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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2 18:47
애정하는 웹툰 <나이트런> 히어로편 1화에 위 시와 아주 유사한 상황이 나왔어서 그런지 엄청 몰입되네요.
전쟁을 끝낸 영웅으로 칭송받는 주인공은 평생 동안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던 인물의 무덤에 조의를 표하러 갑니다. 그런데 그 무덤의 주인은 사실 전쟁을 일으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게 한 극악무도한 학살자였습니다. 전쟁이 종식된 직접적인 원인은 주인공이 적진 한가운데에 잠입하여 그 친구를 암살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고요.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 친구는 주인공이 아주 어릴 때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살아온 분신 같은 존재였습니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라...... 흐흐흐 이런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멘탈이 찢어지는 장면을 악마같은 작가 김성민님이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지요. 저는 한 인물을 하나의 단어로 간략하게 표현하는 게 되게 쉽고 편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때까지 설명하는 작업은 비효율의 극단이며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축약된 개념 안에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 더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쟤는 MZ세대야], 라고만 말하고 끝나는 발언을 저는 아주 싫어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악한 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어지네요. 시를 읽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2/10/12 18:58
가장 끔찍한 악인에게도 이런 '울어줄 수 있는 여인'은 한 명이 있겠군요. 유령의 말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한 사람이요. 세상은 참 예외로 가득한 곳인것 같습니다. 거시적으로 정리하려면 어느 정도는 일반화를 해야겠지만, 가끔 세부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면 그게 도저히 갈수 없는 지점도 만나고는 하지요. 결국 그럴 때는 우리가 유령이 되고 마는 것일까요?
22/10/12 18:54
흐흐흐, 제가 스티븐 크레인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영어 시인 좋아해요!'라고 주변에 추천을 해도 워낙 짤막하다보니 거들먹거리는 느낌이 덜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레인의 다른 시들도 많이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2/10/12 19:04
유령이 옳은데 왜 여인은 울었는가. 애초에 옳고 그름과 눈물은 상관 없기 때문에...법에 눈물이 없는 이유 아닐까요
단편 작가라서 그런지 시가 아니라 단편처럼 느껴지는군요
22/10/12 20:42
'옳다'라고 제가 의역했지만, 원문은 더 직설적인 'just'라는게 참 신기합니다. 한국어로는 길어지니 호흡을 고려해서 바꿨습니다만, 엄밀히는 '유령이 사리에 옳다면/ 유령이 하는 말이 정의롭다면/ 유령이 마땅한 말을 한다면'에 가까운 것인데, 따지고보면 되게 이상하죠. 시의 시작부터 Wicked/나쁜 자라고 시적인 나레이션이 밝히더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유령에게 대놓고 '그가 마땅하다'라고 해버리니까요. 마치 고의로 목소리의 신뢰성을 낮추려는 단호박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가 좀 반어법적으로 쓰인게 아닌가 스스로 생각합니다. 선악을 판단하려는 녀석만큼 믿기 힘든 목소리가 어디있겠습니까. 어쩌면 화자는 법일지도 모르겠네요 흐흐. 법적인 팩트로 적힌 소설이라니 귀하군요.
스티븐 크레인의 단편소설들은 대표작 '붉은 무공훈장'이나 '오픈 보트 (단편집 내부의 단편이다보니, 구명정, 난파선 등등 번역이 다양합니다)'는 오히려 소설치고는 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간단한 플롯이지만 시각적인 이미지를 끊임없이 던지면서 줄거리를 끌어나가려는 면모가 강하다는 평을 받는데, 신기하게도 시는 말씀하시는 것처럼 정반대 평가를 받습니다. 제가 스티븐 크레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시가 이미지를 던지는 것과 달리, 오히려 '플롯'을 던지는 특성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보여드린 3개의 시, 그리고 지면상 생략했지만 제가 또한 정말 좋아하는 "Once there came a man" 같은 경우도 어떤 느낌을 줘서 시적으로 좋다, 보다는 '이야 기발한 첫 줄거리네?, 앞에는 무슨 일이 있던 것이고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이런걸 적은거지?'라고 생각하게 만들지요 크크크. 상당히 재미있는 작가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요절해서 작품이 적다는 것이 아쉽지만 그런만큼 하나하나 곰씹기도 좋지요~
22/10/12 19:11
선문답은 항상 애매모호하죠. 그런게 선문답의 맛이긴 하지만요. 크크 많은 것들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암시하지 않으면서 시치미를 떼는 것이겠죠.
22/10/12 20:47
덕분에 최근에 영화 '놉 (Nope)'를 보았습니다. 정말 제 영혼에게 울리는 선문답이더라고요 크크크. 저 같이 취향이 맞는 사람이야 '어떻게 내 영혼에 이리 맞는 질문을 던졌을까?' 싶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흘러들어갈 마이너한 문제의식을 가지고서 소란을 부린 것인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크크크. '아무 것도 암시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뗀다'라 마치 제가 최근에 제 인생의 트라우마 (그러니 솔직히 다른 분들이 받아들이시기나 할까 생각했던)를 한편의 소설로 적었던 일하고 비슷하네요 크크크. 그래서 제가 스티븐 크레인의 시를 좋아하나봅니다.
거참 똑똑하신 글쟁이께서 '이건 이런거다'라고 적힌것만 따라가도 시간이 모자란데 '이건 이렇다고 생각안하나요?'라고 적어두면 그러라는건지 말라는건지 지적으로 재미있습니다 흐흐흐.
22/10/12 20:54
흐흐 재밌게 보셨다니 좋네요. 저는.. 음.. 음… 크크
여튼, 이게 맞다 아니다를 가리는 과학도 미지의 영역에서는 이렇지 않을까?를 시전할 수 밖에 없는데 인문학적 선문답은 얼마나 더 혼란스럽고 재밌는 것입니까 크크 아인슈타인도 이건 아닌데? 했다가 수정했다가 다시 옳은 거 아냐?하는 게 있는 세상에서 다른 시각, 그것도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건 그만큼 지적 탐색 혹은 유희에서 놀랄만큼 신나고 재밌게 즐길 거리죠. 크크 이번에도 저에게 새로운 영역을 살짝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22/10/12 19:34
우와 저도 영어로 된 시를 읽어본게 거의 1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이 시인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크랩합니다~~
22/10/12 20:55
흐흐흐, 요즘 우리도 조금씩은 영어를 할줄 아는 세상인데 영시가 너무 어렵다는것도 편견이죠! 되게 재미있는 작품들도 찾아보면 많아서 재밌는 분야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시에서도 이런저런 구절이 일상에서 쓰이다가 '아니 이게 여기서 온 말이구나?' 할때가 많은데 영시도 슬슬 문화교류가 많아지다보니 고-전은 다 거기서 거리더라고요!
22/10/12 19:54
매미소리 쏴-
아이는 구급차를 못 쫓아왔네 전 이시바미 히데노의 이 하이쿠가 인상적이더라구요. 김연수 작가의 수필집에서 처음 읽었을 때 전율했습니다.
22/10/12 20:57
이 시는 이렇게 두가지 해석하는 무리가 갈리는것 같습니다 크크크. 객관적으로 악인에게 한명의 콩깍지가 껴서 궁상을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정당한 사람에게 다른 3자가 와서 '이 사람은 악하다~'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인지, 도대체 시가 고의로 설명을 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군요! 어쩌면 두가지 면모를 전부 다룰려는 야심찬 시도인지도 모르겠네요
윗 댓글에서 살짝 적게 되었습니다만, 처음보는 하이쿠인데 상당히 '플롯'적인 면모가 맘에 드네요. 무슨 구급차인지, 아이가 어쩌다가 구급차를 쫒지 못한 것인지, 그게 이 뒤의 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도저히 설명을 안해주니까 너무나도 간질간질거립니다. 좋은 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라는 것도 이미지보다는 플롯에 집중할 수 있다는게 새삼스럽게 신기합니다
22/10/12 21:07
저는 스페인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https://youtu.be/LJc7wXa9JG8 이제는 스페인에서도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 아니면 알지도 못하는 노래인 '이요 델라 루나'는 좋아합니다 크크크. 번역이라도 보고 좋다고 느끼면 모종의 소통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 좋은것은 언어를 배워서 운율하나, 뜻 하나도 파고드는 것이겠지만요)
스티븐 크레인의 경우에도 토익 시험보다도 더 쉬운 문장으로 썼으니, 접할 수만 있다면 아주 쉬운 시인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맘에 들더라고요~
22/10/12 21:09
크크크크, '작가의 죽음'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적은 의도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읽는 사람이 있는데요 흐흐. F를 맞으셨다니 교실에서 시를 만나셨군요. 우리나라 수능도 그렇고 교실만큼 시를 만나기 최악의 장소가 어디 있나 싶습니다. 비록 처음 만나게 해주는 역할은 잘 해주지만... 그걸로 시험이라도 친다면 으아.
우는게 취미인 사람도 있을까요? 슈퍼히어로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있는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답변일지도 모르겠네요
22/10/12 21:10
혹시 유령이 아니라 필멸자였으면 무시했으려나요 크크크. 그렇게 힘들게 집에서 사람들 뿌리치고 나왔는데 말이야~ 이제는 귀신까지 아주 쌍으로 난리군요. 도대체 얼마나 악했으면 세상이 요즘말로 억까를 한답니까.
22/10/12 21:14
망탁조의도 채옹이 한명씩 있었겠군요. 조조가 지금도 효자로서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채옹은 정말 왜 죽었나싶습니다. 저는 그래서 삼국지에서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진공대의 이야기입니다. 진궁의 죽음과 조조와의 대화를 생각하면서도 읽을 수 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인 크레인은 알지 못했겠지만,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동양에서 말하는 '충'이라는 것을 다룬 시로도 보이는 것이 재밌네요
22/10/12 21:15
'아 헌화는 이런 꽃으로 하는거 아닌데~'라는건가요 크크크크. 엄근진은 역시 훈수의 민족이군요. 이런 해석도 좋아합니다. 악한 사람이라도 절차는 지켜야죠~
22/10/12 22:44
여인이 꽃을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정도로 같이 담아봤습니다 헤헤
묘한 분위기의 시를 읽으니 이 시가 생각이 나요. 나무 - 천상병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 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 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22/10/12 21:21
무덤에 다른 꽃이 없고 자신이 꽃을 주는 것마저 안 된다하니 그게 슬펐던 것 아닐까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추모할 수조차 없다면 어떤 감정일까요. 연애 감정이 아닌 어머니와 악한 자식의 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식이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모성애로 품으려는 어머니들도 있으니까요. 작가가 무슨 의도로 썼는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나름 국어 선생인데 문학을 보고 깊게 생각한 건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22/10/12 21:41
오, 이 시를 모자관계로 보는 해석은 저도 또 처음이네요. 정말 괜찮은 해석이라고 봅니다. 제가 비록 단어 maid를 (그러니까 결혼하지 않은) 처녀 또는 아가씨라고 옮길 수 있는 것을 한국어 단어의 다른 느낌이 잡아먹을까 걱정해서 '여인'이라고 옮겼지만, 그래도 '모성애'가 어느정도는 성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에게도 수 많은 여자들이 꼬였다고 하죠, 테드 번디에게도요. 그리고 그 maid들을 잡아당긴 원동력은 '모성애'였다고들 합니다. 어쩌면 대중매체나 매스컴에 대한 코멘트로도 확장될 수 있겠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정확했던 번역에 사과드립니다...
22/10/12 21:25
저도 셰익스피어 소넷을 참 좋아했습니다마는
Thy thee 이런것들이 그시절엔 읽기 어려워서인지 운율만 느껴지고 내용은 안들어와서 포기했습니다 그렇지만 읽으면 뭔가 당기고 미는 리듬? 그런 느낌이라 참 좋았습니다.
22/10/12 21:50
네 저도 셰익스피어는 정말 언어의 마술사이자 리듬의 마술사인게, 요즘 기준으로는 본업인 극작가도 그냥 가요 작곡가도 아니고 완전 래퍼라고 생각합니다 크크크크. https://youtu.be/aqJKN4kixyc 정말 맥베스에서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독백은 인간의 입으로 깔아버리는 비트 그 자체이며, "It is a tale / Told by an idiot, / full of sound and fury, / Signifying nothing." 이라는 끝부분은 정형화된 압운이 없이 '플로우'만 있는데 쭉쭉 빨아들이죠 아주 크크크. 심지어 의미적으로는 이야기의 전개까지 안에 담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셰익스피어 소네트 18번도 아무리 봐도 신춘문예보다는 쇼미더머니에 나와야할 것 같이 생겼죠 (시조에 해당하는 정형시 소네트 답게 애초에 양식이 굳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만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45087/sonnet-18-shall-i-compare-thee-to-a-summers-day )
물론 이 모든게 하필이면 요즘 영어도 아니고 근대영어의 태동기에 만들어진 물건이니 도대체 말을 뭐이리 비비꼬면서 이상하게 하냐... 라는건 저도 백분 동감합니다. 그래도 옛날 사람 답게, 욕을 때려박아도 플로우와 함께 박았던 http://www.pangloss.com/seidel/Shaker/index.html? 능력을 보면 역시 혀와 예의가 가득했던 전근대 사람의 힙함이 느껴집니다 크크
22/10/12 22:10
소넷 18을 처음 접했을때 이해가 하나도 되지 않았지만, 글자 형태만으로도 전율이 오는(?)... 미친 마법의 시인 것 같습니다.
22/10/12 21:52
개인적인 감상을 써보자면... 사실 묘비 아래에 묻힌 이가 악한 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지요. 그럼에도 일단 묘비에 묻힌 이가 악하고, 또한 그런 악한 이에게 "꽃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유령의 말에 대해서 독자는 딱히 의문을 품지 않게 되고, 다만 여인이 왜 울고 있는지, "설령 악한 이라도 울어도 되는 경우가 있는가?" 뭐 이런 쪽으로 사고가 고정되게 되네요. 시인의 마지막 반문 이전까지는요. 스티븐 크레인이 "악한 자의 무덤"이라고 칭함으로써 그 대상이 되는 묻힌 이는 다른 가능성이 모두 배제되고 단순히 "악한 이"로만 읽히게 된다고 해야 할까요. 더 나은 표현이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중심부의 주변부에 대한 폭력, 뭐 그런 느낌이 나네요. 어떤 작품에 대해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는 작가의 등장인물에 대한 폭력? 크크 쓰다보니 좀 꼬이는 느낌이네요.
그래서 제가 만약 이 시에 대해서 에세이를 써야 한다면 작가 품속에서 작품을 훔쳐내서 제 마음대로 "묻힌 이는 사실 악한 이가 아니고, 그가 악하다고 하는 유령, 그리고 작가는 틀렸고, 나 역시 졸지에 악한 이가 되어버린 그를 위해 울겠다" 라고 주장하고 싶네요 크크크
22/10/12 22:00
흐흐흐, 말씀하신 풀이가 '다수론'이긴 하더라고요. 작가가 폭력을 직접 저지르면서, 사회, 권력, 다수가 무언가를 '악하다'라고 낙인 찍는 것을 경계하게 만든 글이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결론을 낸다고해도 다시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집단에서의 도덕 기준을 '개인'에게 두는 것이 옳은가요? 선과 악은 누가 어떻게 나누는 것일까요. 작가가 대놓고 이야기를 곡해한다면 문학이란 무엇일까요 등등이요 흐흐흐.
22/10/12 23:27
왜 울면 안될까요?
무덤에 꽃을 놓는다는건 사회적 의미가 있으니, 그 악인에게 아무도 꽃을 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는 것은? 사회가 개인의 개인적 감정마저 통제해야 하는 걸까요?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라도?
22/10/13 00:21
이 댓글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데 여성은 왜 울었을까?'라고 물어보는건 유령조차도 아니고 작가로군요. 상당히 특이한 시가 아닐수가 없습니다.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더해놨을까요. 진심으로 '감정마자 통제하자'라는 말이었을지, 그냥 문제를 제시한 것인지, 정말 궁금증이 늘어납니다.
22/10/13 10:30
정당한 발언을 하는 이는 유령이고 눈물 흘리며 꽃을 바치려는 이는 인간입니다. 유령은 역사와 도덕 같은 거대담론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재하지는 않으면서도 사라져 버리지도 않는 존재.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살아 숨쉬는 실제 인간에게 훈수 두고 간섭하는 존재. 그런데 그런 존재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할지라도 인간은 결국 자신의 삶이라는 구체적이고 제한적인 맥락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사막에서>가 힘든 삶을 살다 요절한 시인의 감성을 잘 드러낸 것 같아 더 와닿는 바가 크네요.
22/10/14 02:10
흐흐 저는 <사막에서>가 2등픽인데 다르게 생각하시는군요. 스티븐 크레인의 삶은 정말 예술가라면 다 그런지 몰라도 '억까' 투성이였으니 시가 이렇게 된 것도 이해가 갈 정도입니다 흑흑.
거대담론 앞에서 저항하는 인간도 아니고, 거대담론이 있어도 제한적인 맥락에서 사는 인간이라니 정말 멋있는 말씀을 해주셨네요. 저도 기억하겠습니다.
22/10/14 17:53
1. wicked maid 가설
2. spirit(Zeitgeist) 가설 3. 친족 가설: e.g. 안티고네 4. 양면성 가설: e.g. 채옹 정도가 떠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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