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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5/11 19:51:57
Name 유소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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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디시 군사 마이너갤러리
Subject [유머] 중국 사극의 고려 평가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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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
19/05/1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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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
피식인
19/05/1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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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얼럭
19/05/1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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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앞에 요나라가 막고 있다
flowater
19/05/1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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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상대로 존버는 하는 나라가 한방에 탈탈털린 고려가 뭐가 무섭다고......
19/05/1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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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고구려야? -> 히익 고구려;;;
RedDragon
19/05/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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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때 존버하던 송 빼고는 다 탈탈 털렸다는게... 크크크
도뿔이
19/05/1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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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처들어올 걱정할때면 북송 시절인데
거란 여진한테 돌아가며 털리고 몽골 도움으로 잠시 북송 땅 찾았을때도 몽골한테 단박에 장강 이북 날라갔습니다 그 시절 고려는 북송이 어쩌지 못한 거란 침입을 훌륭히 막아냈죠
우중이
19/05/1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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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평가가 대체...
메가트롤
19/05/1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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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 같은 걸 끼얹나...?
정채연
19/05/1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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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과대평가인데...;;;
Foxwhite
19/05/1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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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도 아니고 세계사에서 중국 최전성기였던 송나라가 저러지는...
자하르
19/05/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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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문화적으론 최전성기지만 군사적으론 저럴만 했음
홍아름
19/05/1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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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으로도 중국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약했던거 아닙니까? 중국하고 접경이면서 유럽이 다털릴동안 칸이 이끄는 몽고군을 가장 마지막까지 막앗던게 송나라인데.
자하르
19/05/1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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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과 남송의 차이점
그리고 원 상대로 버틴건 어쩔 수 없이 싸웠는데
장강 끼고 버텨진거임.
애초에 원이 멸망시킬 생각으로 쳐들어오지 않았으면 싸울 생각을 안했을 나라임.
19/05/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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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당시엔 딴게 문제가 아니라 앞에 요나라도 문젠데
옆쪽으로가면 서하도 있는데 요 서하 양쪽 모두에게 갈굼받는게 송나라라 동맹국인 고려에게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저 당시 고려가 요나라 상대로 승리를 거둔것도 있어서 군사적인 평가가 엄청 높았던것도 있고
강미나
19/05/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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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잡고 몽고 물고늘어지기 전까지는 자기들도 얼마나 강했는지 몰랐다는 게 함정....
카바라스
19/05/1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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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은 요한테 털리고 서하한테 털리고 금한테 털려서 나라가 망하고.. 고려는 거란 이긴거 때문에 한동안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갈만했죠
IZONE김채원
19/05/1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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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대에는 묵향이 있으니 구라 맞는 것 같습니다
19/05/1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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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치면 저때 고려에는 장백산의 괴인이...
19/05/1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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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은 당시엔 고려 영토가 아니라 여진영토 아닌가요(....)
19/05/1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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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산적왕루피
19/05/1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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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현경급 캐릭터는 묵향과 혈마, 무공을 폐한 만사불황이 있었는데, 성격상 둘 다 호응할 거의 가능성은 없지만

생사경을 논하자고 한 넘이 장백산으로 오라는데? 3vs1로 싸워봅시다. 이렇게 꼬셔봤으면 하는 바램이..있었죠. 크크

아니면, 모든 무인들이 바라던 북명신공에 이렇게 써있었다며 말을 꺼내서, 진정한 무인이라면 죽기전에 한번쯤은 생사경 무공은 구경해봐야하지 않겠냐...로 꼬시면 아무리 해탈해서(?) 관심없는 두캐릭도 약간은 관심이 생겼을 것 같긴 하네요.
19/05/1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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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1로 두 번씩 붙어서 다 죽지 않았을까요. 왜 두 명이냐면 만사불황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왔을 거라.

괴인이랑 붙는 게 중원의 명운을 건 대혈투였으면 둘이 팀짜서 붙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야 내가 생사경인데 와라 함 붙자"였으니.....
껀후이
19/05/1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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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그러고보니 묵향 결말 났나요? 크크크 장백산 괴인까지는 봤는데 그 이후로는 접어서 큼......
19/05/1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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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가 나름 콧방귀 뀔때긴 하죠..근데 그래도 크크
마프리프
19/05/1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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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무신정변 나라막장테크 칙칙폭폭
19/05/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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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 이상하게 경제력에 비해 군사력은 너무 약했죠 크크크크
고란고란
19/05/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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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때는 몰라도 현종때면 고려가 꽤 강성할 때 아닌가요? 거란 쳐부수고.
한쓰우와와
19/05/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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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땐 저랬죠... 진정한 동북아 균형자이던 시절...
파인트리
19/05/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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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뭐 저정도는 당연히 아니였겠지만;;; 고려 사신이 송에서 깽판 깨나 친건 사실인걸로 기억하네요
오'쇼바
19/05/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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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당시는 송나라도.. 요나라도.. 고려가 절실히 필요했으니깐요...

고려사신이.. 요나라에 가서도... 송나라에 가서도.. 두 나라 다 가서 깽판 쳐도 둘다 암말도 못했습니다...
블리츠크랭크
19/05/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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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나라가 출동하면 어떨까
19/05/11 20:25
수정 아이콘
근데 경제력이 그렇게 강했는데 군사력이 왜 이렇게 부족했던거에요?
19/05/1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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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당시엔 냉병기 시대인데다
보병과 기병 둘다 정말 중요한데
(제 기억이 맞는건지 잘 모르겠는데) 하필 후진시절 내준 땅이 기병에 쓸 말 생산에 정말 큰 땅을 그냥 넙죽 바친거라
송나라는 그거떄문에 내내 기병에 쓸 말이 부족해서 빌빌됬다고 하더군요 (그냥 일반 말은 있었는데 얘넨 군마로 쓸 수가 없었다고..)
거기에 더해 그 전조였던 당나라떄의 절도사들떄문에 문에 비해 무를 굉장히 차별대우 한 편이었는데 (이거에 영향받은게 고려 고려는 아예 무과자체가 몇몇 왕때뺴곤 있지도 않았음..-_-;) 병사들이 범죄자들 잡아다가 한거였으니 군율따위 있을 수가 없었..
19/05/11 20:28
수정 아이콘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굉장히 단순하게 보자면 이렇다는거고 자세하게 파고드는 건 역덕후님들께서 알려주실겁니다..(..)
19/05/11 21:24
수정 아이콘
그 당시 송나라 땅만해도 그렇게 넓었는데도 말 키울 곳이 없었군요. ㅠ
19/05/11 21:29
수정 아이콘
일반적인 수송수단으로 쓰는 말하고 군마가 다르다고 했던가?여튼 최전선에서 싸울 말을 키우는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유목민족이 강력한 냉병기 시절에 잊을만하면 정주민족 털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제일 중요한게 하필 수도 카이펑도 방어하기 안좋은데 후진 석경당이 내준 연운16주가 북송을 진짜 압박하기 너무 좋은 땅이었다는게..-_-;
19/05/11 20:44
수정 아이콘
송나라 전인 당나라가 지방군벌 때문에 망해서 군벌억제하느라 약했다고 들었습니다.
카바라스
19/05/11 20:48
수정 아이콘
그전 통일왕조였던 당나라가 절도사들때문에 나라가 절단나서 송나라는 무관들을 심하게 견제했고
수도였던 카이펑은 평야 한복판에 있던 도시라 방어가 너무 취약했습니다. 북방인 연운16주는 이미 날아간상태라 장성같은걸 활용할수도 없는상태였고.. 오히려 회수 장강이라는 자연방어선이 있던 남송이 더 단단했죠.
도뿔이
19/05/11 21:57
수정 아이콘
조선이랑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송태조도 무신으로서 찬탈을 했고 송태종도 즉위시에 의문이 많았던 사람이죠 그리고 둘다 전과가 있다보니 방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무신들을 강력하게 눌렀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의 교훈을 너무 강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군사력의 대부분을 수도 주변에 놓았습니다 수호지에 툭하면 나오는 80만 금군이 그것이죠
당연히 다른 왕조에 비해서 대외 군사활동에 소극적이었기에 숫자만 많을뿐 군사들 수준이 낮았죠 또한 한족 왕조의 대외 군사활동은 단순히 땅 넓히기가 아닌 미래의 위험의 싹을 자른다는 면이 큰데 송은 이것을 등한시했으니 여진이나 몽골이나 힘을 키우기 상대적으로 편했습니다
도뿔이
19/05/11 22:17
수정 아이콘
추가로 송이 통일왕조로 취급받긴 하지만 북송이 차지했던 강역은 한족이 지배하던 부분뿐이었습니다.
5대10국 시절에 거란에게 넘어갔던 연운16주는 차지하지 못했죠..
그냥 '연운16주'라고 표현하기엔 이 안에 현재의 베이징(....)도 포함되어 있고
청이 오삼계가 스스로 열어주기 전까지 끝끝내 함락시키지 못했던 산해관도 연운16주 안입니다.
일단 16주 대부분의 땅이 장성 안쪽이었죠..이곳이 한족이 북방 유목민족을 상대로한 방어선이 집중되어있는 곳인데
송은 시작부터 여기를 잃은 상태였어요..
BERSERK_KHAN
19/05/12 00:2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송나라가 비록 연운 16주를 잃은 상태였긴 하나 국토 방위 자체는 효율적으로 수행해내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윗분들이 말씀해주셨듯 연운 16주는 만리장성 방어선 일대와 내몽골 몽골 초원으로 향하는 일부 지역으로 전통적인 중국 동북의 최전방이었습니다. 후진의 석경당이 황제가 되기 위해 연운 16주를 거란에 들이바친 후, 북송이 멸망하는 시점까지 송은 이 지역을 수복해내지 못했습니다. 태조와 태종 시기 두 차례 수복하려 했으나 모조리 실패, 태종이 패배하고 맺은 조약이 1004년의 전연의 맹약이었지요. 북송은 황허를 비롯한 강의 지류를 끼고 북방 유목제국 군대를 막아내는 전략으로 국토를 수비했습니다. 그리고 이 전략 자체는 생각 이상으로 유목민족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었고요. 우리 역사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사례에서 보듯, 유목민족은 형제관계를 맺고 세폐를 받더라도 필요에 따라 언제든 조약을 파기하고 처들어오는 부류였습니다. 단지 세폐를 받는데 그쳤던 것은 거란과 서하 등도 송을 침공할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송이 그 문약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적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는 반증이지요.

그러나 우선적으로 중요 방어 거점을 잃었기에 여타 통일 왕조에 비해 침공이 수월한게 두고두고 화근이었던 점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방어 전략 수립의 불리함과 더불어 제병협동에 필요한 기병 전력 육성하기 애로한 상황엔 이 연운 16주의 상실이 치명적이었죠. 군마를 키울 수 있는 초원지대를 끼고 있는 연운 16주는 춘추전국시대 조나라의 강역을 끼고 있습니다. 조나라는 무령왕 시기 기병 전력을 육성해서 이름을 떨쳤던 나라이고, 전통적으로 중국 영토에서 군마를 키울 수 있는 산지였죠. 그런데 이 지역을 상실하였으니 송은 고질적인 기병 전력 부족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은 왕안석의 신법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왕안석의 신법은 단지 부국을 위한 정책만이 아닌, 강병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자경단을 편성해 자체적으로 향촌을 지키도록 하는 보갑법, 농가에서 말을 육성하여 필요시 전투마로 사용하는 보마법이 그러한 개혁 정책들이었는데요. 말은 기본적으로 농가에서 키우는데 많은 비용을 필요로 했고, 결정적으로 농업용 말은 군마와는 키우는 방법도 다를 뿐더러 사용하는 근육도 달라 키워놓더라도 전투에 쓸 수 없었기에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지요. 신법 자체가 구법당과 신법당의 대립으로 흐지부지 되었기도 하고요.

더불어 송의 군대가 약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은 송은 근본적으로 무력을 통제하는 국가였습니다. 현종의 개원성세로 전성기를 누리던 당나라는 755년 안사의 난 발발 이후 다시는 그 위세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안사의 난은 절도사 안록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난으로서, 절도사는 본래 변경 국경 지대을 지역 단위로 통합한 "번진"을 수비하는 총사령관의 위치였습니다. 당의 토지제도인 균전제의 문제점으로 부병제를 통한 병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자 절도사는 단지 군사 지휘권만이 아닌, 부임한 번진에 대한 조세권과 행정권까지 부여받게 됩니다. 여기에 완전한 모병제인 장정건아를 통해 번진 내에서 자체적으로 병력을 육성하게 되니 사실상 군벌에 위치가 되었는데 이러한 문제가 안사의 난으로 귀결되게 된 것이지요. 그렇기에 안사의 난 이후 당 조정은 절도사의 세력을 약화하기 위해 변경 지역에서 내지까지 번진을 확대해 서로의 견제를 도모하였으니 이것을 내지 번진이라 하는데요. 이 내지번진들 중 조정에 반항적인 하북3진, 하남2진과 같은 번진이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당 헌종 시기 번진 간섭을 통해 조정에 저항하는 번진을 모두 제압하고 당 최후의 전성기인 원화중흥을 이룹니다만, 헌종의 암살 이후 번진은 다시 조정에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당 말에 황소의 난으로 강남이 초토화되며 당의 경제적 기반이 소멸하고 힘겹게 키워놓은 금군은 각 번진들로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 당은 국운이 다하게 되고 절도사 주전충에 의해 멸망합니다. 그 이후 60년 가까이 전개된 5대 10국의 혼란기를 제패하고 다시 중원을 통일한 것이 송의 태조 조광윤입니다. 조광윤은 역시 절도사 출신으로 본인 또한 후주의 시종훈에게 왕위를 선양받아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조광윤은 당의 멸망과 본인의 경험으로 통제되지 않는 무력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배주석병권의 유래가 되는, 공신들에게 지역 유지의 권한을 주어 낙향시키는 과정을 시작으로 과거를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전시, 수십만의 정예병을 금군으로 편성해 개봉 일대에 배치했습니다. 이는 지방의 군벌화를 억제하는데 효과적이었으나 역으로 송군의 운신의 폭을 좁힌 셈이 되었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군대를 통솔함에 있어서도 황제의 재가를 거치도록 절차를 복잡하게 하여 적절한 군사 작전 수행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기에 송나라 군대 자체로도, 막강한 경제를 바탕으로한 실업자 구제책으로 군대를 육성했습니다. 따라서 군인의 질이 몹시 떨어지는 부랑자나 건달 등의 사람들이 군대에 많이 입대했고 송군이 정예화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화포의 개발과 백만의 상비군, 막강한 경제력에 빛나는 송군은 여타 통일 왕조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문약한 군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러한 단점을 개선하고 장강 일대를 기반으로 방어선을 구축한 남송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송나라 군대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하나, 북송은 그 체제의 한계로 인해 잠재력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정학적 상황과 북송이 건국되는 과정까지를 종합적으로 고찰해야할 부분으로서, 단지 군대가 문약함만을 비판하기엔 북송이 가진 진가와 이 시기 구현되었던 경제적 풍족함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한 한계 속에서도 북송은 침공을 할 수 없었지만 침공도 받지 않는 상황 정도는 만들어낼 만큼의 국토 방위를 해내고 있었던 부분까지도요.
수부왘
19/05/1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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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만큼 주변국가대비 군사력이 강했던 때가 한반도 역사상 없습니다. 고구려조차도..
19/05/1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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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건 고려만큼 무신차별이 심했던 나라도 한반도에 딱히 없었.. 그 조선보다도 차별이 더 심했으니(..)
긴 하루의 끝에서
19/05/1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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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삼한 - 전한
고구려, 백제, 신라 - 후한, 위진남북조, 수, 당
통일 신라, 발해 - 당, 5대10국
고려 - 송, 요, 금, 원
조선 - 명, 청
남한, 북한 - 중공, 대만

이쯤 되려나요?
19/05/1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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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만큼 주변국에 처참히 무너진 나라도 없긴 하죠.
패마패마
19/05/11 22:43
수정 아이콘
조선...
19/05/11 23:21
수정 아이콘
고려에 비하면 의외로 조선은 굉장히 양호한 편입니다. 우리가 조선 역사를 집중해서 배워서 그렇죠.
수부왘
19/05/1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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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명맥이라도 이었고 상대가 당대 세계 최강이기라도 했지 고구려와 조선은 모두 외침에 나라가 망했죠...
19/05/1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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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강이라고 하기에 몽골군 중에서 젤 쩌리들만 왔었고 명맥을 이었다는 게 30년동안 강화도에서 쳐박혀 아무것도 안 한 거였죠. 게다가 고려말엔 홍건적에 수도가 함락당하고 왜구가 내륙지방까지 진출할 정도였습니다. 한반도 역사상 이런 건 고려가 유일해요
수부왘
19/05/12 01:28
수정 아이콘
(수정됨) 고려가 유일한건 아니죠; 그 왜에게 내륙이나 수도는 커녕 전라도와 북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국토 거의 전역을 하이패스로 내준게 조선인데요? 그리고 당대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은 단순 도적떼가 아니라 대단위 병력의 지휘체계를 갖춘 수십만 단위의 침공이었고 고려가 결국 자력으로 격퇴했죠. 게다가 고려초에는 당대 군사력 최강이던 요의 침입도 물리쳤는데 어떻게 봐도 고려가 군사적으로 조선보다 못한게 없는데요. 결정적으로 고려는 비록 저항 끝에 몽골에 굴복했을지언정 줄을 잘 타서 국체는 보전했지만 조선은 아예 칼 한번 못 써보고 한반도를 일본에 바쳐서 문화와 역사가 송두리째 공중분해됐는데 조선에 비할 바가 아니죠.
19/05/12 02:14
수정 아이콘
고려때 홍건적과 왜구를 전국시대를 통일한 히데요시가 맘먹고 본인 세력 싹 다 끌어모아 침공한 것과 산해관만 못넘었다 뿐이지 명을 수세로 몰아넣고 후에 명을 멸망시킨 홍타이지가 친정한 것을 어떻게 동격으로 취급합니까. 고려시대로 치면 몽골군 징기스칸이 직접 군대 끌고 온 격인데요. 30년동안 강화도에 쳐박혀 아무것도 안하면서 대장경 만들었던 나라는 상대가 아무리 쩌리를 보내도 국가가 최강이니 어쩔 수 없었다 자위하면서 그 명나라를 무너뜨린 청나라군의 황제가 직접 침공해 당한 건 굴욕이니 뭐니 하는 것도 웃기죠.
수부왘
19/05/12 02:22
수정 아이콘
고려는 30년동안 강화도에 처박혀서 개기다 맞기를 반복하기라도 했지 조선은 피한방울 내지 못하고, 말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닥여보지 못한 채 일본에 나라 바쳤지 않나요? 심지어 고려는 국가의 명맥이라도 보존했지 조선은 아예 한반도를 세계역사에서 지워버렸죠. 심지어 조선 후기엔 뭐 얼마나 잘 싸우고 자시고 그냥 군대라는 집단을 유지할수조차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쪽이 더 처참한데요...
19/05/12 02:46
수정 아이콘
나라의 멸망을 논하는 거면 다른 나라에게도 아니고 자기 본진 관리 못해서 망한 게 젤 치명적인 거 아닌가요? 얼마나 나라가 개막장이면 아무런 외부요인 없이 스스로 나라가 망합니까. 조선은 근대화라는 요소가 없었으면 국가 유지라도 계속 할 수 있었지만 고려는 그런 요소도 없이 스스로 자멸했죠.
수부왘
19/05/12 02:5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천만에요. 근대화만 아니면 조선이 유지는 될 수 있었다구요? 근대화 이전에 이미 세도정치로 나라꼴이 개판에 국가 재정은 바닥났고 곳곳에서 민란이 들끓어서 자멸한게 조선인데요? 일본은 그저 숨통을 끊어줬을 뿐이죠. 최소한 고려는 마지막까지 군사력이라 할 만한 것은 있었는데 사령관의 쿠데타로 왕조가 바뀐것이지만 조선은 후기에 가서는 그냥 무기력하게 정치 경제 군사적 측면에서 전부 지리멸렬한 채 최소한의 저항 한번 없이 국체는 물론 문화고 역사고 공중분해당했죠. 이걸 동격에 놓고 비교할 수가 있나요;
19/05/12 03:50
수정 아이콘
수부왘 님// 무슨 조선말에 군사력이 없나요. 근대화로 들어선 이후부터는 기존 군사력은 의미가 없다는 게 신미양요 등으로 밝혀지자 조정에서 구식군을 통폐합하고 군재편을 해나가던 과정을 군사력이 없다는 식으로 말해버리면 안 되죠. 군사가 없는 나라가 프랑스군이나 미국군을 상대로 무슨수로 대항합니까.

그리고 민란이라고 하는데 고려는 민란이 일어날 여지가 없죠. 민란이란 것도 내부적으로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당시 고려는 홍건적에 왜구에 끊임없이 시달리던 시기인데다 조정에서 다 털어가던 시대였는데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킬 힘이 어디있나요. 고려는 몽골한테 얻어맞던 시기에 참 평화로워서 민란 한 번 안 일어났나보죠? 조선이 이미 세도정치로 나라꼴이 아니었다면 고려말은 이인임과 그 일당들에 의해 이미 국운을 다 했던 시키였고요. 그냥 도찐개찐이죠.

그리고 조선의 멸망은 고려의 멸망과 다르게 시대적 격변기 속에 있었고 근대화를 통해 기존 왕조가 무너지는 건 조선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전근대 왕조국가들의 특징입니다. 조선 후기가 절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국가였다고 말하기는 힘드나 고려처럼 아무런 외부요인 없이 스스로 멸망한 것도 아니었고 외부요인이 고려말과 비슷한 상황이었으면 고려처럼 쉽게 망했을 거라 단언하기도 힘든데다 고려때처럼 왕이 암살당할 정도로 조정이 개판이었던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고려 이전의 국가의 멸망과 조선의 멸망은 그 시대적 상황이 완전히 다른데 그걸 1:1로 비교하며 고려가 낫다 말한다는 게 그냥 넌센스죠.
수부왘
19/05/12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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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qtips 님//고려가 외부요인 없이 멸망했다는것도 어불성설일뿐더러(애초에 이성계가 왜 힘의 중심이 되었으며 위화도 회군이 왜 일어난 것인지?) 고려의 멸망은 내부 변혁세력의 발흥으로 인한 한반도 내 왕조의 교체일 뿐이지만 조선의 멸망은 계속 말씀드리지만 그냥 외세의 침입에 아무 저항 없는 공중분해입니다. 조선 말에 타국대비 억제력을 가진 어떤 군사력이라도 존재했다면 그렇게 무기력한 소멸이 가능했을까요? 그리고 군재편을 해가는 과정이라고 하시면서 막상 구식군에는 식량조차 배급이 안되어 외세의 개입이 없었으면 말단 병사들의 반란으로 나라가 이미 망할 위기였고, 재편 후에도 중구난방식 운영에 부실한 재정, 없다시피 한 훈련으로 외세의 개입에 어떤 액션도 취하지 못하는 이름만 군대였다는것은 왜 언급하지 않으시나요
BERSERK_KHAN
19/05/12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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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은 옷치긴의 동방왕가 군대로 3군 쩌리입니다. 대도 일대의 황금씨족 주력이나, 킵차크, 일칸국 일대의 정예 병력은 오지도 않았었죠.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후 연씨 3형제가 자중지란하면서 연남생이 국내성을 비롯한 자기 영지와 고구려 지도를 모조리 바치고 당에 투항하는 바람에 망했죠. 내분이 있기 전까지 생각 이상으로 고구려는 당을 잘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조선이야 뭐 말년에 일본에게 먹혀서 그렇지 큰 전쟁이라곤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이 전부고 5백년을 지속한 국가들 중 이정도 규모 전쟁 안한 나라는 없다고 봐야 되죠. 외려 조선은 국가가 존속된 기간에 비하면 큰 전란 없이 평온하게 나라가 굴러갔다고 봐야합니다.
수부왘
19/05/12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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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약간 주객이 전도된것이 조선에서 큰 전쟁이 몇번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조선의 군사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주변국 정세가 안정되었기 때문이죠; 그 평화가 깨지는 순간 수도까지 변변한 저항도 못 해보고 내준것은 물론이거니와 자력격퇴조차 하지 못했는데 조선의 군사력이 형편없었던 것은 맞죠. 결정적으로 그 전쟁을 직접 겪은 선조조차도 고려시대에 비해 군사력이 너무 떨어진다고 한탄했는데 더 말이 필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내분으로 약화되어 붕괴되었으니 경우가 다르다는것도 말이 안되는게 결국 연개소문의 개인의 카리스마로 유지되던게 말기 고구려임을 증명할 뿐이고 그렇게 따지면 고려도 무신정변으로 내부에서부터 체계가 흔들려서 그렇게 참패한거죠.
BERSERK_KHAN
19/05/12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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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군사력이 강하다고 얘기하진 않았습니다; 저도 역대 한반도 왕조 국가 중 조선군이 약한 편이었음에 동의합니다. 주변 정세가 안정되어서도 맞고요. 그런데 맥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조선이 건국된 연도가 1392년이고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은 1592년입니다. 이백 년의 기간 동안 조선은 외국의 정규군으로부터 어떠한 침공도 받지 않았고, 해안 일대의 왜구나 북방 여진족과의 소요가 전부였습니다. 당연히 이런 오랜 평화 기간에는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하고 운용하는 감각이 떨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 에도 막부를 수립하고 1615년 오사카 여름의 진 전투에서 도요토미 가문을 멸문시키며 겐나엔부 선언을 합니다. 겐나엔부는 원화엄무라는 한자어로, 평화를 원하고 무력을 엄금한다는 의미로서, 조총의 생산지를 3곳으로 제한하고 축성을 금지하는 등 무력 통제 정책을 펴게 됩니다. 이러한 에도 막부의 무력 통제책은 막부의 무력을 현격히 약화시켰습니다. 19세기 오사카에서 발생한 잇키를 진압하러 간 막부의 사무라이 대장이 대포 소리에 놀라 낙마하는 추태를 보이는 등 오합지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죠.

오랜 기간 평화를 누린다는 건 필연적으로 무력의 약화를 수반합니다. 불과 1600년 동군과 서군 총합 20만의 실전 경험을 가진 군대를 굴렸던 나라도 200년의 평화에 무력이 쇠퇴하고 쿠로후네 등 외세의 강제 개방에 변변히 저행하지 못했습니다. 조선은 그에 비하면 억지로 무력을 통제한 나라도 아니었고, 세종 시기의 4군 6진 개척을 필두로 한 여진족 부락과는 끊임없이 국지전을 치뤄내고 있었습니다. 전술 교리도 60년이면 한 번 개정해야 하는데 그 세 배가 넘는 기간을 커다란 전쟁이 없었으니 조선군의 전술은 여진족과의 전투를 상정해서, 그리고 세조 시기 이시애의 난으로 비롯된 내부 반란을 제압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국방 운영이 이뤄질 수 밖엔 없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임진왜란은 정말 참작할 수 밖에 없는게, 일본의 침공 자체가 히데요시의 말도 안되는 망상이 실현된거라 털릴 수 밖엔 없었습니다.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은 일본 내부에서도 격렬히 반발해서, 태합 전하의 머리엔 늙은 여우가 들어있다는 간언까지 들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감지하고 조선에서도 대비하기 위해 성을 수리하고 병력을 훈련시켰는데, 외려 평화에 익숙한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라는 상소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정규 군대가 쳐들어온 적은 7세기 백제 부흥을 돕기 위한 왜군의 지원 이후로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조정에서도 그 규모를 수 만 단위의 왜적으로 오판할 수 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건너 침입한 20만의 왜군은, 점령지 안정이 아닌 왕을 잡기 위해 점 단위로 치고 올라갔기 때문에 진격 속도도 매우 빨랐고, 탄금대에서 신립이 패한 이후론 한양까지의 점령은 시간 문제였던 셈이었죠. 애당초 한양 성곽은 영역의 경계이지 수비를 위한 성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왜군의 쾌속진격은 이후 의병의 반격에 의해 점령지 유지 불안이라는 국면에 진입하게 되기도 하고요.

임진/정유재란, 정묘/병자호란으로 보시는 문약한 조선의 이미지 때문에 조선군이 약하다고 생각하시고 계시는 것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명의 지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니 자력으로만 나라를 수호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이후 조선이 보여주는 노력, 그리고 이처럼 오랜 평화가 유지된 나라는 불가피하게 무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음을 상기한다면 조선군은 약했고 무능하다고 마냥 폄훼하기엔 억울한 처사가 아닐까요? 적어도 참작해 줄 여지는 있다, 정도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수부왘
19/05/12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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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평화가 유지된 나라는 불가피하게 무력이 약해질수밖에 없다는 말씀은 맞는데요, 조선은 그 정도가 좀 심하죠. 당대 세계적으로도 꽤 비중있던 인구수에 비해 비단 양난의 굴욕뿐만이 아니라, 말기에 가서는 심지어 군대라는 집단을 유지하는것 자체조차도 불가능해진 것이 조선의 군사적 역량이었음은 사실이고, 애초에 제 댓글은 주변국 대비 군사력이란 측면에서 한반도 역사상 가장 피크였던 때가 고려시기라는 말이었는데 사실 틀린 점이 없지 않나요? 다른 거 다 필요없이 객관적 사료로만 볼 때도 당대의 다른 국가의 사서나 외교문서에서조차 고려의 군사력은 동아시아 힘의 균형의 주요한 변수로 인정받았는데요.
BERSERK_KHAN
19/05/12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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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에 이르러서 군대라는 집단을 유지에 불가능한 건 고려도 피차일반이었습니다.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를 막는 가장 핵심적인 부대가 이성계가 이끄는 함경도 일대의 사병집단이었던 걸 보신다면...

앞서 말씀드렸지만, 5백년 이상 존속되면서 외세와 대규모 전쟁 한번 안치러본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나라가 쇠락해서 국운이 다했다, 라고 얘기할만한 말기가 되면 정상적인 군대를 유지했던 나라가 과연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천년 제국이라는 비잔틴도 말기에 이르러선 콘스탄티노플만 간신히 영위하고 있었고요. 청나라 역시 말기가 되면 제 1,2차 아편 전쟁에서 열강에 연달아 패하고 1894년 청일전쟁에선 그렇게 얕잡아보던 일본에게 패한데다 의화단과 손잡고 외세에 저항했으나 8개국 연합군에게 발살이 나고 베이징까지 점령당했습니다. 국가의 전성기를 기준으로 비교해서 고려의 군사력이 훌륭했다는 점은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 국력이 요와 송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중요했음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게 조선을 과도하게 폄훼하고 고려를 부각시키기에는 과한 측면이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수부왘
19/05/12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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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고려 말 수천명에 달하는 이성계의 부대가 주요 전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며 맹활약한것은 맞고, 고려 말도 말씀하신것처럼 만만치 않은 환란의 시기이기는 했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고려 말기의 군사적 역량을 으례히 쇠락하는 국가의 특징쯤으로 사실상 군대의 기능을 상실했던 조선 말과 비교하는건 다소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됐든 홍건적과 왜구 토벌에 이성계의 사병을 제외하고도 십만 단위의 병력을 동원한것이 고려였고 역량있는 장수들도 없지 않았으며, 조선처럼 군대 자체를 유지할 여건이 안 되었다는것도 무리가 있는 것이 명이 발호할 때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는 현실성 없는 소리'일지언정 어찌됐던 5만명의 정규군을 대외원정으로 투입할 능력은 되었던게 고려입니다.
BERSERK_KHAN
19/05/12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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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댓글을 수정해주셔서 대댓글로 갈음하자면 연개소문의 카리스마로 유지되었던 고구려가 아니라, 연개소문의 전횡해도 유지되었던 시스템을 가진 고구려라고 봐야지요. 연개소문은 정변을 일으켜 실권을 잡아 권력을 전횡한 자입니다. 연개소문의 카리스마로만 운영되는게 고구려였다면, 영양왕 시절 수나라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던 고구려의 국력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연개소문이 권력을 집권하고 죽을 때 후계 구도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고구려가 분열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보셔야 합니다. 당 태종이 침입한 1차 고당전쟁보다도 2차 고당전쟁에서 고구려는 성공적으로 당군을 막아냈습니다. 그런데 연개소문 사후 수십 년이 되지 않아 고구려는 멸망했고, 멀쩡히 돌아가던 나라가 졸지에 망해버린데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없는 노릇이지요. 수 백년 누적된 고려의 무신 정권과는 궤를 달리하는 일입니다.
19/05/12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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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도 뭐 이성계가 조선 세워서 그렇지 막판에 외세에 나라 망해가던 상황이었는데요, 뭐. 몽골 침입 때도 국호만 안바뀌었다 뿐이지 나라 구실하던 것도 아니고요. 고려가 군사력이 전성기니 뭐니해도 어디 정벌해서 영토 늘일 수 있는 정도로 아니고요. 조선이 근대화 못한게 문제이긴 한데, 당시 일본 열강-조선 국력 차이가 몽골-고려 차이보다 적지도 않을거고요.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고구려 이후로 한반도 역사는 외부세력에 얻어터진 것 밖에 없는것 같아요. 누가 주먹 한두방 더 맞았냐가 의미있나 싶어요.
BERSERK_KHAN
19/05/12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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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수부왘 님// 고려 말은 정부 차원에서 육성 가능한 군사적 역량은 없는거나 진배없는 상황으로 조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민왕 시기 홍건적의 침입을 막을 장병 모집에 모인 장정이 고작 수백명입니다. 최영이 이끄는 부대를 제외하면 고려 왕실이 의지할만한 정규 부대는 이미 지방군, 중앙군 모두 소멸한 상태였씁니다. 고려 말 영토를 지키는 군대는 모두 사병 집단이었고, 최영이 자리를 비운 틈을 이성계가 전국 팔도를 누비며 진압하는 형태였죠.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 이성계였을 뿐, 이미 고려 말은 조정의 군대 없이 각자도생하는 무간지옥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괜히 이성계가 전쟁 영웅으로 민심을 얻고, 왕으로 추대되어 조선을 건국한게 아닙니다. 계란으로 바위친다고 언급하신 그 5만의 병력은 정말 장부까지 모조리 쥐어짜냈다 할만큼 짜낸 병력이었고, 이마저도 진군할 역량이 안되어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으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군대는 단지 머릿수만 가지고 하는게 아니라, 경제력에 기반한 군대의 군량과 장비 보급도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국토가 초토화되어 5만 명 병력을 먹이고 입힐 자원도 없는 고려가, 단지 대외 원정을 보냈다고 그게 국력이 잔존한 증거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냥 죽으라고 등떠민 수준밖에 되지 않을 뿐더러 그런 단순 수치로 비교한다면 구한말 조선도 엄연히 군대를 가졌던 나라입니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훈련도감, 삼수병 체제를 도입해, 살수-사수-포수의 조직을 구성하고 총병, 즉 포수 위주의 군대로 개편을 시작하여 숙종 시기에 이르면 고을의 관아당 수백 정의 총기를 보유할 만큼 임진왜란 이전의 체계를 개혁한 나라입니다. 이후 영-정조기에 이르러선 잘 부각되지 않는 부분이나 조선군의 전술 발전을 살펴볼 수 있기도 하고요. 구한말에 이르러서도 조선이 노력하지 않았다면 억울한게, 독일제 암스트롱 포나, 양무호 등 최신 무기를 꾸준히 도입하려 노력한게 조선입니다. 다만 장비를 무분별하게 들여와 보급 체계를 바르게 구축하지 못하고, 품질을 제대로 살피지 않아 군사력 강화에 전혀 유용하지 못했던 점, 계속 언급하시는 것처럼 고종과 민비의 삽질로 국력 자체가 완전히 쇠락해 제대로 군대를 훈련시키지도 못한다는 점이 비판할 수 있는 소지인거죠.

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은 알겠습니다. 고려대에서 구한말 연구한 논문 중 하나를 보면, 대대 1년 운영비 중 훈련 비용이 채 1%도 되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머릿수만 채워 놓은 군대인거죠. 그러나 단순히 수치상으로는 1904년까지 조선은 28000명의 정규군을 엄연히 보유하고 있던 나라입니다. 제대로 훈련된 군대가 아니라는 점은 비판 받아야 하나, 구한말 조선은 군대가 아예 없었던 듯 취급하는 건 잘못된 것이란거죠. 그리고 계속 말씀드립니다만 나라에 망조가 들면 제대로 된 군대 기능을 못하는 건 여느 나라나 다를 바 없고요. 저도 조선군은 비교적 약했고, 고려군은 전성기 강한 군대였다는 점 인정합니다. 그런데 조선군은 마냥 무능력했고, 고려는 망하기 전에도 강했다는 건 어폐가 있다는 겁니다.
수부왘
19/05/12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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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고려가 망하기 전에도 강했다 가 아니라 최소한 군대라는것을 동원할 여력은 있던 반면 조선은 그 말기에 가서는 군대 유지조차 불가능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고려 말 사병 집단이 정예병력으로서 핵심적 비중을 가지게 된 것은 맞지만 애초에 무신정권 이후 사병이 정규군의 역할을 거의 대체하게 된 것이 고려이고 더불어 당시의 참혹한 환란의 모습과는 별개로 신라 말처럼 중앙에서 귀족들의 사병을 아예 통제하지 못하는 군웅할거의 무정부상태도 아니라 엄연히 중앙에서 임명한 원수와 그 휘하 부대로 이루어진 지휘체계를 가졌던 것인데 각자도생이라고 칭하기엔 무리가 있죠. 애초에 객관적으로 봐도 당대 홍건적이나 왜구의 세력은 각자도생으로 막아낼수 있는 규모가 아니란것이 명백하지 않나요? 말씀하신대로 최영이 중앙군의 마지막 보루였습니다만 결국 바로 그 최영이 이성계조차 권위를 인정하는 당대 고려군의 구심점이었던것 또한 분명하구요. 그렇게 따진다면 상비군이 아닌 봉건영주들의 군사 지원에 의존했던 중세 유럽 국가들은 전부 다 막장국가인 셈이 되는데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고려 말기 군사력이 대단했다는것이 아니라 쇠락한것은 맞지만 구한말처럼 최소한 일국의 군사력이라 칭할 만한 역량도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BERSERK_KHAN
19/05/12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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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댓글을 달아주시니 저도 잠을 못자고 댓글을 달게 됩니다만, 애초 이 논의가 시작된 게 제 댓글에 님이 조선은 국가가 존속한 내내 군사력이 형편없었다는 뉘앙스로 댓글을 달으셔서입니다. 단지 구한말만 지칭하신게 아니라요. 정리하자면 조선의 약화된 군사력은 배경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 약한 기간이 있었다면 그렇지 않은 기간도 있었다. 구한말은 약했던 것이 맞으나 망조가 든 나라의 말기엔 어떤 나라도 조선과 다르지 않았단 겁니다. 그리고 봉토를 매개로 군사력을 충성의 대가로 바치는 봉건제의 중세 유럽과 철저히 왕의 중앙집권으로 이뤄진 동아시아 국가가 비교가 된단 말입니까? 봉건제는 엄연히 쌍무적 계약 관계로 이를 위반하면 왕과 전쟁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이 얘기완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사병이 정규군의 역할을 대신한걸로 따진다면, 이성계가 함경도의 군벌이듯 최영 또한 엄연히 경기도 일대에 토지와 수천명의 사병을 소유한 군벌이었습니다. 제가 나무위키를 신뢰하지 않아 정확한 자료는 찾을 수 없습니다만 확실한 건 그 최영이 이끄는 정규군엔 최영의 사병들도 전부 포진되었고요. 최영과 이성계 아니면 기실 외적을 막을 수 없는 수단이 전무해 그저 이들이 올때까지 버티는게 고려말의 현실이었습니다. 이렇게 구원군이 올 때까지 하염 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을 각자도생한거라 표현한거고요. 나라가 외적의 침입에 올바로 구원하지 못한 채 일부 장수의 사병집단에 의존하는데, 그게 제대로 된 군대를 갖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님의 말씀대로라면 조선의 군대가 군사력이라 칭할 만한 역량이 없었듯, 고려군이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한게 이미 나라의 군대가 정상이 아니었단 얘기입니다. 그걸 겨우겨우 봉합하다가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었고요. 고려말이나 구한말이나 나라 꼴이나 군사력이나 비슷하고 이미 그 시점이면 둘 다 군사적 역량은 누가 낫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내부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냐 외부적으로 되었냐의 차이일 뿐이죠. 조선이 외국에 망한 거나, 고려가 이성계한테 망한 거나, 두 나라 전부 정권을 위협하는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면 제압했겠지만 이미 불능상태이니 나라가 망한겁니다.
수부왘
19/05/1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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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동아시아는 철저한 왕의 중앙집권이라는 말씀부터가 지나친 일반화입니다. 동아시아가 서구에 비해 보다 중앙집권적이긴 했으나, 철저한 왕의 중앙집권이라는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조선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이죠. 고려는 조선과 달리 귀족과 지방 세력들의 입지가 상당한 국가였고 실제로 그들이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며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서구의 봉건제와 등치시키지는 못할지언정 조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죠. 정치가 아니라 군사적인 측면에서 따졌을때는 전시에 사병이든 징집병이든 중앙에서 컨트롤할수 있냐 없냐의 문제지 사병=국가의 국방능력 없음이 아니란 소립니다;(물론 중앙군의 쇠퇴로 전반적인 군사력이 크게 약화된 것 자체는 사실입니다만) 당장 일본이 임란에서 동원한 병력도 각 다이묘들의 사병 아니던가요? 그리고 결국 여러 말을 제쳐놓더라도 조선말의 군사력이나 고려 말의 군사력이나 쇠퇴했기는 마찬가지라고 하시는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죠. 고려는 동시대 수십만에 달하는 외적의 침략을 결국 힘겹게나마 격퇴해냈고, 조선은 동시대 외적의 침략에 거의 무저항으로 멸망했다는 차이요. 또한 이성계의 쿠데타는 엄밀히 따져 환란을 틈탄 군웅할거같은것이 아니라 왕의 무리한 대외 원정 강요, 사실상 죽으러 가라는 통보에 대한 반작용 + 이성계가 담당하는 원정군에 고려의 군사력을 몰빵한 판단미스로 일어난것이지 고려가 단순히 이성계의 사병을 제어하지 못해서 멸망한게 아니죠; 이걸 조선말 외세의 압력과 비교해 결국 물리력에 의해 전복되었으니 국가방위 못하는건 똑같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BERSERK_KHAN
19/05/1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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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중앙집권에 관련된 얘기엔 님의 말에 수긍하겠습니다. 제 말의 요점은 사병과 중앙군 유무를 따지자는게 아니라 국토가 대책 없이 유린당하는 상황을 나라가 제때 구원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군사력이 유명무실화됐다는겁니다. 저는 고려군 별거 없는데 왜 강하다고 얘기하냐는 걸 지적하는게 아니고 망조에 든 고려군은 군대의 기능을 제대로 못했고 이는 복합적으로 따져봐야 할 요소가 존재한다는겁니다. 그리고 님 말대로 이성계의 쿠데타와 고려의 멸망에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듯, 조선의 멸망도 단지 군사력이 형편없어서 무저항으로 망했다로 단순하게 도식화되는게 아닙니다. 나라가 망하는 까닭이 단지 군대만 약병인 게 원인이겠으며, 그렇게 군대가 약체화되는게 나라가 문약한 정치를 추구한 까닭이겠습니까? 이 글에서 언급하는 북송도 형편 없는 군대를 가졌다고 여겨지는 나라였지만, 국토의 절반을 잃고 남송으로 세력을 규합했을 때 비로소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북송의 문치로 쌓아온 사대부의 풀은 남송이 멸망하는 그 날까지 나라에 충성해 외적에 맞서 싸웠습니다. 조선이 쌓아온 5백년의 기틀이란게, 분명 비판 받을 만한 구석도 있고 자체적으로 근대화를 해내지 못하고 망국의 비운을 맞은 건 사실입니다만, 단지 군사력만을 보고 낮잡아 볼 만한 나라가 아니란 점입니다. 그 군사력이란 점도 단지 구한말의 모습에만 치중해서 전체를 조망하지 않으려 하는 태도도요. 외침에 망했다는 것에만 방점을 찍고 전체를 낮잡아 볼게 아니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조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수부왘
19/05/12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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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저도 처음에는 밑도끝도 없이 조선을 폄하하려고 꺼낸 얘기는 아니었는데 통일왕조로서 고려와 비교할만한 왕조가 조선이다보니 본의아니게 다소 흑백논리를 취하긴 했습니다.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은 그냥 주변국대비 군사력은 고려때가 제일 융성했다였는데-_-; 사실 정치와 군사를 따로 떼 놓고 논의하려 했던것 자체가 무리수였기도 하네요.
BERSERK_KHAN
19/05/12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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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정치와 외교와 국방은 대학 전공에서도 통합해서 배우는 요소이니까요. 저 역시 군사적인 측면에는 기본적으로 님의 입장에
동의하며 별개로 이러이러한 부분이 있음을 얘기해보고자 했습니다. 논의를 나누면서 최대한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려 했는데 피곤이 쌓이면서 혹여나 공격적인 어조로 얘기를 나눈 건 아닐까 싶네요. 불쾌하셨다면,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점 말씀드리고 싶고 정치외교학도로써 모처럼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얘기 나누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어여 주무세요,
쥬갈치
19/05/1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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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그래도 저 시절에는 꽤나 힘좀쓰던때일테니...
라이언 덕후
19/05/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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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쓴다는 10만 기병을 한큐에 날려버린 힘을 알면 인정할만 하겠죠..

무신정권은....그말싫.............

역시 이글엔 신불해님이 나타나야 할텐데...
화씨100도
19/05/1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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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여요 전쟁 동안 당대 세계 최강의 요나라 병력이 20만 정도 날아갔죠.
물론 고려도 그만큼 사상자가 있있지만 금방 복구되었다 할 수 있는데, 거란은 망할 때까지 회복을 못했죠.
그렇게 심각한 타격을 입은 요나라 상대로도 송나라는 쩔쩔 매었고요..
물만난고기
19/05/1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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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가 가진 경제력에 비해 형편없는 군사력도 한몫했겠으나 그 형편없다는 평가가 상대적인지라 당시 한 싸움하는 유목민족들 거란, 여진, 몽골등이 거의 같은 시대에 각기 대제국들을 건설한 시기인 것도 고려해줘야겠죠.
의지박약킹
19/05/1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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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게 LOL만큼 재평가의 장이라... 이게 인정받다가 저게 대세였다가 다시 뒤집어졌다가.... 화질 보니 오래된 사극 같아 보이는데 송나라도 평가가 이리저리 바뀌는게 아닌가 싶은....옛날엔 완전히 군사력 쓰레기 취급받았다가 나중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원나라에 버틸 저력이 있었다로 바뀐다든지..
자하르
19/05/11 21:19
수정 아이콘
북송은 저수준이 맞음.
원나라한테 버틴건 장강 끼고 방어한 남송시절이고
그리고 걔네 원나라한테 어쩔 수 없이 버틴거였지 조공으로 해결 할 수 있었으면 조공 바칠 애들이였죠.
라이언 덕후
19/05/11 20:52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근데 뭐 조선때도 좀 과대평가랄까 그런게 있지 않았나요

홍무제가 조선이 빡쳐서 20만 끌고 요동까러 오면 답 없음요 라는 보고받고 걱정했다 라는 기록이나

임진왜란때 초반에 그렇게 발렸는데 원군 요청하니 조선같은 군사강국이 벌써 그렇게 발려? 왜랑 손잡고 사실 명나라 까려고 오는거지

이런 평가가 있었던거 보면
19/05/11 20:56
수정 아이콘
그거 다 고구려 후광..(..)
19/05/11 21:07
수정 아이콘
앗 고구려의 후손들? 후덜덜.....후광효과입니....
멀고어
19/05/1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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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 수나라 꼬라박에서 굴러온 스노우볼..
19/05/11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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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위까진 괜찮았는데 후연, 수, 당이 연달아 초칠을...
지니팅커벨여행
19/05/1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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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극인데 오히려 고증이 철저한...
빠따맨
19/05/11 21:18
수정 아이콘
중국인가 대만인가 사학자가 아시아 역사 세미나 같은데에서 고려가 송나라에 돈을 많이 요구하고 뜯어가서 그 돈 때문에 송나라 경제에 안좋은 영향을 줬다고 발표하는게 있었다고 하는데, 출처가 공무원 국사과목 강의하는 김윤수라는 분이라서 그게 팩트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팩트 체크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하르
19/05/1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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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가 없을텐데 금 요 같은 주변국들이란 주변국들한테 다 뜯겼는데도 나라가 살기 어려운 적이 없었을텐데 송은
19/05/1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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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한테 얼마나 뜯겼을진 모르겠지만 요 금 서하에 비할바가 아닐텐데...
cluefake
19/05/12 02:54
수정 아이콘
사신접대비를 많이 써서 볼멘소리가 나오긴 했는데
그래봤자 접대비 수준이죠.
조공보단 훨씬 싼 가격
19/05/11 21:40
수정 아이콘
저 시점의 고려는 실제로 군사력이 강했으니까요.
대신 함정이 있는데, 쳐들어오는 요나라 기병과 싸워 이길 군사력은 되는데 쳐들어갈 경제력은 없고 유지도 힘들었다는거. 결국 고려도 방어전 특화였죠 뭐.

그래도 저때가 고려 전성기라 상당히 강하긴 했습니다.
모리건 앤슬랜드
19/05/11 21:48
수정 아이콘
콜투암스 함 하니까 한타병력 20만뽑히던시절....
스트라스부르
19/05/11 22:08
수정 아이콘
남한이 뻑하면 북한한테 진다고 그러는데
저런 말 하는 사람이 송나라 때인들 없었으려구요...
첸 스톰스타우트
19/05/11 22:23
수정 아이콘
당시에는 고구려라는 명칭이 없지 않았나요?
나중에 왕건이 세운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고구려라는 명칭을 사용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치면 무려 국호를 계승한 나라이니 저런 반응을 보였을수도 있었겠구나 싶네요
19/05/11 22:30
수정 아이콘
초기에는 국명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서, 高離(고리), 高駒驪(고구려), 句麗(구려), 駒驪(구려) 등으로 서사되었는데 주로 高句麗(고구려)의 빈도가 가장 높았다. 고구려의 기원과 관련되어 졸본부여나 '맥(貊)'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왕망의 신나라에서는 왕망이 흉노를 토벌하기 위해 고구려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고구려가 무시한 것에 분노해서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麗)라고 불렀다고 하는 건데 여기서 말하는 고구려는 '고구려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 사학계의 정설은 장수왕 때 고구려가 고려(高麗)로 변경, 고정되어 멸망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냄우위키인데 일단 그렇다고 합니다.
Lord Be Goja
19/05/11 22:3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송나라와 고려는 서로의 군사력을 위협적으로 느꼈었는데,
그래서 나중에 거란과 여진의 발호때 고려와 송은 서로의 군사력을 이용해 자기나라는 코안풀고 이민족들을 처부수고 싶어했습니다.
송은 고려정도면 거란정도는 본거지도 쉽게 박살낼수 있을걸?? 저렇게 소극적인건 꿍꿍이 속이 있을걸??
고려는 송이 작정하고 수십만 대군풀면 걔네들 역사속에서 사라질걸? 식으로 생각했죠..
물론 둘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바람에...
불려온주모
19/05/11 23:28
수정 아이콘
(수정됨) 한반도 지형이 워낙 뭣 같아서 화약 무기 없던 시절에는 산성에 짱 박혀 활 짤짤이 하면 공격측에 감내하기 힘든 피해를 강요할 수 있고 날씨도 뭣 같아서 겨울 추위와 여름 전염병이 다 있는 곳이라 기마민족이 들어오기 힘든 곳이라 거란, 여진은 잘 막았죠. 몽골은 논외로 쳐야 하는 급이고.
19/05/12 00:04
수정 아이콘
몽골이 공성전이 뛰어난 탓이 컸죠.
그래도 고려정도면 한국사에서 마지막으로 회전을 할 줄 아는 시기였죠.
10년째도피중
19/05/12 00:35
수정 아이콘
저 드라마를 못봐서 모릅니다만
왠지 그 귀주전투 이후 고려사신이 송나라와서 횡포(?) 부리던 그 때 같습니다만? 혹시 저 대사를 치는 사람이 고려사람? 아니면 고려사신이 화내고 나간 다음에 송나라 대신들끼리 하는 말?
19/05/12 01:23
수정 아이콘
극적인 요소를 위해 주변국인 고려 군사력을 뻥튀기해줘야죠
매일푸쉬업
19/05/12 04:44
수정 아이콘
근데 사실 고려는 북한지분이 더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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