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잠잘까입니다.
시간이 흘러 흘러 어느덧 추리소설을 석 달째 파고 있습니다.
전에 질게에 하나, 자게에 2개의 글을 올렸는데요. 그때마다 댓글로 재미있는 작품 알려주신 PGR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몇몇 작품 제외하고는 웬만해선 다 읽으려고 노력을 했네요. 보류 중인 몇 작품 제외하면 약 30여 권 정도 남았습니다. 솔직히 제가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시기인 고등학교 때도 이렇게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하하하하... 10월 초부터 지금까지 읽은 게 약 100권 정도 되더라고요. 흐흐.
짧게나마 감상문 써보려고 합니다. 글 못쓰는 티가 나는 게 글이 엄청나게 길어졌네요.
혹시나 해서 번호는 이어서 달려고 합니다.
https://pgr21.com/?b=8&n=79024
12. 교고쿠도 시리즈 - 교고쿠 나즈히코
- 우부메의 여름
- 망량의 상자 1, 2
- 광골의 꿈 1, 2
- 철서의 우리 1, 2, 3- 무당거미의 이치 1, 2, 3
- 도불의 연회 1, 2
- 연회의 시말 1, 2
- 백귀 야행 음 (단편집)
- 백기도 연대 우 (외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리즈인 교고쿠도는 이제 어느덧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번에 캐릭터가 너무 확고하다고 했는데, <무당거미의 이치>에서는 변화를 꾀했더라고요. 놀라운 변화였고 덕분에 재미있게 빠져들었습니다. <교고쿠도 시리즈> 답게 파국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역시나 엄지가 절로 세워지더군요.
문제는 도불 시리즈인데요, 이 책은 <도불의 연회>와 <연회의 시말> 2개로 나뉘고 이게 합쳐 2000P에 가까운 엄청난 분량을 자랑합니다. 당연하게도 저는 큰 기대를 했고, 그리고 기대감이 크면 실망이 크기에 그저 눙물만...ㅠㅠ 도불시리즈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책이었습니다. 엄청난 분량에도 불구하고 다 해소되지 않는 떡밥이 마음에 안 들었고 큰 틀에 있어서 사건의 마무리는 일단락되어 졌지만, 등장인물 개개인의 마무리는 해소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이 책을 위해 노트필기도 불사하면서 읽었는데도 말이죠.
하나 더 꼽자면, 위키에서 보니까 <교고쿠도 시리즈>가 나름 라이트노벨에 영향을 준 소설이라고 하더군요.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그 이유일 텐데, 이번 도불시리즈에선 그게 넘치다 못해 오글거릴 정도로 그려져서 좀 그랬습니다. 진지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오바할 필요는 없었거든요.
<백귀야행 음>은 기존 교고쿠도 시리즈의 등장인물 중, 피해자 내지는 가해자 쪽 인물이 어떻게 사건에 관여하게 되었나를 그립니다. 한마디로 비화집이죠. 아무래도 추리소설 느낌보다는 호러적인 면이 많이 드러납니다. 어디까지나 <교고쿠도 시리즈>는 일본 요괴, 신이 배경이니까요. 솔직히 큰 재미는 못느꼈고요.
<백기도 연대 우>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독보적인 캐릭터인 '에노키즈 레이지로'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소설입니다. 사실 본편을 읽어야지 재미를 느낄 수 있기에 이것만 읽을 수 없고요, 교고쿠도 시리즈가 분량과 요괴 이야기가 많아 피로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책은 짧게 구성이 되다보니까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네요. 단편이 웬만한 장편 소설 뺨치는 분량입니다.
25. 악인 - 요시다 슈이치
추리물의 구조를 따오긴 했는데 추리소설이라고 보기엔 색이 너무 옅습니다. 이런 책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악인>이란 타이틀을 보면 보통 연쇄살인마나 흉악한 범죄자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 책은 오락성이 극도로 배제된 작품인지라 그런 악인류와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중심으로 용의자의 시선과 피해자의 과거, 2개의 시점으로 극이 진행되어 진실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재미는 없었고요. 전에 읽어 본 <검은빛>이 이해는 가도 주제가 심오한 소설이었다면, 이 책은 뭔 내용인지 알고 주제도 파악했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은 소설이었네요.
눈여겨볼 만한 건 이 소설은 중간부터 분위기가 놀랄 정도로 달라져요. 이는 작가가 '악인'이란 단어를 해석하기 위한 장치인데, 그때부터 책이 재미있어집니다. 트릭을 떠나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한 소설을 읽고 싶다면 괜찮습니다.
26. 고진 시리즈 - 도진기
- 붉은 집 살인 사건
-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 정신 자살
- 유다의 별 1, 2
-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생애 첫 한국 추리소설이네요. 전 판사 출신 변호사 고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정통 추리소설.
감상평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재미있었다?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럼 재미없었다? 라고 물으면 답을 하기 어려운 소설이었네요.
먼저 재미있던 건, 가설 추리.
이 책은 크게 <붉은 집~라 트리비아타> 와 <정신 자살 ~ 악마는>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정통 추리소설의 갈래를 따르고 있고, 후자는 드라마가 강조된 작품입니다. 공통점으로 탐정역의 고진이 가설 추리를 모든 작품에서 사용해 흥미를 돋우고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이건 이러이러해서 이렇지 않을까?'라고 떡밥을 제시하고 그걸 탐문 수사를 하거나 실제 사건 현장에 가서 재현해보면서 가설이 맞나 확인하는 작업을 거칩니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을 텐데, 틀렸다면 다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해서 확인, 확인. 이런 식의 검증작업을 거칩니다. 도진기 작가는 부장판사 출신에 현재 변호사로 활동한다고 합니다. 문외한인 제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직업이 트릭과 사건의 배경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대신 실제로 경험한 사건은 책에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문제는...
솔직히 책이 안 읽힙니다. 계속 집중이 안 되고 드문드문 읽게 되면서 제 문제라고 치부했는데... 조금 벗어나서 생각해보니까 <붉은집~라 트리비아타>는 소설책이라기보다 위키의 미스터리 관련 글, 가령 미제사건이나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루는 사건 보고서를 읽는 느낌입니다. 딱딱해서 인물 속에 빠질 수 없더군요.
<정신 자살 ~ 유다의 별>은 드라마가 강조되는데 이게 정말 별로입니다. ㅠㅠ
주인공이자 탐정역인 고진 변호사는 어둠의 변호사, 뒷골목 변호사라 불리고 있고 성격이 유들유들하며 술, 여자를 좋아하는 캐릭입니다. 다른 소설에서 등장하는 변호사들과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독창적인 면도 있지만,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아서 많이 깨요. 털털한 면을 강조하려고 한 것 같은데 직업이 판사 출신 변호사잖아요? 이제까지 읽은 추리소설 속 변호사가 비열한 면은 있었어도 방탕(?)한 모습은 볼 수 없었고, 그게 판사 출신이라면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주역으로 등장하는 이유경 형사와의 농담 따먹기, 여주 or 조연으로 등장하는 몇몇 여성들과의 로맨스는 고통이었어요.
전 다른 분들이 주로 추천하는 <유다의 별>, <붉은 집 살인사건>보다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가의 직업과 관련 있는 법정 소설입니다. 장점이 단점을 덮어버린 책이었고 단점도 다른 소설과 비교해 그다지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법정 영화를 많이 본 분이라면 나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고, 오히려 법정 스릴러 책을 많이 읽으신 분들에겐 이 책이 썩 와 닿지는 않을 겁니다.
27. 켄지 & 제나로 시리즈 - 데니스 루헤인
- 전쟁 전 한잔
-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 신성한 관계
- 가라, 아이야, 가라 1, 2
- 비를 바라는 기도
- 문라이트 마일
저의 첫 하드보일드 소설입니다. 누가 저에게 와서 하드보일드 추천해달라고 하면 부담 없이 추천해 줄 것 같아요.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패트릭 켄지(남)와 안젤라 제나로(여)의 사건 수사기.
이 책 읽기 전 하드 보일드 소설이란 무엇인가 여러 차례 검색을 해봤습니다. 하드보일드 영화는 여러 편 본 터라 대략의 이미지가 있지만 이게 소설로 표현되면, 그리고 추리까지 곁들여지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는데... 현재까지 읽어본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대부분이 다른 추리소설보다 읽기 쉽더군요. 정통파 추리소설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사회파 추리소설은 너무 무거워서 읽기 힘들다면,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리얼한 탐정 세계를 다루고 있고 트릭이나 사회현상보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나 분위기에 신경 쓴 소설이라고 합니다. 저번 달에 유독 책을 엄청나게 읽었는데, 아마도 읽기 쉬운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 꽤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캐릭터와 유머러스함. 이 소설에 등장하는 켄지와 제나로, 그리고 조연역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 부마란 인물까지 셋 다 확고한 캐릭터를 지녔습니다. 전부 물불 안 가리는 면모를 보여주지만, 켄지는 냉정하며 제나로는 감성적인 면이 강하고 부마는 세상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더 부각해 주는 건 대화인데요,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 따먹기를 즐기기 때문에 사건이 무겁고 가볍고를 떠나 이들의 대사는 분위기 조절에 도움이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강점이 되겠지만,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들은 탐정이다 보니 위기 상황이 많습니다. 사건의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본인들의 능력보다 더 거대한 세력을 만나 고초를 겪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게 하드보일드 소설의 특징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러한 지점에 가까워지면 뻔히 그려지는 상황으로 흘러가요. 처음에는 굉장히 산뜻해 보일 수 있지만, 나중에 가면 '에...또?' 라고 외칠수 밖에 없더군요. 그리고 캐릭터 성격이 과도하게 드러나서 좀 아니다 싶은 부분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진중한 소설을 즐겨 읽는 분들에겐 (등장인물의 유머러스함을 떠나) 이러한 부분에서 오글거리기도 할 거고 너무 허세 잡는다고 느끼실 것 같네요.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건, PGR에서 추천해준 <비를 바라는 기도>. 사실 주제 하나만 잡고 평가하자면 다른 책이 더 재미있는데, 이 <비를 바라는 기도>는 모든 걸 평균적으로 갖춘 무난한 소설입니다. 가장 단점이 없는 책인 것 같아요. 그리고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작품이고요. 처음엔 좀 지루할 수 있지만, 그 뒤론 엄청나게 빠져듭니다.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는 사건의 배경이 매력적인 작품. <가라, 아이야, 가라>는 벤 에플랙이 처음으로 연출해 상까지 받은 영화의 원작입니다. 시리즈 중 가장 무겁습니다. 유괴사건을 다루고 있거든요. 솔직히 중반은 좀 지루했는데요, 결말이 너무 좋아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이 세 작품이 기억에 가장 남네요.
아. 이게 제일 큰 단점이네요. 보통의 추리소설 시리즈는 전 작품의 내용을 최대한 숨기잖아요?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퉁치면서요. 이 책은 작품이 시간순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전작 내용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마디로 스포 덩어리. 저는 <비를 바라는 기도>를 제일 먼저 읽게 되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가라, 아이야, 가라>의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어요. 전작의 사건을 겪고 난 이후의 등장인물 감정 표현을 위해 그런 것 같은데, 혹시나 책을 읽으실 분들은 이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해요. 여기에 더해 별다른 설명 없이 전작의 극 중 인물 이름을 꺼내며 주인공의 내면을 설명할 때도 있습니다. 첫 작부터 읽지 않은 분들에겐 '이게 누구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스릴러 영화 추천할 때 필수로 들어가는 영화 <셔터 아일랜드>의 원작 <살인자들의 섬> 작가가 데니스 루헤인 입니다. 엄청 유명한 영화 <미스틱 리버>의 원작자이기도 하고요. <켄지 & 제나로 시리즈>를 다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원작자의 명성이 컸습니다. 흐흐.
28. 사와자키 시리즈 - 하라 료
-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내가 죽인 소녀
- 안녕 옛날이여
- 천사들의 탐정 (단편집)
-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모방범>, <관 시리즈>. <교고쿠도 시리즈>, <그로테스크> 이후 최애작을 만나지 못했는데, 드디어 여기에 추가시킬 작품이네요. 첫 작인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의 후반부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주인공은 사와자키. 사와자키 탐정 사무소가 아닌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며 모종의 이유로 인해 1인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고, 작가인 하라 료는 일본에서 단 몇 권의 소설로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하네요.
재미있던 건 주인공인 사와자키가 아니라 시간 관리(...). 사건이 발생하고 단서를 발견하면 일을 시작하는데 이게 물 흐르듯이 진행됩니다. A란 단서를 찾으면 오전엔 이와 관련된 인물을 만나고 혹시나 여기서 B 단서가 발견되면 오후에 관련된 인물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을 만나는 방법을 항상 제시하고요. 그 와중에 사서함을 확인하고 밥도 먹으면서 전화로 내일 스케줄을 만들고(단서를 찾고) 저녁에 또 사서함을 확인해서 관련된 인물과 미리 약속을 잡고요. 이런 식이다 보니까 하드보일드 소설의 특징인 '과정'을 그리는 점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주인공인 사와자키는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냉정한 캐릭터고 직업 윤리 의식이 투철해서 탐정 그 이상의 역할은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건 및 의뢰자가 중심이라 (표현이야 거창하게 나오지만) 주위 인물들과 단체는 사와자키 입장에선 모두 도구로 전락합니다. 당연히 사와자키도 사람이다 보니까 감정이 있을 텐데, 제가 지금까지 읽은 하드보일드 시리즈물인 <켄지 & 제나로 시리즈>, <미로 시리즈>와 비교하면 감정이 단순하다고 봐도 될 만큼 차갑게 그려집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 점은 하드보일드 소설의 바이블인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와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나중이 되겠지만 그 작품도 다 읽을 겁니다.
한 권만 읽는다면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내가 죽인 소녀>가 미스터리함이 뛰어나 재미있게 보실 수 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단편집인 <천사들의 탐정>과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가 좋았습니다. 아니 전 작품이 평균 이상의 재미를 느끼게 해줬습니다. 앞서 쓴 대로 하드보일드 소설은 결말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사와자키 시리즈>는 그 점을 너무도 충족시켜줬네요.
정말 아쉬운 건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가 2018년 초에 번역되어 한국에 나왔다고 해요. 근데 이게 2004년작이거든요. 14년...
2018년에 30주년 기념작으로 <어쩔 수 없는 내일>이란 책이 나왔다는데, 이거 언제쯤 번역되어 볼 수 있을까요. ㅠㅠ
29.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하가시노 게이고
이 책이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일본 서적이라고 하더군요. 부산에 있는 도서관은 무려 10권이나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근데 전 처음 들어봤어요. 하하하. 저는 정말 책 안 읽었네요. 확실히 하가시노 게이고는 책을 쉽게, 그리고 잘 쓰는 것 같아요. 제가 <용의자 X의 헌신>만 좀 안 좋게 봤다뿐이지, 나머지 책들은 빌린 즉시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릴 정도라 중독성, 몰입감 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가인듯 싶어요.
도망 중인 3인조 좀도둑이 차가 고장 나 폐가에 머물게 되는데, 묘한 사건을 겪으면서 사건에 깊게 빠져드는 소설입니다.
살인 사건이 무대인 추리소설만 읽다가 감동적인 코드가 녹아있는 책을 읽으니까 따듯함을 느낄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발상으로 추리소설을 쓸 수 있구나 싶어 놀랍기도 했고요. 물론 정통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하나 걸리는 게, 전 이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마지막 인물,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건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책 속 세계관 정립에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데, 후반부 그 인물의 행동은 세계관을 헤친다고 느꼈거든요. 큰 틀로 보자면 크게 무리가 없다고 볼 수 있으나 그런 식의 전개를 좋아하지 않아서 좀 그랬습니다.
하여튼 굉장히 무난하고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책입니다. 당연히 난도질하고 해체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좀 밍밍하겠죠.
30. 그레이브 디거 - 다카노 가즈아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영화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둘 이상의 등장인물을 교대로 보여주면서 서스펜스를 살리는 기술을 컷백이라고 하는데, 이 편집기술이 굉장히 자주,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쓰여서 몰입감이 뛰어납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지고 실체가 밝혀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하루 정도밖에 안 되는 책이라 인물 설명도 굉장히 짧게 그려지고 빠른 전개로 진행됩니다. 다양한 등장인물의 배경 설명을 대사나 행동으로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는 영화에서 많이 표현하는 장치라 여러모로 이해하기 쉬운 소설입니다.
범죄자지만,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가미란 인물이 골수 이식 하루 전날, 의문의 살인사건을 겪게 되면서 시작되는 파란만장한 추격 극이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네요.
추리소설을 떠나 재미난 스릴러 책 읽고 싶은 분들은 꼭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다카노 가즈아키는 소설로 등단하기 이전에 영화산업에 종사한 이력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단점은 이 책을 몰입해서 읽다 보면 별생각이 없을 텐데, 텀을 두고 읽으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단서나 행동이 있어요. 극의 재미를 위해 나름 가린다고 가렸지만, 어떤 분들에겐 너무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31. 남의 일 - 히라야마 유메아키
제가 특별히 나중에 읽어야겠다 싶은 작품 or 바로 읽고 싶은 책이 없다면, 되도록 PGR에서 추천해주는 순서대로 읽는 편입니다. 그래서 PGR에 처음으로 올렸던 질게글 부터 차근차근 쓰고 있고요. 가령 바로 위의 <그레이브 디거>는 제가 PGR 질게에서 추천받은 작품이었는데, 그게 무려 3달 전입니다. ^^;; 반면, 이 <남의 일>의 경우, 한 달 전에 추천받은 글이었고, 그렇기에 이 책은 나중에 읽거나 혹은 안 읽거나(...) 하는 작품이 되어야 했습니다. 근데 우연한 기회로, '하라 료' 작가의 도서를 보다가(히읗...) 눈에 띄는 책이 있어서 한번 봤더니 딱! 이 책이 있더군요. 표지 검색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흐흐.
십여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고 추리 소설이라기보단 호러 소설이 더 맞겠네요. 주제는 간단하게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파다 보면, 친구, 가족, 동료, 남편, 부인, 자식, 이웃 등 여러 관계가 있을 텐데요, 보통은 화목하게 살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불편한 감정이 있습니다. 불안감일 수 있고, 어색함, 질투 일수도 있겠죠. 이런 불편한 감정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호러소설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책의 제목인 <남의 일>은 책 속 첫 단편 제목이기도 하고 이러한 주제를 잘 표현 단편이기도 합니다.
징그러운 묘사가 많지만, 엄청 끔찍하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네이버 웹툰 인기작인 <기기파괴>에서 좀 나아간 호러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정확히는 예전에 <금요일>이란 웹툰이 있었는데 그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이 작가의 영향으로 그런 웹툰이 나왔겠죠.
모든 단편이 다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재미나게 읽었네요.
32. 미로 시리즈 - 기리노 나쓰오
- 얼굴에 흩날리는 비
-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 물의 잠, 재의 꿈 (외전)
<그로테스크> 읽었을 때 멘탈이 나갔거든요. <아웃>은 그나마 나았지만, 역시나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짜증나게도 둘 다 너무 재미있어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야 말아야 하나 고민이 있었어요. '얼굴에 비가 흩날린다는 건 아무래도 피겠지... 아 또 내 멘탈 나가려나' 이런 생각 하면서 읽었는데, 이게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이라 좀 놀라웠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런 점을 강조하면 불안하기도 한데, 뭐 사실이니 써야겠죠.
이 책의 가장 큰 특이점이자 매력은 탐정역을 맡은 무라노 미로란 인물이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이제까지 두 개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켄지, 사와자키)을 읽었고, 그 외에도 하드보일드 특징이 나타나는 소설을 몇 작품 봤는데 거의 다 남성이었거든요. (유일하게 제나로라는 여성 탐정이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비중 높은 조연이고 주인공은 켄지) 현실성을 띠는 하드보일드 소설답게 여성 탐정으로서 한계를 들어내는 표현이 많고, 사건의 배경도 기존 남성 탐정에서 쓰였으면 별다른 생각이 없었을 텐데 여성 탐정이 주인공이라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가령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은 키워드가 AV배우입니다. 그걸 여성이 수사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신선하죠. 하드보일드 소설 속 탐정은 육체관계가 주인공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될 때가 있는데, 이건 이 여성이 주인공인 <무로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로 쓰입니다.
물론,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거지, 여성이라서 세상과 싸우고 궐기하고... 그런 면은 부각 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장치로서 활용되죠.
미로라는 인물은 번뜩이는 감각이 있긴 하지만 다른 탐정들과 비교하면 무능력(...), 즉흥성, 과감함, 감정적인 면이 많아요. 그리고 이와 관련해 (이걸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는데) 독백이 일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독백이 많은데, 이 작가의 소설은 독백이 다른 소설과 좀 다르게 느껴져요. 저의 능력 부족으로 이게 다른 책과 어떤 점이 다른가를 쓸 수 없는 게 참 안타깝네요.
가장 재미 읽게 읽은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물의 잠, 재의 꿈>입니다. 주인공 무라노 시로가 아닌 아버지 무라노 젠조의 청년 시절을 그리고 있습니다. 재미있던 이유는 다른 걸 떠나 사건에 흥미를 느껴서인데요, 실제 일본에서 벌어진 '소카 지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건 <로즈가든>과 <다크>네요. 위키에서 보니까 이 책의 마지막 시리즈인 <다크>가 <그로테스크>와 비견될 정도로 아름답다고 쓰여 있던데...너무 기대 중입니다. 흐흐.
33. 검은 집 - 기시 유스케
보험 조사원인 주인공에게 의문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되는 호러소설입니다. 물론 추리소설로도 볼 수 있고요. 저는 썩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습니다.
초반부가 길고요, 공포감 조성을 위해 배경설정이라던가 (사건과 관계된) 일상을 몇 개 보여주는데 이걸 긴장감 있게 느끼지 못해서 중반이 돼서야 집중을 했던 게 컸던 것 같네요. 범인에 대한 설정도 사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치챌 수밖에 없는데, 주인공의 헛발질도 좀 답답했습니다.
재미있는 게 있다면 공포감에 대한 감정, 배경 묘사입니다. <푸른 불꽃>에서도 그랬고 <신세계에서> 후반부에서도 그랬는데, 이 작가는 폐쇄 공간이나 어두운 공간에 있는 인물 감정 묘사가 탁월합니다. 홀로 있을 때의 무서움, 괴물 & 무서운 존재를 만났을 때의 공포감이 어떤지 (마치 경험한 사람처럼) 시시각각으로 반응하고 그걸 소설에 녹여냅니다. 이 책도 당연히 그런 상황이 있고 그 지점이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살면서 유일하게 읽은 호러소설이 <링 시리즈> 하나입니다. 그래서 호러소설 속 무서움이라던가, 괴기함, 신선함 이런 걸 판단 하지 못해 이게 정말 재미있고 좋은 호러소설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34. 사신 치바 시리즈 - 이사카 고타로
- 사신 치바 (단편집)
- 사신의 7일
설정이 신기한게, 주인공은 치바란 인물이고 이 치바의 직업은 말 그대로 사신입니다. 죽음을 관장하는 사신이요.
조사원인 치바는 일주일 동안 죽을 인물을 관찰하고 그 인물이 죽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보류'로 쓰고, 그게 아니라면 '가'로 씁니다. 이 죽음의 원인은 치바가 직접 정하는 건 아니고... 책을 읽어보면 나오지만, 딱히 사신인 치바가 관계된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사신은 관찰자의 태도를 취합니다. 중요한 건 판단하는 척도가 '죽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죽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평소 패턴이 자연스럽게 그려지죠.
이 설정은 단편집인 <사신 치바>와 장편인 <사신의 7일> 모두 똑같습니다.
그래서 <사신 치바>를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흥미로웠고 책에 빠져들 뻔했으나... 솔직히 재미없었고요. 그나마 마지막 6번째 단편 정도가 기억에 남고 나머진 좀 별로였어요. 감동적이지도, 기발하지도 않아서 그냥 그저 그런 소설로 남나 싶었는데...
<사신의 7일> 이게 진국입니다.
설정에서 보이듯, 사신 치바는 어디까지나 관찰자입니다. 여기에 복선이 추가되면서 기발함으로 승부할테고 그러면서 감동 코드가 좀 들어가는 책일 텐데, <사신 치바>는 단편 모음집이라 그런 면을 잘 느끼지 못했거든요. 근데 장편은 이러한 설정을 폭넓게 적용하고 사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심화시키다 보니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치바의 시선과 또 다른 주인공인 아버지의 시선, 2개의 시점이 챕터마다 교차로 그려지고 하나의 챕터를 하루로 잡아서 총 7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감동 코드도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주 깊은 여운을 줍니다. 지난 석 달간 읽은 책 중에 유일하게 다 읽고 팔짱을 끼면서 허공을 응시했던 책이었네요. 깔끔한 마무리가 정말 좋았습니다.
35.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 히라야마 유메아키
<남의 일>을 읽고 이 책도 마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한민국에 히라야마 유메아키 책이 딱 2권 번역되어 있다고 들어서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읽었습니다.
이야.
재미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의 작품을 모은 단편집이고요, 총 8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고 <남의 일>보다 이 책이 더 먼저 발간되었습니다. <남의 일>보다 더 과감하고 기괴하며 고어 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앞서 쓴 <남의 일>이 인간관계를 그렸다면, <유니버설~~~>은 공포감을 고어와 기발한 발상으로 바꿔 표현해 쓴 작품이 많습니다.
상상력이 뛰어난 책이기도 한데, 이 책의 제목인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이 책의 7번째 수록된 단편 제목입니다. 이 책 내용이 뭐냐면 진짜로 지도의 독백입니다. 전 책 읽기 전에 저게 무슨 말인지 정말 궁금했는데, 지도가 감정을 가지게 되어 독백을 해요. 주인님이 자기(지도)를 펼칠때 나름의 방법을 써서 길을 알려준다는... 황당한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이런 식의 독특한 소재가 많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괴물 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 같은 머리의 남자>.
이제까지 읽었던 그 어떤 소설보다 흉측하고 징그러운 고문이 등장합니다. 단순히 잔인하기만 하면 그저 그렇다고 하고 끝났을 텐데, 미적 요소를 느끼게 하는 설정이 있어서 흥미롭게 봤고요, <살육에 이르는 병>때도 욕지기를 느꼈는데, 이번엔 그런 욕지기를 더 심하게 느꼈고 그 순간 이 단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네요(?). <Ω의 성찬>도 재미있습니다. 발상 자체는 이미 많은 소설, 영화, 만화에서 클리셰처럼 써먹는 소재인데, 묘사가 엄청나게 뛰어납니다. 한마디로 무진장 징그럽다능... 오히려 이 책 제목인 <유니버셜~~~>은 가장 미스터리한 단편임에도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습니다.
36. 도착 시리즈 - 오리하라 이치
- 도착의 론도
신본격류 추리소설. 시작부터 주인공 야스오는 자기 작품이 도작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극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도작 작품은 무려 대상의 영예를 안고요. 초반부터 강렬하죠.
<도착의 론도> 말고도 다른 도착 시리즈 2권이 있는데, 두 번째 편에 해당하는 <201호실의 여자>가 도서관에 없더군요. 발간된 지 오래되어서 도서관에 책을 신청할 수 없었고 그래서 제가 책을 직접 사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근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교고쿠도 시리즈>도 아직 사지 않았는데 이걸 사기엔... 좀 그랬고요, 심지어 이 책 평가도 좋지 않아서 계속 이러쿵저러쿵 망설이다가 결국 지금까지 1편만 읽고 만 작품이 되었습니다. 굳이 시리즈 순서로 읽을 필요가 없음에도 제가 워낙 똥고집이라 이렇게 흑...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고, 지금까지 읽었던 신본격류 소설과 비교하면 꽤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트릭도 뛰어나지만, 이 책 제목인 '도착'이란 단어를 잘 살린 추리소설이라 느꼈어요. 전에 어떤 분께서 '신본격 소설은 오글거려서 읽지를 못하겠다'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그때만 해도 뭔 소리인지 이해를 못 했지만, 요즘 들어서 그런 감정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책 내용과 내 감정이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게 대부분 신본격류 소설이더군요. 이 책은 그런 점이 덜 느껴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의식할 수밖에 없긴 합니다.
이 책 다 읽으신 분들만 공감하실텐데, 책 본편보다 오히려 작가 후기가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37.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 노리즈키 린타로
- 요리코를 위해
- 1의 비극
- 또다시 붉은 악몽
-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단편집)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아직 시리즈를 끝까지 읽지 않았는데, 아마 시간이 좀 지나면 평가를 올려 제 올 타임 추리소설 목록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탐정역 이름이 노리즈키 린타로인데 이는 작가 이름과 같고 아버지는 경시청의 경부입니다. 이런 설정은 엘러리 퀸 소설의 오마주라고 하더군요.
시리즈 첫 작은 아니지만, 한국 내 번역된 책 중에 가장 앞쪽 작품인 <요리코를 위해>를 처음 읽을 때만 해도 트릭 중심의 그저 그런 소설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요리코를 위해> 첫 문장이 '요리코가 죽었다'로 시작하거든요. 통속적인 느낌이 나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을수록 저의 평가가 계속 높아지더군요.
이 작가는 글을 참 잘 씁니다(?). 제가 쓰면서도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책이 잘 읽히고 중독성이 강합니다. <1의 비극>도 그렇고 <또다시 붉은 악몽>도 마찬가지. 이 시리즈는 신본격류 추리소설치고는 굉장히 두꺼운 소설이고, 아직 읽지 않은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엄청나게 두꺼운 소설입니다. 그런데 책 읽는데 시간 순삭을 느낄 정도로 책에 깊게 빠져들어요. 두꺼운 소설임에도 그 어떤 책보다 얇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플롯 때문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네요.
왜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가 자기작품을 비판하면서까지 깊게 고뇌하고 오랜 기간 책을 검토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게, 작가의 후기를 봤는데, 신기하게 본인이 자기 작품을 비판하더라고요? 전 자기 소설책이 부족하다고 쓰면서 겸손을 표현하는 사람은 봤어도 비판하는 작가는 처음 봤습니다. 플롯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핍진성이라고 하나요? 작품 내 세계관과 현실 속 배경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더군요. 제가 다른 소설책을 두고 책 내용이 좀 부자연스럽고 붕 뜬다고 쓰는데, 노리즈키 린타로는 그러한 걸 줄이기 위해 큰 노력을 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다시 붉은 악몽>은 <요리코를 위해> 스토리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 미리 읽는 게 좋고요, <1의 비극> 역시도 <요리코를 위해>와 다른 책이지만, 비슷한 구성이 있어서 비교하시면 좋습니다. <또다시 붉은 악몽>은 다른 것보다 탐정역인 '노리즈키 린타로'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책 속에서도 '노리즈키 린타로'는 자신을 반성하고 채찍질하는 존재인데, 이게 현재 글을 쓰고 있는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와 겹치면서 묘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기에 하드보일드 색채도 들어가 있어서 독백체가 마치 독자에게 하는 듯한 느낌도 강하게 받습니다. 거기에 추리소설에 관련된 작가의 의지까지도 엿볼 수 있고요.
38. 시인 :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 마이클 코넬리
굉장히 두꺼운 소설입니다. 책의 규격이 안 그래도 큰데, 페이지 수만 600P가 넘습니다.
주인공인 기자 잭 매커보이의 형인 션 매커보이가 의문사를 당하고 이에 주인공이 사건을 파헤치는 소설입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대표작으로 알고 있고요, 저처럼 책을 안 읽는(...) 분들에겐 생소한 작가나 예전에 영화로도 발표되었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원작자인 유명한 작가라고 합니다.
처음엔 좀 지루했는데, 약간 지나니까 몰입감이 엄청납니다. 중반까지 엄청난 속도로 읽으실 수 있고요, 아쉬운 점은 중간에 주인공이 붕 뜨게 되는데 이게 다른 사건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면서 한 템포 쉬어가는 부분이라 작품의 재미를 갉아 먹습니다. 그리고 후반에 가서도 좀... 제 입장에서는 그냥 마무리해도 아주 재미있었는데, 좀 과하게 섞는다고 느껴서 작품의 전체적인 평가를 떨어뜨리는 부분이 되었네요.
사건의 미스터리함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복잡할 수 있는데, 약간만 신경 써서 이해하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39. 낙원 1, 2 - 미야베 미유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모방범>의 속편 <낙원>을 드디어 읽었네요.
먼저 <모방범>을 읽지 않더라도 <낙원>을 읽는 데는 무리가 없긴 합니다. 작가가 설명을 어느 정도 해줘서 대략 감을 잡을 수 있거든요. 근데 <모방범>에 등장하는 사건이 <낙원> 초, 중반부에 걸쳐있고 그게 임팩트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모방범>을 읽고 <낙원>을 읽는다면 책 중간중간 가슴 한 켠이 서늘한 느낌을 자주 받는데요, <모방범>을 읽지 않았다면 아무래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기에 재미가 반감되겠죠. 시간대는 <모방범> 사건에서 9년이 지난 후, 마에하타 시게코의 시선으로 극이 진행됩니다.
미야베 미유키 사회파 추리소설이 그러하듯, 사건보다 사건 주위를 배회하는 인물이 조명을 많이 받는 편인데, 이 책 역시도 그런 점이 주목받고 역시 글을 잘 쓰는 작가답게 술술 읽히면서 빠져들게 만듭니다. 아쉬운 건 <낙원>은 앞서 쓴 사회파 추리소설 3부작(모방범, 이유, 화차)보다 사회 비판적인 면이 적은 편입니다. 물론 깊게 판다면 제목과 결부시켜서 의미를 도출할 수 있겠지만, 그 전 소설에서 나온 '신용불량, 투기, 연쇄살인의 이면'과 비교하면 이 책은 그런 비판적 요소가 옅은 편이며, 아무래도 읽는 내내 현실 세계와 비교를 통해 놀라움과 반성(?)을 느낄 수가 없다 보니 아쉽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낙원>이 <모방범>과 같은 갈래가 아니라 판타지적인 소재를 사용한 점 때문에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네요.
40.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 와카타케 나나미
이 말만 이 글에서 몇 번째 쓰는지 모르겠는데, 재미있습니다.
전직 경찰관 다이도지 케이의 시선으로 특정 사건 전, 후를 그리는 소설입니다.
이 책은 재미있는 장치가 많습니다.
이 책은 1개의 장편과 5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단편이 장편 속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습니다. 장편 제목은 '다이도지 케이의 최후의 사건1'인데 그 소설을 읽고 나서 단편이 껴있고, 그 이후엔 다시 '다이도지 케이의 최후의 사건2' 그리고 다시 단편 하나,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편과 장편은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오묘하게 결합하여 있고 거기서 재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코지 미스터리'라는 갈래에 속한 책이라고 합니다. 코지란 말은 알아도 이게 뭔 의미가 있는지 몰라서 검색을 해보니까 기존 추리소설보다 편안하고 자극적인 면이 적은 소설이라고 하더군요. 인물과 극 분위기가 편안하게 그려지다 보니 간간히 웃긴 상황이 많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어지러운 트릭으로 헤매고, 그저 허세 떠는 것 같은 소설보다 편안하게 일상물(물론 이 책은 코지 미스터리)을 읽고 싶다면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도 사건은 심각해도 그 사건의 이면이 좀 웃기게 그려지는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소설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첫 단편부터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와서(한마디로 상황이 웃겨서) 더 그렇게 느낀 것 같네요. 실제로 꽤 크게 웃으면서 봤습니다. 물론 단어 의미 그대로 웃긴다는 의미라면 다른 책이 더 재미있고요, 이 책은 블랙코미디의 아이러니함과 닮았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하드보일드 색채가 포함되어 있고요. 이 책의 매력은 이거 같아요. 사건도 아이러니하고 그 사건의 배경도 아이러니하고 그걸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주인공인 다이도지 케이도 아이러니하며 궁극적으로 이 책의 구성도 아이러니합니다.
41. 일곱번 죽은 남자 - 니시자와 나쓰히코
SF 요소가 가득히 담긴 신본격 추리 소설입니다.
이 책 배경에 깔린 SF적 요소가 중요한데, 주인공은 하루를 계속 반복해서 산다고 합니다. 물론 특정 하루를 본인이 원할 때 할 수는 없고 강제 이벤트로 발생한다고 하네요. 이런 설정이라면 아무래도 시간 틀 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걸 추리하는 거겠죠. 타임 루프물. 타임루프물은 고전이자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역시나 작가도 여기서 아이디어에 착안해 글을 썼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영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지만요.
타임 루프물을 활용한 뛰어난 트릭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처음에 나름 단단히 준비하고 읽었음에도 후반에 다가갈수록 나사 하나 빠진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뭔지 확인하면서 확 풀리는 장점이 있고요, 하나 걸리는 게 있긴 한데 이건 스포라 쓸 수가 없네요. 일반적인 정통 추리소설과 다른 갈래의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단점은 어쩔 수 없게도 초반에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가족관계를 끌어드리는데 이게 참...흐흐.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확 받아드리기 어려운 게 있고요, 하루를 계속 반복하면서 사는 설정이 더 부자연스러워야 함에도 가족 설정을 그냥 강요하는 듯한 구성이 오히려 더 답답하게 느껴져서 아쉬움이 남았네요. 이런 추리소설에 그런 걸 따지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요.
42.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제가 처음 추리소설을 읽을 때부터 무수히 들어왔고 그래서 읽으려고 노력했으나 인기가 워낙 높아(...) 계속 부재중이셨던 소설을 무려 3달을 기다린 끝에 읽었네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중 <백야행>과 더불어 가장 높은 작품성을 받은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재미있었습니다.
작품의 아쉬움보다 제 개인의 아쉬움이 있다면 제가 <요리코를 위해>를 먼저 읽었거든요. 아니 먼저 읽은 건 둘째치고 비슷한 시기에 읽었습니다. 두 책이 전혀 다른 책임에도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게 수기로 책이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앞서 <요리코를 위해>를 읽었을 때 이게 참 신선하게 다가왔고 트릭도 그래서 좋았던 건데, 이와 관련해 <악의> 역시도 같은 시작으로 가니까... '수기'로 시작된다는 아주 단순한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게 아쉽긴 했네요.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게 좀 컸습니다.
하여튼, 이 책은 다른 것보다 범행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점은 확실히 다른 소설과 차별화된 점인 듯싶어요. 큰 틀에서 보면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이 다른 소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나? 에서 거슬러 올라가 그 이유가 사건 전반에 걸쳐있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읽었네요.
43. 도조 겐야 시리즈 - 미쓰다 신조
-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탐정이 아닌 괴이 수집가 도조 겐야가 마을에 방문, 그곳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에 대해 진상을 밝혀내는 정통 소설입니다.
소재는 요괴, 민간 설화, 저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요괴 전문 소설 <교고쿠도 시리즈>와 다른 점은 <교고쿠도 시리즈>는 오랜 역사 속 요괴가 현재의(작중 시점인 1950년대) 세계와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동양 문화의 원류인 중국 문화 속 요괴가 일본에 건너오면 서의 변화, 다양한 지역 속 신 or 요괴, 그리고 시대에 따른, 시기별 인간에 따른 요괴의 변화 등의 폭넓은 요괴 지식을 다룹니다. 당연히 이를 보조하고자 수많은 관련 학문(...)이 등장하고요. <도조 겐야 시리즈>는 그런 거창함보다 한 지역 내 민간, 토속 신앙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물론 <도조 겐야 시리즈> 속 요괴나 민간 신앙도 (일본의 지리적, 문화적 특성상) 이질적인 지역적 색채나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고 있지만, 좀 더 쉽게 그리고 사건에 직접 관계하고 있습니다. 호러 색채를 가미해서요.
주의할 점은 이 책은 두껍고 진행속도가 굉장히 더디고 복잡한 책입니다. 이는 작품의 키워드가 '괴이'라는 것과 맞물려있는데요, 요괴니 귀신이니 신앙이니 모두 인간 감정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고, 그때 생겨나는 게 이해관계, 이 이해관계를 '괴이'와 맞물려 표현하다보니 극이 느리고 복잡합니다. 가령 <염매~~~>를 읽으실 때는 반드시 노트를 준비해야 하는데, 마귀 가계를 표현하는 흑과 백부터 시작해서, 지주와 소작농, 부계사회와 모계사회(데릴사위), 마을 내 분가와 본가의 도래와 위상, 이 분가와 본가는 한층 발전해서 윗집, 가운데집, 아랫집, 큰신집, 새신집이라는 다섯 대의 세력으로 나뉘는 등, 서열 관계가 복잡합니다. 나중에야 이름만 듣고도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지만, 처음에는 굉장히 헷갈립니다. 더 큰 문제는 지형까지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도가 있긴 하지만, 온전히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벌어지는 사건 자체는 어려운 편이 아닌데, 지형을 더럽게 복잡하게 만들어서 기괴함을 느끼게 만들다 보니 온전히 머릿속에 그리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염매~~~>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이유기도 합니다.
또 하나 특징은 호러 소설임에도 본격 추리 소설이기도 한데, 떡밥도 엄청 많으면서 정리도 꼼꼼합니다. 다만, 솔직히 말해 추리물로선 좀 억지가 있고요. 어떤 부분의 트릭은 좀 허무하기도 합니다. (설마 이게 답은 아니겠지, 도대체 진실은 뭘까? -> 헐... 그게 답이라니)
저는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은 썩 좋게 보질 못했고 반대로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은 아예 작정하고 3일에 걸쳐서 읽었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으면서 중간중간 '막간'이라고 해서 책 속 작가가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해주거든요. 이 부분을 읽으니까 미스터리함을 강하게 느끼게 되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몇몇 분들에겐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지만, 마지막도 전 나쁘지 않았습니다.
44. 금단의 팬더 - 다쿠미 츠카사
예전부터 도서관 갈 때마다 표지를 자주 봤던 책입니다. 노랑빛 바탕에 판다 그림이 그려져 있는 책. 무시무시한 책들 사이에 껴있어서 가끔 꺼내 보고 확인하거든요. 이 책은 특이하게 포켓북 형태로 나온 것도 있어서 더더욱 눈에 띕니다. 그래서 그냥 아동용 추리 소설인가보다(...) 하고 넘길 때가 많았는데요, 나중에 확인해 본바... 미식 미스터리라는 특이한 소설이더군요.
장점은 당연히 음식에 대한 묘사겠죠. 단순히 음식 겉모습 묘사뿐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자세, 그리고 요리에 관한 문학작품이라면 당연히 등장할 음식의 재료를 밝히는 과정도 매력적으로 그려집니다. 사실 이런 소재가 재미있게 쓰일 수 있겠나 싶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요, 읽으면서 눈앞에 음식이 있다고 느낄 만큼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단순히 먹기만 해서는 그런 생생한 재미를 느낄 수 없겠죠. 상세한 조리과정도 이러한 '맛'을 눈으로 보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추리 & 미스터리 소설로서 완성도가 높지 않습니다. 중반 넘어가면 누구라도 범인은 물론이거니와 사건의 전체적 방향까지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뻔해요. 추리소설 좀 읽었다고 하시는 분들은 책 초반부만 읽어도 대략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아마 그게 이 책의 평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로 책을 재미없게 읽으셨던 분들이 많으셨던 것 같고요.
저도 그렇게 느끼긴 했는데요, 전 장점이 어마무시하면 단점을 신경 쓰지 않는 터라...흐흐. 제가 재미있게 느꼈던 건 초반 인물 설정 끝나고 요리 설명부터였거든요. 그때부터 추리니 뭐니 그냥 아오안이었고 음식과 관련된 수많은 묘사를 더 보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추리소설로서 매력이 빠졌음에도 김 빠지지 않고 끝까지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