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1/04 23:17:43
Name 시라노 번스타인
Subject [일반] 첫 회사를 퇴사한 지 5년이 지났다.
나의 첫 회사는 어플 회사였다. 스타트업였기에 그리 큰 회사는 아니었다.

첫 회사였기에 회사 내에서 어떤 행동을 하거나 주도를 하는 것 보다는,
기록하고 관찰하고 배우는 위치에 많이 있었다.
물론 스타트업이었기에 1~2년차때는 어느 정도 의견 제시도 할 수 있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실효성이 있던 건 없었다.

많은 부분을 배웠지만 그중 하나는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든 일이고 복잡한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때때로는 치밀하게 큰 그림(?)까지 그려가며 준비했다. 고객사 담당자를 설득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회사 직원 설득하는 것인데 말이다.

학생 때는 "하자!" 하면 대부분 되는 일들이었고
반대가 있더라도 강하게 밀어붙이면 결과는 좋지 않더라도 진행되었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추억이 되었고 더 끈끈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해야 한다." 라는 주장과 근거는 약했다.

어떤 한 주제에 대해서 "해야 한다." 라는 주장과 근거보다는
"하면 안 된다." 라는 주장과 근거가 더 쉽게 크게 다가오게 되었다.

때때로 극단적인 "해야만 한다.", "안 하면 안 된다." 라는 주장과 근거까지 가져올 때
그나마 "해보겠다." 라는 반응이 나왔다.

사실 몇 명의 사수와 상급자를 만났고 각자 그들 나름대로 방법적인 부분들이 달랐다.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는 논리와 근거를 철저히 준비하여 설득했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 수준도 안 되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설득했고,
누군가는 말도 안되는 고집과 난리를 피우며 상대방을 설득했다.

누군가는 포기했다.
포기할 때도 누군가는 진심으로 사과했고, 누군가는 변명만 했고, 누군가는 철저히 외면했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얻거나 잃고, 사람에게 기쁘거나 실망하는 일이 이리 많을지는 몰랐다.

또한, 취업을 준비했을 때 회사 홈페이지나 소개서에 있는 비전, 목표, 인재상이 적혀있는 것이......
생각보다 "명분"을 만드는 데 있어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유저 중심 회사" 라는 단어로 많은 프로젝트가 까였고 많은 고객사가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대기업이나 큰 회사일 수록 홈페이지에 비전이 1개가 아니라 여러개인 이유는,
1가지 비전만으로는 모든 갈등 상황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첫 회사를 떠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아주 많이 의식의 흐름대로 써본 글입니다. 딱 1월 이 쯤 퇴사한 것이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또바기
23/01/04 23:22
수정 아이콘
어쩌다보니 다음주 5번째 회사에 들어가게 되는데 많이 공감가네요 :)
여수낮바다
23/01/04 23:49
수정 아이콘
모니터에 비젼과 목표가 써져 있는데 사실 관심 가지고 본적이 없네요; 인증평가때 인증위원이 물어볼까봐 달달 외울 때 빼곤요;
한번 다시 봐야겠습니다.

설득할 일도 있지만, 저를 설득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각자 논리에 전 팔랑귀가 되어 모 정승마냥 “샘이 옳아요” “샘도 옳네요” 하고 있네요. 각각 들을 땐 맞아맞아 하며 듣지만, 다 듣고 나서 혼자가 되어 보면, 여럿의 상반된 주장을 동시에 만족시킬 길은 없다고 느껴져서 참 어렵습니다.
며칠뒤 회의 전까진 결정해야 하는데 난감합니다ㅠㅜ
시라노 번스타인
23/01/05 00:37
수정 아이콘
오히려 저는 비전과 목표에 대해 좋은 말만 가져다 붙인 빈 껍데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급훈이라는 이름으로 비전과 목표를 이미 세우고 있었드라구요.

급훈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없었지만,
급훈이라는 이름으로 40명의 학생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죠.
23/01/04 23:54
수정 아이콘
고객사 담당자를 설득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회사 직원 설득하는 것인데 말이다
=> 동감하고 저는 오히려 같은 회사 직원 설득하는게 회사 밖에 사람 설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게, 고객이나 협력사, 경쟁사는 정 틀어지면 안 보면 끝인데 같은 회사는 한 명이 나갈때까진 치고박고가 이어지죠. 어디 조사에서 퇴사 원인 중에 1-3위를 기록했던 거 중에 두 개가 자기 보스+동료와의 불화 이거였던거 같은데....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시라노 번스타인
23/01/05 00:07
수정 아이콘
오히려 고객사는 좋은 명분 거리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더 나을 때도 있었네요.
'이거 안해주면 재네 해지한대!' 크크
타츠야
23/01/05 00:37
수정 아이콘
저는 다다음 주에 9번째 회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내부 직원도 결국 본인에게는 고객과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데이터를 준비하고 설득을 해야죠.
뭐 가끔은 감정적인 소모가 있긴 한데 한국이나 외국이나 직장 생활은 비슷합니다.
시라노 번스타인
23/01/05 00:41
수정 아이콘
상급자였던 분은 내부 직원은 고객 중에 진상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회의 들어가기 전에 더 철저하게 준비해라 라고 이야기 했던 게 생각나네요 크크
타츠야
23/01/05 08:17
수정 아이콘
하하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구스티너헬
23/01/05 00:48
수정 아이콘
저는 지금 다니는 회사가 4번째 회사인데
젊어서는 직급이 낮아서 설득이 어렵다고 생각했고
좀 지나서는 윗 놈들이 멍청해서 그렇다고 생각해서 부단히 진급(사장)하려고 했죠
지금와서는 다 쓸데없는 생각임을 알았습니다.

원래 인간은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껄껄
그게 동료던 상사던 부하직원이던 고객이던 가족이던 말이죠

사람마다 설득의 방법은 다릅니다.
이익으로 유인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논리로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권위로 찍어눌러야 하는 사람이 있고
감정에 호소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압력을 줘서 코너에 몰아야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는 사람마다 방법이 다른게 아니고 받는 사람마다 효과적인 방법이 다릅니다.
Quarterback
23/01/05 08:44
수정 아이콘
그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 능력이죠. 너무 생각이 많으신 듯 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시라노 번스타인
23/01/05 10:06
수정 아이콘
생각 많은 스타일이긴 해요. 막상 생각한 만큼 치밀하게 하는 성향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스타일임에도.
숨고르기
23/01/05 08:55
수정 아이콘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아무도 설득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조직에는 태반인데 열심히 살아오셨네요
시라노 번스타인
23/01/05 10:0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열심히는 아니긴 했어요. 크크
23/01/05 09:21
수정 아이콘
제가 회사 생활 10년 넘게 해보면서 뒤늦게 알게 된건데
설득은 논리로 하는게 아닙니다. 감성으로 하는거죠 크크.
반쯤 농담처럼 이야기 했는데 동료와 친해지면 논리가 그지같아도 설득이 됩니다. 크크크
시라노 번스타인
23/01/05 10:01
수정 아이콘
사실 이런 경우가 많긴 했는데 크크
일을 처음에 가르쳐 준 상급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나중에 몸만 고생하고 머리에 남는게 없다는 논리로 겁나 굴렀던...
라바니보
23/01/05 11:22
수정 아이콘
저도 뭐 팀장급도 아니고 잘 모르지만 학생 때와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맨아워로 계산되는 게 아닐까요.
학생때야 정말 필요하면 밤새고도 끝내고, 혹은 과제 대충 끝내고 뭐 성적 C맞아도 문제가 없었다면
회사에선 항상 일에 쫒기고, 일에 쫒기기 싫고, 다들 가정이 있으니까요. 뭘 하자는게 참 어렵습니다. 뭘하지 말자는 쉬운데요.
시라노 번스타인
23/01/05 17:35
수정 아이콘
무엇을 하자고 하면 역적이 되는 거 같은... 크크
김연아
23/01/05 17:08
수정 아이콘
설득할 논리가 있는데, 얘기를 들어줄 생각을 안 하네요? 크크크크
시라노 번스타인
23/01/05 17:36
수정 아이콘
분명 소리는 들렸을 텐데(혹은 분명 읽었을텐데...) 크크
23/01/05 22:56
수정 아이콘
처음에는 논리가 중요하다 생각했고
나중에는 영업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지금은 기질과 성격이 중요해보이네요.

논리와 친화력이 없어도 똥고집과 추진력으로 해내는 스타일을 보니 진짜 본인 기질과 성격이 중요해보이는 ;;;

논리든 영업이든 고집이든 뭐든 적당량씩 가지고
자신의 성격에 맞는 설득 스타일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이제와서 친화력 만렙 영업인이 되고나 개똥고집인이 될순 없으니까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7623 [일반] 첫 회사를 퇴사한 지 5년이 지났다. [20] 시라노 번스타인10806 23/01/04 10806 12
97622 [일반] 고향사랑기부제가 올해부터 시작되었습니다 [44] Regentag12035 23/01/04 12035 5
97621 [일반] 2022년 백화점 매출순위 TOP 35가 공개되었습니다 [34] Leeka8933 23/01/04 8933 2
97620 [일반] 한국에서 모병제는 공익들과 미필남자들만 찬성하는 말도안되는 정책입니다 [92] 보리야밥먹자12681 23/01/04 12681 4
97619 [일반] [스포있음] 더 퍼스트 슬램덩크 관람 후기 [31] 웜뱃은귀여워8264 23/01/04 8264 2
97618 [일반] [뻘글]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12] VictoryFood6527 23/01/04 6527 3
97616 [정치] 직회부와 대통령 거부권 [97] 빼사스13088 23/01/04 13088 0
97615 [일반] 이대녀를 위한 변 - 그들이 페미니즘을 택한 이유 [257] 가못자18379 23/01/04 18379 39
97614 [일반] [스포일러]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감상 후기.. 반갑지만 낯설다.. [35] 란팡9211 23/01/04 9211 1
97612 [일반] 커피, 약 그리고 우유(프렌치 프레스 좋아요) [38] 오후2시9117 23/01/04 9117 0
97611 [일반] ChatBot 사용기.AI 한계란...? [28] 진돗개8463 23/01/04 8463 3
97610 [일반] 더 퍼스트 슬램덩크 노스포 간단 후기 [18] 문약8701 23/01/04 8701 1
97609 [일반] 전쟁 웹소설 [블루멘크란츠] 에서 느껴지는 재미와 수작의 향기 [19] matthew8644 23/01/04 8644 3
97608 [일반] 부모급여가 도입되어 한국은 본격적으로 출산에 대한 현금보상을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106] 홍철13656 23/01/04 13656 7
97607 [일반] 지속불가능한 우리나라 의료비 재원 - 지금부터 시작이다. [145] 여왕의심복19519 23/01/04 19519 82
97606 [일반] 인천공항 입국 중국인, 확진 후 도주 [21] 빼사스12800 23/01/04 12800 0
97605 [정치] ‘청담동 술자리’ 거짓 판명났지만… 민주 지지층 70% “사실이다” [314] 여수낮바다21314 23/01/04 21314 0
97604 [정치] 바이든, '한미 공동핵연습 논의' "NO"에…양국 정부 진화 [57] 덴드로븀14920 23/01/04 14920 0
97603 [정치] 검역에 구멍이 뚫리고 있습니다 [68] Beemo15557 23/01/04 15557 0
97602 [일반] 2022년 출생아수 약 25만명 (2021년은 260,600명) [24] Dizziness10789 23/01/04 10789 3
97601 [일반] 23년 부동산 小전망 [35] 김홍기11668 23/01/03 11668 1
97600 [일반] 아름다운 사람들 [3] 시드마이어7247 23/01/03 7247 18
97599 [일반] 저는 스타벅스에서 에비앙을 마십니다 [65] Fig.112442 23/01/03 12442 1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