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도쿄에 갈 때마다 늘, 유라쿠초 철로변의 스시잔마이에 들린다고 했다.
둘, 아니 세 개의 고유명사가 조금은 그럴싸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도쿄, 서울, 베이징, 이런 것들은 어딘가 고유명사처럼 느껴지지 않으니까-별로 그럴싸한 문장은 아닐 것이다. 유라쿠초의 철로변이라는 건 휘황찬란한 긴자 유흥가 외곽의 변두리에 불과하고, 스시잔마이는 츠키지 수산시장 출신의 사장이 생선 유통을 담당하여 가성비가 괜찮다는 스시 체인점일 뿐이다. 물론 유라쿠초에나 스시잔마이에나 더 자세한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내가 아는 이야기는 이 정도까지. 그러니까 이 문장은 대략 이렇게 변형될 수 있을 것이다.
친구는 서울에 갈 때마다 늘, 신촌 기차역 뒷편의 놀부보쌈에 들린다고 했다.
물론 나는 신촌 기차역 뒷편에 실제로 놀부보쌈이 있는 지에 대해서 모른다.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무튼, 친구는 도쿄에 갈 때마다 유라쿠초 철로변의 스시잔마이에 들린다고 했다. 그는 최근에 결혼한 변호사다. <최근에 결혼한 변호사>는 놀부보쌈보다 중요한 사실이며 꽤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이라거나, 그의 대략적인 나이라거나, 혹은 단정한 얼굴을 한 차분한 사람 같은 인상을 떠올려 봐도 좋을 것이다. 그는 와이프와 함께, 조만간 일본 여행을 갈 거라고 했다. 그때도 그는 유라쿠초의 스시잔마이에 들를 거라고 했다. 대충 스시를 해치우고, 긴자의 괜찮은 바 몇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마 첫 잔은 버번일 것이고, 이어 진 베이스의 칵테일을 두어 잔, 그리고 하이볼이라거나 미즈와리라거나 하는 시원한 것으로 마무리. 나는 그의 음주 습관에 대해 그 스스로가 알고 있는 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 그는 내 가게에서 그렇게 마시곤 하니 말이다.
체인점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유명한 바에서 술을 마신다. 물론 내게는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지난 도쿄 체류동안, 한 잔에 삼천 엔 짜리 꼬냑을 마시고 한끼를 이백오십엔에 해결했다. 한 잔에 1온스니까, 대충 내가 마신 술의 한 방울 가격으로 식사를 때운 셈이다. 삼일간 식비로 총 천팔백육십 엔을 썼고, 개당 이천 엔이 넘어가는 잔이니 바 툴이니 하는 것을 사들였고, 이천오백 엔 짜리 칵테일을 마셔댔다. 덕업일치, 라는 좋은 핑계가 출동할 타이밍이다. 나는 술을 좋아하고, 술이 내 직업이다. 하지만 역시 최근에 결혼한 변호사, 에게 이런 건 좀 안 어울린다. 굳이 술의 등급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겠지만, 식사의 등급 정도는 더 올려도 될 것이다. 아, 물론 내가 그의 세간살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원생 시절에, 일본의 학회에 갈 일이 있었어. 학회가 끝나고, 교수님들은 교수님들대로 긴자로 사라지고, 원생들은 원생들끼리 남았지. 아무도 도쿄 지리에 대해 알지 못했고, 한참을 헤매며 흘러흘러 유라쿠초 철로변에 닿게 되었어. 마침 괜찮아 보이는 초밥집이 보였고, 들어갔지. 나쁘지 않았어. 문제라면 내 주머니에 딱 천오백 엔이 있었다는 거야.'
<문제라면 내 주머니에 딱 천오백엔이 있었다는 거야>라는 문장도 <최근에 결혼한 변호사>만큼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이를테면, 돈이 충분히 많은 사람에게 주머니 속의 돈은 얼마가 있건 굳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거나, 돈이 충분히 많은 사람이라면 주머니 속에 천오백 엔 이상이 있다거나.
'다들 편하게 이것저것 주문하더군. 뭐, 보통의 로스쿨 학생에게는 별로 비싼 가격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시킬 수가 없었어. 하지만 가만히 있자니 기분도 자존심도 좀 그렇고. 그래서,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먼저 숙소로 왔지. 그리고 변호사가 된 이후로, 도쿄에 갈 때마다 거기에 가게 되었어. 맛있더라고. 나, 심지어 오사카에 놀러 갔을 때도 스시잔마이 체인에 갔다. 아, 오사카점은 좀 별로였어. 아무튼, 가성비 좋은 초밥집이더라고. 그래서, 이번에 와이프랑 도쿄 여행을 갈 때도 들러 볼 생각이야.'
그래. 좋네. 하고 나는 내 술을 마시며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성비 좋은 일본의 초밥집이라. 아, 내게도 이야기가 있어. 이 이야기에도 대학원생 출신의 기혼자가 등장하는군. 대학 시절의 친구 하나가, 일본으로 유학을 갔어. 나랑 여러가지로 참 다른 친구였는데, 하루키 이야기로 시작해서 쥐뿔도 없는 집구석 이야기로 끝나는 술자리 끝에 친해지게 되었지. 아무튼 그 친구는 일본의 유부남이 되었지. 이것저것 내가 많이 신세를 진 친구야. 작년인가. 일본에 갈 일이 있었는데, 딱 그때 운 좋게 약간의 시간과 돈의 여유가 생겼어. 보은의 타이밍이군, 생각하며 비싼 밥 한끼 산다고 이야기했지.'
나도 그도 술을 한씩 잔 더 마시고,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친구가 고른 데가, 딱 네가 말한 그런 가게와 비슷한 가게였어. 어쩌면 도쿄의 다른 구석에 있는 스시잔마이 체인일지도 모르겠다. 거기도 츠키지 어시장 출신의 사람이 유통을 담당해서 좋은 가격이 가능하다고 했거든. 내 사정을 고려한 최저지겠지. 우리는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고, 서로 대충 비슷한 사정이니까. 그러니 아직도 친구겠지. 뭐 좀 민망하기도 했어. 그 날 친구에게 받기로 한 물건 중에는, 몇만 엔짜리 콘서트 티켓도 있었으니까. 아무튼, 표를 건내받고 밥을 먹으면서, 우리가 처음 친구가 된 시절의, 잔뜩 위악적이고 냉소적인 얼굴을 하고 서로 빙글빙글 쏘아댔지. 야, 내가 너한테 고마워서 밥 한끼 좋은데서 사준다는데 이딴 이마튼 푸드코트 같은 델 고르냐. 야, 너 이새끼야 돈 없는거 내가 뻔히 아는데 어디서 허세질이야. 너 티켓 구하려고 장기 팔았다면서. 이렇게 떠들면서 맥주를 마셨지. 둘이 꽤 배부르게 먹고 기분좋게 취할 정도로 마셨는데, 얼마 안 나왔다.
그렇게 두 개의 이야기가 끝났다. 이어 하루가 끝났다. 언젠가 유리쿠초의 스시잔마이에 가 볼 생각이다.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친구와 함께. 아, 물론 역시 나는 최근에 결혼한 변호사가 아닌지라, 아직은 조금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전에 함께 간 가게보다 나을 지 아닐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