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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25 17:27
재밌네요 이글 읽어보니 한번 더 보고 싶은데.. 영화의 반을 바닥보느라고 놓쳤거든요.. 그러고보니 오성복은 수포가 없었네요.. 근데 저 해석대로라면 일본에서 숲이나 지키지 왜 여기까지 온건지
16/06/25 17:46
영화에선 애매하게 처리됩니다.
죽은지 안죽은지 모르게... 적어도 효진이 종구를 찌르는 신은 안 나옵니다. 감독은 종구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고 했구요
16/06/25 19:45
그냥 탈진해서 정신을 놔버리는 모습만 보여준 거 같더군요. 스르르 눈이 감기면서 딸과 행복하게 지냈던 생각 속으로...(일명 자폐)
16/06/25 17:56
일본인에 예수를 반영했다는건 감독이 대놓고 말했죠. 저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고유의 무속신앙 vs 서양 유일신앙 의 구도가 아닐지...
16/06/25 17:51
영화보며 가장 의아하던게 무명이 말하는 죄가 사람을 의심하고 죽였다라고 하는데 그게 종구라면 영화에서 의심하고 죽인건 일본인밖에 없거든요. 그것도 사실 사고사였고... 뜬금없이 트럭에 들이받았으니...
근데 그 일본인은 대놓고 무명이 사람이 아니라고 했기에 일본인 죽였다고 그걸 가지고 사람을 죽인 죄라고 하는건 좀 그렇더라구요.
16/06/25 17:52
저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비워놓았다고 봅니다.
누가 효진을 겁탈한 것인가가 아니라 일본인이 효진을 겁탈한 것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효진이 누구에게 겁탈당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종구처럼 누가 효진을 겁탈했을까라고 의심하며 함정에 빠지는 순간 감독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무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현혹되지 맙시다.
16/06/25 18:39
아마 다 찍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끔 일부러 들어냈을 겁니다. 원래 무명과 일본인이 싸우는 장면도 있는데 들어냈고 마지막에 효진이가 탈진한 종구를 보며 나 좀 어떻게 해줘 였나 나 좀 도와줘 였나 무튼 비슷한 뉘앙스의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들어냈다고 하니까요.
16/06/25 18:46
감독이 그냥 여러가지 설정 해놓고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봐라 하고 던진 기분이에요.
감독말처럼 정답은 없고 내가 소스는 줄테니 너네가 요리를 만들어라 하는 느낌? 해석들이 난무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영화 2번보고 지금 드는 생각은 천우희가 기억에 남네요.
16/06/25 19:48
다양한 해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영상과 이 글은 참 재미있는 해석이라 생각했습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냥 영화 리뷰를 취미로 읽는 입장에서 매우 흥미진진하고 읽는 맛이 있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상당히 수긍이 가는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16/06/25 19:52
전 쓰르라미울적에가 비교해서 생각하게 되네요.
제 다른 해석에서는 환각과 오컬트가 공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부가 마지막에 악마로 드러내기전 대화도 그렇고 저주(혹은 버섯중독)로 인한 환각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면 영화 영상에서 보여준 것이 전부 진실이라고 볼 수 없는거죠. 마치 쓰르라미울적에에서 보여줬던 연출처럼요. 이걸 가정하면 곡성에서 해석할 것이 또 상당히 많아집니다. 좀비씬 전부터 곽도원의 정신상태가 불안했던 점, 꿈에서 깨어나는 장면, 살인참극을 일으킨 사람들의 정신상태등 증거는 충분히 있습니다.
16/06/25 20:37
저도 처음 볼 때부터 쓰르라미 생각났어요. 그래서 독버섯 가능성도 남겨두길 바랬는데, 감독이 거의 한쪽으로 방향 설정을 해버린 것 같아서 아쉽더라구요.
16/06/25 19:54
이 영화로 새로운 영화 몇개는 더 만들겠네요.
'감독의 의도적인 장치~'로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는 영화... 제 개인적인 견해는 감독의 시나리오 역량 부족으로 보입니다.
16/06/25 19:56
중구의 가족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해석인 것 같은데요..
앞의 3건의 집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별개의 사건이 아닐진데...답을 정해 놓고 해석을 한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전체의 맥락과 맞지 않는..
16/06/25 21:59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하고 의문을 불러 일으킨 대사가 ""걔 아빠가 의심하고, 죽이려 했고, 죽였다"라는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는 데는 적절한 영화해석이긴 하네요. 그런데 이 대사의 앞뒤 안맞는 부분에 대해 감독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자신이 종교인들을 만나서 죄없이 죽은 사람들의 이유를 물었을 때 이렇게 앞뒤 안맞는 답변을 들어서 그 답답함을 영화에 넣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더라고요. 인터뷰도 낚시의 한 부분일 수도 있어서, 정확한 해석은 감독 마음을 읽지 않는 이상 잘 모를 겁니다. 그래도 이런 다양한 해석이 다시보기할 때는 참 재미있죠.
16/06/25 22:52
종교인 특유의 뜬구름 잡는 얘기도 넣었고, 반대로 종교인이 종교인답지 않게 행동한 장면도 넣었더라고요. 종구가 신부님 찾아가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 상담하니까 "직접 보셨소? 직접 보지도 않고 어떻게 확신을 하십니까? 의사를 믿고 딸을 맡기세요. 교회에서 해드릴 일은 없습니다"라고 했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곡성이 오컬트 장르 영화임에도 다른 오컬트영화와 달리 영화 전반에서 종교가 해결해주는 일이 없더라고요. 무속(황정민)과 불교성향의 밀교(외지인)는 악의축으로 나오고 기독교(성당신부)는 무심하고 신부지망생은 통역(왠지 성경책 번역해주는 걸 비꼬는 듯한)으로 쓰이고 마을수호신(천우희) 토속신앙은 믿음을 얻지 못 하고요. 감독이 영화 제작 전 수년간 여러 종교인들을 찾아가서 묻고 다녔다고 합니다. 아마 종교가 속시원히 해결해주지 못한 의문들을 영화에도 반영한듯 합니다.
16/06/25 22:38
일단 일본인은 예수를 모티브로 했다는 감독의 말을 볼 때 죽기 전까지는 사람이 맞고, 종구가 죽인것도 맞습니다. 그리고 예수처럼 3일후에 부활한건데 여기서부터는 관념적인 얘기로 넘어가니 패스하고, 무명의 포지션이 카오스인 외지인과 반대되는 입장인것을 볼 때 무명의 말은 무조건 진실이라고 봐도 되겠죠. 하지만 마지막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반대되는, 두리뭉술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해석이 갈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해석대로 종구의 가족들이 죄를 지어서 그 벌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고,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죠. 어쨌거나 결과는 같습니다. 영화의 주제 자체가 어쩔 수 없는 사고에 직면하게 되는 인간이라는 것을 봤을 때, 사실 종구의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고 누가 종구의 딸을 성폭행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수도 있겠죠.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감독 인터뷰나 영화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를 볼 때 후자에 더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종구의 가족들이 죄를 저질렀다~는 암시는 버섯같은 훼이크고요. 그냥 던진 미끼를 어쩌다 운이 나빠서 문 거죠. 그게 오컬트든 사고든 혹은 악의든 간에.
결말부분의 외지인의 말은 관객들에게 하는말 같기도 합니다. '네가 악마로 생각해서 악마로 본것이고, 내가 무슨말을 하던 너는 믿지 않을 것이다.' 이건 꼭 외지인이 선역이라는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수 없는 카오스를 규정하고자하는 관객들에게 하는 말일 수 있죠. 이를 보는사람에 따라 '귀신','악마','저주','벌','독버섯'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감독이 판을 깔아놓은 것이고요. 그렇게 어려운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종구는 아마도(살아있다면) 무명의 말(종교적 해석)을 듣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일어났다고 믿겠지만 실제로는 결국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겠죠. 이는 흔히 자식을 잃은 가족들이 xx를 하지만 않았어도~ 라고 한탄하는것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16/06/26 00:18
오성복의 살인사건이 또 좀 의문이드는게 가족에 대한 살인사건이 맞는가 하는점입니다.
경찰이 오성복의 조카에게 이아기할때 피해자의 할머니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집주인 할머니를 살해했다고 하거든요. 다른 살인사건에서 누구의 부인을 죽였다라는 식으로 말하는것에 비추어보면 좀 이질적입니다. 곡성에서 나온 살인사건이 일본인 악마에 홀려 가족을 살해한다고 하면 오성복의 살인사건은 그점에서 좀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사실 여러 살인사건에 비해서 오성복의 살인사건은 기괴함이나 광기가 별로 느껴지지않습니다. 다른 살인사건들에 비해서 좀더 많이 차분한 느낌이죠. 그래서 오성복의 살인사건은 악마의 저주에 의한 살인이 아닌 인간 오성복의 모방범죄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16/06/26 02:59
재밌네요.. 우리나라 공포영화 명작중 하나이고 곡성과 같이 수많은 해석이 존재하는 면에서 비슷한
알포인트는 태생적으로 여백이 있을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해석이 가능했다 보는데요. 듣기론 원래 감독이었던 공수창 감독이 편집 과정에서 멘붕후 잠적해버려서 다른 감독이 편집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획및 촬영을 맡았던 감독과 마무리를 맡았던 감독이 다른지라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 나온거라고.. 그런데 곡성은 그런걸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본다면 감독이 능력자는 능력자네요
16/06/28 13:53
알포인트는 제작을 맡았던 텔미썸씽의 장윤현 감독이, 공수창 감독이 해외에서 찍어온 컷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캄보디아로 가서 보충촬영을 해온 작품이라고 알고있습니다. (저도 소문으로 들은거라 팩트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장윤현, 공수창 두 분다 한때 유명했던 장산곶매 멤버였구요.
16/06/26 03:24
제가 봤을 때 곡성에서 가장 중한 것은 비논리적이고 비개연적인 서사 그 자체라고 봅니다
세상의 이유 없음과 이유 없이 오는 결과들의 비극 그 자체가 영화의 내용이고 곡성의 비개연적인 서사와 이를 개연성 있게 해석하려는 감상자들의 관계 그 자체가 영화의 내용이에요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하냐고 하늘에 대고 부르짖는 범죄 피해자나 재난 피해자들이 이유를 찾고 중구가 무명에게 이유를 따져 묻듯 관객들은 개연성을 찾아 헤매죠. 이 알고리즘이 영화에서 가장 중한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라기 보다는 옆길로 좀 빠져보자면) 아쿠마가 마지막에 치는 대사들도 다 같은 맥락입니다. 니가 나를 악마로 보니까 자기는 악마라는 겁니다. 이유는 사람들이 갖다 붙인다는 겁니다.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행동하기 나름이죠. 반대로 말하면 세상에 진짜 중한 것은 없다는 거에요. 김춘수가 말하죠. 네가 이름을 불러주어서 꽃이 되었다고. 무라사와 나오키는 말합니다.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요한 리베르토가 될 수도 있고 몬스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사람은 혹은 세상은 불리어지는 이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따지자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닌 낫띵이라는 거죠. 몬스터에서 나오는 이름 없는 괴물이나 요한이 본 황량한 풍경도 비슷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무서운 건 누가 나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나오키의 괴물이 될 수도 있고 춘수의 꽃이 될 수도 있는 현실 그 자체에요. 생각하에 따라서, 또 행동하기에 따라서 대상의 존재 이유가 달라질 수 있는 현실 말이죠 (경우에 따라서는 민족의 화신이 될 수도 있고 유대인이라고 인종청소 당할 수도 있고) 요한의 마지막 회상씬에서 자기 엄마가 안나를 팔아먹을까 자기를 팔아먹을까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죠. 인간의 생명이 취사선택당할 수도 있는 현실. 그런 비극에 개연성 같은 건 없습니다. 또 거기에는 이유도 없습니다. 이유 없음. 이게 곡성의 주제의식이라고 생각해여.
16/06/26 12:15
마지막 대사에서 생각했던 것이지만 진짜 아버지가 누군지는 모르겠어서 포기한 이론인데
이렇게보니 그럴듯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6/06/26 16:43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45613
개봉초반에 오유에 올라왔었던 내용이네요. 저도 저걸 보고 엄청 그럴싸한 해석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16/06/27 00:32
중간에 언론사 인터뷰를 출처 없이 + 과도한 분량을 복사 붙여넣기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수정 권고합니다.
+ 며칠 전에도 이런 일이 있으셨는데, 보통은 권고 없이 제재를 하지만 글에서 주요한 부분이 아닌 것 같아서 일단 수정을 권고합니다. 추후에는 권고 없이 펌글규정 위반으로 제재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16/07/03 21:46
단어하나로 너무도 많은 가설을 만들어 내는 해석이네요. 화면에서 보여준 것에다 보탤 게 너무 많아 아예 영화 한편을 새로 찍어도 될만큼..
그리고 영화에서는 "걔 아빠가"라고 하지 않고 "니 딸의 애비가"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위 해석은 있는 대사를 다른걸로 바꿔야 할 정도로 억지스런 짜맞추기입니다. 주인공의 딸이 아니었다는 의미를 담으려했다면 '니딸의' 애비란 표현이 아니라 '그애의' 애비라는 표현을 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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