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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10 01:10:30
Name TAEYEON
Subject [일반] [드라마 태조 왕건] 견훤은 왜 왕건에게 패배했는가?
0. 역사적 사실이니깐

제 아무리 사기캐 / 개캐 / 흉캐라고 해도 장르가 정통사극이고 역사적 사실대로 간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승자가 주인공인 사극에서 최종보스 보정따위 주인공 보정 앞에 패배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사실 다른 이유 필요없고 이거 하나로 끝이지만 이렇게 끝내면 너무 재미없자나요 그래서 추가로 몇가지 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목에서도 그렇고 지금까지 계속 드라마/사극을 강조하는 건 이 글이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오로지 드라마상에서의 모습만 갖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계속 강조한건 이건 드라마니깐 / 드라마안에서 벌어진 일들로만 (최대한) 이야기 해보려는 거입니다.
실제 역사적 사실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제 지식은 빈약하니깐요 ㅠㅠ


1. 장수의 문제

드라마를 보면 고려국 장수에 누가 있냐?하면 떠오르는 사람 하나가 있습니다. 네 유금필입니다.
궁예가 있던 태봉국 시절 최강의 장수가 왕건이었다면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 최강의 장수는 유금필입니다.
몇몇 더 꼽아보자면 신숭겸, 박술희, 김락, 홍유, 배현경이 있죠. 유금필을 포함한 앞선 2명은 극중 왕건의 의형제이며 뒤의 3명은 개국공신들이기도 합니다.

백제로 넘어가서 백제국 장수하면 누가 떠오르냐 할떄 떠오르는 인물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 수달과 추허조 그리고 애술과 신덕입니다.
본래 백제국 에이스로 나와야할 인물은 신강이었습니다. 그러나 신강 역할을 한 배우분이 간암으로 별세하는 바람에 해당 인물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도 남은 인물로 수달과 추허조가 있었습니다만 이건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추허조의 경우 백제를 다시 건국하는 과정에서 활약을 한 게 전부고 그 이후로 좀 지지부진한 모습들을 보이기는 하지만 무력 하난 정말 강한걸로 설정된듯한 모습입니다. 수달의 경우 아예 작가가 작정하고 밀어줬고요. 나주공방전에서 신숭겸은 물론이고 유금필하고도 어느정도 맞서는게 가능했습니다. 고려국 최강의 무장이 유금필이고 작중 묘사를 보면 유금필 > 신숭겸 > 박술희 > 환선길 > 김락, 홍유, 배현경 정도로 묘사되고 반란을 도모했다가 처형된 환선길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왕건이 자랑하는 최정예 장수들입니다.

수달은 그 유금필하고도 맞서는 게 가능한걸로 묘사된 장수입니다만.. 알다시피 수달은 왕건에게 사로잡히고 태봉에 가서 미치광이가 된 궁예에 의해 화형당해 죽어버리죠 (그 유명한 수달이가 죽었어..)
설상가상 추허조마저도 실제 역사보다도 10여년 빨리 퇴장해버리면서 백제국 장수 퀄리티가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 추허조가 일찍 퇴장한건 추허조 역을 한 강재일 배우분과 견훤 역을 한 서인석 배우분이 현실 일기토를 벌이는 바람에..

이들의 뒤를 이어 백제의 지휘관/장수 역할을 하는게 애술과 신덕인데.. 애시당초 신덕은 지장으로써의 면모가 더 강했습니다. 배현경과의 일기토가 있긴했지만 작중 배현경은 고려내에서 왕건의 의형제들보다 무력은 한단계 낮은 모습을 보여줬던 장수입니다. 그런 장수와 밤새 싸울정도였으니 유금필은 둘째치고 신숭겸과 박술희를 상대로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애술의 경우 영락없는 개그캐릭이고요. 수달과 추허조가 죽은 뒤에 백제에서 가장 용맹한 장수였지만 문제는 너무 무식한데다가 무력도 박술희하고는 비빌 수 있어도 유금필에겐 상대가 안됬습니다. 작중 유금필에게 가장 많이 깨진 지휘관 및 장수가 신검과 애술이었죠..(..) 애술은 정말 틈만나면 유금필 유금필 이를 갈았지만 작품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유금필에게 제대로된 저항 한번 못한채 처절하게 짓밟혀야했습니다.

네 수달과 추허조가 죽은 뒤 백제는 유금필을 막을 장수가 없습니다. 작중 묘사를 보면 유금필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수는 백제의 왕 견훤이었지만 견훤은 왕건이 밀착마크를 하고 유금필은 그 사이에 다른 장수들을 털어버리는 형태로 자주 진행됩니다. 견훤 입장에서도 적국의 왕인 왕건을 눈앞에 두고 유금필을 마크하러 갈 수도 없고요.
그나마 견훤이 유금필과 상대했던 것도 조물성전투와 고창전투인데 조물성 전투의 경우 전염병으로 인하여 고려와 백제 양측이 모두 개박살난 상황에서 백제가 간신히 약을 구한 덕분에 싸움없이 일방적으로 승리했고 고창전투의 경우 합류해야할 신검이 견훤과 금강이 죽길 바라며 합류를 안하는 바람에 일방적으로 포위되어 얻어터지는 형국이어서 견훤도 간신히 퇴각해서 목숨을 부지한 전투였습니다. 이후 벌어진 운주전투에서는 견훤이 등창이 너무 심각해서 아예 백제가 싸워보지도 못한채 탈탈탈 털리고 말고요.

(물론 이보다 더 이전 궁예가 왕이던 시절엔 견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진 유금필이 왕건 몰래 군사들을 이끌고 견훤을 치러갔다가 탈탈탈 털립니다. 묘사만으로 보면 유금필이 대 백제전 최강의 인간흉기이기는 하나 그래도 견훤보다는 한수 아래로 그려집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유금필이 대 백제 결전병기 역할을 했듯이 드라마에서도 유금필은 백제 특히 대 신검 / 애술 결전병기 역할을 수행해서 그나마 유일하게 비벼볼만했던 곡도에서의 전투도 신검과 애술의 화려한 삽질과 유금필의 적절한 대응에 의해 개박살나고 말죠



2. 책사,신하의 문제

고려국의 책사는 최응과 태평이고
백제국의 책사는 최승우와 (무)능환입니다. (그 외에 종훈이 있긴 합니다.)

드라마에서 책사로서의 능력은 최승우가 최고인듯한 묘사가 많이 나옵니다. 드라마를 보던 많은 사람들이 견훤이 최승우 말만 제대로 따랏어도 삼한통일은 백제가 했을거 같다라는 말을 할정도로 작중 최승우는 상당한 능력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완벽한 건 아닙니다.)
고려내에서 최승우를 상대로 이겨본 책사는 태평밖에는 없습니다. 2차 나주공방전에서 동남풍이라는 날씨의 변수를 이용한 승리였으며 이는 태평이 화려하게 왕건의 책사로 데뷔하는 전투입니다. 참고로 작중 최승우는 굉장히 신중한 성격인데 이 전투는 상당히 자신있어했습니다. 그리고 패배..(..) 최승우가 자신있어하는 상황에서 패배한게 이게 거의 유일합니다.
(태평에 비해 최응은 상대적으로 최승우에게 좀 밀리는 듯한 인상이 강합니다. 여러모로 열등감을 표출하는 장면도 많고 물론 그렇다고 아에 못이긴다는건 아니고요)

그런데 최승우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내부의 적입니다.
최승우가 무언가 계책을 내리면 견훤이 안듣는 경우도 물론 많지만 그보다는 추허조같은 장수와 책사인 능환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능환은 1차 대야성 전투 패배 이후 견훤에게 신뢰를 잃기 시작하는 데 이후로 신검과 함께 다니면서 계속해서 무능한 모습들을 연달아 보이면서 견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그런만큼 최승우는 승승장구하며 견훤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보면서 능환은 지속적으로 최승우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줍니다.

반면 고려의 경우 태평과 최응 둘이 있으나 둘의 사이가 좋은 편인데다 이걸 좋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태평이 조물성 전투에서 역병이 걸려 죽어버리면서 사실상 고려에서 군대의 전략을 짜는 모든 업무를 최응이 맡게 되는 데다 장수들이 대체로 최응의 말을 잘 따라주었기때문에 이 부분에서 백제에 비해 고려가 훨씬 더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최응이 과도한 업무를 하게 된거 같지만 드라마상에서 딱히 그런 묘사는 또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견훤의 백제가 왕건의 고려를 상대로 승승장구하면서 상승세를 타던 시기는 철저하게 견훤+최승우 / 신검+능환+능애 (일명 무능듀오) 로 나눠서 구도를 짰을때였습니다..(..) 견훤 역시 최승우의 말을 온전히 다 들어준 왕은 아니긴 했으나 (당연하지만) 능환처럼 작정하고 최승우의 말을 곡해하고 시기하진 않았고 무엇보다 견훤의 고집이 쎄서 그럴 뿐 최승우에 대해선 크나큰 신뢰를 보여줬기때문에 최승우의 말을 그럭저럭 들은데다 견훤 본인의 군사적인 능력 역시 엄청났기때문에 왕건을 사로잡아죽일 뻔하기도 하는 등 상당한 상승세를 보여줬습니다.

반면 견훤과 백제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전투인 고창전투는 신검까지 포함된 연합전선이었고 여기서 신검이 전투중에 견훤과 금강이 죽길 바라며 합류를 안하는 결정적인 트롤링을 저지르고 내막도 알지 못하는 능환이 지랄발광을 떨면서 신검을 두둔하고 견훤과 함께하는 최승우와 그의 사위 박영규를 적대하는 등 내부 트롤링을 시전한 걸 보면 드라마 후반부 백제는 신검과 능환은 없는게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절루 들게 합니다.



3. 후계자 문제

고려는 일찍이 후계자를 결정합니다.
사실 왕건은 처음부터 왕무를 빠르게 후계자로 결정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정윤 (당시 고려는 왕의 후계자를 정윤이라 했습니다.) 책봉을 할 생각이 별로 없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 너무 어리니깐..(..) 백제의 왕인 견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아이를 봤고 그렇기때문에 상대적으로 능력을 보는 데 시간이 걸렸던 탓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다련의 사주가 있긴 했지만) 박술희를 시작으로 신숭겸과 유금필이 지속적으로 왕건에게 건의를 하면서 후계자 논쟁이 시작됩니다. 왕건의 의형제들은 장화왕후 오씨의 아들이자 왕건의 장남인 왕무를 적극적으로 정윤에 봉해야한다고 건합니다. 박술희는 물론 오다련의 부탁도 있긴 했지만 후계자는 당연히 장남인 왕무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기본으로 깔려있기때문이었습니다.

반면 충주부인(훗날의 신명순성왕태후)의 아버지인 유긍달과 이를 지지하는 일부 신료들은 이를 반대하였으며 (반대한 이유는 아직 충주부인의 아들인 태가 너무 어렸고 일단 시간이 지나서 태가 좀 나이가 들어서 싸울만 해지면 그때 다시 꺼내기 위해서)
패서호족을 대표하는 박지윤을 비롯한 패서계 호족들 역시 혹시 패서출신의 왕비들중 한명이 왕자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예 정윤과 관련된 일을 아주 늦게 얘기하자는 식으로 나오고
왕건을 옹립하는 데 공을 세운 일부 공신들 역시 왕건의 의형제를 의심 아닌 의심을 하면서 이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왕건 역시 아직 왕무가 너무 어리다하여 뒤로 미루려했지만 박술희가 강경대응을 하면서 일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박술희는 다시 한번더 정윤을 봉해야한다는 말을 하면서 순식간에 고려판 쟁국본이 시작된거죠.

사건의 조짐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태평과 최응은 왕건의 의중을 떠본 뒤 왕건에게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해야하며 후계자는 결국 장자가 잇는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려줍니다. 그럼에도 왕건이 다소 고민하는 사이 충주부인의 아들이었던 태가 요절을 함으로써 (당시로는) 후계자가 왕무밖에 없게되고 이에 왕건이 왕무를 정윤에 봉하면서 쟁국본으로 국론이 분열될 뻔한 걸 수습하는 데 성공합니다.

일 자체가 쉽게 수습된 건 물론 왕무의 경쟁자였던 왕태가 일찍 죽은 것도 있었지만 왕건 본인이 왕무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면서 왕무가 어느정도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를 알게되고 난세의 시대에 문에 비해 무를 약간 멀리하는 듯한 모습을 제외하면 꽤 만족하고 기뻐하기도 했고 그걸로 인한 분열이 왕건 자신의 생각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생각과 자신이 견훤에 비해 자식을 늦게 봤다는 것 역시 어느정도 생각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또한 (이미 후계자로 낙점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왕무가 후계자로써 뚜렷한 강점을 작품내에서 보여주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큰 실책이라 할 것도 별로 없었죠.(아예 없던건 아닙니다. 본인이 낚여서 왕건을 오랫동안 보필하던 장 수장을 죽게 만들었다던가..)

반면 백제는.. 후계자 문제에 한해선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었는 데 견훤은 신검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어서 1차 대야성 전투 당시 한번도 전쟁에 나가본적 없었던 신검을 전장터에 데려가 선봉으로 세웁니다. 결과적으로 이게 견훤과 신검의 사이를 갈라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말죠 이 전투에서 신검은 견훤에게 매우 큰 실망을 안겨주고 맙니다. 문제는 이 전투가.. 견훤조차 어찌할 수 없었던 전투였음에도 불구하고 견훤 본인의 성격이 더해져서 신검에게 너무 과할 정도의 질책이 들어갔다는 데 있습니다.

이후 고비를 통해 금강을 보게 되고 자기가 사랑하는 후궁의 아들인 금강에게 마음이 기울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제딴에는 장남인 신검에게 먼저 기회를 줘보기도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실망뿐이었고 견훤 본인부터가 언제부턴가 신검과 금강을 비교하며 좀 심하다 싶을정도로 편애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편애는 갈수록 계속되는 아버지 견훤의 갈굼에 불만이 쌓이던 신검으로 하여금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길(반역)으로 이어지게 만들죠.

그렇다고 총애하던 아들인 금강을 후계자로 세운것도 아닙니다. 막상 그럴 맘이 아예 없던건 아니었지만 엄연히 적장자인 신검이 살아있고 견훤에겐 큰 실망을 안겼지만 (고창전투 이전까지) 신검의 실책이 적장자라는 위치를 끌어내려야할 정도까진 아니었고 무엇보다 신하들이 모두 신검을 지지하고 있었기때문에 금강을 후계자로 삼는 일은 하지 못 / 안했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창전투 / 송악전투 / 곡도 전투 / 운주전투중 송악전투를 제외한 3번의 장대한 삽질을 한 신검에게 견훤이 완전히 질려버리면서 금강으로 후계자를 굳힙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하니 애초에 금강을 그토록 총애했었다면 처음부터 금강의 후견인으로써 착실하게 정치적 입지를 다져줬어야했으나 정작 그러한 작업은 하지 않았었고 등창으로 오늘내일하는 와중에 갑작스레 금강을 후계자로 세우고자 하니 반발이 안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이에 대한 사전작업을 해야하나 그 방법이 너무 안일했던게 문제였고 그 안일한 대응은 결국 신검의 반란과 함께 금강이 죽고 견훤 본인은 유폐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맙니다.



4. 왕건과 견훤

궁예가 죽은 이후 견훤의 캐릭터가 워낙 강한 탓에 보통 황소고집 = 견훤으로 생각되고 실제 그것도 맞긴하지만 막상 왕건 역시 고집을 한번 부리기 시작하면 그 고집이 엄청납니다. 둘 모두 책사들의 계속된 간언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걸 물리치다가 경을 친적이 있었죠

왕건은 견훤의 서라벌 진격을 뒤늦게 파악하였고 이를 막기 위해 최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군을 이끌고 너무 급하게 적진으로 향했다가 공산에서 신숭겸과 김락 등 장수 수명을 잃고 본인은 백제군의 일반병사옷으로 변복을 한뒤에 빠져나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적이 있었으며 이후 삼년산성 전투도 호족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왕무와 최지몽의 회군 건의를 무시하고 진격했다가 죽을 뻔한걸 유금필 덕분에 산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2번에 걸친 패배는 왕건이 궁예의 신하시절에도 겪은 적이 없던 대패로 정작 궁예의 밑에 있을 땐 다른 사람의 조언을 곧잘 듣고 승리를 따내던 왕건은 왕이 되고 난 뒤 첫전투였던 조물성에서의 굴욕적인 화평때문에 이를 만회해야한다는 조급함에 공산 - 삼년산성으로 이어지는 전투에서 기존과는 달리 신하들의 조언을 물리치고 급하게 나갔다가 대패를 하는 굴욕을 연달아 맛보고 맙니다. 이때 이후로 왕건은 가급적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고 최대한 장수들의 조언을 (다시) 들어주기 시작합니다. 특히 삼년산성 전투 이후 원래도 의형제로 잘 지내던 유금필의 말을 매우 크게 신뢰하기 시작하죠.

견훤의 경우 젊어서 백제를 건국한 시점부터 공산전투까지 생각보다는 (..) 신하들의 말을 곧잘 들었습니다. 그런 견훤이 고집불통에 책사들의 조언을 너무 안듣는게 아니냐라는 말이 나온 건 정작 그 들었던 조언이 능환의 조언이었고 백제를 다시 건국한 시기를 제외하면 그 이후 능환은  견훤에 대한 조언은 조물성에서 화평이 아닌 왕건의 목을 베야한다는 조언을 제외하면 전부 빠짐없이 똥볼을 거듭했습니다. (단 신검에게 한 조언은 능환의 말이 맞는 말들이었습니다. 신검이 안들어서 문제지..)

그러니깐 결국 책사들의 말을 안듣는다는 건 책사들이 아니라 사실은 최승우의 말을 안들었다고 봐야합니다..(..) 괜히 최승우 말을 들었으면 진작 통일했겠다라는 말이 나왔던게 아닙니다. 무엇보다 신하들의 의견이 둘로 갈리면 왕은 적절하게 중재하고 조율할 필요가 있고 견훤도 당연히 그에 따라 한겁니다. 물론 그 당시 견훤은 신중한 최승우보다는 다소 과격한 능환의 계책에 좀 더 흥미를 보였던게 사실이지만요 (ex 대야성 공략, 상주진격)

여튼 나주공방전에서까지 왕건에게 연달아 패배한 이후 견훤은 능환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최승우를 더더욱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최승우의 계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궁예를 독화살로 암살을 시도하였고 비록 궁예를 죽이진 못했지만 그를 미치광이로 만드는 데 성공하여 태봉(고려)를 내부모순으로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혔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고려 내부를 흔드는 전략 역시 최승우의 전략이었고 이를 승인하고 적극적으로 최승우를 밀어준 것은 견훤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공산전투에서 신숭겸 김락등 고려의 명장들을 참살하고 왕건을 거의 다 사로잡을 뻔하죠. 여기까지 보면 견훤은 신하들의 의견이 갈릴 때 본인의 성급한 성미까지 합쳐져 다소 안좋은 선택을 하여 실패를 맛볼지언정 자기 고집에 빠져서 신하들의 말을 안듣는 그런 군주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최승우가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하자 그를 크게 신뢰하고 믿으며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그의 말이라면 웬만해선 들어주기 시작하죠. 자신의 아버지인 아자개가 고려로 귀부하는 사건이 터졌을 때 마음같아선 당장에 상주로 진격하여 아버지를 끌고오고 싶어했으며 능환 역시 그렇게 주장했지만 정론으로써 자신을 설득하는 최승우를 보며 마음을 다잡고 결국 아자개를 공격하는 일은 벌이지 않았죠. 물론 이후 (백제의 영향권 밖에 있는) 호족들에게 견훤은 얼마나 형편없으면 그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느냐?라는 비난을 들었지만 만약 여기서 상주를 공격했다면 아예 패륜아 소리를 들으며 더더욱 경멸당했을 걸 생각하면 최승우의 말이 그래도 더 맞는 말이었습니다.


견훤의 고집이 점점 강해지고 다른 신하들은 물론 최승우조차 힘겨워하기 시작한 건 공산전투에서의 큰 승리이후입니다.
이때쯤부터 견훤도 나이가 점점 들기 시작했고 내부에서 후계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앞서 후계자 문제에서 보듯 신검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던 견훤은 신검보다는 금강에게 더 마음이 있었고 (그러나 정작 그걸 실행하진 못하고) 시간이 흘렀고 이를 건의하는 신하들에 대해서 신경질적인 반응과 함께 견훤 특유의 고집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군사적인 업적을 이뤄낸 자기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그에 비례하여 보이는 장남 신검의 못난점, 고창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자신의 나이가 더 이상 후계자를 미룰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자각과 신검에 대한 불신과 자신을 죽게 내버려두려했다는 미움

그럼에도 얼마나 견훤 자신에 대한 미움이 컸으면 그랬을까하는 신검에 대한 연민..능환의 부탁을 받은 최승우의 설득으로 다시 한번 신검에게 기회를 주지만 끝내 그 기회를 잡지 못함은 물론이고 자신보다 옥좌에 대한 욕망이 더 큰 장남을 보면서 생긴 결정적인 (신검에 대한) 불신

이 모든 것이 버무러지니 견훤의 고집이 아예 그 누구도 꺽을 수 없는 황소고집이 되고 맙니다. 한때는 의형제이자 심복이었던 능환도, 친동생인 능애도 심지어 삼고초려를 해서 데려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가장 크게 신뢰를 보였던 신하인 최승우조차 꺽을 수 없게 되죠.

그러나 그 고집과는 별개로 결단력은 무뎌져서 금강을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 최승우에게 계책을 물었을떄 들은 대답(사전에 무사들을 뒤에 숨기고 신검형제를 불러 모두 참살하는 것)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고 (참고로 최승우는 결코 금강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금강에게 백제의 앞날을 위해 후계자를 포기할것을 권유했습니다만 금강은 신검이 왕이 되면 자신은 반드시 죽는다며 이를 거부합니다.) 끝내 화를 자초하고 맙니다.



5. 결론

왕건과 견훤 양쪽 모두 결코 상대에게 꿀리지 않는 인물들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인복 / 순간의 선택에서 그들의 운명을 가르게 만들었고 앞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견훤과 비교했을 때 왕건이 갖는 또 하나의 강점은 바로 건강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견훤이 왕건보다 10살가량 더 나이가 많았던 탓이 가장 크긴 하지만..)

왕건은 자기자신의 건강함은 물론이고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으나 후계자 문제를 빠르게 정리함으로써 내부트롤을 사전에 방지하였고 인의를 무기로 삼아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되 배신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면모를 보임으로써 내부분열을 아예 원천봉쇄한 반면

견훤은 왕건보다 더 오래 왕위에 있었던 만큼 더 강력했던 결집력과 준수한 내정과 백제내 그 누구보다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바탕으로 나라전체를 휘어잡으며 유리한 구도를 이끌기도 했으나 한번의 패배 이후 잠재되있던 여러 문제들이 터져 내부분열이 가속화되었고 설상가상 본인의 건강문제까지 겹치면서 끝끝내 왕건을 이기지 못한 채 아들에게 유폐되고 탈출하여 그 왕건에게 귀부하고 맙니다(..거기에 더해 자기가 세운 국가를 자기 손으로 멸망시키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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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20/12/10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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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보자마자 수달이 죽어서 아냐..했는데

이왜진
20/12/10 01:45
수정 아이콘
수달 죽은 스노우볼이...
Ace of Base
20/12/10 01:39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극중에서 장수의 클래스 갭을 뒤집어버리는게 최승우의 존재입니다. 지력은 그냥 탑오브탑.
말도 안되는 남동풍인지뭔지 초자연적인 그 상황 빼고는 -_-;; 누구도 대적할 수 없죠.
공산전투때 신라로 진격하는 그 고을에서 두 수 앞을 내다본 경천동지의 큰그림을 견훤에게 말해줄 때 소름이 확 돋죠.

허나 그 전투에서 견훤은 끝내 왕건을 놓쳤고 신라를 비롯한 여러 호족들의 지지를 잃어 역사적으로도 실리와 명분 모두 왕건에게 내주며
거기서 결정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2/10 01:45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니 최승우는 서라벌에서도 최대한 온건론을 펼쳤지만 견훤이 그 부분만은 안들어줬죠 (..)
본문에 까먹고 못적었는데 여기서 왕건을 놓친게 컸던거 왕건이 비록 패배는 했으나 정작 신라한테 동정적이던 호족들의 지지를 받게 되고 왕건 입장에서 사실상 마지막 내부의 적이라 할 수 있던 김순식이 귀부하게 된...
아마추어샌님
20/12/10 02:09
수정 아이콘
그리고 그 전투는 대구에 지명을 남겼죠. 왕건 도주경로를 따라 줄줄이 지명을 남겼는데 천년가까이 지난 지금도 쓰이고 있어요.
순수서정
20/12/10 11:01
수정 아이콘
최승우가 누군가 했더니 파진찬이었군요
올해는다르다
20/12/10 01:54
수정 아이콘
고려 내부는 삼국지 구도라면(유비관우장비제갈량 간손미) 고려 대 후백제는 초한지 구도대로 그려낸거 같아요.
valewalker
20/12/10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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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최승우님.. 그립습니다 ㅜㅜ
Gorgeous
20/12/10 02:47
수정 아이콘
최근에 스트리밍 해주길래 간간히 봤는데 보고나니 무능검 무능환 무능애 환장의 트리오만 생각납니다 크크 고려군 앞에서는 이렇게 무능할 수 있나 하던 트리오가 막바지 견훤 뒤통수 후려갈길땐 기민하게 잘하더군요 크크크
퀀텀리프
20/12/10 03:45
수정 아이콘
견훤은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내부 경영에 실패했고, 왕건은 그 반대가 되는군요.
왕조시대는 후계자 문제로 인한 혼란이 극심해서 나라가 망하는 경우가 꽤 많더군요.
현대의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정당간의 경쟁 & 선거로 권력을 하루아침에 교체해버리는 것은 현대인은 당연하것으로 생각하지만
대단한것 같습니다.
아직도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적지않은 나라가 아직 왕조시대이고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도 꽤 되죠.
승률대폭상승!
20/12/10 06:07
수정 아이콘
스트리밍 일주일간 드문드문 봤는데
1 어느순간부터 최승우 말을 안들음
2 금강만 좋아하고 신검맨날 갈굼 (근데 신검이 맨날 삽질하니)
3 유금필개사기임
Grateful Days~
20/12/10 06:27
수정 아이콘
이찬(능환)은 이제 늙었어~
20/12/10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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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왕건에서는 양길이 재일 쌘 캐릭....

유튭에서 스트리밍 보는데 만명이 시청하길래 깜놀했어요 크크
저도 14번정도 본듯
RainbowChaser
20/12/10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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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당시 혼자 꿋꿋하게 친구들에게 유행시키려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신강: 쏴라- 쏴라-
병사: 장군 화살이 떨어졌습니다
신강: 가서 화살을 가져와라(?)
병사: 네! (??)
신강: 쏴라- 쏴라-

투항 후 나레이션도 있고 앞으로 자주 보겠구나 싶었는데 배우분이 돌아가셨었군요ㅠ
김티모
20/12/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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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번 스트리밍 재밋게 보셨군요 크크크크 저도 틀어놓고 쭉 보거나 듣고 있었습니다.
자작나무
20/12/10 08:31
수정 아이콘
견훤/최승우 관계는 마치 초한지의 항우/범증 관계를 보는것 같았습니다. 각각의 캐릭터는 전혀 다르지만 위치상...

책사의 말을 x나게 안들어서 망하는 모습이 비슷했음.

파진찬 말 좀 들어라고 제발!!!!
우에스기 타즈야
20/12/1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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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상에서 추허조가 견훤 의형제로 고려로치면 유금필 신숭겸 급이였는데 현실 싸움때문에 하차하면서 장수 급들이 떨어졌죠.
농심너구리
20/12/10 09:2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견훤이 늙어서 고집이 세지고 판단력이 떨어진 부분이 크다고 보고.. 그런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 서인석 배우님이 장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초중반 견훤은 카리스마 쩌는 군주인데.. 늙은 견훤은 주책..크크 아직도 기억나네요. 최승우 전략 듣고 내가 갈까? 했던 거
혜원맛광배
20/12/10 10:18
수정 아이콘
견훤에게 마지막 기회는 공산전투후 라고 봅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려했단 명분만큼 큰 것도 없죠. 그때 죽이진 못하더라도 신,양,용에 신검을 두둔하던 능환,능애까지 싸그리 묶어서 날려 버리고 금강을 후계로 세웠다면 적어도 후백제가 그리 허망하게 끝나진 않았을껍니다.
꺄르르뭥미
20/12/10 11:35
수정 아이콘
이름을 들으니 배우들 얼굴이 다 기억나네요... 삼국지+초한지 꿀잼 드라마
김곤잘레스
20/12/10 11:50
수정 아이콘
태조왕건 말투 특징: 같은 문장을 3번 반복함
(신검이가 또 진 상황) 견훤: 또 졌어? 또 졌단말이지~ 전투에 나가서 패배를 했어!
됍늅이
20/12/10 14:50
수정 아이콘
원래 이환경 작가의 특징이지요. 그 사람이 3번 반복하고 돌아가면서 다 그얘기하고 씬 바뀌어도 또 그얘기 함.
김재규열사
20/12/10 15:27
수정 아이콘
정통 사극이 다시 만들어진다면 특정 인물만 중심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사실 이름만 태조왕건이지 궁예 견훤의 비중도 왕건보다 적다고 말할 수가 없는데 셋중 한명의 시각만 가지고 만들어 보면 좀더 재밌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20/12/10 21:05
수정 아이콘
예전에 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크크크 글만 봐도 재밌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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