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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3/19 15:46:59
Name 具臣
Subject 심심해서 쓰는 무협 뻘글 10
역사적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ㅡ 대주님, 수탉이 저쪽에 있습니다.
ㅡ 그래. 수고 많았다.

노우객은 마땅찮았지만 그래도 부하에게 티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주가 임무를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 부하들이야 뭔 잘못인가. 애들한테 짜증내면 안되지. 아니 이런 일을 가릴 거였으면 동창에 들어오지 말았어야지' 한숨을 쉬며 말을 몰았다.

노우객은 환관이 아닌 해남파 출신 고수였다. 젊은 시절 바다를 사랑하고 모험을 꿈꾸다가 정하의 대원정에 끼었는데, 해적 진조의를 잡을 때는 팔대호법 가운데 셋을 참살했고 이름도 읽기 힘든 왕국 두 곳에서 왕들을 사로잡을 때도 시위대장을 꺾어 정하의 눈에 들었다.
천축과 서역을 거쳐 非洲(아프리카)까지 가면서, 그곳의 무공은 물론 구라파의 해적들의 검법까지 견식하고 참오를 거듭, 남해삼십육검을 완전히 새로운 남해십칠검으로 재창조해냈다. 이 과정에서 구라파 해적들의 검술에 깊은 인상을 받아 검도 아예 협봉검으로 바꾸었다. 수전을 워낙 많이 치러 그런 면도 있고.
원정을 끝내고 귀환길에 해남파로 가봤으나, 친한 사람들은 사라졌고 그저 아는 사람들만 남아있었다. 그나마 남해삼십육검의 검리를 논하다가 해남파의 자존심을 건드려버렸다. 내 문파 사람들이 검하고혼으로 되는 건 막고 싶었기에 남해삼십육검의 문제점을 모두 지적했더니, 반박은 못하고 관부의 앞잡이라며 슬슬 따돌리는 것이었다. 결국 고향은 그리워하기만 했어야 했다며 돌아와서 정하와의 인연으로 동창에 들어왔다.

동창에 들어와서도 겉돌기만했다. 사회에서 멸시되는 특징이 있는 집단은 그럴 수록 더 뭉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끼면 더 따돌리는 법. 노우객은 동창 제일의 고수였지만, 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조용히 따돌림을 받았다. 더구나 비주非洲에서 본 이마에는 뿔이 없고 코에 뿔달린 소, 모가지와 팔다리가 이장 가까이 되는 커다란 얼룩무늬 노루, 서역에서 본 모래사막 위 신기루와 사람이 타죽는 땡볕을 얘기하다가 허풍선이로 몰렸다.
아, 예 그러시겠죠. 대주님.
결국 그가 진조의의 호법과 두 왕의 시위들을 꺾은 것마저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노우객은 전투와 바다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넘기면서 작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 성품이 되었다. 옷차림도 신경쓰지 않았고 죽엽청 한병과 협봉검 한자루로 만족하는 삶이었다. 승진해보겠다고 애쓰지도 않았고.
허풍만 아니면 저만한 사람도 없는데 말이야...저런 성격 탓에 높은 자리는 못갔지. 저 무공이면 아무리 못해도 각주까지는 갔어야 하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의 평이었다.

노우객은 요즘 고민이 많다.
처음엔 황상과 조국을 위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정하의 제의를 받고 동창에 들어왔다. 대원정 중 정하를 보면서 생긴 믿음으로 선뜻 들어왔고, 이후에도 다른 무림인들에 비해 크게 나쁜 일을 하지도 않았기에 불만없이 살았다. 노우객은 동창의 주먹이라는 전비각에 있었기에 평소에는 수련만 했던 것이다. 새벽에 두시진 운기조식으로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검을 휘두르며, 비가 오면 빗속에서 눈이 오면 눈송이 사이로 검화를 피워올렸다. 광대무변한 검리의 세계를 보는 사람은 시장에 살아도 세속에서 벗어난 법. 동창에 있으면서도 동창의 악행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어쩌다 칼을 뽑을 일이 주어져도, 지금까지 그의 상대는 모두 상당한 고수들로서 선량하다고 보기엔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아마 웬만한 문파의 무림인은 모두 했을 그런 일들을 해왔던 것이었다.
소탈하고 대범한 성격 탓에 고자들의 은근한 따돌림도 별로 괴롭지 않았고, 허풍선이로 몰리는 건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그런데 안병한의 체포부터 처형까지 동원되면서 갈등이 생겼다. 안병한을 비롯한 병부의 무력을 감당하기 위해 동창의 고수는 총동원 되었는데, 뜻밖에도 안병한은 싸우지 않고 순순히 오라를 받고 처형당하는 것이 아닌가. 안병한이 그러자 나머지 무장들도 칼을 버렸다. 겁에 질려 싸우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저렇게 죽음을 맞을 수 있을까? 저런 무장을 이렇게 죽이는게 정말 황상과 대명을 위한 걸까? 난 이런 일을 하려고 동창에 들어온 것인가? 노우객은 자괴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젠 그 아이까지 찾아내 죽이라니. 태어나 처음으로 칭병稱病할까 생각도 해봤다.

노우객에게 쫓기고 있는 좌순단은 상태가 좋지 못했다. 어디에서 꼬리를 밟혔는지 알 수 없지만, 곳곳에서 전서구로 연락받고 말을 달려 쫓아오는 적을 경공으로 따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노우객의 얼굴도 보기 전에 벌써 다섯번이나 접전을 치렀고, 갑조는 이미 전멸했다. 을조는 둘만 남았고 병조는 넷이다. 이대로 가면 끝.
ㅡ 진화개, 을조를 이끌고 가게. 병조는 나를 따라라.
늙은이가 오늘에야 죽을 곳을 찾았구려. 부디 후개께서는 개방의 한을 풀어주시오.

아직 후개도 아닌 안국헌에게, 취영개는 깍듯하게 예를 갖추고 돌아섰다.

일각 쯤 지났을까, 밀려드는 동창의 무사들을 마주하게 된 취영개.
ㅡ 동창의 개들에게는 타구봉이 제격이지.
한마디 뱉더니 살초만을 뿌려댔다. 백회혈이 으깨지고 천돌혈이 뚫렸다. 거궐혈에 봉이 꽂힌 무사는 소리도 못지르고 무너졌다.
숨 한번 내쉴 시간에 선봉 셋이 쓰러지자, 동창의 무사들은 당황해서 노우객을 쳐다본다.

노우객을 본 취영개가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ㅡ 으음...똥개들 사이에 언듯언듯 비치던 늑대 그림자가 저거였군.

노우객이 씁쓸한 얼굴로 한마디 하고는 조용히 나섰다.
ㅡ 너희는 물러서거라.

마주서보니, 풍기는 기상이 예사롭지 않다. 썩은 생선 틈에서 피어오르는 향 한대 같은 느낌.
ㅡ 대협은 이런 무리와 어울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왜 거기 있소?

노우객의 괴로운 표정은 더 진해졌다.  
ㅡ 아직 지키지 못한 말 한마디 때문이라고 해둡시다. 선수를 양보하리다.
ㅡ 껄껄껄... 내 사정이 이러하니 사양치 않겠소. 저승에서 다시 보면 백건아 한병 대접하리다.

다음 순간 취영개의 신형이 솟구치더니 오장 밖의 노우객 위로 내려꽂힌다. 봉으로 노우객의 머리를 짓부술듯 내려치는데, 마치 개산대부로 마른 장작을 패는 기세.
ㅡ 당두봉갈當頭棒喝을 저렇게 깔끔하게 뽑아내는 걸 보면 역시 좌호법이시네. 우리가 이겼다.
거지들이 씩 웃었다. 협봉검으로 봉의 역도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거의 보법을 밟아 몇걸음 피하고 반격을 노리기 마련인데, 노우객은 그냥 서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봉을 받아내는 노우객. 협봉검으로 철퇴의 일격도 능히 받아내는 남해십칠검의 제십일식 해무진파를 펼친 것이다. 노우객이 검을 협봉검으로 바꾼 것은 해무진파를 창안하고 혹독하게 검증해 본 다음이었다.
취영개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이 자의 내공이 심후하고 무공이 현오하구나. 변초와 기격으로 승부를 걸 수 밖에 없겠다.

다음 순간 수풀의 뱀을 찾듯 타구봉이 갈之자로 움직이며 사혈을 찍고 후려치더니 다시 돌려친다. 웬만한 고수였다면 첫 공격은 막아내지만, 다음 두 연격에서 빈틈이 나오기 마련. 그러나 노우객은 흔들림없이 제사식 해무조화를 펼쳐 막아내는 듯 싶더니 어느새 제일식 백경출해로 검기를 뿜어낸다. 취영개의 미간이 뚫리는 듯 했지만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타구봉이 땅을 치고 튕겨져 봉도라견棒挑癩犬으로 노우객의 턱을 올려친다.

숨 쉴 사이도 없이 십여초를 주고받자, 정신을 차린 동창의 고수들이 나머지 좌순단 거지들을 몰아붙인다. 힐끗 그걸 본 취영개. 조급하게 봉을 세번 연속해서 찌르는 삼파일공을 펼친 뒤 그대로 다시 바람개비처럼 좌우로 휘몰아치는 표풍습초로 노우객을 몰아붙였다. 그 순간, 무리하게 초식을 뽑아내며 밀어붙이다보니 취영개와 노우객의 거리가 너무 붙어버렸다. 봉과 검은 서로 치고 베는 거리가 다르다. 당연히 취영개는 봉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고, 노우객은 검의 거리까지 뚫고 들어가야 한다. 노우객에게 온 찰나의 기회. 그러나 노우객은 한걸음 물러섰다.

ㅡ 승부는 최후의 절초로 내봅시다.

일부러 빈틈을 보인 다음 노우객이 미끼를 무는 순간 절초로 끝내려던 취영개는 쓴 입맛을 다셨다. 꼼수를 쓰려다가 민망해진 취영개, 그리고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적수를 최상의 예우로 보내주려는 노우객. 그들은 말없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단 일초로 노우객을 쓰러뜨려야 하고, 천하무구天下無狗가 아니면 되지도 않는다. 진원지기까지 끌어올린 취영개는 천하무구를 펼치기 시작했다.
노우객이 본 것은 마치 굵은 동아줄로 된 그물이 머리 위로 던져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건 봉 한자루로 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뭘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 난해한 초식이 노우객을 덮어버리려는 순간, 십이성 공력을 쏟아넣은 만리창파가 거대한 해일과도 같이 모든 것을 휩쓸어버렸다. 종이를 찢어발긴 듯 조각조각 뜯겨져버린 봉과 거의 십여장은 날아가 처박힌 취영개.
다음 순간 동창의 고수들이 간신히 버티고 있던 좌순단 병조를 끝장내버렸다.
쉽지 않은 적을 꺾었다. 그러나 기분이 더 우울해진다.

ㅡ 보고해.
ㅡ 사망 3, 부상 없습니다.
ㅡ 수탉은?
ㅡ 저 산으로 간 것 같습니다. 숫자는 다섯이 안될 것 같습니다.
ㅡ 그래. 너, 대원들 시신을 여기 지현에게 맡겨라. 올 때 건량과 횃불, 천막도 구해오고.
ㅡ 존명!

그 때 갑자기 달려오는 파발마.
ㅡ 대주님, 지금 즉시 돌아오라십니다. 마교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답니다.

노우객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린 아이에게 칼질하느니 마교와 싸우다 죽는게 낫지. 부하들은 오늘 산속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했다.

그날 저녁 객잔에 들어간 노우객.
ㅡ 식사는 아무거나 내오고. 죽엽청, 아니 백건아 제일 독한 걸로.


노우객의 남해십칠검은 LowCat 대협의 남해십칠검에서 받아왔습니다. LowCat 대협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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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한그릇
23/03/19 16:12
수정 아이콘
그냥 순수 무협설정으로 병부 대장의 아들이 차세대 거지왕 후개라는 건가요?
23/03/19 18:56
수정 아이콘
그, 그게....얘기가 산으로 들로 가다보니 그리 되어버렸습니다. ^^;;
국밥한그릇
23/03/20 08:34
수정 아이콘
아닙니다 우리가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 있겠죠
23/03/21 02:37
수정 아이콘
어...그,그게....아무튼...
23/03/19 20:30
수정 아이콘
백이십팔로검이 아니라니 아쉽군요 크크크
23/03/20 08:01
수정 아이콘
이제 초식 이름 받지 않습니다.

까딱하다 소림108곤법이나 무당72검로 걸리면.....
Hulkster
23/03/20 18:50
수정 아이콘
오오 중원의 봉술과 서역(영향)의 검술 대결이군요. 잘 읽고 있습니다^^b
23/03/21 02:33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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