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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7/29 23:41:49
Name 지니팅커벨여행
Subject [일반] 첫사랑과의 이별... 그녀의 일기
안녕하세요.
한번 썼으니 마무리는 지어야겠죠.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52957

그 아이 앞에만 서면 뭔가 민망하고 어색해서 다른 여자애들한테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말조차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 애를 좋아했던 제 친구는 적극적이었습니다.
본인이 그 아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몇몇 친구들 앞에서 드러내곤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는 참 멋진 녀석이었던 것 같아요.
활달한 성격에,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주위를 웃게 만드는 농담도 자주 하고... 운동도 좋아해서 반대항 축구를 하면 꼭 뽑혀서 나가기도 하고.
한번은 그 아이에게 꽃다발을 선물로 줬던 장면도 어렴풋이 떠오르네요.
그날이 그 아이의 생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말 한마디 할까 말까한 상황에서 봄소풍을 가게 되었습니다.
소풍을 가서 장기자랑을 하는데 그 친구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던 것 같아요.
아마 오락부장으로 뽑혀서 장기자랑과 게임 등을 진행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게임 중에는 사실 다소 성숙한(?) 게임이 하나 진행됐는데...

반 아이들이 지목한 사람 두명이서 서로 껴안고 풍선을 터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설마설마 하며 그냥 지켜볼 뿐이었지만, 그 친구는 본인이 자원해서 나섰고 지목된 상대는 다름아닌 그 아이, 유경이었어요.

당시 어떻게 이런 게임을 할 생각을 했는지, 참 시대를 앞서 갔다고 해야 하나..
다른 남녀공학 학교에서도 했던 건지 모르겠네요.

남자라면 자기가 관심이 있건 없건 이런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생기는 일종의 경쟁심이라고 할까, 경계하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인가 봅니다.
특별히 질투가 났던 건 아니었는데, 그냥 별 감정없이 지켜봤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차례가 저한테 온 것이었어요.
여자애들이 단체로 짜고 쳤던 것이었는지, 상대는 또 그 아이였습니다.

아까 봤던 장면이 떠오르면서도 아무런 감정 없이 저도 풍선을 터뜨리게 됐고, 마지막인데 풍선이 하나 남았다고 한번을 더 시키더군요.
쪽지 건과 같이 바보스런 대처를 한 녀석이, 이번에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상황을 이상하게 끌고 가 버린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었겠지요.
아무튼 두번의 포옹과 함께 게임이 끝났고... 그 아이는 얼굴이 빨개졌는데, 저는 그냥 무덤덤했어요.

이성이 이성처럼 느껴지지 않으면 연인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지만, 당시 그 어린 나이에 무얼 알았겠습니까.
태어나서 가족, 친척이 아닌 또래의 여자애를 처음 안아본 것인데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이겠지요.

아무튼 중학교 들어서 두달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포옹만 두번이라니...

그날 이후 그 아이는 언젠가부터 쪽지를 다시 보내기 시작했어요.
쪽지에는 그냥 일상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숫기없는 저는 그냥 받기만 할 뿐 어떠한 응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던 제 친구가 옆에 있었기에 사실 어떤 응답을 할 수도 없었지요.

그렇게 1년이 지나가고, 우리는 서로 다른 반으로 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바로 옆반, 그것도 기술/가정을 남녀 구분해서 같이 받게될 홀수 반.
제 친구는 저 멀리 떨어진...;;; 다른 반이었고, 2학년 9개반 중 6개 반이 한쪽 건물에, 나머지 3개 반이 뒷쪽 건물에 위치했는데
저는 8반, 그 아이는 7반, 제 친구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저기 저 편에 있는 반이었네요.

따라서 그 친구가 그 이후에 그 아이에게 어떻게 본인의 마음을 표현했는지, 그 감정을 그대로 유지했는지 조차 모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옆반이니 오며 가며 마주치게 되고, 저는 꾸준하게(...) 그 아이와 마주하는 상황이 어색해서 어쩔줄 몰랐고,
당연히 대화를 거의 나누지 못했지요.

그래도 쪽지는 계속 왔습니다.
특별히 어떤 날이나 의미를 부여하고 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냥 본인의 생활과 현재의 기분 상태, 일상과 달랐던 일들에 대한 설명이었지요.
마치 일기장에 써 놓은 일기를 찢어서 보내는 듯한...
직접 또는 친구를 통해, 또는 기술/가정 수업이 끝나고 제 책상 서랍에 넣어 두는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쪽지는 계속되었어요.
그 아이는 같은 반이 되지 못해 아쉬웠을 겁니다.
저도 은근히 같은 반이 되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번에도 저는 동떨어진 3개 반 중 하나에 배치가 되었고, 그 아이는 앞 건물, 6개 반이 모여있는 본관에 위치하게 되었어요.
아예 지나가다 마주치기도 힘들어진 것이지요.
실제로도 거의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아침조회를 마치고 들어가는 길목어서 가끔 마주치거나, 우연히 하교 시간에 저 멀리 지나가는 것을 보거나...
체육 수업을 하러 운동장에 나갈 때면 본관 쪽을 바라보곤 했는데 간혹 그 아이가 자기의 단짝 친구와 운동장을 내다보곤 했지만.

자주 보건 보지 못하건 쪽지는 끊이지 않았고, 어느새 쪽지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냥 지난 2년여 동안 그 아이에게 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컷던 건지, 아니면 다른 마음이 자라고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한가지 분명한 건, 가끔 체육시간에 본관 창문을 바라볼 때 그 아이가 창밖을 내다 보고 있으면 손 한번 흔들어 줄 정도는 되었다는 것.
이제 바보 찌질이...;;;에서 한발 한발 멀어지면서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네요.
고등학교는 더이상 남녀공학이 아니었던 겁니다.

당연히 다른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더이상 그 아이, 아니 그녀의 소소한 일상 소식을 알 수 없었어요.
이제 마주치기 위해서는 우연을 바랄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도 버스를 타면 그녀가 다니는 학교를 지나 집으로 간다는 것이었지요.


@ 이래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하나 봅니다.
하나 둘 사족을 붙이다가 글이 길어지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다가 결국 시간 제한에 걸리고 마는 것이니.
요점만 간단히 적었더라면 한 편으로 끝났을 이아기를.
이별을 담기엔 두 편으로도 부족한가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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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14/07/30 01:05
수정 아이콘
내 이별은 SMS 80글자 안에서 끝났는데.. 부럽군요..
지니팅커벨여행
14/07/30 18:38
수정 아이콘
당시엔 휴대전화기 없어서...
체코의혼
14/07/30 11:52
수정 아이콘
하아 다읽고 나니 소주생각이 나는건 왜일까요...
지니팅커벨여행
14/07/30 18:39
수정 아이콘
저도 술 생각이 나곤 하네요.
그때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밀물썰물
14/07/30 11:57
수정 아이콘
공부 잘하셨나봐요.
그렇게 반응없는 남자에게 꾸준히 쪽지를 보내려면, 잘생긴 것도 중요하지만 그나이에는 공부잘하는 학생이 눈에 띠지 않나요?

글이 내용이 참으로 신선하네요.
지니팅커벨여행
14/07/30 18:42
수정 아이콘
학기 초라 누가 공부 잘하는 지 모르던 시기였죠.
외모빨이었던 건지;;;
근데 이후론 여자가 먼저 호감을 표시한 적이 없다는ㅠㅠ
그땐 나름 훈남이었는데 흑.
중학교 이후 여성 호감형 얼굴에서 남성 호감형 얼굴로 바뀌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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