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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4/28 19:17:57
Name eLeejah
Subject [일반] 국가와 국민 사이에서 사회는 어디로 갔는가?
<강한 국가-약한 사회-무기력한 개인> 라는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칼럼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272059585&code=990308

왜 국가와 피해자가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가라는 한탄입니다. 국가와 개인만 존재할 뿐 개개의 국민들을 자율적 결사체가 매개하고 대변하지 못하는 사회는 역학 구조상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언론이 하지 않는다면 각급의 사회단체들이, 하다못해 정당이라도 국민들과 국가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허약한 민주주의적 현실은 피해자를 체제와 직접 대면시킨 채로 방치했습니다. 박상훈 대표는 칼럼 말미에서 토크빌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현대 민주주의는 '결사의 자유'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사의 예술' 위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지적이 매우 징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대한 깊은 혐오감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회'의 영역을 점점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자본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결사체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비난당합니다. 학교와의 대화에서 학생회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배제됩니다. 각자 자유로운 이유로 모인 다양한 각급 사회단체들이 정치색이 엿보인다는 이유로 체제와 그 구성원들 사이의 논의에서 배제됩니다.

같은 논의를 우리는 자본과 노동자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자본과 노동자가 직접적으로 대면할 때 국가는 최소한의 공적 영역으로 남게 됩니다. '사회'가 되는 거죠. 자본이 자신의 이윤 동기를 극한으로 밀어붙일 때 전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공동체의 재생산은 위태롭게 됩니다. 아이들을 노동 현장에서 18시간씩 일하게 하고,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생활 조차 유지할 수 없는 급여만을 지급합니다. 평균 수명이 낮아지고, 전염병이 돌고, 범죄율이 높아지고... 국가는 그 사이에서 자본의 이윤 동기보다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것들을 챙겨나가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최소한의 공동체 재생산을 위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자본의 이윤 동기가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일은 없는지를 챙겨야 하는 것이 공적 영역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리고 현명하게도 시민 혁명은 이 공적 영역을 담당할 사람들을 일인일표의 투표로 선출하게 합니다. 더 많은 지분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의결권을 갖는 기업과 다르게 말이죠.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중간 사회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한국 선급과 해운 조합과 청해진 해운과 비정규직 선원들 사이에는 어떤 사회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태 이후에도 우리는 이 사회적 조직들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할 언론을 선택할 자유 이외에,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자신들을 대변할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곁을 국가라는 체제가 단단히 지켜서고 있습니다.

누가 웃게 될까요? 결사의 자유를 정치에 대한 혐오감으로 포기한 국민들은 무엇으로 자신을 대변하고 견고한 체제와 마주하게 될까요? 모든 사회적 단체들이 정치색으로 인하여 배제된 피해 현장에는 박상훈 대표의 지적처럼 수용소와 똑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국가는 피해자 가족들을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통제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어쨌든 국가를 믿고, 국가의 조치만을 기다리는 조용한 국민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시끄럽고, 선동하고, 싸우고, 부산스럽고, 다들 떠드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각자 따져보고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고, 누군가가 그들을 대표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또 토론하고 시끄러워지고...

진정 미개한 것은 국가의 권위를 모두가 인정하고 감히 공직자에게 대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문명화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자유로운 결사체를 통해 국가를 감시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서로 논쟁하고 따져 묻는 사람들입니다.

진정 미개한 것은 자본이 자신의 이윤 동기를 노골화하고 노동자들 위에 유일한 권력으로 군림하는 것입니다. 문명화된 것은 국가라는 공적 영역이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윤을 챙기는 것은 아닌지, 아이를 낳고 먹여 살릴 수 있을만큼 노동의 댓가를 지급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개입하고,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서비스들을 자본의 잉여 이윤으로 노동자들에게 최대한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저도 피곤합니다. 읽은 것에 대한 검증을 직접 해봐야 하고, 어떤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지 눈을 부릅떠야 하는 현실이 간단치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국가의 입만 바라보며 떠드는 입들을 닥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더 떠들고, 더 시끄럽게 따지고, 되묻고,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모이고, 결사하고, 우리를 대변하게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어야 합니다. 이 교훈을 통해서 우리가 더욱 더 정치에 민감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자본의 이윤동기가 몰아부쳐 사망한 사람들 앞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정부를 가지게 될 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회는 진정 미개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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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칼괴기
14/04/28 19:30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는 국가가 사회를 대신합니다. 그래서 국가사회주의(!)

는 농담이고 전형적인 버크의 경고에 가까워지는 지는 사회죠.
사회는 빠른 진보에 의해 해체 되고 오로지 개인 위에는 국가 밖에 남지 않는 상황.
강한 국가에 대비해서 상당히 그 사회적 안정성은 취약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죠.
독재자의 좋은 토양 상태가 되는 거죠.
14/04/28 19:32
수정 아이콘
위 글의 논지에 적극 찬성합니다. 정치가 더럽다고 외면한고 결국 권력의 망자들인 정치꾼들에게 결국 모든 것을 맞기게 되는 결과가 될 것 입니다.
시국이 어렵고 혼란스러울 수록 자기 일뿐만 아니라 더욱더 자기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활동(의견 개진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기만
14/04/28 19:33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14/04/28 19:33
수정 아이콘
예전에 김용옥 tv강의에 일본인 교수가 나와서 자기나라를 미개하다고 했던가 그래요 그 이유가 일본 국민들은 정부를 너무 잘 믿는데요. 일본보다 우리가 나은가라고 생각했지만 sns괴담들을 보면서 정부를 믿는가 불신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머리로 판단하는가 아닌가가 미개의 기준인거같았어요. 이건 분명 자기 액션의 책임의 주체와 관련있어요. 책임지지않기위해 자기 행동을 초래하는 주체가 정부든 혹은 사회의 누구든 상관이 없는거에요. 후마니스트 저 녀석의 주장과 달리 사실은 정부에 대한 태도가 척도가 아니에요.
14/04/28 19:38
수정 아이콘
동의하면서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부에 대한 태도가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는가 아닌가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별개의 문제는 아니죠. 확실한 건 주장하고 비판당하는 동안 점점 더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게 될 거라는 사실입니다. 정부에 대해 유순한 태도로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요정 칼괴기
14/04/28 19:44
수정 아이콘
저는 동감입니다.
사실 사회적 영역은 일본이 우리나라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낫습니다. 단지 정치가 개떡이라고 그렇지 말이죠.
그런데 순응도는 일본이 우리나라 보다 높죠.

사실 양자는 약간 별개이면서 연관되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해 사회적 영역이 강해야 되는 건 보다 나은 정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정치가 완전히 망했을 때
개인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말 이게 취약하죠.
14/04/28 23:08
수정 아이콘
혹시 아실지 모르지만 적누님 댓글은 늘 주의깊게 읽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본 댓글들 중에서 가장 긴 댓글이네요. 감사합니다^^;
비토히데요시
14/04/28 19:35
수정 아이콘
결국 더 많은 사회안전망의 제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더 많은 사회안전망은 더 많은 세금으로부터 나옵니다.

전 근본적으로 서민증세가 필요하고, 서민이 세금을 내고 서민이 사회안전망을 보장받는 그런 형태의 공적부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봐요.
돈 내는 사람이 힘 세기 마련이기 때문에..
14/04/28 23:13
수정 아이콘
미묘한 뉘앙스 차이인데
더 많은 사회안전망을 위해서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죠. 전면적인 증세가 필요함에 대해서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먼저 국가를 감시하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리플 감사합니다.
14/04/29 03:34
수정 아이콘
먼저 국가를 감시하는 '사회'가 필요한게 맞을겁니다
다른 것없이 그렇게 부정부패만 일소해도 일단 경제는 성장하고 돈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더 필요하면 그때 증세를 하면 될 것입니다
지금 국민들이 증세를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세금이 부패한 권력자들을 위해 낭비된다는 경험들 때문입니다
그것을 감시하여 혁파해서 신뢰만 바로 세운다면 국민들의 증세에 대한 거부감은 당연히 줄어들겁니다..
14/04/28 19:39
수정 아이콘
'분리하여 지배하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과거에도 그래왔고 현재에도 그러고 있는
권력을 가진자들이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금과옥조로 섬겨온 철칙이지요

그래도 그 권력에 맞선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덕에 역사의 발전이라는 것으로
이제는 반대로 민주시민사회에서 국가권력을 분리하여 지배해야하는 시대가 눈앞에 보이는데
여전히 국가에 한없이 관대해지고 그 권력을 몰아주길 바라며
스스로 권력을 가진양 시민사회에서 분리되길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게 현실이군요
14/04/28 23:14
수정 아이콘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감정이입하고 싶어하는가. 그리고 왜 그러고 싶어하는가.
기아트윈스
14/04/28 19:59
수정 아이콘
첨언하자면 동아시아 3국에게 있어서 [투표]보다 낯선 개념이 [사회]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겁니다.

원체 국가 자체가 위계적-규범적 질서였기 때문에 사회라고 불러볼만한 것들도 언제나 국가의 하위호환, 혹은 작은 구현체에 불과했죠.

따라서 본문이 가지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도 이것이 [점점 축소중] 이라는 서술에는 동의하기 어렵군요.

그냥 원래 없던 게 생기는 과정, 서구 정치문화의 수입사에 있어서 이제 사회라는게 수입되어야 할 시점인가보다 하는 자각과 자성이 대두되는 거죠.
14/04/28 20:04
수정 아이콘
흠 그럴수도 있겠군요.
요정 칼괴기
14/04/28 20:18
수정 아이콘
어쩔 수 없는게 동아시아는 압축성장 국가들이니까요.
당장 서양만 해도 전통사회 해체에서 새로운 사회 성립에 무려 1세기가 걸렸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겨우 반세기도 안되었으니 사회가 존재할리가 없죠.
아 그 맹아 같은건 한국 사회에도 존재합니다. 바로 아파트... 크

점차 우리나라도 만들어 질테고 아마 그 영역은 점차 [축소]가 아닌 [성장]일 겁니다.
14/04/28 23:21
수정 아이콘
성장하리라는 의견에 대해 기본적으로 공감합니다. 좋은 리플들로 글을 풍성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4/04/28 23:20
수정 아이콘
민중사관에 대해서 나눴던 이야기들이 떠오르네요^^

역시 흥미로운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하위 호환이었다.' 동아시아에서의 국가 권력이란 어떤 속성을 지녔는가에 대해서는 또 어떤 글에서 즐겁게 배우고 대화할 수 있겠지요. 참 감사한 일입니다.

사람들의 염증과는 다르게 사회가 생겨날 수 있는 토대는 점점 더 마련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기술 낙관론인데 물론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요.
王天君
14/04/28 21:00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14/04/28 23:37
수정 아이콘
사회 조직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사회 조직이 성장할 수 있는 풍토를 없애는 듯 보입니다. 최규석 작가님의 송곳이 생각나는데, 그래도 비집고 나와 공동체와 사회를 키우려는 세력들도 곧 생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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