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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2/09 11:36:59
Name Zero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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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삼국지 우금의 항복에 대한 해명


우금은 위나라의 대표적인 명장인 오대양장의 한명으로 조조 초기 조인, 악진과 함께 조조를 먹여살린 3명의 장수중 하나다.

조인이 위나라 장수중 가장 탑으로 꼽히고 우금은 뒤의 항복이 없었다면 아마 그 뒤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금이 조조 초창기에 활약한 공은 다대하다.


위나라 오대장이 나온 장악우장서전에서도


태조가 무공(武功)을 세울 때 양장(良將-좋은 장수)으로는 이 다섯 명이 으뜸이었다. 우금이 가장 의중(毅重-굳세고 엄중함)하다고 일컬어졌으나 죽을 때까지 지켜내지 못했다. 장합은 교변(巧變-교묘하게 변화에 대처함)하다 칭해졌고 악진은 효과(驍果-용맹과 과단성)로 이름을 드날렸지만 그들의 사적을 살펴보면 전해들은 것과 부합되지 않는다. 간혹 설명이나 기록이 누락된 곳이 있어서 장료와 서황처럼 상세하게 갖추어지지 못했다. - 진수


우금이 가장 의중하다고 하며 다섯명의 장수중 가장 먼저 언급되기도 한걸보면 항복이라는 결격사유가 없었다면 분명 장악우장서가 아니라 우장악장서로 기록되었을것이라고 본다. 장료에 비해 우금이 위나라 장수로서 짬밥이나 대표성이 더 높았으니까...



우금의 공적과 활약상은 다음과 같다.


- 왕랑이 그를 높이 평가해, 우금이 대장군을 맡을 재능이 있다고 조조에게 추천.

- 복양에서 여포를 토벌했는데, 별도 군으로 성 남쪽에서 여포의 2진영을 격파.
   또한 별도로 군을 인솔해 연주 동평국 수창현에서 고아(高雅)를 격파.
   조조를 수행해 연주 동평국 수장현, 연주 제음군 정도현, 제음군 이호현을 공격하고, 진류군 옹구현에서 장초를 포위해 모두 함락.

- 황건적 잔당인 황소(黃邵)와 유벽(劉辟)이 야음을 틈타 조조군을 기습하였으나 반격하고 황소를 참살.

- 장수(張繡)가 항복한 후 하후돈이 거느린 군세가 약탈을 하자 이를 군법으로 다스림. 장수가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평소 방비하고 있던 우금은 성공적으로 방어.

이에 조조가 우금에 대해 이렇게 평가함

육수에서 겪은 곤란으로 나는 참으로 급박했소. 그러나 장군은 변란에 처해서도 군사를 정돈해 적을 치고 보루를 단단히 했으니 옛 명장이라 한들 어찌 이보다 뛰어날 수 있겠소!

- 수춘전투에서 원술의 장수인 교유, 이풍, 양강, 악취를 포위하고 교유등 4명의 장수를 붙잡아 참수했다.

- 관도전 당시 사환, 조인과 함께, 사견에서 휴고를 공격해 깨뜨리고 그를 참수했다
  유비가 서주를 들어 모반하자 조조가 동으로 원정했고, 이때 원소가 우금을 공격했는데 우금이 굳게 지켜 함락시킬 수 없었다
  악진 등과 함께 보병과 기병 5천으로 원소의 따로 설치한 군영을 공격, 보취(保聚) 30여 둔을 불사르고 적군을 참수하고 사로잡은 것이 각각 수 천에 이르렀고, 원소의 장수 하무, 왕마 등 20여 명의 항복을 받았다.
  조조가 다시 우금을 보내 하남군 원무현에 주둔시켰는데, 두씨진에 있던 원소의 따로 설치한 군영을 격파.
  조조는 원소에게 세우고 토산(土山)을 만들어 서로 대치했고 원소가 진영 안으로 활을 쏘아대자 우금이 토산을 맡아 지키며 힘을 다해 싸우고 기백을 떨치며 원소를 격파했다.

- 창희가 다시 모반하자 우금은 하후연과 힘을 합쳐 창희를 공격하여 10여 둔영을 항복시켰고 창희는 결국 우금에게 나아가 투항했다.

- 원술 패망 후 독립하여 장강, 회하 일대를 어지럽히던 진란(陳蘭), 매성(梅成)을 장료, 장패 등과 같이 공격, 토벌.




209년까지 조조의 온갖 전투에서 참으로 여러가지 전공을 세운걸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조조를 먹여살린 수준이라고 할까...

그런데 209년부터 219년 번성공방전까지 우금의 전공에 대한 기록이 없다. 새롭게 들어온 장료, 서황, 장합등은 이 기간동안 열심히 공을 세우고 악진도 이 시기에 여러 공을 세우는데 우금만 이 시기에 공을 세운 기록이 없는것이다.

장료, 서황, 장합등 새롭게 선봉으로 쓸 장수들이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짬밥이 높은 우금은 후방에서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포지션으로 바꿨을거라는 가정이 있다.

그리고 사실 209년부터 219년까지 우금이 맡은 지역이 문제였는데 조엄전에 따르면 당시 우금은 영음에 주둔하고 있었고, 악진은 양적에 주둔하였으며, 장료는 장사에 주둔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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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음은 영천군에 속한 현으로 영천은 허창 바로 밑에 있다. 그리고 장료는 형주남부 장사에 주둔했었고...

그러던게 유비가 형주남부를 뺐으면서 장료와 악진은 합비에 주둔하게 되었고


이후 이 시기에 조조가 친히 전투를 한건 손권을 친 유수구 전투와 마초와의 동관전투, 한중전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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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비는 장료, 우금. 악진으로 막았고 유수구는 합비와 가까이 있으니 장료등이 주로 활약했고 (그리고 사실 유수구 전투는 전투다운 전투도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손권이 합비로 쳐들어왔기 때문에 합비에서 장료가 800으로 10만을 막아내는 큰 공을 세울수 있었다.

그리고 서쪽은 하후연, 서황, 장합등이 지키며 각종 전투에서 활약했다.

이와중에 우금은 중앙에 위치하며 허창을 방어하고 있었던것으로 보이고 그래서 공을 세울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조조가 가장 믿고 의지했기에 그런 역할을 맡겼을거라고 생각된다. 허창은 위의 수도로서 아주 중요한 곳이기에 여기서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안되니까... 지금까지 반란이 일어나도 침착하게 대응하며 이를 막아낸 우금을 높게 평가해서 그런 역할을 맡긴것으로 보인다.

이시기 큰공이 없어 우금이 별것도 아닌 장수라고 한다면 관우 역시 형주에 남은뒤 익주정벌, 한중공방전에 아무런 공을 못세웠는데 장비, 황충, 마초, 조운등만 공을 세웠다고 관우도 별것도 아닌 장수라고 평가하는것과 다를바 없다.

관우가 유비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장수이기에 형주를 맡겼듯이 우금도 조조에게 가장 깊은 신뢰를 받았기에 허창을 방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관우가 엄청난 기세로 북진하며 번성을 공략하고 번성이 함락되면 허창마저 위험한 상황이 되자 조조는 우금에게 7군을 맡겨 관우를 상대하게 한다. 즉 우금은 위의 가운데, 허창을 방위하는 역할을 맡아 때를 기다리다 관우의 공격에 맞서 나가 싸우게 되는데...


하필이면 큰 폭우가 쏟아지며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관우에게 사로잡혀 항복하게 되었다.


이때 상황이 어땠나면




관우가 군사를 이끌고 번(樊)에서 조인(曹仁)을 공격했다. 조공이 우금(于禁)을 보내 조인을 돕게 했다. 가을, 큰 비가 내려 한수(漢水)가 범람하고 우금이 이끌던 7군(七軍)이 모두 물에 잠겼다. 우금은 관우에게 항복했고, 관우는 또 장군 방덕(龐德)을 참수했다. 양(梁-예주 양국), 겹(郟-영천군 겹현) 육혼(陸渾-홍농군 육혼현)의 군도(群盜-뭇 도적)들이 혹 멀리서 관우의 인호(印號-관인과 봉호)를 받아 그의 일당이 되었고 관우의 위세가 화하(華夏-중국)를 진동했다.

- 관우전


가을, 큰 장마비가 내렸다. 한수(漢水)가 범람해 평지에 물이 차올라 수 장(丈)에 이르렀고 우금 등의 칠군(七軍)이 모두 물에 잠겼다. 우금이 제장들과 함께 고지에 올라 물을 바라보니 회피할 길이 없었고, 관우가 큰 배를 타고 와서 우금 등을 공격하자 마침내 우금은 투항하고, 오직 방덕(龐德)만이 절의를 굽히지 않고 (싸우다) 죽었다.

- 우금전



조인은 방덕을 번성에서 북으로 십리 떨어진 곳에 주둔시켰으나, 십여 일 계속된 비에 한수가 범람하여 번성의 평지는 5, 6장 정도 수몰되었으므로 방덕은 여러 장수들과 더불어 제방에 올라 물을 피해다. 관우가 배를 타고 이를 공격해왔는데, 큰 배에서 사방으로부터 제방 위에 화살을 쏘아댔다. 방덕은 갑주를 몸에 두르고 활을 잡고 나섰으니, 쏘는 화살마다 빚나가는 것이 없었다. 장군 동형董衡, 부곡장 동초董超 등이 항복하려 하였으므로, 방덕은 그들을 붙잡아 베어 죽였다.

방덕은 막하의 장수 한 명, 오백(오장) 두 명을 거느리고 활을 당기며 작은 배에 올라 조인의 진영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물결에 배가 뒤집혀 활과 화살을 잃고 말았다. 전복한 배에 매달려 물속에 있던 중에 관우의 포로가 되었으나, 당당히 서있었다.


- 방덕전




엄청나게 큰 비가 와서 한수가 범란해서 평지가 다 수몰되고 우금의 7군이 다 물속에 빠진 상황이 되어버런것이다. 관우는 이미 이를 예상하고 큰 배를 만들어서 배를 타고 다니며 허우적거리는 우금군을 몰살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정도면 상황이 확실히 그려진다. 범람하는 물속에서 우금의 병사들은 조금 드러난 섬같은 육지에서 갇혀 곧 죽기를 기다리거나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거고 관우가 살려주지 않으면 얄짤없이 모두 익사할 상황이었다.

어떻게 후퇴를 할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우금이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고 버티면 우금군 3만이 그대로 수장되는 상황인데 우금의 성격상 그건 용인될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사에 나온 우금의 성격은 우금은 군을 이끌 때 엄정하였고 적의 재물을 얻어도 사사로이 차지하는 일이 없어 이 때문에 특히 중한 상을 받았다고 하고 법으로 아랫사람들을 다스려 병사들의 환심을 크게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원칙주의자라는건데 그렇게 병사들을 엄정하게 다스려왔는데 그런 병사들이 전투 한번 못해보고 물속에 갇혀 곧 수장될 위기에 처했는데 그냥 자기 명예지킨다고 이들을 다 저버리는건 우금으로서는 할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방덕과는 또 다른게 방덕은 엄연히 부장이니 병사들 신경안쓰고 열심히 저항하다 죽을수 있지만 우금은 7군을 이끄는 주장이니 자신이 어떤 처신을 하느냐에 따라 병사들의 생사가 결정된다. 그래서 우금은 관우에게 항복했고 아마 여기서 내가 항복하는 대신 물속에 갇혀있는 병사들을 구해달라고 관우에게 부탁했을 것이다.


그리고 관우는 큰배로 우금의 병사 3만을 구해내서 포로로 만들었다.



이후 관우는 우금의 병사 3만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가둔뒤 손권의 쌀을 뺐어서 잘 먹이고 보살피는데 이는 관우의 성격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금이 자진 항복했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았던것이다. 우금이 대놓고 계속 저항했다면 우금군 대부분은 물속에 빠져죽고 살아남은 병사들도 아마 거의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후 우금의 3만 병사들은 손권이 형주를 뺏으면서 손권이 관리하다가 후에 위로 보내진다.

이들은 우금때문에 모두 목숨을 건질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목숨을 구한 우금은 오히려 그 선택으로 온갖 굴욕을 겪다가 비참하게 죽으니



일단 조조가

'내가 우금을 30년 동안 알고 지냈지만 위난에 처하자 오히려 방덕보다 못하리라는 것을 어찌 짐작했겠는가!' 라며 디스를 했다.


오나라의 우번은 우금이 손권과 말을 타고 같이 외출하자

'당신은 투항한 포로이거늘 어찌 감히 우리 주군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느냐.' 하고 디스를 했다.

그리고 우번은 우금이 연회중에 눈물을 흘리자

'당신은 거짓으로 사면을 구하려 하시오?'

라고 디스를 했고 이후

'우금은 수만 군사를 패배시키고 자신은 항복한 포로가 되어 또한 죽지도 못했습니다. 죄를 지은 도적을 풀어주는 것이니, 그를 참수해 신하로서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보여주느니만 못합니다.'

라며 우금을 위로 보내지 말고 죽이자고 또 디스했다.



하지만 우금은 우번을 원망하지 않고 위나라로 올라가 우번을 매우 칭찬했고 조비는 우번을 위해 빈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고 문제는 인성쓰레기 조비였다.

조비와 만나 우금은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는데 그동안의 스트레스로 수염과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형용이 초췌했다.
병사들을 구했지만 본인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았던걸로 보인다.


하지만 조비는 그런 우금을 위로하는척하면서 우금에게 조조의 능묘를 참배하도록 했는데

조조의 능묘에는 조비의 지시를 받아 관우가 싸움에서 이기고 방덕이 분노하며 우금이 항복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우금은 이 그림을 보고 결국 더이상 정신줄을 지탱하지 못하고 부끄러움과 분한 마음에 병이 걸려 죽었다.

조비는 이후 시호를 여후(厲侯)라고 내렸는데 시법에서 갈 려(厲)는 죄없는 사람들을 살육한 경우를 의미한다. 자신이 항복해서 병사 3만을 구했으면서도 이런 시호를 받았으니 대놓고 조비에게 죽어서도 조롱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조조의 패업을 위해 누구보다 더 엄청난 공헌을 세운 우금은 수많은 건국의 공신들이 모셔진 조조의 묘정에 결국 혼자 모셔지지 않았다.




조조, 조비 두 부자가 우금을 대한것을 보면 유비가 황권을 대한것과 비교가 되는데

이릉대전의 참패후 황권은 위와 오 사이에 갇혀 결국 모든 병사, 관원들을 데리고 위나라에 항복을 하게 되는데
황권의 투항을 두고 촉의 몇몇 대신들이 황권을 비난하며 황권의 가족을 죽여야 한다고 하자 유비는 "황권이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내가 황권을 배신한 셈이다." 라고 말하며 황권의 가족을 보호했다.

황권은 유비밑에 그렇게 오래 있지도 않았음에도 유비는 황권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가족을 보호한 반면

우금은 조조밑에서 30년간 있으면서 숱한 공적을 세우고 엄청난 활약을 했음에도 이해받지 못했고 조비에게 굴욕을 당하며 분사했다.




항복이라는 선택을 함으로써 약 30년 간 쌓아온 자신의 정체성을 한순간에 박살냈다.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선택을 했지만  그 선택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의 스트레스와 모욕을 받으며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대중들에겐 관우 앞에서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잡장정도로 인식됐으며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오대양장의 필두로는 보기힘든 엄한 능력치만 받아 저평가 되고 있다.


오대양장 (삼국지 13기준)

장료 통솔 94/무력 92/지력 78/정치 58
서황 통솔 88/무력 91/지력 74/정치 48
장합 통솔 89/무력 89/지력 73/정치 57
악진 통솔 80/무력 85/지력 56/정치 51
우금 통솔 84/무력 77/지력 74/정치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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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커버스커
17/02/09 11:50
수정 아이콘
우금은 시기가 안 좋았던것도 큽니다. 과거 소위 말하는 군웅할거 시대때야 세력 갈아타기가 자주 일어나곤 했었지만
삼국이 정립된 이후부터는 타세력에 항복하는 것이 훨씬 더 크게 다가왔죠.
하물며 당시기준 그 동안 쌓은 공적만으로 보면 다섯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우금이 항복해버렸으니
하필 항복을 받는 장수가 충의지사로 이름 날렸던 관우기도 하고요
17/02/09 11:56
수정 아이콘
우금의 항복 여부가 군사들을 살리는 것과 직결되었는지의 여부는 애매하군요.
그의 항복이 진정성을 얻고자 했다면, 항복한 후 오나라 혹은 위나라로 돌아와서라도 자결로 자신의 떳떳함을 증명하는 방법도 있었을 겁니다.
항복한 사실 하나만으로 평가절하하기는 어렵지만, 또한 그와 관련한 대처가 명예롭지 못했던 건 분명 사실입니다. 딱히 실드를 과하게 쳐줄 이유는 없을거 같네요.
17/02/09 12:24
수정 아이콘
항복하고 자결하지 않고 있다가 후에 다시 복귀해서 공을 세운 케이스는 많습니다.
관우도 그런 케이스죠. 유비 가족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조조에게 항복하고 그렇다고 자결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유비로 복귀해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반면 우금은 그렇게 복귀해서 다시 공을 세워 과를 씻을 기회도 안주고 조비가 굴욕을 줘서 분사시켜버렸죠.

생각해보면 관우나 우금이나 항복에 있어서 그렇게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군주인 유비와 조비의 차이가 있었던거죠. 유비가 관우를 항복했다는 죄로 참수시켰다면 관우의 평가가 지금처럼 높게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17/02/09 19:30
수정 아이콘
관우의 항복 당시에는 분명한 조건을 달지 않았던가요? 정사의 기록에도 공공연하게 "언젠가는 유비에게 돌아갈 것이다"를 천명하며 충절을 저버리지 않은 관우와, 항복 후에도 비겁자라고 까였던 우금은 동등하게 비교할 처지가 아니라고 봅니다.
17/02/09 12:08
수정 아이콘
나름 네임드 무장인데 무력이 항상 낮아서 의아했던 장수네요.

대부분 코에이 시리즈에서 무력이 70대죠.
남광주보라
17/02/09 12:11
수정 아이콘
하아. . 고대의 일본 무사들도 항복을 택할 바엔 할복! 이라며 배를 가르곤 했죠.

도저히 죽으면 무슨 소용이고 뒷일은 어찌 도모한단 말인가요. 명예? 일단 살아남고 다시 권토중래하여 큰 공로를 세워서 회복하면 됩니다.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길을 버리고서, 당장 죽어서 넋이 되어서 울편 화이팅! 하고 응원해줄 겁니까. . 스타워즈처럼 영령이 되어서 짠!하고 나타나서 울편에게 조언을 해줄 것도 아니고. .

우금에게 너무 심했던 것이 맞습니다. 우금으로 하여금 다시 군대를 이끌게 하고 공적을 세워라하고, 못하면 투항한 죄를 물어 벌을 주는게 나았습니다 저렇게 조롱하는게 조씨 부자가 참 졸렬해보이네요
틀림과 다름
17/02/09 20:30
수정 아이콘
그런데 그 당시 일본 무사들은 할복을 한다면 무사들의 가족을 무사들의 군주가 돌봐줬습니다
위 본문에 보면 우금은 방덕과 처지가 다르다고 나오고요
방덕은 싸워도 문제 없지만 우금은 자기의 처신에 따라 부하 3만명의 목숨이 달려 있죠
미하라
17/02/09 12:13
수정 아이콘
하필이면 비교대상이 방덕이었다는게 문제죠. 차라리 방덕까지 항복했으면 우금의 처지가 저렇게 비참해지진 않았을걸요.

조조를 섬긴지 얼마 안된다 번성에 있었던 장수들에게 촉으로 투항할지도 모른다고 의심받던 방덕조차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죽었는데...
하물며 그 방덕이랑 같이 번성으로 파견된 대장이었던 우금은 창업공신인데다 조조를 30년이나 섬긴 역전의 용장이었는데 항복했으니...
17/02/09 12:26
수정 아이콘
우금과 방덕은 그 입장의 차이가 있었다고 봅니다.
방덕은 부장이니 마음껏 자기 목숨 내버려가며 항전할수 있었다면
우금은 7군의 병사를 다 책임져야 할 주장이니 그의 항전은 곧 3만 병사의 익사및 수몰을 의미하는거고 따라서 우금도 방덕과 같은 선택을 하지 못했던거 같아요.
럭키루이
17/02/09 13:26
수정 아이콘
글쎄요 우금이 싸우다 죽는것과 아닌것에 7군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말은 선뜻 이해하기가 힘드네요.
원래 대장이 싸우다 죽으면 그소식을 듣고 병사들은 항복하기 마련인데요.
17/02/09 13:45
수정 아이콘
저 상황이 좀 평소 전장하고는 좀 다른게
그냥 일반 전장에서 싸우다 항복하는게 아니라
큰 비가 내려 우금의 7군이 물속에 잠긴 상황이었습니다.

[한수(漢水)가 범람해 평지에 물이 차올라 수 장(丈)에 이르렀고 우금 등의 칠군(七軍)이 모두 물에 잠겼다.]

범람하는 물속에서 우금군이 허우적대고 있고 몇몇은 섬같은곳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이었죠.
우금이 죽음을 병사들이 알기도 쉽지가 않고 그걸 알기전에 범람하는 물에 수장될 긴급한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만약 우금이 관우와 목숨을 걸고 계속 싸우면 그 사이에 우금의 병사들은 수장되는 상황이라는거죠.

우금이 관우에게 항복을 했고 그 이후에 관우가 큰배를 이제 구조선으로 활용해서 우금의 병사들을 구해냅니다.

일반적인 전장상황이면 모르겠으나 우금의 상황은 정말 꼬일대로 꼬여 너무나 긴급한 상황이었죠.
우금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그냥 열심히 싸웠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개죽음 당할 상황이었다는거죠.
럭키루이
17/02/09 13:52
수정 아이콘
우금이 싸우다 죽었다는 말이 퍼지기 힘들다는 말은 우금이 항복했다는 말도 퍼지기 힘든상황이라는거죠
우금의 항복이 병사들을 살렸다는 사실이지만
우금의 항복이 병사들을 살리기 위한 행동이였다는 말은 단정지을수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우금이 항복한다면 나머지 병사들을 살릴지 말지는 관우의 권한이죠 우금이 항복을 댓가로 요구하고 말고 할만한 조건이
아니니까요.
싸우다 죽거나 항복을 했거나 나머지 병사들 처우는 승장의 재량이죠 그걸 우금이 모를리도 없고말이죠.

거기까지 내다보고 항복을 햇다기보다는 당장 죽기 싫어서 라고 생각합니다. 오나라에도 갔다가 위나라에도 간걸 보면 말이죠.
17/02/09 13:59
수정 아이콘
물론 우금이 항복한다고 관우가 무조건 병사들을 살린다라고 단언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금이 계속 싸우는것과 우금이 항복하는것과 어느쪽이 병사들의 목숨을 더 살릴 확률이 높냐를 따지면 당연히 후자죠.
우금이 관우에게 항복했기에 관우도 그 우금을 데리고 큰배로 돌아다니며 우금의 병사들에게 주장이 항복한걸 보여주며 그들을 구조할수 있었던거고 그로 인해 우금의 많은 병사들이 물속에서 살아남을수 있었던 겁니다.

요컨데

우금이 계속 싸우면 - 관우도 우금과 계속 싸울것이고 그 사이에 우금의 병사들은 대거 수장될것이다
우금이 항복하면 - 100% 단언할수는 없지만 관우가 큰배를 이끌고 우금의 병사들을 구해 줄것이다 라는거죠.

그리고 우금도 관우가 항복했을때 관우를 봤었고 관우의 성격상 항복하면 병사들을 살려줄거라고 예상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대부에게 교만하고 사졸들에게 관대한 관우의 성격은 이미 여러 열전에서 언급될정도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관우라면 자기가 항복했는데 자신의 부하들을 죽이지 않고 구조해줄거라고 우금도 그렇게 생각했던거죠.

그 후 스스로 자결하지 않은건 단순히 죽기 싫어서 라기 보다는 이후 때를 노렸다고도 볼수 있지 않나요. 관우가 조조에게 항복하고 자결하지 않고 다시 유비에게 돌아가 공을 세운걸 생각하면 관우가 자결하지 않았다고 죽기 싫어서 항복했다 라고 할수는 없으니까요.
럭키루이
17/02/09 14:04
수정 아이콘
그런 확률을 계산한다면 왠만한 상황에서는 다들 항복하겠죠. 아니 불리한 상황에서의 전투는 나서지 않는게 나을겁니다. 여기서 우금이 어떤마음을 가지고 항복했느냐가 중요한건데 병사들을 살리고 싶다인지 내가 살고 싶다인지 그상황만 봐서는 몰라요. 둘다 가능 한 얘기니까요. 그러니 병사들을 살리고자 항복한 인류애가 넘치는 장수로 표현되기에는 좀 찝찝함이 남지않을까 생각하는겁니다. 게다가 모든 세력이 조조에게 향했는데 단기로 아무것도 없는 유비에게 돌아간 관우와 오에 항복했다 최대 세력인 위로 되돌려 ' 보내진' 우금과의 비교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미하라
17/02/09 14:19
수정 아이콘
근데 실제로 관우가 특이한 케이스고 적국에 항복했던 장수가 다시 본래의 주인을 찾아간 경우는 거의 없지요. 항장 출신이라고 중용되지 않은 경우도 많고 항장 출신임에도 능력을 인정받고 중용된 경우도 많지만 본래의 주인에게 다시 돌아간 케이스는 관우 정도말고는 찾기 힘든 사례죠.

본문에 언급된 황권도 항복 이후에 유비와의 신뢰관계는 유지되었어도 황권이 다시 촉으로 돌아가진 않았습니다. 우금이 그 상황에서 항복했다면 다시 위나라로 돌아가서 공을 세워 번성구원의 실패를 만회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병사들 목숨도 더 살리고 자기 목숨도 보전할 목적이 컸다고 봐야죠.
루트에리노
17/02/09 12:19
수정 아이콘
막상 방덕도 항장 출신인데...
Mephisto
17/02/09 12:26
수정 아이콘
조조가...
원래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인간상이죠.
17/02/0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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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상에서 우금은 또 하필 발음이 같은 장수가 한명 더 있이서.. 짭금이네 마네 취급이나 당하죠(...)
미하라
17/02/09 12:27
수정 아이콘
다만 황권과의 비교는 좀 무리인게...
황권같은 경우 자기 주군이었던 유비가 자기를 이해해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위에 항복했던겁니다.
안그랬으면 자기 처자식이 다 죽을지도 모르니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장담할수 없죠.
실제로 황권이 투항하자 촉의 신하들이 황권의 가족들을 잡아 죄를 묻자고 했는데 "내가 황권을 배신한것이다" 라며 유비가 거부했습니다.

훗날 위에 항복한 사람들로부터 황권의 가족들이 처형되었다는 말이 돌았지만 황권은 믿지 않은거만 봐도 자기가 섬겼던 주군에 대한 이해가 우금과는 달랐다고 봐야죠.
버스커버스커
17/02/09 12:37
수정 아이콘
그것도 있지만 황권의 경우 유비가 결과적으로 황권을 사지로 몬 셈이 된 거나 마찬가지라서
거기서 황권 항복했다고 가족들에게 죄를 연좌시키기엔 유비 본인이 이릉에서 말아먹은게 워낙 커서 면도 안 섰을 겁니다.
우금의 경우 전력상 확실히 더 우위였고 지원도 빵빵하게 내준 편이었는데 패배 후 항복이라 황권하고는 다른 케이스로 봐야죠.
서현12
17/02/09 13:59
수정 아이콘
유비가 붕어했을때 위의 다른 신하들은 다 기뻐했지만 황권만은 슬퍼했다고 하고 유비가 가솔들을 죽였다는 소문이 돌아도 유비는 그럴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했죠. 그런 책임관계도 있었겠지만 유비와 황권간의 어떤 신뢰와 이해관계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실제로 유비가 한중이나 이릉에서 황권에게 중요 직책을 맡긴것도 있었고.
Mr.Doctor
17/02/09 13:10
수정 아이콘
발음 같은 다른 우금도 조조 휘하의 장수였던걸로 아는데, 삼국지연의 내에서 활약은 여기서 나온 우금이 거의 대부분이었던게 맞겠죠? 다른 우금 때문에 헷갈려서...
노스윈드
17/02/09 13:21
수정 아이콘
발음 같은 우금(牛金)은, 소설에서는 적벽대전 후 조인과 주유가 싸우는 대목에서만 등장합니다.
설탕가루인형
17/02/09 13:21
수정 아이콘
여윽씨 인성쓰레기 조비다.
럭키루이
17/02/09 13:30
수정 아이콘
전 조비보다도 조조가 더 이해가 안가네요. 사정이 없음을 몰랐던게 아닌데 그런식으로 디스하다니..
조비입장에서야 조조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알게 뭔가요 자신이 성장해서 겪은것은 관우라는 재앙이 나타난 힘든 상황에
정예를 이끌고 가더니 항복해버린 항장일 뿐이니 우금이 곱게 보일리가 없지요
조조는 우금이 세운공이 어마어마한데 7군을 살리려 항복한 장수를 그렇게 디스했다는점이 유비와 비교되는 점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여윽씨 인성쓰레기 조비다(2)
Agnus Dei
17/02/09 13:24
수정 아이콘
오대장 중에 악진 빼고 전부 투항 경력이 있는데 우금만 까이는거 보면 안습
언어물리
17/02/0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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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덕도 항장 출신인데요? 2
17/02/09 13:46
수정 아이콘
조조 초기 조인, 악진과 함께 조조를 먹여살린 3명의 장수중 하나.

악진이 조인과 우금과 동급으로 취급받을 장군인가요???
일반적으로 하후연이나 서황 등과 비교해서 악진이 더 우월하다고 쳐주나요??
17/02/09 13:48
수정 아이콘
동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오대양장에 들어가니 비슷한 급으로 취급해줄만한 장수라고 봅니다.
다만 조인, 우금이 악진보다는 대부분 높게 평가되죠.

하후연과의 비교는 애매하네요. 둘의 위치나 역할 자체가 많이 달라서...
17/02/09 15:25
수정 아이콘
제가 그동안 악진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높게 평가받는 것 같아서 놀랐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버스커버스커
17/02/09 13:51
수정 아이콘
초창기에 조인,악진,우금의 공적이 걸출했던것은 사실입니다.
하후연은 초창기 군량 수송 셔틀이었고 서황이 본격적으로 두드러지게 부각되기 시작한건 원소와의 대결부터긴 합니다.
17/02/09 15:27
수정 아이콘
아... '초창기'라는 말에 포커스를 맞추고 해석하니, 대부분 납득할 수 있겠네요.
미하라
17/02/09 14:29
수정 아이콘
기록에 나와있는 식읍만 보면 악진과 우금은 1200호로 식읍이 같습니다.

식읍은 관직과 상관없이 공적에 따라 주어졌고 훗날 위나라의 경제상황이 더 좋아지면서 후대에 활약한 장수들이 더 많은 식읍을 받긴 했습니다만 악진과 우금은 둘다 조조의 창업공신들이니 활동시기도 비슷해서 둘의 공적이나 활약상은 거의 비슷하다고 봐도 될것 같습니다.

참고로 조인은 식읍이 3500호로 둘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위나라에서 가장 저평가된 인물로 만총을 꼽는것도 이 때문입니다. 기록에 보면 만총의 식읍은 9600호인데 위에서 만총보다 많은 식읍을 가졌던 장수는 촉한을 멸망시킨 공으로 엄청난 식읍을 받았던 등애와 종회, 그리고 왕으로 봉해진 조창밖에 없습니다. 만총이 한창 합비에서 손권을 손제리로 만들때 반대편에 있는 대촉전선에서 맹활약했던 장합의 식읍이 4300호인데 장합보다 약 10년 더 살았을뿐인데 식읍은 장합의 두배가 넘는걸보면...만총과 동시대에 활약한 위나라 문-무관중 만총보다 많은 식읍을 받은 인물이 없습니다.
버스커버스커
17/02/09 14:59
수정 아이콘
만총이 워낙 검소하게 살아서 조예까 면 세워주려고 막판에 한번에 많이 하사한 것도 감안은 해야합니다. 그걸 감안해도 대단한 장수인건 맞지만요
17/02/09 15:31
수정 아이콘
하필 둘이 똑같은 식읍이라니...!
식읍으로 따지니... 눈앞의 데이터에 더이상 할 말이 없네요. 크크크

만총 저평가 이야기는 저도 예전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삼국시대 후반기에 전체적으로 식읍'인플레'가 있었다는 걸 감안해도... 정말 대단한 인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저평가 받는다고...ㅠ
미하라
17/02/09 16:01
수정 아이콘
연의에서는 유비 사후에는 동오를 다루는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버리고 제갈량의 남정-북벌에 포커스가 맞춰지다보니 대촉전선에서 활약하지 않은 인물들은 그냥 아예 묻혔지요.

그러다보니 합비에서 철벽수문장 노릇하던 만총이나 강릉에서 철벽수문장 노릇하던 주연같은 인물들은 거의 비중이 없습니다. 쟤들은 제갈량의 세례를 받지 못했거든요. 학소같은 개인열전이 없는 기록 부실한 인물도 제갈량 상대로 한번 잘싸우니까 뭐...
17/02/09 14:16
수정 아이콘
화봉요원이 생각나네요
진정한 영웅은 살아남아야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음을 알고 있다고 했었죠
우금은 항복 이후로 세운 공이 없어서 더 평가절하된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17/02/09 14:21
수정 아이콘
그게 다 조비때문...
17/02/09 14:46
수정 아이콘
우금이 가진 이미지의 파괴력이 너무 커서 당대에 있떤 위에 있던 장수나 책사나 주군이 모욕을 너무 심하게 줬네요..우금 나름대로도 항복했을때의 상황을 넌지시 그려봤을텐데 이정도로 악랄하게 디스 당할줄 몰랐나보네요.그래도 조조는 내편이라는 생각으로 살았을텐데 조조가 디스하고 다른사람들이 끝까지 디스하고 조비마저 여윽씨 또라이짓을 하네요.물론 조비 입장에선 우금따위 알게 뭐야 해도 상관없긴 한데 조조는 그러면 안됬습니다.
17/02/09 14:49
수정 아이콘
조조 뿐만 아니라 조비 입장에서도 우금에게 저래서는 안되는게

완성퇴각 당시 가장 먼저 조조와 조비 자신의 위급을 구원한 사람이 바로 우금 본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조조와 조비의 생명의 은인이 우금이었죠.
보통블빠
17/02/09 16:41
수정 아이콘
조비코패스...
이호철
17/02/09 16:42
수정 아이콘
조비의 인성이야 유명하지만, 조조가 저렇게 발언한건 참..
17/02/09 17:40
수정 아이콘
소소한 오류가 있는데,
장료가 주둔했던 곳은 형주 장사군이 아니라, 예주 영천군 장사현입니다.
17/02/09 17:46
수정 아이콘
아 그런가요. 잘못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17/02/09 18:59
수정 아이콘
역시 인성갑 조비 크. 그리고 디스계의 대부 우번
軽巡神通
17/02/0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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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할것없이 그냥 부하들 살리기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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