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5/02 11:10:01
Name 소이밀크러버
Subject [일반] 아내 이야기 5 (수정됨)
- 아내는 멋지다 7

굳이 따지면 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완벽한 보금자리인 집을 떠나 큰돈 들여가며 밖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게 영 별로다.

그러나 아내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날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는데

모두 아내가 장소를 고르고 숙소를 예약하고 맛집을 찾았다.

내가 찾지 않아도 불만 없이 시원스럽게 진행하여 날 이끌어 주는 모습은 꽤 멋있었다.



- 아내는 재밌다 3

나는 아주 웃긴 인간은 아닌데 아내는 가끔 내 개그에 빵 터질 때가 있다.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웃음이 나고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 아내는 귀엽다 10

나의 볼에는 털이 자라는데 면도해도 수염이 솟으면 기미 같아서 보기가 별로다.

그래서 신경 쓰니까 아내는 족집게로 털을 뽑아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털을 싫어하니까 귀찮은데도 뽑아준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은 점점 나의 털을 뽑는 것에 맛 들이기 시작했고

비싼 족집게를 사줬더니 신이 나서 볼 털, 젖꽃판 털을 뽑아댔고 눈썹 정리까지 해줬다.

털 뽑는 건 자기의 취미니까 볼 털을 면도하면 안 된다고 말하던 아내는 좀 귀여웠다.



- 아내는 사려 깊다 9

퇴근하고 나니 웬일인지 기운이 쭉 빠져서 힘겹게 집에 도착한 날이었다.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내색하지 않았는데

오래도록 나를 봐왔던 이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힘든지 알아채 버렸다.

그냥 힘이 안 나서 그런 거라고 얘기하고 말았지만

나의 상태를 알아채 준 것이 고마웠지만 괜히 걱정시켜서 미안했다.



- 아내는 사려 깊다 10

결혼 전에는 친구들과 주말에 1박2일이나 2박 3일로 보드게임을 하는 것이 취미였다.

결혼하고 나서는 아내와의 시간을 위해 한 달에 한 번만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나마도 신혼인 아내를 놔두고 간다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개의치 않으면서 날 보내줬고 오히려 먼 길이라면서 차로 태워다줬다.

모임 장소가 대중교통으로 1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곳이었는데

차로는 50분이 걸리는 것을 알게 되자 대중교통이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이유였다.

이제는 나도 차가 생겨서 직접 운전해서 가게 되었지만

가는 길이면 항상 날 데려다주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생각난다.



- 아내는 무섭다 1

결혼하고 처음 회사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아내에게는 11시까지 집에 오겠다고 말을 했으나

코로나 이후 첫 회식이라 자리가 길어져서 3차까지 간 다음 11시가 넘었길레 먼저 일어났다.

중간중간 계속 아내에게 연락했고 11시 출발할 것 같다고 전달해 둔 터라

큰 걱정 안 하면서 놀았는데 문제는 집으로 가는 교통편이 뚝 끊겼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오늘은 교통편 없을 것 같다고 일찍 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괜찮아 있을 거야라고 했건만

택시도 버스도 없었고 지하철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내는 걱정하면서 집에 올 수 있겠냐고 물어보고 난 지하철로 타러 가면 된다고 답했지만....

술에 취해서 지하철 쪽으로 간다는 게 그 반대 방향으로 걷고 말았다....

결국 아내에게 전화가 왔고 거기 꼼짝 말고 있으라고 자기가 데리러 간다란 얘기를 날카로운 목소리로 들었다

근처 벤치에 앉아서 일찍 안 간 것을 후회하면서 아내를 기다렸고

밤 12시가 넘어서 도착한 아내가 처음 한 말은 오빠가 술로 문제를 일으킬지 몰랐다였다.

술을 정말 안 좋아하고 적절하게 끊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던지라 가볍게 보내줬을텐데 일을 낸 것이다.

아내는 내가 말을 듣지 않은 점들을 차가운 눈초리와 함께 뱉어냈다.

죄를 지었으니 할 말도 없고 아내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하고 쭈그리고 있었더니

냉랭했던 아내는 한숨 푹 쉬더니 '으이그... 그러니까 다음부턴 조심해'라고 풀어진 어투로 말했다.

그러고는 너무 걱정되어서 그랬다며 웅크려 있으니까 불쌍해서 뭐라고도 못하겠다고 웃었다.

아내는 이날 처음으로 나에게 화가 난 모습을 보였는데

맨날 웃어주던 아내가 못 보던 분위기를 내뿜으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진 그런 모습을 본 적 없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3/05/02 11:25
수정 아이콘
크 잘봤습니다
이민들레
23/05/02 11:26
수정 아이콘
주말 외박을 매달 한번씩 시켜주신다구요?와...
최종병기캐리어
23/05/02 11:33
수정 아이콘
출산율 회복을 위한 애국자 양성 푸로그램입니꽈..
닉네임을바꾸다
23/05/02 11:49
수정 아이콘
재미있다...
그리움 그 뒤
23/05/02 12:00
수정 아이콘
저도 마눌님이 잔소리가 거의 없어서 일반 남편 중에서는 상당히 자유롭게 사는 편이라 항상 마눌님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달에도 5월 27~29일 연휴에 친구들 넷이서 부산 여행 가는데.. 아무말 안합니다.
심지어는 남자들끼리 동남아에 골프치러 갔다와도 아무말 없이 보내줍니다.

대신 저도 노력합니다.
예전에 365일 중 300 일 이상 마시던 술을 지금은 1달에 2~3회 정도만, 그것도 1차만 마시고 끝냅니다.
와이프와 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주 만들어줍니다. 오늘도 마눌님이 깐풍두부 먹고 싶다고 해서 퇴근하고 만들 예정입니다.
주말에는 거의 약속을 잡지 않고 집에 있습니다.
빨래 개는 것만 빼고 마눌님이 시키는 집안 일은 다 합니다.
분리수거, 설겆이는 안시켜도 알아서 하구요.
빨래를 빼는 이유는 갰더니 모양이 안이쁘다고 매번 다시 개더라구요.

저는 밖에서 신나게 노는 것보다, 아무 것도 안해도 집에 있는게 더 좋더라구요.
맥도널드
23/05/02 12:13
수정 아이콘
난 왜 이 글이 이렇게 재미있지...
그럴수도있어
23/05/02 12:38
수정 아이콘
배아파서 안되겠어요! 혼난거 더 올려줘요~~
23/05/02 13:02
수정 아이콘
추천 눌렀습니다
구독 좋아요 버튼 어디있나요
23/05/02 13:10
수정 아이콘
남편은 기억할 것입니다..
StayAway
23/05/02 13:33
수정 아이콘
판타지군요
자리끼
23/05/02 14:05
수정 아이콘
한쪽이 착하면 그걸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데
두 분은 잘 만나셨네요.
삼겹살최고
23/05/02 14:18
수정 아이콘
글쓴 님의 글에서 현실성이 느껴지지를 않아요. 판타지 같아요.
배우자를 너무 이상적으로 포지셔닝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설거지론, 퐁퐁남, 보다는 훨씬 좋은 현상이지만 기우이기를 바랍니다.
소이밀크러버
23/05/02 15:0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제 아내라고 어디 완벽한 모습만 있을까요.

부부가 서로 좋은 배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은 있기 마련이죠.

다만 제가 쓰는 글은 아내의 좋은 점만 모아놨으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흐흐.

더구나 신혼 버프를 받은 상황이라 더더욱 좋은 일만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삼겹살최고
23/05/02 19:00
수정 아이콘
부럽고 부럽고 아주 부럽습니다.
많이 기대할수록 많이 실망하고,
적게 기대해도 그 기대가 충족되는 경우가 많지 않더군요.
계속 내가 부러워할 글쓴 님의 생활을 기대합니다.
이웃집개발자
23/05/02 17:23
수정 아이콘
올해 본 덧글중에 가장 슬픈 덧글이네요..
삼겹살최고
23/05/02 19:05
수정 아이콘
슬픔이라기 보다는 허탈함 정도가 맞겠네요.
항상 기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바라지 않는 일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은게 세상이니까요.
StayAway
23/05/02 17:49
수정 아이콘
세상은 인터넷 밖에 있어요
삼겹살최고
23/05/02 19:04
수정 아이콘
세상의 한 부분을 가장 극렬하고 명확하게 보여주는게 인터넷 속 세상이라고 봅니다.
세상은 인터넷 밖에 있다고 무시했던 많은 현상이 실제 세상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요.
23/05/02 18:31
수정 아이콘
열등감이 느껴지는 댓글이네요
삼겹살최고
23/05/02 19:02
수정 아이콘
부럽기는 하지만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아요.
그저 작은 질투심, 부러움에 따라온 작은 걱정일 뿐이지, 글쓴 님이 불행해지라고 기대하지 않아요.
23/05/02 21:06
수정 아이콘
배우자를 이상적으로 포지셔닝한다는 등 온갖 혐오 섞인 글 쓴 주제에 정당한 척 하는 거가요? 역겹네요
삼겹살최고
23/05/03 00:0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와... 혐오... 혐오의 범위가 굉장히 넓네요, 덜덜 떨립니다.
23/05/03 18:02
수정 아이콘
...?
Asterios
23/05/02 17:35
수정 아이콘
볼 때마다 흐뭇하고 부럽고 그렇네요.
행복하게 지내시면서 계속 이런 에피소드들을 올려 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밀리어
23/05/02 18:57
수정 아이콘
아내는 무섭다 1에서 한숨쉬면서 했을 생각은 아마 " 얼마나 놀고 싶었으면"or"이사람이 무슨 잘못이야" 이정도가 아닐지..
감자크로켓
23/05/03 08:56
수정 아이콘
크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시리즈도 기대합니다 :)
꿈꾸는사나이
23/05/03 09:43
수정 아이콘
인터넷엔 결혼에 대한 안 좋은 얘기가 훨 많지만
다들 좋은 이야기는 자기만 알고 안 좋은 일은 밖에 다 푸는 일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결혼했지만 힘들 때도 많지만 좋을 때도 많아요.
매번 추천만 누르다가 댓 남깁니다. 잘 읽고 있어요 ^^
리니시아
23/05/03 10:41
수정 아이콘
오 마이갓. 무서운게 이렇게 흐뭇하게 풀리는 에피소드가 되실 줄이야.
남편분도 좋은분이군요.
베트남맛연유커피
23/05/03 16:50
수정 아이콘
와... 주말외박 허용이 있다는것 만으로 바이럴입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432 [일반] 김미영 팀장에게 당하지 않는 법 - 수법과 대응방법 [16] 이선화4786 24/05/08 4786 27
101390 [일반] 키타큐슈의 등나무 정원, 카와치후지엔 (河内藤園) [4] 及時雨5556 24/05/02 5556 4
101347 [일반] 테일러 스위프트 에라스 투어 도쿄 공연 후기 (2/7) [5] 간옹손건미축5634 24/04/26 5634 12
101260 [일반] 자동차 전용도로에 승객 내려준 택시기사 징역형 [46] VictoryFood8742 24/04/10 8742 5
101258 [일반]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7) 시흥의 아홉째 딸, 서초 [5] 계층방정12966 24/04/10 12966 7
101095 [일반]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4) 시흥의 여섯째 딸, 광명 [8] 계층방정17000 24/03/07 17000 9
101073 [정치] 의사 대량 사직 사태 - 뒷감당은 우리 모두가 [266] 터치미19413 24/03/05 19413 0
101071 [일반] 타오바오...좋아하세요? [60] RKSEL8893 24/03/04 8893 35
100948 [일반] 아시아의 모 반도국, 드라마 수출 세계 3위 달성! [18] 사람되고싶다8207 24/02/19 8207 11
100765 [일반] 가사를 좋아하는 노래들. [47] aDayInTheLife4115 24/01/24 4115 2
100735 [정치] 이준석 기자회견 : 65세 이상 지하철 공짜 폐지 추진 [325] Croove18896 24/01/18 18896 0
100710 [일반] (스포)요즘 본 영화 잡담 ​ [8] 그때가언제라도5545 24/01/14 5545 2
100542 [일반] 두 번째 연애 이야기 [6] 피우피우5770 23/12/24 5770 15
100470 [정치] 의사를 ‘살려준’ 검사들, 공수처 고발 [32] lexicon10867 23/12/13 10867 0
99814 [일반] 뉴욕타임스 9. 6. 일자 기사 번역(외출할 때 노인이 겪는 어려움) [2] 오후2시5964 23/09/14 5964 2
99796 [일반] [2023여름] 다사다난 했던 온유의 78일(스압) [19] 소이밀크러버5034 23/09/13 5034 20
99786 [일반] 오랜만에 차인 사연 [21] 7954 23/09/13 7954 23
99653 [정치] 한덕수, 택시비 묻자 “1000원 아닌가요”...물가 모르는데 물가 잡기? [123] 톤업선크림11726 23/08/31 11726 0
99592 [일반] 카카오블랙 타고 기분만 잡친 후기 [62] Daniel Plainview14070 23/08/25 14070 8
99358 [일반] 쿠팡플레이 맨체스터 시티 VS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직관 후기 [15] 마제스티8122 23/07/31 8122 6
98766 [일반] 2000년대, 약소국에서 벗어나 지역강국으로 거듭난 대한민국 [136] 쿠릭16410 23/05/14 16410 8
98682 [일반] 제주도 여행기(스압 주의) [25] 소이밀크러버6774 23/05/03 6774 11
98672 [일반] 아내 이야기 5 [29] 소이밀크러버7461 23/05/02 7461 2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