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책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치 않으신 분들은 책을 먼저 읽으신 후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가 바질 홀워드(Basil Hallward)는 사교계 모임에서 청년 도리언 그레이(Dorian Gray)를 만난 후 그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결국 바질은 도리언을 모델로한 초상화를 그려 도리언에게 선물합니다. 도리언은 아름다운 용모와 순수한 정신을 가진 청년입니다. 도리언은 바질의 친구인 헨리 워튼 경(Lord Henry Wotton)에게 자신의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찬사를 들으면서, 세월이 흘러 현재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와 마주치게 됩니다. 도리언은 바질이 선물한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자신을 대신하여 초상화 속 도리언이 대신 늙어줬으면 하는 소망을 품습니다.
도리언은 헨리 워튼 경과 만나는 시간이 늘어나며 점점 쾌락의 늪에 빠지고 맙니다. 도리언은 첫 사랑이었던 여배우 시빌 베인(Sibyl Vane)이 형편없는 연기력을 보여주자 그녀에게 비참한 모욕감을 주며 이별을 통보하게되고, 결국 상처입은 그녀는 자살을 선택합니다. 시빌 베인의 자살 사건 이후, 놀랍게도 도리언의 바람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도리언 대신 초상화 속 도리언의 인상은 미묘하게 변해있었고, 이후 약 18년이 흘렀음에도 40대에 가까운 도리언은 여전히 소년의 아름다움을 유지한 반면 초상화는 그 동안 도리언의 쾌락에 찌들은 인생이 반영된 비열하고 사악한 표정의 늙은 도리언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바질은 자신이 직접 그린 초상화의 비밀을 눈치챈 후 기절초풍을 하게 됩니다. 그 동안 타락한 인생을 살아온 도리언에게 바질은 강한 비난을 하게 되고, 도리언은 기어이 바질마저 죽이게 됩니다. 타락한 자신의 모습에 더 이상 견딜수 없게된 도리언은 결국 초상화를 없애버릴 생각에 바질을 죽인 나이프로 초상화를 찌릅니다. 그러자 초상화 속 도리언은 젊고 아름다우며 순수한 도리언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고, 늙고 타락한 도리언이 초상화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결국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 작품의 주요 테마는 '자아 분열'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여러 가지의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 같은 평범한 일반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족들과 있을 때의 나, 직장에서의 나, 친구들이나 지인들 사이에서의 나, 혼자 있을 때의 나, 지금처럼 글을 쓰고 있을 때의 나는 모두 각각 전혀 다른 사람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와 실제 도리언 그레이를 통해 순수와 타락이라는 두 가지 자아 분열을 표현한 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세 가지 자아를 주요 세 명의 캐릭터에게 투영했다는 점입니다.
바질 홀워드는 제가 생각하는 저의 모습이고, 헨리 경은 세상이 바라보는 저의 모습이며, 도리언은 제가 되고 싶어 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 오스카 와일드
바질 홀워드는 누구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순수한 예술가' 입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아름다움'과 '예술' 그 자체일 뿐입니다. 바질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그 어떠한 것도 개입되어선 안됩니다. 제가 서구 철학은 잘 알지 못하지만, 이러한 '아름다움 자체'를 추구하는 것을 '유미주의(唯美主義)' 혹은 '탐미주의(耽美主義)'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유미주의적인 관점에서 미의 기준은 도덕성이나 쾌락 등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바질은 도리언 그레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도리언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러나 바질에게 도리언은 그저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고취시켜주는 모티브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바질이 도리언을 곁에 두고 싶은 이유는, 도리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바질의 예술적 감각이 한층 고취되어 자신의 최고의 걸작들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바질의 걸작 중 하나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도 그러한 배경에서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바질은 이 작품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시하기를 꺼려합니다. 바질이 생각하기에 이 초상화에는 도리언 그레이의 '순수한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도리언 그레이를 찬양하는 자신의 사적인 감상이 너무 많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질이 추구하는 '순수한 예술'에는 벗어난 작품입니다. 그래서 바질은 이 초상화를 도리언 그레이만 볼 수 있도록 그에게 선물합니다.
바질은 항상 도리언의 아름다움을 극도로 찬양했으며, 오랜시간을 도리언과 함께 보냈습니다. 그러나 작품 내내 바질과 도리언 간의 인간적인 교류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마 바질에게 도리언은 '순수함 아름다움'을 간직해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자신의 영향이 도리언에게 입혀지지 않도록 어떠한 감정적인 교류도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바질은 도리언의 타락한 인생이 담겨 추악하게 변해버린 초상화를 보자, 도리언의 타락에 대해 격렬하게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추악한 도리언을 그 동안 찬양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후회를 합니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도리언은 바질에겐 더 이상 숭배할 필요가 없는, 무가치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도리언이 바질을 잔혹하게 죽여버린 것은 소설 줄거리상 도리언이 이제 더 이상 타락하기 전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점을 암시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극히 소설 속 인물의 감정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본인의 타락을 나타내는 초상화를 그린 장본인에 대한 증오 뿐만 아니라, 본인이 타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어떠한 인간적인 교류나 가르침도 없이, 자신을 단순히 '순수한 예술'로만 대했던 바질의 비인간적인 무관심에 대한 원망이 섞여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09년작 영화 '도리안 그레이'에서 바질 홀워드
별칭 '해리'로 불리는 헨리 워튼 경은 바질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헨리는 도리언에게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쾌락의 유혹을 계속해서 주입합니다. 유미주의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움'에는 쾌락은 물론 어떠한 것도 개입되어선 안됩니다. 도리언이 헨리가 주입한 쾌락으로 인해 타락해 나가자 도리언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초상화는 점점 아름다움을 잃고 흉측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헨리가 그저 사악한 인물로 묘사되었으면, 작품의 개연성은 크게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밉상인 짓을 골라 하면서도 도리언을 타락시키기 충분한, 매우 매력적인 '마성의 남자'로 묘사됩니다. 헨리는 주로 혼자 신나서 떠들 때가 많으며, 항상 설교하는 말투로 주변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의 대화에는 항상 비꼬는 말투가 가미되어 있으며 특히 사랑과 여성, 그리고 자국인 영국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냉소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곁에 두기 싫은 사람임에도, 그가 쏟아내는 말 자체가 너무 재기 발랄하기 때문에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헨리 워튼 경을 '어쩔수 없이' 좋아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헨리라고 했습니다. 즉, 독자가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를 상상할 때, 가장 외면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인물이 헨리일 것 같습니다. 헨리의 재기 발랄함을 말씀 드리기 위해 책에서 헨리의 여성관이 드러난 몇 가지 문구를 가져와 봅니다. 개인적으로 이 문구들에게 전적으로는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중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도 '이 미친 사람은 대체 뭐야?' 라며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점점 특유의 재치와 능글능글함에 빠져들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순수했던 도리언 그레이가 괜히 타락하게 된 게 아닙니다.
도리언, 결혼은 절대로 하지 말게. 남자들은 지쳐서 결혼하는 반면에 여자들은 호기심 때문에 결혼하지. 여자든 남자든 다 실망하기 마련이야.
우리 할머니 세대들은 재기 넘치게 말하려고 화장을 했네. 입술연지와 재치가 함께 붙어 다니곤 했지. 요즘 사람들한테서 그런 우리 할머니 세대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어. 요즘 여자들은 자기 딸보다 열 살 어려 보일 수만 있다면 더없이 만족한다고.
바질 : 하지만 도리언의 가문과 지위, 재산을 생각해봐. 자신보다 수준이 한참 아래인 여자와 결혼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헨리 : 바질, 만일 도리언을 그 소녀와 결혼하게 만들고 싶으면 그에게 그렇게 말해. 그럼 도리언은 꼭 결혼하고 말 거야. 인간이 철저하게 어리석은 짓을 할 때는 항상 가장 고귀한 동기가 있기 때문이야.
도리언 : 해리, 당신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인생의 황금기를 준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헨리 :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여자들은 항상 그 대가로 아주 작은 푼돈까지도 남기지 않고 받아내려 하지. 바로 그게 문제야.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에서 헨리 워튼 경의 역을 맡은 박은태 배우
마지막으로 작품의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는 바질이 추구하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작품이 지날수록 헨리가 추구하는 쾌락을 좇는 인물입니다. 작품에 도리언 그레이의 외모에 대한 명확한 묘사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면, '소년의 아름다움'이라고 했으니 중성적인 '잘생쁨'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또한 순수함과 타락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하니 얼굴에는 '소년미'와 '퇴폐미'가 동시에 드러나야 할 것 입니다. 그렇게 상상하다 보면, 요즘의 배우들 중에서 '티모시 샬라메(Timothée Chalamet)'가 가장 도리언에 가까운 외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티모시 샬라메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화를 기대해 봅니다.
도리언 그레이는 헨리 경을 따라 타락을 일삼지만, 바질의 초상화가 대신 희생해준 덕분에 그의 외적인 아름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의 타락에 악명이 빗발쳐도, 도리언을 실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악명들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도리언의 매력에 다시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도리언 대신 추악하게 늙어가는 도리언의 초상화는 도리언이 가진 최후의 양심의 역할을 하며 작중 내내 도리언의 마음을 괴롭힙니다. 그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는 순간, 도리언은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배우 티모시 샬라메, 도리언 그레이의 실물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다시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생각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작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을 '극단적인 유미주의 예술가(바질 홀워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항상 외부의 영향을 모조리 차단한 '순수함 아름다움'을 추구해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작가를 '매력적인 냉소주의자(헨리 워튼 경)'로 바라봅니다. 사실 현대인들도 오스카 와일드라고 하면 그의 진지한 작품관보다는 그의 흥미로운 생애, 수많은 어록들 그리고 동성애를 비롯하여 그가 뿌리고 다닌 스캔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누구보다 도리언 그레이가 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 아름다움에 영향을 끼쳐선 안되는 쾌락적 삶을 추구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의 소유자. 그럼 마지막으로 작가가 책의 서문에서 말한 '예술을 드러내고 예술가를 숨기는 것이 예술의 목표이다'라는 유미주의적 관점으로 봤을 때, 작가의 자아가 너무나도 잘 드러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과연 예술일까요? 아니면 예술이라 부르기 힘든 심심풀이 소설에 불과할까요? 이런 자기 모순적인 모습까지 오스카 와일드 스스로의 자아의 일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측해 봅니다. 세상에 모순 없는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 링크의 브런치를 방문하시면 더욱 많은 글들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