건지 구분이 안된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면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침에는 따뜻한 내 방 침대에서 일어나서 어머니가 만들어준 된장찌개를 먹고...
하지만 현실은 2시간이 지난 새벽 3시쯤,
발에 힘이 없어서 딱 한번 발을 잘못 디딘 순간 바로 옆으로 넘어졌다.
한번 쓰러지니 도저히 더 이상 일어날수가 없었다.
머리는 핑핑 돌고, 다시 일어나서 역풍을 뚫고 앞으로 나갈 체력도 의지도 없었다.
그냥 돌바닥에 주저앉아서 더 이상 못 걷겠다고, 진짜로 다리가 안 움직인다고 가이드에게 말했는데,
진짜로 못 움직이는 사람은 그런 말도 못한다고, 넌 더 걸을 수 있다고 일어나라고 한다.
그래, 사실 더 걸을 수 있다. 단지 더 걷기가 싫었을 뿐이지.
그래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말 한마디 없이 강하게 부는 역풍을 거슬러 오르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새벽 다섯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 되었다.
중간에 몇 번 추위에 언 초콜렛을 입에 넣어 녹여서 억지로 기력을 만들고,
가끔 다른 팀들을 만나도 어제처럼 서로 인사를 할 기력도 없어 눈빛만을 나누고 다시 자신한테 집중한다.
느림의 미학. 정말 한 걸음을 옮기는데 3초 정도가 걸리는 구간도 있다.
그렇게 호흡 한번에 정말 온 신경을 집중하며 가이드를 따라가다보니 어느 덧 정상 도전의 마지막 고비
Stella Point에 도착했다. 5756m
정말 믿기지 않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스텔라에서 우후루까지는 단 1시간이 남았을 뿐인데도. 하지만 이해는 간다.
머리는 정말 터질 것 같고, 다리는 이제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다.
조금 지저분한 얘기지만 추위에 콧물, 침이 얼어붙어서 처음에는 닦으면서 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을 올릴
체력조차 없어서 그냥 신경을 껐다-_-
아무것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는 그냥 거의 다 왔다는 생각 뿐.
그래도 인간인데 여기서 좀 쉬다가 가야겠지 라는 생각으로 털썩 주저 앉았는데, 가이드가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여기서 정상까지 1시간이 걸리는 거린데, 문제는 앞으로 30분쯤 지나면 해가 떠오를 거라고 한다.
...................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새벽 1시에 캠프를 떠나 정상을 향해 출발했단 말인가.
바로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 아니였는가.
이 말을 들은 순간 목표가 정상등반을 할 수 있냐 마느냐에서, 정상등반을 30분내로 할 수 있냐 마느냐로 바뀌었다.
고민할 시간도 사치다. 인생에는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가이드 한테 얘기했다. 내려가자고...아니 이게 아니고,
"Julio, you lead 30min-summit tempo, I follow okay?"
"Good, good. That's a simba. Don't think, just follow my foot. Let's move"
영어 못하는 산 사나이들의 대화
모든 언어는 뜻만 통하면 된다.
정확히 30초 정도 쉬었다.
그리고 여기서 시작된다.
고도 5800m, 킬리만자로 등반 철칙 폴레폴레 따윈 엿이나 바꿔 먹어버린 두 남자의 마지막 30분간의 광란의 질주가...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악마에게 영혼을 바치고 한 마리의 표범이 되어보련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호흡 한번에 정말 온 신경을 집중해도 가끔 호흡을 놓치는 순간이 있고,
그러면 바로 헛구역질이 올라옴과 동시에 호흡을 다시 찾는 5~10초간의 시간동안 정말 죽을 듯한
괴로움이 밀려온다.
그래도 귀신에 홀린것처럼 발만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리고 해냈다.
이 기분, 감동, 경치를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오늘 하루 오직 3팀만이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일출을 보는 것이 허락됐다.
아프리카 최고봉 해발고도 5895M,
인간이 특별한 장비나 기술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
새도 넘을 수 없다고 일컫는 흰 눈의 산
자유를 뜻한다는 우후루
정상에서 느끼는 잠깐의 해방감은 정말로 나를 자유롭게 해줬...던가? 모르겠다.
굉장히 추웠다는 감각만은 산을 내려와 숙소에서 글을 쓰는 지금도 남아있다.
끝났다.
이제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하산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 대단한 적수였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다년간의 대모산 등반으로 단련된 이 몸을 만난 것이 너의 불운이였을뿐.
바이바이(-_-)대모산 짱짱맨!!찬양해!
후후 느림보들.
저 멀리 새벽에 출발한 바라푸 캠프가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 더 내려가야 한다. 오늘은 하산 시간만 해도 6시간이 예정되어 있다.
킬리만자로 택시라고 부르는 물건.
몸 상태가 안 좋아졌을 때 헬기를 부르느냐(6천불), 킬리만자로 택시를 타느냐(20불)는 당신의 선택이다.
근데 택시를 타고 내려갔더니 허리가 나가있더라, 라는 흉흉한 소문이 있는 물건이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