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래 가습기 살균제 관련 사건을 보고 많은 분들이 이해가 가시지 않을 것들과
보편적으로 요즘 많은 분들이 가지고 계실 화학공포증, 영어로는 케모포비아에 대해 짧은 글을 적어보려 합니다.
글쓰기 버튼이 워낙 무거운 곳이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화학전공을 하면 길에 가는 사람보다 조금 더 아는 정도가 된다" 고 하셨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조금 더 아는걸 적어봅니다.
1) 화학공포증은 무엇일까요?간단히 쓰자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성분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분석화학 박사님이라도 플라스틱이 어떻게 합성되고 사출되는지는 모르는게 너무 당연합니다.
즉 정말 디테일한 전공자가 아니면 화학물질에 대해 대부분 무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생활 화학제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플라스틱, 각종 세제는 물론이고 여러분이 입고있는 옷도 면, 마 소재를 제외하면 거의 석유에서 추출한 옷감입니다.
표면처리를 하는 각종 코팅제, 간편식의 식품 첨가제나 방부제, 향수나 방향제, 탈취제 등등 너무너무 많습니다.
근데 그 모든 것들을 우리가 신경쓰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화학공포증은 왜 생길까요? 왜 생긴걸까요?(1) 실제로 사고가 많았습니다
이과 출신이시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입덧치료제 탈리도마이드의 사건이 가장 대표적이죠.
짧게 요약하자면 입덧 치료제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 라는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과정에서
'탈리도마이드' 를 합성해야 하는데 '드이마도리탈'(좌우반전) 이 합성된 것입니다. 그때는 그게 문제가 될지 몰랐죠
그 결과 입덧치료제가 기형아 출산을 유발하는 끔찍한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가장 최근 이슈로는 어린이 입욕통에서 가소제 성분으로 인해 피부염이 발생한 경우가 있습니다.
(2) 위험한 물질은 많습니다. 다만 그게 실제로 문제가 있을까요
알면 알수록 세상은 위험합니다. 수많은 유독물질이 있거든요.
아래 3)에서 더 설명드리겠지만, 유독물질에 얼마나 어떻게 노출되느냐가 사실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랑비에도 옷젖을 수도 있고, 타워 앞까지 도망갔으나 점화 마지막 틱뎀에 죽는 경우는 비일비재 합니다.
[문제는 이걸 마케팅 or 언론에서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유독가스가 발생하지 않는 인덕션을 구매하셔서 아내의 건강을 챙겨주세요' 라든지
'천연성분으로만 만든 수제 비누로 여러분의 피부를 보호하세요' 같은게 대표적입니다.
이런 식의 기사나 마케팅이 대부분의 화학공포증을 만들고 있지요.
*이런 식의 마케팅이 완전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치만 우리 식약처, 미국의 FDA, 유럽의 ECHA 등의 기관이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종 유해물질의 사용 규제 및 평가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으며 노출 우려가 큰 제품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과 평가를 합니다.
또한 학계의 많은 독성학, 생명과학, 의학, 약학 학자들께서 끊임없이 유해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계십니다.
많이 사용되는 물질일수록 유해성을 찾을 경우 큰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라도 우리 주변 물질은 안전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 이 부분이 의심스럽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게 위험했으면 쓰게 뒀을까?" 하고요.
특히 계속된 생활 화학물질 사고로 우리나라는
「화학물질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
라는 놀랍게도 번거로운 법도 있습니다. 자세한것은 저도 모르는 부분이 많고, 논란이 많으니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3) 어떤 화학물질이 위험할까요? - 독성학(Toxicology)의 기초
저도 독성학 전문가가 아니라 자세히는 설명 드리기 어렵지만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여기 의사분들도 많으실텐데...)
'어떤 물질이 유해하다' 라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아래 3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1) Target에 대한 독성 (2) 함량 (3) 노출시나리오(방법과 시간)
게임사이트니만큼 위 세 가지를 쉽게 설명드리자면,
'세이렌' 이라는 몬스터가 소리로 적을 공격합니다.
(1) 소리로 공격하는거니까 정신이나 귀가 아플순 있어도 다리나 팔이 아프진 않겠죠
(2) 얼마나 크게 or 가까이서 듣냐에 따라 데미지가 달라질겁니다
(3) 귀를 막으면 데미지를 받지 않겠죠. 혹은 0.001초 정도만 들으면 잘 넘어갈수도 있습니다 (즉발 스턴 같은게 없다면요)
혹은 우주에서는 세이렌이 공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귀가 밝은 엘프는 세이렌한테 더 큰 데미지를 받을 수도 있겠죠.
4)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가습기 살균제 이슈
위의 개념을 바탕으로 가습기 살균제 이슈에 적용해보면,
(1) 호흡기에 실제 독성이 있는가
(2) 얼마만큼 노출되어야 독성을 가지는가
(3)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으면 인체에 어떤식으로 노출되는가? 하루 몇시간 사용하는 것인가?
이렇게 구분을 해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동아일보의 취재를 바탕으로 설명드리자면
옥시에서 사용한 성분(PHMG)은 (1), (2)의 평가가 완료되어있었지만, (3)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고 제품을 만든겁니다.
쉽게 할 수 있는 실수지만 절대 해서는 안될 실수이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PHMG를 **크린 같은 화장실, 주방용 세정제에 많이 써왔을 것입니다. 근데 신제품으로 가습기 세척제를 만들자고 했고
**크린을 만들던 경험으로 방부제는 PHMG를 쓰면 되겠지 하고 넘어간 것입니다.
문제는 피부로는 흡수가 잘 안되는 PHMG가 폐에 직접 노출될 경우 바로 독성을 가졌던 것이구요. (3)번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SK케미칼에서 사용한 CMIT/MIT는 (1),(2),(3)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고 사고 이후
이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고, 1차 평가에서 독성 판단의 근거인 폐섬유화를 확인하지 못하였고
(2),(3) 번에 대한 시나리오를 수정하여 더 타이트한 2차 평가를 진행하였으나 이에 대해서도 폐섬유화를 확인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재판부는 너무 당연하게도 그런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SK케미칼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재판부편을 들어주는것도 아닙니다. Dry하게 이해부탁드립니다*
*실험 설계미스 or 실험 주체에 대한 논란이 있는지 저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취재한 결과를 바탕으로만 말합니다*
5) 어떻게 하면 이런 논란에서 안전할 수 있을까?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공자이고 화학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서두에서 말했듯 주변에 생활화학제품이 너무 많습니다.
다만 경험과 제 주관을 통해 제안드리자면
(1) 너무 싼 화학제품들은 피한다. (플라스틱, 페인트, 악세서리, 생활용품 등)
적어도 국내법상 규제 및 감시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제품을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노출정도가 강하거나(페인트), 노출시간이 긴(몸에 닿거나 음식에 닿는 플라스틱, 고무 등)은
지나치게 싸고 이름없는 브랜드는 피하고 접촉시 따갑거나 가려운 느낌이 있거나 붉게 올라오는 경우 반드시 사용을 중지합니다.
(2) 피부 및 호흡기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제품은 주의한다.
거의 대부분의 청소용 세정제에는 장갑을 끼고 사용하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안지키시지만
귀찮더라도 반드시 고무장갑을 사용하시고 비닐장갑도 가급적 피하시는게 좋습니다. (너무 얇고 어느정도 투과성이 있습니다)
뿌리는 형태의 세정제, 방향제를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환기가 가능할때만 사용합니다.
화장실은 통풍팬을 작용시킨 후 가급적 분사시에는 숨을 참고 사용하시고, 일상생활에서 방향제를 너무 많이 쓰시는것을 비추천합니다.
(3) 논란이 있는 경우 자세히 알아본다.
이런 논란들 대부분이 사실 '괜찮다' 로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언론, 환경단체, 가끔은 정부기관에서도 이런 논란을 유도합니다.
문제제기는 쉽습니다. 다만 안심시키기는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예들들면 대구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인 과불화화합물 이 검출됐다던 기사로 환경부는 아래와 같은 조치를 취했고
https://me.go.kr/home/web/board/read.do?menuId=10392&boardMasterId=713&boardId=878870
각 지자체별로도 대책을 수립해야 했습니다.
재밌는건 해당 물질은 혈액에도 있는 성분이라는 것이죠. (미국인 혈액의 95%에서 발견)
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Report.do?cn=TRKO201300008765
(물론 자연합성 된건 아니지만 낮은 농도는 위해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이런 물질들이 정말 유해하다? 그럼 엄청나게 까다로운 EU 분들께서 열심히 금지물질로 지정해주실것이고
평소 여러분들이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환경단체 및 전문가들이 국내에서도 사용을 금지시켜주실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까다롭게 일본이나 유럽기준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규제가 빠른 편입니다.
(그래서 너무 싼 중국제품을 피하는게 좋습니다...)
장황하게 써놓고 나니 어떤식으로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결론은 너무 걱정마시고 어느 정도는 그냥 그러려니 하시면서 쓰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지금보다 더 컨트롤 안됐던 과거 화학 제품들을 잘 사용하셨던 어르신들도 아직 건강하시니까요...!
(우리 후대도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만요)
건강하세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