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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6/12 08:50:17
Name 라라 안티포바
Subject [일반] [바둑] LG배 세계기왕전 16강 리뷰 / 8강 분석
1.
원래 바둑이야기는 좀 텀을 두고,
이야깃거리가 쌓였을때 합니다만...
요번 LG배 16강전이 워낙 재미있었기에 한 번 리뷰를 써봅니다.
또한, 이 기회에 중국 TOP급 선수들에 대해서도 나름 소개해볼까 합니다.

[LG배 16강 대진표]

판팅위 vs 강동윤
탕웨이싱 vs 박정환
셰얼하오 vs 딩스슝
셰허 vs 최철한
안둥쉬 vs 박영훈
퉈자시 vs 변상일
스웨 vs 천야오예
리저 vs 김지석

먼저 대진을 보면, 한국 선수들에게 정말 최적의 대진이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 랭킹 1위의 스웨 선수와 중국 랭킹 2위의 천야오예 선수가 맞대결을 펼치면서 거의 '미리보는 결승전'의 느낌이 났는데,
이는 한중전 구도로 보면 중국의 자폭에 가까운 대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중국 선수 10명 중 비교적 최약체에 가까운 셰얼하오 선수와 딩스슝 선수가 중국 내전 중 하나라는 것은 다소 아쉽습니다.

2.
[스웨 vs 천야오예]
이 대진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앞서 말한대로 중국랭킹 1, 2위간 대결인 빅매치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농심배에서 박정환 선수의 연승을 끊어내며, 주장으로 농심배 중국 우승을 캐리한 스웨 선수는 비교적 잘 아실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웨 선수는 현재 중국 랭킹 1위이며, 작년 초에 치뤄진 17회(지금 LG배가 19회이니 지지난 LG배입니다) LG배 결승전에서 원성진 선수를 상대로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습니다.

일단 스웨 선수는 전성기 시절 이세돌 선수와 비슷한 기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중국 선수들이 대체로 실리에 민감한 수를 두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수를 선호하며 다소 방어적인 기풍을 지니고 있는데, 스웨 선수는 최상위권 중국 선수들 중에는 드물게 공격형 기풍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제한된 시간 내에 수읽기를 전부 하기 어려운 중반 전투에서, 스웨 선수의 수읽기 능력과 전투력은 현재까지는 최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농심배 박정환 선수에게 수읽기에서 앞서 박정환 선수의 대마를 확 잡아버린 것만으로도 그 전투력은 무시무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아무도 모르는 개싸움, 진흙탕 싸움에서는 스웨가 최고' 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다만, 그래서인지 중국의 국내기전에서는 의외로 자주 광탈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안정성은 떨어지나, 큰 무대로 갈수록 위력을 발휘하는 타입입니다. 안정성이 없다곤 하나, 국내 기사들에겐 약점없고 매우 까다로운 기사로 유명합니다.
참고로 작년 세계기전엔 기묘한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세계기전 본선에서 이세돌을 이긴 중국 선수는 우승한다' 입니다. 스웨 선수도 17회 LG배 8강에서 이세돌 선수를 만나 승리했고, 결국 그대로 우승까지 차지합니다.
스웨 선수는 91년생으로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나, 현재 치고 올라오는 중국의 다크호스들에 비해서는 나이가 적은편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천야오예 선수는 현재 중국 랭킹 2위로, 작년 초 춘란배에서 이세돌 선수를 상대로 우승한 경력이 있는 선수입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김성룡 해설이 평하길 '맨날 1등하는 반에서 재수없는 모범생 스타일' 이라 합니다. 스웨 선수와는 반대로 철저하게 실리형 기풍에, 집바둑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본 천야오예 선수 바둑 중에 먼저 싸움을 걸어가는 바둑을 본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천야오예 선수는 현재 19회 LG배 16강에 진출한 중국 선수들 중에서는 LG배와 인연이 가장 오랜 선수일 겁니다. 06년도 10회 LG배에서 결승에 진출했으나, 구리 선수에게 역스윕하기 직전에 패배하여 3:2로 준우승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 후 몇번의 준우승을 거듭하여 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최상위권으로는 갔지만 무관인, 다소 콩라인의 스멜을 풍겼던 기사입니다만, 그 후 국내기전인 중국 천원전은 제법 우승을 차지합니다. 한중천원전도 우승한 경력이 있긴하나, 한중천원전은 한국과 중국 각각에서 국내기전인 천원전으로 치뤄진 뒤, 상위 라운드의 기사들로 다시 한 번 겨루는 기전이다보니 세계기전이라 보기는 좀 애매합니다. 즉 작년 춘란배 우승까지는 세계기전 무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작년에 바이링배 준우승, 18회 LG배 4강 등 작년 세계기전 성적이 매우 좋은 기사입니다. 국내기전도 무진장 우승하였고 특히 09년 이후 천원전 5연패에 성공하였는데, 천야오예 선수가 천원전을 처음 우승한 2009년 23기 천원전 우승은 구리 선수의 7연속 우승을 저지하면서, 구리 시대의 종결과 새로운 시대의 개막과도 같았다고 합니다.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6:4로 스웨 선수가 우세합니다. 천야오예 선수가 4:1로 절대우위에 있는 상태에서 스웨 선수가 5연승으로 매섭게 추격하여 역천적처럼 되버린 형국입니다.

천야오예 선수가 흑, 스웨 선수가 백. 요즘 유행이 식어 잘 나오지 않았던 미니 중국식 포석이 나왔습니다. 초반부터 기풍답게 실리를 통통하게 벌어둔 천야오예 선수를 상대로 스웨 선수가 흔들기에 들어가지만, 천야오예 선수가 무난하게 방어하면서 시종일관 유리했던 천야오예 선수가 무난히 승리합니다. 빅매치라고 기대한데 비해 다소 맥빠지는 승부가 나와 좀 아쉬웠습니다.

3.
[탕웨이싱 vs 박정환]
탕웨이싱 선수는 93년생으로, 작년 삼성화재에서 이세돌 선수를 상대로 우승하면서 순식간에 최강자로 치고 올라간 신흥강자에 속합니다. 다만 탕웨이싱 선수는 대국 매너가 형편없기로 유명한데...머리를 감지 않고 떡진 머리로 대국실에 와 대국에 임하거나, 거의 누운 자세로 대국을 둡니다.

박정환 선수야 한국 랭킹 1위이고, 이전 글을 통해 몇번이고 이야기가 나왔으니 큰 설명이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93년생으로 동갑내기 기사들간의 대결입니다.

상대전적 2:0으로 박정환 선수의 우세, 박정환 선수가 지난달 뜬금패가 많아 한국 랭킹 1위도 위태롭긴 하지만 세계기전은 농심배 파이널 라운드에서 스웨 선수에게 패배한 것을 제외하면 전승이고, 현재 모든 세계기전에서 탈락하지 않아 굉장히 분위기가 좋습니다.

탕웨이싱 선수가 흑, 박정환 선수가 백을 잡았습니다.
대국 초반부터 좌하귀 흑이 백에 포위되는 형국이었는데, 9시에 대국이 시작이고 TV중계는 1시부터라 저의 짧은 기력으로는 좀 이해가 안되더군요. '저거 흑 잡힌거 아닌가...?' 싶은데 흑은 또 손을 빼고 다른 곳을 둡니다. 우하귀 백이 못 살아있는, 엷은 돌이라며 추궁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박정환 선수는 그냥 손빼고 좌하귀 흑을 더욱 조여갑니다.
결국 흑도 중간에 응수하면서, 서로 좌하와 우하에 곤마가 1개씩 있는 상황. 그야말로 수읽기 싸움인데, 백의 덩치가 더 크기 때문에 서로 잡히면 백이 불리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박정환 선수의 수읽기가 더 빛을 발해, 중간에 묘수가 나오면서 백은 탈출에 성공. 흑은 결국 대마로 몸을 불린 좌하귀가 송두리째 잡히면서 바둑은 박정환 선수의 KO 승리로 끝납니다.
한중전 빅매치를 박정환 선수가 승리하면서 8강에 진출, 한중전 흐름을 한국의 우세로 이어나가는데 성공합니다.

4.
[퉈자시 vs 변상일]
퉈자시 선수는 93년생으로, 지난 LG배 우승자입니다. 퉈자시 선수의 대국은 제가 거의 본 적이 없어 뭐라 딱히 드릴 말씀이 없군요...; 역시 18회 LG배에서 16강전에서 이세돌 선수를 상대로 승리해 스웨, 천야오예 선수와 함께 '이세돌 상대로 승리=그 기전 우승' 이라는 징크스의 산증인 중 하나입니다.

변상일 선수는 97년생으로, 현재 또래들중에는 가장 기재가 보이는 차세대 한국바둑을 이끌어갈 기사 중 하나입니다. 입단한지 얼마 안 되어 이창호 선수를 상대로 승리해 파란을 일으킨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세돌 선수에게 유난히 약하더군요. 제가 볼때마다 아주 인정사정 없이 깨지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다만 96년생 판팅위, 96년생 미위팅이 작년 세계기전 타이틀을 하나씩 거머쥔 것을 생각해보면, 또래 중국 선수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해야겠습니다.

바둑은 뭐...퉈자시 선수가 백이었고, 변상일 선수가 흑이었는데, 제 기준으로는 퉈자시 선수가 집을 신나게 챙기고 그대로 탈탈 털어버리는 것으로 보이더군요.

5.
[셰허 vs 최철한]
셰허 선수는 84년생으로, 구리, 쿵제, 박문요, 장웨이제 등의 선수와 함께 이세돌 시대의 중국 강자 중 한명입니다.
재작년 말 응씨배 4강에서 셰허 vs 판팅위, 박정환 vs 이창호로 각각 한중 신구의 구도가 펼쳐졌는데, 한중 모두 신흥강자 쪽이 승리하면서 세대교체의 서막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때 응씨배 4강 이후 구리 선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존 중국 강자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우후죽순 밀려났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세돌, 최철한 등 아직도 최상위권에 랭크된 기존 한국 강자들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버티고 있는 구세대는 여전히 한국이 강하고, 밀려오는 신세대는 중국이 강함을 깨닫게 되는 상황입니다.

최철한 선수는 85년생으로, 셰허 선수와는 동세대의 기사이며 한국 랭킹 4위입니다. 최근 GS 칼텍스배 결승전에 올랐지만 김지석 선수에게 내용면으로나 스코어로나 3:0으로 완패, 세계대회에서도 큰 힘을 쓰지 못하는 등 성적에 난조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구리 선수를 제외한 모든 기존 중국 강자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철한 선수의 우세를 점쳤는데...결국 그대로 최철한 선수가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6.
[안둥쉬 vs 박영훈]
박영훈 선수는 85년생으로, 최철한 선수와는 동갑내기이며 한국 랭킹 5위입니다. 박영훈, 최철한, 원성진 세 선수는 '송아지 삼총사'로 불리며, 이세돌 시대에 허리층을 담당하던 기사들입니다. 스타1로 따지면 덴허(정명훈, 허영무) 정도의 포지션에 가깝다고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박영훈 선수는 끝내기에 강한 강점을 보여, 신산 이창호 선수의 뒤를 잇는다하여 '소신산'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끝내기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고, 선수들 실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그러한 장점이 빛을 잃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안둥쉬 선수는 처음 듣는 선수라 딱히 이야기할게 없군요. 바둑은 박영훈 선수의 실리의 로망인 4귀생 (4군데 귀를 모두 차지)을 이루고, 중앙을 적절하게 파먹으면서 무난히 승리하는 구도로 갑니다.

박영훈 선수는 32강전에서 박문요 선수를 만났고, 16강전에서는 안둥쉬 선수를 만나 대진운이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이는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박영훈 선수에게 호재로, 이번 LG배가 분위기 반전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7.
[판팅위 vs 강동윤]
판팅위 선수는 96년생으로, 노안으로 유명합니다(...) 작년 응씨배 16강전에서 이세돌 선수를 만나 승리, 이후 4강전에서 셰허 선수에게 의외로 승리를 거둔 뒤 예상을 뒤엎고 박정환 선수를 상대로 3:1로 승리하며 4년에 한 번 열리는 '바둑올림픽' 응씨배의 7번째 우승자가 되면서 응씨배 최연소 우승을 차지합니다. 세계기전 우승시 9단으로 승단해주는데, 3단에서 9단으로 바로 올라간 3번째 바둑기사가 되었습니다.
판팅위 선수는 다른 선수들과 몰려다니며 연구하기보다 혼자 책을 보며 공부를 하는 타입인데, 특히 '사카다의 묘'를 보며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바둑 기풍은 가장 이창호 선수를 닮은 기풍이라고 해야할까요...? 정말 정수대로 두는 타입이고, 싸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듯 수비적인 기풍입니다. 그리고 멘탈이 상당히 뛰어나서 어지간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판팅위 선수는 얼굴만 노안인게 아니라, 청소년이라 보기 어려운 단단한 기풍 외에도 말도 상당히 애늙은이(?)같이 합니다. '저렇게 어린 기사가 속은 능구렁이같다'고 느끼는 느낌의 선수입니다. 판팅위 선수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들을 일부 인용합니다. 중간에 강조표시된 부분은, 제가 특별히 인상깊었다고 생각하는 구절입니다.

-우리 세대가 바둑의 숙련도에서는 상대적으로 높겠지만, 바둑 內의 함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바둑 이외의 지식과 경험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현재의 기사들은 단점이 있어선 안 될뿐더러, 하나의 주특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어떤 기풍을 형성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최선을 다해 바둑판 위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둘 것이다.

-수읽기는 일체의 근본이다. 어떤 분야이든 모두 수읽기가 그 기초이다.이는 비실재적 느낌까지 포함한다. 사실 감각 또한 수읽기를 근원으로 하며, 수읽기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후에 생기는 사유 습관이 감각이다.

-착수점 선택의 정확성은 평소 쌓은 경험에 의존한다. 수읽기 능력의 끊임없는 제고에 따라, 착수점의 선택 또한 갈수록 알맞아진다. 정확이라 말할 순 없고, 단지 '상대적으로 알맞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사활(문제)은 매일 해야 하는 숙제이며 나의 신경을 예민하게 유지하도록 만든다. [실전 또한 중요하며, 하나의 살아있는 사활이다.] 실전에서 읽어야 하는 부분은 사활보다 훨씬 광범위한데, 판단 그리고 선택 등등을 포함하며, 실전은 수읽기 단련에 더 나은 하나의 방법이다.

-내가 말하는 창조는, 몇 수의 신수신형을 둬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깊이 있는 창조, 관념상의 창조를 희망한다.

-승부를 경험하지 못했거나, 승부를 중시하지 않는다면, '道'를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은 현재의 기사들의 수준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단 현재의 기사들이 이전의 기사들보다 강하다 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현재의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이 아는 지식이, 뉴턴보다 더 앞설 순 있겠지만, 그들이 뉴턴보다 더 강하다(낫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떤 곳에 두어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 수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바둑을 둘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이다. [명국은 만나지는 것이지 구한다고 구해지는 것이 아니다.] 승리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을 오로지 흔들림 없이 걸어간다면. 그런 바둑이 아마도 명국일 것이다.

정말 판팅위만큼 바둑을 잘 두지 않은 사람이 말했다면, 허세라고밖에 느끼지 않을 말들을 그만큼 두고서 말하니 후덜덜합니다.

강동윤 선수는 89년생으로, 드라마 추적자의 등장인물 이름의 원조가 된 그 선수입니다. 한때 이창호 선수를 잘 잡아 '돌부처 잡는 기계'로도 유명하고, 타 바둑기사와 달리 인터뷰를 거침없고 솔직하게 하기로 유명합니다. 역시나 인터뷰를 화끈하게 하기로 유명한 이세돌 선수도 그에 따라 안티가 꽤 많았는데, 이세돌 선수가 '강동윤 선수가 인터뷰를 하자 하루만에 내 백만안티가 사라졌다. 강동윤 선수에게 고마워해야할 것 같다'고도 말했을 정도죠. 예전에 국내기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국내용(세계기전에서는 맥을 못추나, 국내 기사들간에 펼치는 국내기전에서만 성적을 거두는 기사를 비꼬는 용어)이면 이정도는 해야죠'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다만 후지쯔배 우승 이후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해서, 국내용이니 거품이니 하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요즘은 국내기전에서도 영 맥을 못추어 국내용 소리도 못듣고 거의 무관심에 가까운 것 같지만요.
현재 한국 바둑랭킹 7위이며, 극단적인 실리파로 엷어도 최대한 확정가를 마련한 뒤, 상대의 두터움에서 불리한 상황에서 타개를 하는 기풍입니다.

대국은 초중반부터 판팅위 선수가 묵직하게 이어나가면서 무난히 판팅위 선수가 승리합니다. 요번 대국은 강동윤 선수의 기풍과는 반대로, 판팅위 선수가 실리를 확보한 뒤 강동윤 선수의 두터운 자리에 침투하여 타개해나가면서 승리하는 구도로 흐릅니다.

8.
[김지석 vs 리저], [셰얼하오 vs 딩스슝]
리저, 셰얼하오, 딩스슝 선수는 모두 제가 이름만 알거나 이름도 처음 듣는 기사라 딱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김지석 선수는 89년생으로, 본래 재작년까지 탑클래스라는 느낌은 없다가, 작년에 국내기전을 엄청 우승하며 랭킹 2위까지 치고 올라온 기사입니다. 그러나 한국랭킹 1위 박정환 선수에게 천적수준으로 약하고, 아직 세계대회 무관이라 역시 국내용이란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올해는 세계대회 전적이 매우 좋아, 박정환 선수와 함께 세계 타이틀을 가져올 가장 유력한 기사로 손꼽힙니다.

이번 대국도 리저 선수에게 시종일관 유리하다가, 비세임을 감안하고 초읽기에 몰린 상황에서 다소 무리수를 둔 리저 선수에게 김지석 선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응징하며 무난히 승리를 따냅니다. 셰얼하오 vs 딩스슝 대국은 셰얼하오 선수가 승리합니다.

9.
16강에서 펼쳐진 6국의 한중전은 6전 4승 2패로, 32강 한중전 10전 6승 4패보다 좋은 성적으로 끝났습니다.
32강 중국 17, 한국 10, 일본 4, 대만 1에서
16강 중국 10, 한국 6
8강 중국 4, 한국 4로
점점 한국 비중이 높아지는 가운데, 작년 LG배 8강 전멸의 굴욕을 넘어 오랜만에 한중 5:5의 싸움을 이뤄냈습니다.
특히 이번 LG배 16강에서, 늘 중국 선수들에게 포석에서 밀려 초반에 불리하게 시작하거나 시간소모가 심해
중반에 뭔가 해보지도 못하거나 / 해도 초반의 불리함을 뒤엎을 정도가 안되거나 해서
패배하는 한중전이 부지기수였는데, 이번에는 초반 포석에서도 많이 유리한 구도로 출발하여 이와 같은 결과를 낸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한국 국가대표 상비군을 창단하고, 유창혁 선수가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뭔가 '꼰대들의 전시행정'이란 느낌을 감출 수 없었는데, 생각보다 훈련이 타이트하며, 이번 LG배에서 포석에서 우위를 점한 한중전이 많았다는 것은 국가대표 상비군이 그저 전시행정으로 끝난 것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도 좀 듭니다.

사족입니다만, 지난번 글의 댓글에서 제가 예상한것과 똑같이 박정환, 김지석, 최철한, 박영훈 네 선수가 승리해서 한중전이 4:2가 되었네요.

10.
이번 LG배부터 대국이 종전처럼 9시 시작이지만 12시 점심시간을 폐지하고, 대신 휴식시간을 이용해 대국실 옆에 놓인 스낵이나 라면, 빵, 과일 등을 섭취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대부분 기사들이 과일만 먹었다고 합니다. 사실 소화도 잘 되면서 대국 중 부족한 당분을 섭취하기에도 그쪽이 좋긴 하죠.

문제는 그게 아니라, 바둑TV 방송 시간은 1시부터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1시부터 첫 착수를 시작하고, 시작한지 4시간이 지나있으니 진도를 따라잡기 전에 이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번 16강전도, 16강 결과가 인터넷으로 기사까지 난 다음에도 바둑TV에서는 'LIVE' 팻말달고 열심히 대국 보여주며 해설하더라구요.
(하긴 기사들도 의외의 결과에 기뻤는지, 이번 기사는 거의 결과가 나오자마자 나오더군요)
기존에야 중간에 점심시간이 껴있어서, 2~3시쯤 되면 대국 진도가 얼추 맞춰졌는데...대국 시간이 1시간 앞당겨진 것과 같아지다보니, 바둑TV 중계가 뒷북이 되버리더군요. 이 점은 뭔가 개선이 필요하지않나 생각합니다.

11.
[LG배 8강 대진표]
최철한 vs 판팅위
김지석 vs 퉈자시
박정환 vs 천야오예
박영훈 vs 셰얼하오

[최철한 vs 판팅위]
분위기나 기세는 판팅위 선수가 우위지만, 최철한 선수가 유독 판팅위 선수에게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전적 5:1로 최철한 선수가 앞서고, 재작년 삼성화재배 8강에서도 최철한 선수가 승리한 바 있습니다.
기세의 판팅위, 상성의 최철한의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최철한 선수쪽으로 많이 웃어주는 대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천적인 천야오예 선수를 피하고, 상대전적에서 우위인 판팅위 선수를 만난 것은
현재 LG배 한중전 구도에서 한국이 흐름을 탔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세돌 선수를 잡은 중국기사는 그 기전에서 우승한다는 이른바 '이세돌 징크스'에 의하면
이번 LG배 우승은 판팅위 선수가...!!

[김지석 vs 퉈자시]
한국랭킹 2위와 타이틀홀더의 대결. 'LG배는 연속우승이 없다' 는 징크스와, 상대전적이 3:0으로 앞서있는 김지석 선수에게 많이 웃어주는 대진이 아닐까 싶습니다. 퉈자시 선수도 인터뷰에서 '8강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선수'로 김지석 선수를 꼽았습니다.

[박정환 vs 천야오예]
미리보는 결승전에서 승리한 천야오예 선수. 이제 다시 한 번, '미리 보는 결승전' 시즌2가 재림했습니다.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11:9로 천야오예 선수가 근소하게 앞서는데, 문제는 박정환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한국 선수들이 대부분 천야오예 선수에게 약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8강전 중 가장 빅매치이면서, 가장 걱정되는 매치이기도 합니다. 천야오예 선수가 승리한다면, 나머지 4강 3자리가 한국 선수여도 한국 선수의 우승을 장담하기 매우 어려워집니다. 천야오예 선수에게는 LG배 우승에 있어 가장 고비의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박영훈 vs 셰얼하오]
셰얼하오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의 선수는 모두 9단으로, 세계대회 타이틀이 있거나 그에 준하는 실적이 있는 선수들입니다. 한마디로 현재까지 보여준 모습으로는 가장 약체라고 볼 수 있는 선수로, 박영훈 선수의 대진운이 본선 32강부터 8강까지 쭉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살아남은 한국 선수들이 한국랭킹 1,2,4,5위로 3위 이세돌 선수를 제외한 최정예이긴 합니다만, 그 중 박영훈 선수는 한국 랭킹 5위로 현재 한국 선수 중 가장 약한 전력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쉽사리 박영훈 선수가 이긴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게 추첨이 아니라 한국측에서 원하는대로 대진을 뽑는다면 이렇게 뽑을 것 같다 싶을 정도로 최적의 대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울만큼, 중국 선수들의 전력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쉬운 점은, 8강전은 11월에나 치뤄져 무려 5개월간의 공백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LG배 8강전 이야기는 한참 후에나 계속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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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야
14/06/12 09:08
수정 아이콘
와~재밋네여.. LG배 16강전을 전부 본 듯한 느낌입니다.
힌국선수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레모네이드
14/06/12 09:25
수정 아이콘
LG배 한참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8강은 한참 뒤에나 열리더군요. 이런 일정을 운영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아쉽네요. 그나저나 탕웨이싱 vs 박정환의 대국은 압도적이더군요. 탕웨이싱의 대마가 다 잡히고, 깨작깨작 꼬짱부리던데 비참하게 박살나던데 지금까지의 모습만 보면 박정환,김지석 아니면 천야오웨가 우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라라 안티포바
14/06/12 13:14
수정 아이콘
아 탕웨이싱의 대국매너 때문에, 오늘 바둑이 유난히 통쾌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저도 그런 꼬장 좋아합니다. 뭔가 확실하게 이겼다는 승리감을 확인시켜주는 기분이랄까요.
찌질한대인배
14/06/12 11:05
수정 아이콘
8강에서 박정환이 너무 빨리 천야오예를 만난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구도는 잘 짜였네요. 이번엔 정말 엘지배는 찾아와야 합니다. 벌써 몇 년째 중국에게 뺏기는 건지...
라라 안티포바
14/06/12 13:12
수정 아이콘
LG배는 확실히...중국바둑으로 흐름이 넘어가기 전부터 어느순간 중국에 점령(?) 당해있었죠.
도들도들
14/06/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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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들인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요!
14/06/1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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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 흥미는 있지만 바둑리그 접하기가 어려웠는데 정말 잘 읽었습니다.
11월에 하는 8강, 4강도 리뷰 부탁드릴께요 흐흐
터치터치
14/06/12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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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그래도 이세돌 선수가 없다면 박정환이 결승카드인데....지지않길...응원합니다.
라라 안티포바
14/06/1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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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오늘이 기성 오청원 선생 100주년이라네요. 100번째 생일이라니 덜덜...
happyend
14/06/1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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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캐릭터가 잡혀가는 90년대 생들의 출현으로 바둑도 바야흐로 군웅할거의 시대로 접어들며 재미가 배가 되고 있네요. 늘 글 잘보고 있습니다.
스웨트
14/06/13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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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디서 듣기로 삼국의 강약은 주기처럼 돌아간다 일본이 강했었고 그 이후 한국이 강했고 다음은 중국의 차례다 였거든요
그말처럼 현재 중국의 강세를 보이는 때 주기처럼 다음 강세를 일본이 받을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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