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3/21 05:31:19
Name 바람이라
Subject [일반] 망가져가는 외주 피디 업계...
안녕하세요 교양다큐 쪽 외주피디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선 요즘 환절기인데 다들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코로나 시국에는 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큰 변화가 사회 이모저모에 일어나고 있는데요. 특히 여행사나 항공사 쪽은 완전히 망가져간다는 사실을 일반 시민 분들도 잘 알고 계실 테지만 저희 외주 피디 업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작은 리그다보니 잘 모르실 꺼 같아 속풀이 좀 할 겸 글을 적어봅니다.

우선 요즘 저희 업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휴업과 폐업'
이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 업계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할 듯한데요. 저희 업계는 교양 및 다큐, 드라마, 예능의 크게 세 축으로 나뉘어져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아무래도 이 전에는 본사에서만 제작을 하던 예능이나 드라마보다는 교양 및 다큐 쪽이 외주 비중도 높고 인력 풀이 많죠.

그런데 사실 교양 및 다큐 쪽은 드라마나 예능 쪽과는 제작 환경부터가 상당히 다릅니다. 스태프도 많고 제작비 등의 규모가 큰 예능 및 드라마와는 달리(이 쪽은 최소한의 스태프가 열 명 이상입니다. 수십 명 넘을 때도 많고요. 1박2일 시절에 스태프 많은 거 보셨다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교양 및 다큐 판은 스튜디오 촬영물을 제외하고는 많아야 십여 명, 이 것도 다들 아시는 6시 내고향이나 생생정보 같은 여러 편의 영상물을 하나로 엮어서 트는 프로그램 기준이고요.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프로그램부터 나눔과 같은 다큐들까지 이런 경우에는 피디 혼자서 다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혼자 카메라 감독, 작가, 조연출, 피디의 일을 다 하는 거죠. 왜냐면 그만큼 예산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이 업계는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업계입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저희 업계에도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드라마를 많이 보시는 분들이라면 드래곤 스튜디오를 아실 텐데요. 이처럼 예능이나 드라마 판에는 아무래도 규모가 큰 외주 업체들이 위주입니다.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돈의 파이가 다르니까요. 하지만 돈의 액수가 크지 않은 저희 업계는 사실 프로그램 1~3개를 굴리며 피디 및 작가, 조연출 포함 열 명 내외의 외주제작사들이 상당수인데 이번 사태로 인해 이 업체들이 줄줄이 휴업 및 폐업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사태가 생겼느냐, 사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저희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촬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기존에 스튜디오물을 하던 업체들은 사실 타격이 훨씬 덜하겠지만 사람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다양한 여행지를 소개하는 등의 eng물을 위주로 하던 업체들은 모든 촬영이 올스탑되면서 글자 그대로 죽을 상황입니다.

이는 업계 특성 상 현금 흐름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이 업계는 방송이 나가고 한 달 뒤에 정산이 됩니다. 애초에 방송국에서 돈을 그렇게 줘요. 그러면 외주제작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생기죠. 피디들과 연출료로 계약을 했을 때는 정산되면 주면 되지만 월급을 주고 직원으로 고용했을 때는 미리 돈을 다른 곳에서 끌어다 써야하거든요. 물론 사전 제작비를 미리 주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지상파들조차도 사전 제작비를 제 때 안주는 경우가 현실입니다. 그렇게 월급에다가 제작비, 기타 비용들까지 치면 영세 외주제작사들은 프로그램이 계속 굴러가야만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촬영 대다수가 중단된 상황에서 방송국은 그냥 기다리라고만 하고 있고 돈은 안 굴러가고 하는 상황이 되니 결국 비록 규모는 작아도 실력 있던 여러 회사들이 휴업하거나 아예 문을 닫아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같은 일개 외주 피디는 뭐랄까... 굶어죽고 있죠... 전 저희 회원분들이 다들 아실만한 해외여행관련 정보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요. 이걸 포함 두 개의 해외 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텀을 맞추고 해외 다녀와서 편집하고 하다가 또 나가고, 그러면서 돌아와서 또 편집하고 납품하는 삶을 살고 있었죠.
그런데 올 해 2월, 코로나 사태가 번지면서 모든 촬영이 중단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워낙 정신없이 살다보니 간만에 쉬면서 좋았죠...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촬영 일정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일을 찾자니 이게 약속이 되어있는 거라 다른 일도 못 찾고 있는 상황입니다. 차라리 완전히 프로그램이 나가리된 거면 말이라도 해주지... 그것도 아니고 그냥 기다려달라 한 마디 뿐이니 다른 일을 찾을 수도 없고 알바라도 해서 돈 벌려고 하니 교양판이 완전히 나가리라 다들 죽겠다 판이라 그냥 술만 마시고 있습니다... 스튜디오물을 했어야했어...ㅠㅠㅠ

뭐 잠깐 신세 한탄 좀 해봤고요. 글을 마무리하자면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여러 외주제작사들과 실력 있는 피디들이 아예 일을 접고 있는 현 상황이 차후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얘기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교양 다큐 업계는 애초에 예능이나 드라마 판에 비해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고 인기도 없어서 좀 죽어가는 업계이기는 했습니다. 계속 피디 나이대가 노령화되어가고 있었죠. 방송국들은 다들 돈 되는 예능 및 드라마에만 집중하고 돈 안되는 교양 다큐는 외주로 떠넘기다보니 일은 충분히 있지만 부족한 제작비와 연출료에다가 점점 피디 혼자 다 하라는 판이다보니 여러 선배님들이 환멸을 느끼고 떠나는 판국이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력을 말 그대로 갈아넣어서 유지되어가고 있었는데요.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결국 가정을 유지해야하는 여러 선배님들, 일이 없어진 선후배님들이 아예 전업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십 수년 넘게 방송을 제작해오시면서 쌓은 뛰어난 연출력과 감각을 버리고 농사지으러 내려가신다는 분부터 보험회사 영상팀으로 가시는 분들까지 다양합니다. 결국 이번 사태가 끝나고 다시 방송판이 살아나도 이 판의 질 자체는 이미 떨어지고 난 후겠죠...

어쩔 수 없이 본사 지시를 따라야하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시청자를 위한 방송을 만들자던 여러 선배님들의 폐업 소식을 들으면서 더욱 슬퍼지는 새벽입니다.


Q.네 줄 요약으로 글의 내용 파악하기
A.
1.코로나 사태로 인해 외주 교양다큐업계, 그 중에서 야외촬영 위주로 하던 회사 및 피디들은 박살이 났다.
2.여러 실력 있으신 선배님들이 일을 그만 두시는 상황이 되어 글쓴이는 슬프다
3. 글쓴이 본인도 죽을 맛이라고 중얼중얼댄다
4. 글쓴이는 허구한 날 술만 마셔댄다.

p.s : 이 글은 약 4잔의 데낄라와 터키 101 버번 몇 잔을 마신 후 작성되어 횡설수설하고 있습니다.

p.s 2 : 단기 아르바이트 할 만한 것 좀 추천 바랍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센터내꼬야
20/03/21 05:49
수정 아이콘
휴... 방송업계 종사자로 위로만 드립니다...
Courage0
20/03/21 06:31
수정 아이콘
지금 여행업계, 항공업계도 박살났더라고요
동남나 지사 폐쇄하고 그래 유럽 미국 쪽으로 버티자 하다가 그쪽이 오히려 더 난리가 나버렸으니....
noname11
20/03/21 06:56
수정 아이콘
요즘 쿠팡배송이나 택배업 그리고 음식배달은 반대로 사람이 부족합니다
20/03/21 10:18
수정 아이콘
그것도 초창기만 그런건지 요즘은 쿠팡 한정으로 단가 다시 후려치고 있습니다.
20/03/21 07:04
수정 아이콘
저도 6시 내고향 하시던 피디님하고 해외 다녀온 적이 있는데, 제 업종이 외국쪽 코디라 넋 놓고 놀고 있습니다.
Ilulissat
20/03/21 07:20
수정 아이콘
제 오랜 꿈이 다큐피디였는데... 안타깝군요. 코로나가 얼른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20/03/21 07:33
수정 아이콘
아이고 ㅜㅜ...
소이밀크러버
20/03/21 08:35
수정 아이콘
생각지도 못하던 분야에서도 피해가 크군요. 후...
은하관제
20/03/21 08:52
수정 아이콘
그저 위로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힘내시길 바랍니다 마스크 맘 편히 벗고 다닐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기사조련가
20/03/21 09:03
수정 아이콘
웹소설로 피디물을 써보시면....
출입문옆사원
20/03/21 09:05
수정 아이콘
참 안타깝네요. 코로나19시국이라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야하지만 밥벌이가 막혀버리니.... 이 여파가 점차 퍼질테니 글쓴이님같은 개인부터 시작해서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결국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미래까지 걱정됩니다. 이런 어려움이 시차를 두고 모두에게 닥치겠죠.
20/03/21 09:07
수정 아이콘
다 박살 안나는데가 없...
치열하게
20/03/21 09:22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해외도 잠잠해져야 진정 끝이나겠습니다. 다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죠. 고생 많으십니다.
전 그래도 다큐 등 보면서 나름 해외여행(?)도 하고 좋겠다 생각하는데 쥐어짜기면 제가 잘못 생각했었군요. 다큐 보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다큐 제작진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03/21 09:42
수정 아이콘
호텔 항공 여행사들은 지금 거의 다 울다지쳐 힘도 없을 지경입니다...어서 이 사태가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회복은 쉽지 않을듯 하네요
20/03/21 09:59
수정 아이콘
방송 광고 쪽이 입금 늦는걸로 엄청 유명하죠.
슬레이어스박사
20/03/21 10:29
수정 아이콘
유튜브에 진지하게 매진해보시면 어떨까요. 공중파 등에 납품하던 역량 갖추셨으니..
강가딘
20/03/21 10:3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지금 글쓴분께서 하시는 해외여행프로야 말하면 입아프고 아버지께서 즐겨보시는 2TV 생생정보. 생방송 오늘저녁, 생방송 투데이 같은 맛집 소개 프로도 타격이 큰거 같더라고요
거의 방송했던거 또 보여주는 걸로 떼우고 있고 말이죠.
그나마 6시 내고향은 촬영하는거 같던데
이런 프로들은 외주 하나가 5일치 다 만드는게 아니라 3,4개가 로태이션으로 제작하는데
한군데당 10명씩 잡아도 40명이 수입이 없는 상황....
정글자르반
20/03/21 11:12
수정 아이콘
저녁시간 생생정보통이 저희집 국룰인데 코너가 8개면 5개는 스페셜이라는 이름의 재방송입니다. 보면서 아 저쪽 사람들도 죽어나는구나 싶었어요.
20/03/21 10:46
수정 아이콘
고생이 많으십니다...

스튜디오물을 했어야했어..ㅠㅠㅠ라고 하시는 부분을
스튜디어스물을 했어야했어..로 읽혀서 순간 급 당황을;;;;
(갑자기 교양에서 av???) .....
안스브저그
20/03/21 10:53
수정 아이콘
저도 필라이트에서 이제 필굿으로 답답함을 달래봅니다.
WeakandPowerless
20/03/21 11:05
수정 아이콘
같은 처지로서... 추천 박고 갑니다
20/03/21 11:23
수정 아이콘
집에서 나가지 못하니 가만히 티비돌리면서 세계테마기행, 걸어서세계속으로 나오면 재밌게 보고있는데 제작자체가 어렵구요ㅠ
VictoryFood
20/03/21 11:29
수정 아이콘
해외여행관련이면 더욱더 힘드시겠네요. ㅠㅠ
이 기회에 사람들이 자주 가지만 잘 모르는 공항의 숨겨진 장소를 알려주는 방송은 어떨까요?
사람이 적어서 촬영하기도 좋을 거 같은데요
20/03/21 13:55
수정 아이콘
입금 늦게 하는거 법으로 금지되어야하는거 아닌가싶네요.
그런게 아직까지 관습으로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는데...
及時雨
20/03/21 14:39
수정 아이콘
해외여행 다큐 보면서 대리만족하는데 너무 슬퍼요 ㅠㅠ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20/03/21 15:01
수정 아이콘
정말 판국이 이런데 재난 피해 계층을 찾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Janzisuka
20/03/21 15:03
수정 아이콘
ㅠㅠ 힘내세요..
예전에 2년가까이 국내 구석구석 다큐뻭는다고 4계절 다닌거 생각나네요..
20/03/21 17:47
수정 아이콘
유투브쪽으로 빠져나가는 업계분들은 없으신가요? 해외여행유투버들도 혹시 챙겨보시는지 궁금합니다
20/03/22 11:16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지금의 어려움을 지나면 반드시 더 좋은 시간이 찾아올 겁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5257 [일반] [소설 추천] 서녀명란전 [22] 마음속의빛7639 20/03/21 7639 0
85256 [일반] [라노벨] 책벌레의 하극상 추천 [32] 티오 플라토8561 20/03/21 8561 3
85255 [일반] 하늘에서 바라본 풍경들 (Boston & NYC) 그리고 경제위기 [17] boslex7835 20/03/21 7835 8
85254 [일반] 망가져가는 외주 피디 업계... [29] 바람이라15400 20/03/21 15400 41
85253 [일반] 21세기 유행질병 사망자수 통계 그래프 (신종플루, 코로나 19 포함) [4] 오프 더 레코드8221 20/03/21 8221 0
85251 [일반] 이탈리아의 사망률이 유독 높은 원인 [27] 아난14484 20/03/21 14484 1
85250 [일반] [스연] 드라마 학교2020 주연배우 교체 논란 [19] VictoryFood11924 20/03/21 11924 0
85249 [일반] 일본 코로나19 확진자가 적은 진짜 이유 [95] 밥도둑17073 20/03/20 17073 4
85248 [일반] [외신] 英가디언의 코로나19 관련 독자와의 약속 [36] aurelius12172 20/03/20 12172 20
85247 [일반] 삼성 주가를 보는 짧은 생각 [34] 마우스질럿14468 20/03/20 14468 1
85246 [일반] COVID-19와 기상과의 관계 [103] 여왕의심복14491 20/03/20 14491 31
85243 [일반] 日 입국제한 국가, 전세계 209곳…韓 입국제한 국가 넘어섰다 [67] 남가랑11799 20/03/20 11799 2
85242 [일반] 어제오늘 의료진들을 자극하는 소식이 연달아 나왔습니다. [292] Timeless21229 20/03/20 21229 22
85241 [일반] [외신] 유발하라리,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 [29] aurelius30551 20/03/20 30551 33
85240 [일반] 유럽에서 넷플릭스의 화질이 내려갑니다. [16] Leeka10830 20/03/20 10830 0
85238 [일반] [외신]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40] aurelius13217 20/03/20 13217 6
85236 [일반] [스연] NBA 리그패스, NFL 게임패스 무료 [7] 말다했죠8528 20/03/20 8528 1
85235 [일반] 2019년도 혼인·이혼 통계가 나왔습니다. [110] Danpat16384 20/03/20 16384 2
85233 [일반] "이상하면 보고하지말아야 하나" 되 묻는 영남대병원장 [57] 후마니무스14322 20/03/20 14322 3
85232 [일반] 노트북에 이은 피해야할 제조사와 유통사들 정리 [78] 토니파커13256 20/03/20 13256 8
85230 [일반] [스연] 여자프로농구, 코로나19로 시즌 종료…국내 프로리그 최초(종합) [15] 강가딘7614 20/03/20 7614 0
85229 [일반] [스연] 내가 생각하는 도쿄올림픽의 미래(내용 추가) [40] 강가딘10170 20/03/20 10170 2
85226 [일반] 20억에 나라를 팔아먹은 미국 상의원 [70] 흙수저15666 20/03/20 15666 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