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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2/15 18:42:27
Name 김승구
Subject [일반] 요양원 이야기2 - “즐기자! 발버둥을 치더라도!” (수정됨)
당연하겠지만 요양원에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조사를 많이 했습니다.
요양원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책은 대부분 읽어봤던 것 같습니다.
감동적이고 가슴 시린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요양원에서 어르신을 대할 때 단순히 환자 중 한 명으로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임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 우울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아픈 것, 나이가 들어가는 것,
심지어는 기억이 사라지는 병은 얻은 것이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선천적으로 우울한 곳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더욱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화로 온 변화를 되돌리는 마법의 치료제를 제공해 드릴 수는 없지만
한 번이라도 즐거운 하루를 선물해 드리는 것은 가능하기에
그것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역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던 차에 발견한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1
(일본 노인요양시설 요리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책의 표지)

19ccf022
(요리 아리에서 발간한 잡지 '요레요레'창간호 표지입니다)

“즐기자! 발버둥을 치더라도!”

'요레요레'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다른 요양원 관련 책들과는 달리 이 잡지 안에는 반짝반짝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르신과 함께 기린 맥주 공장에 체험하러 갔던 얘기,
그곳에서 파르페를 어떻게 먹는 건지 가르쳐 드렸던 이야기,
어르신께서 왜 가족과 살지 않고 요양시설에서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설명하시면서
할머니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고 설명하셨다던 이야기 등이지요.

이 책과 잡지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한 개인과 가족에게는 아주 비극적인 이야기일지라도
그 아픔을 함께 나누는 데에서 오는 힘은 아주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현상을 일지라도 이를 나눔을 통해서 극복해낼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언젠가 어르신들께 간식을 드리는데 한 어르신께서 제 손을 지긋이 잡으시고는 말씀하시더라고요.
백화점에 지인이 있으니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소개해주시겠다고요.
매번 간식을 드리는 저를 외판원으로 착각하신 것이지요.
그런데도 그 이야기가 제게는 참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위해 주시는 마음이 그대로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같은 일이 집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요?
부모님께서 자식도 못 알아보시는 상황에 얼마나 슬펐을까요?

이처럼 같은 현상임에도 무게를 함께 나누어지는 데에 큰 힘이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한 가족이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커 보였던 짐도 여럿이기에 함께 버틸 수 있다고,
치매로 비롯된 비극도 그렇기에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뜻에 공감을 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순전히 재미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때 나왔던 잡지의 창간호는 발간되자마자 독립서점 북스큐브릭 베스트셀러 14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3호가 발간된 뒤 18주 동안은 베스트셀러 1위에서 3위까지 요레요레가 모두 휩쓸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책을 덮고 요양원에 출근해서는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들을 많이 만납니다.
어르신들께 행복한 하루를 선물 드린 다는 것이
결국에는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
어르신과 보호자 사이의 접점에 서서 할 수 있는 역할과 그 한계에 대한 고민 등,
가을바람 앞의 갈대처럼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치 나침반인 것 마냥 꺼내어 보는 이 책은, 처음 접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많은 분이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응원을 받을 만한 깜냥의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 부담이 굉장히 많이 되었습니다.
분명 훌륭한 요양시설의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동시에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이라는 관념도 깨부수고 싶습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제대로 대접 받는 곳이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직원들을 대접하는 곳, 그리고 그 마음이 어르신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현재 시스템에서는 정부에서 나오는 비용이 일정한 만큼,
환자와 보호자가 부담해야 하는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나약한 사람이기에 사명감 하나만으로 일을 해낼 자신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게 남겨주신 많은 댓글을 보면서 내가 이런 응원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응원을 받아야 하는 분들은 적은 비용으로도 온전히 선의와 사명감으로 어르신을 정성으로 모시는
많은 요양시설의 원장님과 종사자분들이 받아야 하는 응원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눈팅만 하다가 떨리는 마음으로 첫 글을 올리고 나서 종일 감사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으로 혼란스러웠네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 개인적인 이야기, 그리고 요양원의 비용적인 내용도 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다음번에 다시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속 나무위키 문서 2.3. 가정의 패전 인용

"그런데 여기서 마속은 제갈량의 명령을 무시하고 길목에 세워야 할 방어진지를 산 꼭대기에 세우는, 전쟁사상 다시 없을 바보짓을 한다.
부장 왕평이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이마저도 무시해버린다."
닉넴바꾸기좋은날
22/12/15 18:58
수정 아이콘
요양원 공익으로서 근무하면서 많은 걸 봐서 공감이 되네요. 맞습니다. 생각보다는 우울함만 가득한 공간은 아니지요. 충분히 행복해하시는 어르신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보면서 제일 안타까운건 어르신들이 아니라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었습니다... 몇몇분들은 요양시설에 계신 어르신과 나이차이도 많지 않으셨고, 어르신 2.4명당 한명으로 - 채용기준이니, 실제로는 인당 5 ~ 6 명을 케어를 하셔야하죠. 야간은 말할것도 없구요. - 늘상 굉장히 바빴습니다.

더군다나 감사나올때마다 서류가 맞지 않는다고 질책받기도 하시고, 휴게시간이 휴게시간이 아니죠. 식사시간도, 근무시간도 늘상 일정적하지가 않습니다. 또 어르신에 대한 어떤 사고든 일차적으로 다 이분들이 책임져야 하고요.

이야기할 거리가 많지만, 이분들 인권은 도데체 누가 챙겨주시나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근데 더 안타까운건 정말로 헌신적으로 임하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닉넴바꾸기좋은날
22/12/15 19:00
수정 아이콘
좋은 요양원을 세우실거라고 느껴지십니다.
꼭 성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SAS Tony Parker
22/12/15 20:56
수정 아이콘
지금은 잠시 컴퓨터 글 쓴다고 쉬고 있지만
교회는 어떻게 돌아가는가 라는 시리즈 글을 쓸때 생각해보면 재정을 가장 관심있게 보더군요

근데 여기서 저도 그렇습니다 운영비..크크
글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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