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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8/06 21:50:05
Name 절름발이이리
Subject [일반] 왕관을 쓰려는자 무게를 견뎌라
결과를 책임질 수는 없다.
규모가 큰 대상을 다룰수록 더욱 그렇다.
결과를 약속하고 책임 지겠다고 말하는 자들은 흔히 있지만, 결과의 무게를 얕게 보거나, 스스로의 능력에 대하여 오만한 경우가 다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다루면 되는 게 아니냐는 것 역시 속 편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살겠다면, 운전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속 수십km로 움직이는 1톤의 물체가 야기할 수 있는 결과들 전체를 어떻게 개인이 전부 책임질 수 있나?
한 인간의 몸뚱이로 오롯이 감당할 수 있는건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애초에, 결과란 것은 근본적으로 비가역적인 경우가 많다. 결과의 대부분은 엎질러진 물이고, 새로 물을 떠온 들 그 물은 그 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약속하고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 김성근이 이치로를 이승엽등과 비교하며 썼던 칼럼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치로는 안타를 치면 만족하고 삼진을 당하면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제대로 된 스윙을 해 냈는지로 스스로의 타석을 평가했다고 한다.
자기 스윙을 제대로 해냈으면 삼진을 당해도 만족하고, 자기 스윙이 아니었으면 안타에도 크게 자책했다는 것이다.
야구의 구도자 다운, 이상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최고의 타자도 반드시 안타나 출루를 약속할 수는 없으니, 그 결과에 일희일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자신의 내적 기준에 대한 약속과 책임은 질 수 있기에, 그에 대한 일희일비는 성장의 거름이 된다.
다소 벅찬 목표에, 뻔하디 뻔한 가치들, 신의성실과 약간의 지성을 더해 멧돌을 돌리듯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유일한 문제는 그 약속을 감시하고 평가하고 칭찬하고 비난하고 지속할 이가 오롯이 자신이란 점이다.
헤밍웨이가 말하기를
"타인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다."
고 했는데, 아마도 고귀한 자만이 점차 고귀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잘해야 자신 뿐이나, 그 무게를 바로 견디는 자는 무엇도 견딜 가능성이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렇게 무게를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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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머앟괴꺼솟
18/08/06 22:04
수정 아이콘
좋은 내용이네요..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8/08/06 22:19
수정 아이콘
어.. 랭매 골드가 이렇게 무거운 왕관일 줄은 몰랐어요ㅠ
18/08/06 22:56
수정 아이콘
와 헤밍웨이의 말은 어마어마한 명언이네요.
라니안
18/08/06 22:58
수정 아이콘
뭔가 스스로 다짐하는 듯한 느낌도 드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18/08/06 22:59
수정 아이콘
결과는 하늘이 정하는 것이니 인간으로서는 과정에 집중하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을 책임진다는 것은 이상적이긴 한데, 결과처럼 명확하게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네요.
특히 높은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면 더 결과로 보여줘야 하고요.
그런 사람들도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페스티
18/08/06 23:01
수정 아이콘
프듀48 주제인 줄..
헤밍웨이의 말은 감명 깊으면서도 최후를 생각하면 너무 엄격했던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켈로그김
18/08/06 23:19
수정 아이콘
(수정됨) 동시에 인간은 타인의 니즈, 상황이 요구하는 바에 응답함으로써 관계를 맺고 성장의 계기를 얻기도 하지요.
쉽게 외력에 의해 흔들리지 않을만큼의 내적기준은 필요하지만, 스스로가 선택하여 요구에 응할 수도 있겠지요.
외부와의 상호작용 역시 인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야구는 비교적 구도자적인 면이 존중받을 수 있지만,
축구에서 똑같이 했다가는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거고.
절름발이이리
18/08/06 23:32
수정 아이콘
(수정됨) 홀로 살게 아닌한 외부와 상호작용 하는 건 당연합니다. 어울리고,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고, 협력 하지요. 그러나 상대에게 진정 책임질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결과를 책임질 수 없으면 남과 엮이지 말란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스스로에게 떳떳한 게 중요하단거죠.
켈로그김
18/08/06 23:3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지금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치로의 예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른데, 그래서 본문을 다른 늬앙스로 오해했습니다.

다시 읽으니 프로토콜을 충실히 지켰음에도 발생하는 약물부작용에 대한 책임의 취급과 거의 동일하다는 생각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정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고, 그 과정은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지성의 결과물이죠.
제가 오해한 부분은 최선의 과정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팀으로서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는 방향" 이 다소 순위가 밀려난건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별로 중요한건 아니지만요, 야구 관련 토론도 아니고..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18/08/06 23:23
수정 아이콘
저도 그 인터뷰가 감명깊어서 필사했던 적이 있습니다.
트럼피즘
18/08/07 01:0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좋은 글인데 한 구절이 맘에 걸리는 군요..
결과를 책임질 수 없다..

후대의 사람들은 의도보단 결과를 보죠..
무엇을 시도 했는가가 아닌 무엇을 이루어 냈는가..

이승엽의 홈런개수가 없었으면? 이치로의 안타개수가 없었으면?

https://mnews.joins.com/article/22361107#home - 중국 정계의 스타 왕안석의 친서민 개혁은 왜 실패했을까
절름발이이리
18/08/07 01:45
수정 아이콘
의도가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결과가 안 중요할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 개인의 권능으로 수만 수십만명이 죽을 수 있다면, 그 결과를 그 개인이 무슨 수로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결과의 무게가 왕관의 무게이지만, 그걸 견뎌내는 힘은 개인 내면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주삼촌
18/08/07 09:24
수정 아이콘
짧은글로 충분한 내용을 어필하고 있으며
쉬운말로 알기쉽게 표현했으니 근래 보기힘들었던 좋은글이네요.
cienbuss
18/08/07 15:23
수정 아이콘
그걸 위해 어릴 때부터 성적이라는 지표를 통해 상대적으로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을 골라서 고위관리직에 임명하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도 끝까지 책임이지지는 않으려 하는 사람이 많죠. 높은 지위에 올라가서 실수할수록 목숨으로 책임을 지는 것조차 부족하니까요, 다행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기책임의 원리로 책임을 상당히 제한해 주지만 그조차 지나치다 여기고.

결국 상당수의 자원이 책임회피 및 지위유지에 동원되고 낭비된 비용으로 인해 책임이 더 커지죠. 근데 많은 경우 이걸 제재하기가 어렵고 제재에 성공해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니 제도를 통해 감시 및 제재수단을 만들어야 하지만 끝에는 개개인의 윤리적 책임에 기댈 수 밖에 없긴 합니다.
18/08/07 17:28
수정 아이콘
페이커의 팬으로서 페이커에게 보여주고 싶은글이네요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리단
18/08/07 19:25
수정 아이콘
양영순 작가가 이 글을 보고 오늘자 덴마를 완성한건 아니겠죠?
18/08/08 18:3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마존장인
18/09/04 21:02
수정 아이콘
고귀한 자만이 점차 고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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