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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3/16 12:00:17
Name 아난
Subject [일반] 어떻게 인종적 불비례는 경찰 폭력의 패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가 (번역)
How Racial Disparity Does Not Help Make Sense of Patterns of Police Violence (Adolph Reed)
어떻게 인종적 불비례는 경찰 폭력의 패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가 (아돌프 리드)

• 출처: 논사이트 / 2016년 9월 16일
https://nonsite.org/editorial/how-racial-disparity-does-not-help-make-sense-of-patterns-of-police-vio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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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경찰에 의해 살해되는 사람들 중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미국인 중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의 거의 두배이다. 미국에서 경찰에 의해 살해되는 사람들 중 라티노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미국인 중 라티노가 차지하는 비율과 거의 같다. 미국에서 경찰에 의해 살해되는 사람들 중 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미국인 중 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의 4분의 3 바로 위와 5분의 4 바로 아래 사이이다. 이 불비례는 Black Lives Matter 라 불리는 운동, 그리고 자의적인 백인 공권력의 수중에서의 임박한 죽음 위험이 미국에서 흑인의 지위의 근본적인, 확정적인 조건이어 왔다는 끊임없는 주장의 근거이다.

이 논변 노선과 불만, 그리고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의례적 선언들에 대한 요구는 “인종주의”가, 그 불비례로 표현되는 부정의의 원인이자 이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 – 인종주의가 경찰이 자행하는 살해 패턴의 단일하거나 최고의 부정의임을 함축하는 주장 - 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인종적 불비례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한 걸음 물러서면 백인이 매년 경찰에 의해 살해되는 사람들의 거의 절반이라는 사실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인종적 불비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요구는 동시에 다른 가능한 인과적 불비례들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요구이다. 경찰 살해의 95%가 중위 가구 소득이 10,000 달러 미만인 동네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100만명당 경찰 살인율이 가장 높은 주들은 백인이 가장 많이 사는 주들이다. 이 주들에서 경찰 살인의 높은 비율이 그 주들의 매우 적은 흑인 인구에 집중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찰에 의해 살해된 29명 중 17%가 흑인인 콜로라도를 예외로 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우스 다코타, 와이오밍, 알라스카에서 경찰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 중에는 흑인이 없었다. 뉴 멕시코에서 2015년에 경찰에 의해 살해된 20명 중 흑인은 없었다. 아리조나에서는 경찰에 의해 살해된 42명 중 2% 조금 위만이 흑인이었다.  

이 주들에서 분명한 것은 경찰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 대다수가 라티노, 네이티브 아메리칸, 그리고 가난한 백인들이었다는 것이다. 경찰 살인율이 높은 주들의 패턴이 시사하는 것은 경찰 폭력에 대한 비판적 논구의 초점이 될 수도 있었다. 즉 그 패턴은 보복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해 산출된 경제적으로 주변적이고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계급 인구의 주머니들을 봉쇄하고 억제하라는 명령으로부터 출현하는 치안 유지 접근법의 산물이다.  

우리가 흑인이 최대 희생자들이라는 주장과 더불어 시작하고 끝내야 하며 공허한 구호들의 영창에 의례적 순종을 바쳐야 한다는 목청 높은 강조는 실질적으로는 경찰 폭력 패턴의 보다 심층적인 원인들 - 가파르게 역행적인 상향 재분배와 그것의 사회적 수반물들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체제의 강화 - 에 주목하지 말라는 요구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의도들과 목적들 면에서 경찰 폭력은 주로, 배타적으로는 아니어도, 흑인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가운데 우리가 효과적으로 그것에 도전할 수 있을 정치적 동맹을 구축하기 위한 유일한 토대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켜야 한다는 요구이다.

흑인 신체들이 인종주의적으로 경시당해온 면면한 역사라는 이미저리에 관한 또 하나의 계시적인 데이터는 경찰의 25세 이하 흑인 살해가 1968년에서 2011년 사이에 79% 감소했으며 같은 기간 동안 25세 이상 흑인 살해는 61% 감소했다는 것이다. 그것 또한 별로 놀랍지 않다. 시민권 운동이 거둔 승리는 투표권법의 함의가 실질적이었던 것만큼이나 실질적이었다. 도심 흑인 지구에서의 일상적인 경찰 테러는 그 당시가 현재보다 전반적으로 더 악질적이었다. 전혀 공허한 과장법이 아니었던, 그 당시 블랙 팬더의 몇 개 안되는 구호들 중 하나는 경찰의 역할을 흑인 커뮤니티의 “점령군”으로 특징지었다.  

내 요점은 경찰 폭력에 관한 격분을 폄하하거나 부정의의 중력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다. 경찰 살인율의 감소나 실질적인 방향 변화에 주목함으로써 흑인에 대한 경찰의 폭력의 성격과 근원을 이해하는데 “인종주의”나 “백인 우월주의” 같은 물화된, 초역사적 추상물들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인종주의와 백인 우월주의는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전혀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것들은 기껏해야 사회적 맥락들 속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더 복잡하거나 적어도 별개적인 행위들의 단축된 특징화들일 뿐이다. 나쁘게는,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더 자주는, 그것들은 설명의 대안들로 제시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은 이슬람 연합의 야쿱 이야기처럼 일종의 악마 이론으로 기능한다: 인종주의와 백인 우월주의는 세계 속에서 사태들이 독립적으로, 즉 마술적으로 벌어지게 할 수 있는 것들로 표상된다. 이것은 인종주의는 미국의 “국가적 질병”이나 “원죄”이다와 같은 정식화들에서 표현되는 판타지이다. 이 정식화들은 우연찮게도 자유주의적 인종 관계 이데올로기의 요소들인데, 이 이데올로기는 전후 미국 정치 담론에서 정치경제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며 심리학 및 편견과 불관용이라는 개인주의적 관념들에 뿌리를 둔 인종적 평등 관념의 분절들로서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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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논지만 축약번역했습니다. 필자인 아돌프 리드는 펜실베니아 대학교 정치학 명예 교수로 인종주의와 미국 정치 문제를 전문으로 합니다. 흑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글에 부제를 단다면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 가장 적합할 것입니다. 이 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필자가 자신의 동료로 언급하는 월터 벤 마이클스 Walter Benn Michaels 는 '계급정치의 일차성'이라는 이 글의 논지의 줄기찬 주창자들 중에서도 선구자급에 해당하는 인물인데, 몇년 전에 이 양반이 같은 논지로 New Left Review 52호 (2008년)에 기고한 ‘Against Diversity’를 읽은 기억이 있어요. 그 기고문은 Walter Benn Michaels, The Trouble with Diversity: How We Learned to Love Identity and Ignore Inequality (2006) 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이 양반의 국역된 저서는 원서가 2004년에 출간된『기표의 형태: 1967년부터 역사의 종언까지』(The Shape of the Signifier: 1967 to the End of History) 딱 한 권인데, 비평이론에 관심깊은 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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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6 12:37
수정 아이콘
본문과 연관되어 있지만 조금 다른 논지의 내용으로, 저번 달 Science지에 미국 시카고 경찰관의 인종 (및 성별)에 따라 어떤 인종을 많이 체포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올라왔는데, ​흥미로웠습니다.
요지는 백인 경찰관이 다른 인종 경찰관에 비해 체포율 자체도 높고, 체포한 사람 중 흑인 비중도 더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71/6530/696)

본문은 번역기를 돌린 건지 조금 읽기가 힘드네요. 제목의 "인종적 불비례" 뿐 아니라,
"자행하는 살해 패턴의 단일하거나 최고의 부정의임을 함축하는 주장"
"부정의의 중력을 경시하는 것"
"별개적인 행위들의 단축된 특징화들일 뿐이다."
"인종적 평등 관념의 분절들로서 출현했다."
등의 표현이 해석이 잘 안되는데, 뭐 제 독해력 탓도 있겠지만요....
척척석사
21/03/16 12:40
수정 아이콘
글쓴분께서 직역투의 번역을 많이 하시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친숙한 단어로 의역한다거나 하는 게 전혀 없어서..
21/03/16 13:33
수정 아이콘
제가 '불비례'로 번역한 낱말은 흔히 '격차'로 번역됩니다. 저는 '격차'보다 '불비례'가 더 잘 이해가 되어서 '불비례'로 했습니다.

'별개적인 행위들'이란 문맥상 '인종주의와 무관한'으로 이해됩니다. '별개'는 한국어에서 '현재 언급되고 있는 경우 - 이 글에서는 인종주의라는 경우 - 에 속하지 않아서 따로 놓아야 하는'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단축된 특징화'는 경찰들의 흑인 살해라는 행위패턴에 대한 충분히 자세하지 않은 기술(記述)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분절'로 옮긴 낱말일 'articulation'은 흔히 '표현'으로 번역됩니다. 그런데 저는 'expression' 외의 낱말을 '표현'으로 번역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의미는 '명료한 발음'입니다. 인간 언어에 속하는 음들이 명료하게 발음되도록 구성되어 있죠. 이 구성은 기본적으로 자음과 모음의 결합입니다. 이 결합을 분절이라고도 합니다.

'부정의의 중력'은 '부정의의 실질성/현실성'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냥 제일 쉽게 '부정의의 무게'라고 해도 안 될 것은 없습니다.

'자행하는 살해 패턴의 단일하거나 최고의 부정의임을 함축하는 주장' 은 '경찰들이 유독 흑인을 많이 살해하고 그 살해 행위는 말할 것도 없이 정의롭지 않은 것인데, 흑인을 상대로 한 인종차별주의적 행동이라는 점이 그 정의롭지 않음의 유일한 성격이거나 핵심이라는 주장' 정도로 풀수 있을 것입니다.
쩌글링
21/03/16 14:59
수정 아이콘
에세이가 아닌 이상 부드럽게 읽히도록 의역하는 것보다 단어 사용 의도를 명확히 하는 본문과 같은 번역이 나은 것 같습니다. 번역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글이지만, 저는 오히려 영어로 읽을 때 오히려 자연스러운 'And the shrill insistence that we begin and end with the claim that blacks are victimized worst of all and give ritual obeisance to the liturgy of empty slogans is—for all the militant posturing by McKesson, Garza, Tometi, Cullors et al.—in substance a demand that we not pay attention to the deeper roots of the pattern of police violence in enforcement of the neoliberal regime of sharply regressive upward redistribution and its social entailments.' 같은 문장을 성실하게 한글로 번역하신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metaljet
21/03/16 12:42
수정 아이콘
만약 저자의 의견이 "인종주의”나 “백인 우월주의” 는 '물화된, 초역사적 추상물' 이라고 하면서 "불평등" "계급갈등"이 그 자리를 온전히 대체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좀 우습네요. 골고루 어느정도 지분이 다 조금씩 있겠죠.
21/03/16 13:45
수정 아이콘
어느정도 지분이 다 조금씩 있을텐데, 그냥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고 관계를 맺고 있겠죠. 그러니 그 관계를 파악해야죠. 물론 그 관계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같이 비대칭적인 것일 수도 있겠죠. 물화나 역사적 추상화라는 것은 인종주의를 계급관계 등등 다른 사회적 관계들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려 드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죠. 사실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인종주의는 여성혐오나 남성혐오처럼 설명항이 아니라 피설명항이어야 하죠. 그런것들이 자신들은 그 발생/출현/존속이 설명될 필요가 없는 일차 설명항이라는 생각은 불가사의한 생각이죠.
metaljet
21/03/1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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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관점에서 파악해볼 여지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노동계급이 가진 인종주의는 자본가계급의 "divide and conquer" 전략에 의해 조작된 허위의식이기에 노동해방이 되면 다 사라진다!> 라는 맑스주의자들의 구태의연한 주장이 더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건 어쩔수가 없습니다.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3/1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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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ljet님의 지적이 정통(?) 맑스주의적 시각이기는 한데, 제가 알기로는, 맑스주의자라고 해도 오늘날 여전히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민족, 인종, 여성, 성소수자 등등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의 모순과 억압은 생산양식의 모순으로 환원할 수 없는 독자적인 역사를 가진 걸로 파악하는 편일걸요.(제가 아는 그 대표적 인물로 데이비드 하비를 꼽을 수가 있고요.) 물론 그렇다고 오늘날의 맑스주의자들이 사회적 정체성 문제를 자신들의 사유와 작업에서 주된 문제로 삼는 건 아니긴 하고, 미시적인 사회적 정체성 문제에만 천착하는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학문적 경향에 대해 매우 비판적 태도인 건 사실이긴 한데, 그렇다고 노동해방이 이뤄지면 모든 사회적 모순이 사라진다거나, 인종모순(인종주의)은 계급모순에서 파생된 부차적 모순이거나 의사모순에 불과하다는 과감한(?) 주장을 펴는 사람은 제가 아는 한, 거의 없거나, 있어도 별 영향력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metaljet
21/03/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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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역시 드는 의문은 unterbau와 전혀 관계없는 사회현상이 있다고 이야기할수 있는 사람이 과연 <맑스주의자>의 정의에 부합하는가... 이긴 한데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3/1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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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이건 몇가지 독서를 통해서 얻은, 제 생각이기는 한데, 그래서 말씀드리기 대단히 조심스럽지만, 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자본주의 생산양식, 즉 경제적 토대와 전혀 관계없는 사회현상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진짜' <맑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즉 <맑스주의자>는 모든 사회현상은 그 근본에 있어서 생산양식의 모순으로부터 생겨난다는 믿음을 공유한다고 한다면, 오늘날 <맑스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 '진짜' <맑스주의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본래 맑스의 사상은 무엇인가, 맑스주의는 무엇이고, 맑스주의는 맑스의 사상과는 어떤 관계인가 등등 여러가지 질문들에 답해야 하는 문제라서 간명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고, 저도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답변하기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최대한 간단하게 아는만큼만 이야기하자면, 맑스의 역사유물론(흔히들 역사발전 5단계론으로 이야기하는)이 제2인터내셔널과 현실사회주의를 거치면서 이론적, 실천적 파탄으로 귀결된 이후, 현대맑스주의의 역사는 맑스주의라는 구멍난 난파선을 어떻게 해서든 수리, 보수해서 항해를 계속하려는 다양한 수정의 노력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미 크게 구멍난 걸로 입증된, 제2인터내셔널 식의 역사유물론, 즉 토대가 상부구조를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식의 경제결정론은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이후로는, 제가 아는 한, 맑스주의 진영 내에서도 별로 진지한 취급을 받지는 못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현실사회주의의 폭정과 억압을 목격한 이후로는 레닌주의(계급에 대한 전위당의 일방적 우위와 대중에 대한 당의 권위주의적 지도관계를 기초로 한 일국사회주의 폭력혁명노선) 역시 제2인터내셔널 못지않게 맑스주의라는 선박을 침몰시키는 고장난 선박부품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이후 맑스주의의 역사는 제2인터내셔널과 레닌주의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원래의 맑스로 돌아가자는 노력(초기 맑스의 휴머니즘적 면모에 주목하거나, 청년 맑스의 인간주의적 요소(마치 공상적 공산주의자처럼 휴머니즘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맑스)와 대비해서 성숙한 맑스의 과학성을 강조하는, 특히 '자본론'을 맑스주의의 과학성의 정점에 있는 저작으로 이해하는 입장)으로 나타나는데, 그것도 1970년대 쯤에는 원래의 맑스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라는 입장이 우세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맑스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과 함께 전반적으로 침체를 면치 못하고(정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그 논조나 주제에 있어서도 문화분석이나 철학적 저작(맑스는 철학으로부터 정치경제학으로 이동했다면, 정확히 그와 반대되는 경로로)에 집중되는 상황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결론을 정리하자면, 맑스는 그 저작이 팜플렛, 정치선언문, 기사 등 다양한 형식으로 산재해 있고, 자본론을 제외하고는 그 스스로가 일정한 이론적 체계를 수립하려는 학자라기보다는 실천적 혁명가로서 당대의 정세에 개입하기 위한 글쓰기에 주력했기 때문에 맑스의 저작은 그 주제와 범위, 소재와 발상의 다양성으로 인해 오늘날 여전히 풍부하게 재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역사발전과 사회변혁의 이론으로서 맑스의 사상 혹은 맑스주의는 그 이론적, 실천적 난점과 모순으로 인해서 파탄을 면치 못했고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맑스주의자들은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주제와 방법을 벗어나 나름대로 각개약진하고 있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metaljet
21/03/1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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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맑스주의는 파탄났지만 맑스의 팬클럽들은 여전히 각계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도로 이해되네요. 아주 예전에 쉴로모 아비네리 책 한 번 읽은것으로 맑시즘 그까이거 알고있다 생각한 자신을 반성하겠습니다..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3/16 13:1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제 뇌피셜이지만, 아무래도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흑인들이 반인종주의 담론을 주도하기 때문에 계급문제보다는 인종차별의 문제에만 주목하고 흑인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탓이지 않을까?하고 짐작해 봅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이슈로서 인종문제는 과잉대표되고 계급문제는 과소대표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고요.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가 사회적 신화가 되어 흑인사회 내에서 모든 사회적 이슈를 그 틀로만 해석하는 경향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싶은 걸로 보이네요. 그렇다고는 해도 이 글은 조금은 너무 많이 나간 거 같기는 해요.
이 글이 미국 흑인사회 내 계급차이와 경찰폭력의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지표를 추가적으로 제시해 주었다면 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이 글이 아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근데 그러기에는 같은 흑인들로부터 적전분열을 조장한다는 비난이 나올 걸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하고 제 뇌피셜을 날려봅니다.
21/03/16 13:52
수정 아이콘
이 글이 미국 흑인사회 내 계급차이와 경찰폭력의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지표를 추가적으로 제시해 주었다면 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이 글이 아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근데 그러기에는 같은 흑인들로부터 적전분열을 조장한다는 비난이 나올 걸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하고 제 뇌피셜을 날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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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리드는 인종주의적 정체성 정치가 계급정치를 압도하는 현상에 대해 줄기차게 비판을 해왔고 그래서 진작부터 같은 흑인들로부터만이 아니라 '계급환원주의'를 경계한다는 백인 마르크스주의자들 일부로부터도 욕을 계속 먹어왔습니다. 아돌프 리드 (및 월터 벤 마이클스)와 그들을 비판하는 식자들 사이의 논쟁이 책 한권으로 멋들어지게 번역되어 나온다면 인종주의와 계급정치를 둘러싼 이슈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크게 신장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3/1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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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으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의 일부에 대한 인용만 보고 하는 얘기라 그냥 뇌피셜만 남긴 건데, 흑인사회 내 계급분할과 그들간 계급차별의 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내용이 없길래, 혹시 저자가 같은 흑인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을까봐 그런 이야기를 못하는 거 아닐까?하고 뇌피셜적 스토리를 짜봤죠.
흐흐 근데 저자에 대한 아난님의 설명을 보니 그걸 두려워할 인물은 아닌걸로 보이네요.
21/03/1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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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구좌파와 탈근대주의 문화 정치를 주장하는 신좌파 사이의 갈등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은 정체성 정치에 비판적이고 이 글의 논지에 공감하는 쪽이긴 한데 분석과 처방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네요. 미국에서 '계급'이 학계 밖에서 사회적 의제로 등장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사회주의운동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졌던 때가 있긴 하지만 그건 상당히 제한된 영역 내에서였고 철저히 백인 중심의 운동이었죠. 이 점에서 왜 인종 문제가 계급 문제를 압도하는가를 묻기 보다는 왜 계급이 이제까지 의미있는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지 못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건 사회적, 정치학적 분석이 아니라 역사적 분석을 요구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에서 초기 동유럽 출신 백인 노동자들이 억압 받는 흑인들과 연대하며 계급 정체성을 공유하는 대신 백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계급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계급 문제의 빈 자리를 인종 문제가 채우게 됩니다. 미국 역사에서 계급 문제는 물적조건과 무관하게 계급 '의식'을 가지지 못한 백인 노동자들을 건너뛰고 인종 문제로 전환된 것이죠. 그래서 인종 문제는 계급 문제를 대체하기 보다는 처음부터 그 안에 계급 문제를 (불완전한 방식으로나마) 상당 부분 담보, 대리하고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에서 얘기하는 '인터섹셔낼리티'가 바로 이런 지점을 지적한 것이고 이 개념을 창안한 학자가 흑인이라는 것도 시사적입니다. 따라서 인종의 정치학을 단순히 새로운 정체성 정치의 하나로 치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문제의 핵심은 인종 정체성의 과잉과 물신화라기보다는 계급주의의 부재이고 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흑인들이 아니라 억압 받는 계급으로서 흑인들과의 연대를 전면적으로 거부해온 백인들이 문제라는 겁니다. (저소득 저학력 백인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노골적 인종차별주의자인 트럼프 지지하는 그룹이죠.) 계급 문제를 부각시키는 순간 이렇게 다시 인종 문제가 등장하게 됩니다. 윗글은 인종과 계급 사이의 이런 역사적 역학관계와 중첩을 간과하고 이 둘을 마치 선택사항처럼 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종차별주의, 백인우월주의가 물신화된 탈역사적 추상이라는 저자의 주장 역시 인종 개념이 가진 이런 역사적 맥락과 함의를 거세하고 단순히 사회적 분석의 도구로 인종을 보고 있지 않은가하는 의혹이 듭니다. (물론 정체성 정치에서 인종이 이런 식으로 동원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는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

흑인들에게 계급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수의 백인들은 계급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고 백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그것으로 자신들이 과거에 누렸던 우월한 지위를 그리워하는데 이들을 놔두고 흑인들에게 계급의식을 요구하는 것이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고 다수의 흑인들은 인종차별과 함께 이미 하층민으로서의 계급적 차별도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 계급의식은 먼저 백인들에게 요구해야 하고 왜 그들이 그토록 철저하게 계급의식을 거부하는지에 촛점이 맞춰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또한 다시 인종 문제에 대한 고찰을 요구하는 문제입니다. 흥미로운 글과 댓글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1/03/17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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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역사적 분석은 정확한 역사적 분석이고 원론적으로 정확한 인식은 원론적으로 정확한 인식입니다. 둘 다 필요한 것이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우선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확한 원론은 정확한 역사적 분석의 필요조건들 중 하나입니다. '정확한 원론'으로 필자도 저도 인종주의적 억압/차별을 계급관계와 별개의 것으로 놓지 않고 계급관계를 일차적인 것으로 놓고 그 양자의 구체적 접합양상을 살피고자 하는 이론적 지침을 의미합니다. 필자도 저도 그런식으로 고찰되지 않는 인종주의적 억압/차별이 추상화이고 물화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 흑인들에게 먼저 계급의식을 가지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식으로 고찰하지 않는 인종주의 관련 활동가들이나 좌파 식자들이 미국에서의 계급정치라고 할만한 것의 거의 부재에 기여하고 있다 정도의 주장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그런데 사실 계급정치의 미미함으로 말하자면 미국이 좀 두드러지기는 해도 대다수의 자본주의 사회들에서 다 그렇습니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계급정치의 이 미미함을 마르크스주의의 비과학성의 증거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미미함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을 시도해왔습니다. 왜 계급정치적 시각에서 단절된 정체성 정치가 득세하는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도 있습니다). 누군가 왜 계급관계를 일차적인 것으로 놓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로서는 당장은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기본테제라고밖에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 일차성으로 '인종주의적 억압/차별을 비롯해서 계급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일체의 억압/차별적 관계는 [장기적으로] 지배적 계급관계의 안정적 확대재생산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유지/존속되는 [경향이 있다]'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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