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항기 사고 가운데 가장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사건은 1977년의 테네리페 공항 참사로 이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583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두 비행기가 공항 활주로에서 충돌한 사건으로 사건과 관련된 항공기는 모두 2대였습니다. 하지만 조건을 단일 항공기 사고로 좁히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항공사고는 바로 일본항공 JAL 123편 추락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520명, 생존자는 겨우 4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참사의 원인은 기체의 근본적인 결함도, 테러리스트들의 테러도, 적성국의 미사일 요격도, 조종사의 조종실수도 아닌 어처구니없는 정비 불량이었습니다.
JAL 123
1985년 8월 12일, 일본항공 JAL 123편이 저녁 6시 12분 도쿄 하네다 공항을 이륙합니다. 목적지는 오사카, 비행예정시간은 약 1시간이었습니다. 기장은 타카하마 마사미 당시 49세, 부기장은 사사키 유타카 당시 39세 747 기장승격과정 중, 항공기관사는 후쿠다 히로시 당시 46세 였습니다. 기종은 보잉사의 대표적인 대형 기종인 보잉 747SR-46, 네 개의 터보 엔진을 장착하고 기수 부분이 볼록하게 위로 올라온 여러분들도 어디서 한 번쯤 보셨을 그런 비행기였습니다. 이때는 마침 일본의 오봉절 시기로 이날 항공편은 만석이었습니다.
왼쪽부터 기장, 부기장, 그리고 항공기관사
하네다 공항을 이륙한 JAL 123편은 7,300미터 까지 고도를 상승합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비행기에서 폭발음이 들립니다. 처음에 조종사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합니다. 엔진은 모두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오지만 조종이 제대로 되질 않습니다. 비행기 조종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유압계통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습니다. 항공기관사가 유압이 떨어지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기장은 하네다 공항에 사고의 발생을 알리고 고도를 6,000미터까지 낮춰서 회항하겠다고 통보합니다.
하지만 비행기의 유압이 모두 나가버립니다. 한 마디로 조종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자동차로 치면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핸들도, 브레이크도, 엑셀도 말을 안 듣는 상황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두 명의 조종사와 한 명의 항공기관사는 처절한 사투를 벌입니다. 좌우 엔진들의 출력을 서로 다르게 조절해 가면서 방향을 바꿔보려고도 시도하고 듣지 않는 조종간을 어떻게든 조작해 보면서 기체를 통제하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정상 운항 시에는 절대 내릴 일이 없는 랜딩기어까지 내려가면서 기체 안정성을 확보하려 했지만 이 역시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비행기는 상하, 좌우로 요동치면서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기장: 기수 들어!]
[기장: 기수 들어!]
[기장: 출력 올려!]
[기장: 이제 끝이다.]
JAL 123편은 이륙한 지 45분 만에 군마현 다카마가하라 산에 추락합니다. 이 지역은 산세가 험해서 구조대가 바로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나서 14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구조대가 도착했습니다. 사망자 520명, 생존자는 단 4명, 모두 여성들이었습니다. 일본 항공 역사상 최악의 인명사고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객실 모습
JAL 123편 사고 당시 비행궤적
참혹한 추락현장
사고 후 사고원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사고의 원인은 뜻밖에 시간을 좀 더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했습니다. 이 기체가 JAL 112편이었던 1978년 6월 2일, 해당 항공기는 승객 349명을 태우고 오사카 이타미 공항에 착륙합니다. 그런데 이 때 착륙하면서 비행기의 꼬리 부분이 활주로 노면에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흔히 tail strike라고 불리는 사고였습니다. 이때 기체의 압력격벽(Aft pressure bulkhead)이 손상됩니다. 비행기의 압력격벽은 기체의 꼬리 부분에 설치되는 격벽으로서 여압을 받는 여압구역(대표적으로 객실)과 그렇지 않은 비 여압구역 사이를 막는 칸막이입니다. 이 여압격벽 안쪽 구조물들은 여압에 견딜 수 있도록 강도가 부여되지만 이 여압격벽 바깥쪽 부분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 기체 경량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압력격벽의 구조
문제는 일본항공에서 이 사고 후 손상된 압력격벽 수리를 보잉에 의뢰했을 때 발생했습니다. 원래 보잉의 수리규정에 따르면 손상된 격벽을 수리할 때 격벽과 격벽 사이에 이음철판(splice plate)을 대고 리벳을 사용해서 세 줄로 고정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수리는 두 개의 이음철판을 이용해서 아래 그림과 같이 수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이음철판으로 보강되지 못한 부분이 발생하게 되고 이후 계속되는 비행으로 이 부부이 약해지면서 피로균열이 발생했던 것이었습니다. JAL 123 편의 사고가 있던 날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이 압력격벽 균열로 인해 발생한 급격한 감압이 압력격벽 바깥 부분에 위치한 비행기의 수직꼬리날개의 상당부분을 날려버렸고(폭발음의 원인) 이로 인한 유압감소로 인해 조종사들이 조종을 할 수 없었던 것이었죠. 한 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인재였습니다.
원래 수리되었어야 하는 상태(위)와 실제 수리상태(아래)
아래 부분에는 이음철판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로 나뉘어져 있고 중간에 빈틈이 있다.
폭발로 인해 날아가버린 수직꼬리날개 부분
이 사고와 관련해서는 그 후로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 기체의 수리를 담당했던 보잉의 정비 책임자는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 내에서는 사고 원인을 두고도 인신공양설, 미사일 격추설, 핵무기 운반설 등 터무니없는 음모론들이 돌았고 기장 개인에 대한 비난도 컸다고 합니다. 음성녹음에 실린 기장의 고압적인 말투나 추락하기 전부터 빠르게 기체를 포기하는 듯 한 몇몇 표현들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는 오해였습니다. 원래 기장의 말투가 그런 측면이 있었고 음성 녹음 전체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 세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기체를 착륙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조종불능의 상태에서 30분 이상 기체를 추락시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어었습니다.
어느 한 승객의 마지막 메시지
어느 항공사고인들 희생된 사람들이 안타깝지 않겠습니까만 설마 하는 마음에 이루어진 잘못된 정비로 인해서 5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은 정말 우리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희생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