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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5/17 15:28:55
Name Neanderthal
Subject [일반] 오역인가? 잘된 번역인가?...
번역이라는 게 정말 쉬운 일은 아니지요. 특히 문학번역이라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서로 다른 가치관, 문화 등을 한 언어권에서 다른 언어권으로 온전하게 옮기는 일이 결코 쉬울 리가 없겠지요. 원문을 word for word로만 옮긴 번역이 좋은 번역일 수 없고 그렇다고 원문을 깡그리 무시하고 창작 수준으로 번역이 되었다면 그 또한 좋은 번역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균형점을 어디로 잡느냐가 번역가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봐야겠지요.

이번에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의 경우도 언론 등에서는 번역의 힘이 컸다며 번역가의 기여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원문을 무시하고 너무 자의적으로 번역한 곳이 많다며 번역의 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오역이라고 제기한 사례들을 한번 가져와 봤습니다. 물론 저 같은 사람이야 이게 잘 된 번역인 지 그렇지 않은 번역인 지 판단할 깜냥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과연 원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번역가 맘대로 오역한 것인지 아니면 번역가의 재량으로 영어권 독자들을 생각한 나름의 판단을 통한 번역이었는지 한번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제 생각에는 풀어서 설명하는 식으로 번역이 이루어 진 부분들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걸 오역이라고 까지 불러야 할지, 또는 이게 최선이었는지 아니면 더 좋은 번역이 있을 수 있었던 지는 잘 모르겠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원문: 짧고 민숭민숭했던 연애시절
번역: When I was a young man barely out of adolescence, and my wife and I were dating,


원문: 결혼한 뒤 아내는 아예 벗고 지냈다. 여름철에 잠깐 외출할 때면 동그랗게 돌출된 젖꼭지의 윤곽이 드러날까 봐 할 수 없이 브래지어를 했지만, 일분 안에 호크를 풀어버렸다.
번역: Even in the summer, when I managed to persuade her to wear one for a while, she'd have it unhooked barely a minute after leaving the house....


원문: 마치 냉장고가 있는 자리에 내 눈에 안 보이는 사람이 - 혹시 귀신이라도 -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번역: Her face was turned away from me, and she was standing there so unnaturally still it was almost as if she were some kind of ghost, silently standing its ground.


원문: 내가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뜻밖에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안방에서 나오는 것, 질문,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까지 모두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만 무시했을 뿐이다.
번역: When I put my hand on her shoulder I was surprised by her complete lack of reaction. I had no doubt that I was in my right mind and all this was really happening; I had been fully conscious of everything I had done since emerging from the living room, asking her what she was doing, and moving toward her. She was the one standing there completely unresponsive, as though lost in her own world.


원문: 처음부터 아내가 고기를 역겨워하는 체질이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결혼 전부터 아내는 식성이 좋았고, 그 점이 특히 내 마음에 들었었다.
번역: If you’d said that my wife had always faintly nauseated by meat, then I could have understood it, but in reality it was quite the opposite – ever since we’d got married she had proved herself a more than competent cook, and I’d always been impressed by her way with food.


원문: “안 먹어?” 아이를 넷쯤 낳아 기른 중년의 여자처럼 방심한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내가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삭아삭 소리를 내어 오랫동안 김칫대를 씹었다.
번역: “Not eating?” she asked absentmindedly, for all the world like some middle-aged woman addressing her grown-up son. I sat in silence, steadfastly uninterested in this poor excuse for a meal, crunching on kimchi for what felt like an age.


원문: ‘그런 것들도 하나의 질환일 뿐이지, 흠이 아니야’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한들 어디까지나 남의 일에 한해서였다. 정말이지, 나에게는 이상한 일들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었다.
번역: There’s nothing wrong with her, I told myself, this kind of thing isn’t even a real illness. I resisted the temptation to indulge in introspection. This strange situation had nothing to do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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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17 15:39
수정 아이콘
처음에는 그냥 과도한 의역 아닌가 했는데 자세히 읽어보니 대부분
명백한 오역이네요.
TheLasid
16/05/17 15:43
수정 아이콘
저기 음...문장 대 문장으로 봐서는 상당 부분 오역이 보이는데요. 저걸 확신할 수가 없는게, 아시다시피 국어와 영어는 문장 구조가 상당히 다르잖습니까?
특히 문장의 많은 부분이 생략가능하고, 여기서 실제로 생략한 한글 원문에 비해서, 영어 문장은 형식적으로 대단히 엄격해서 생략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어요. 그걸 채워넣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상당 부분 보입니다.

그러니....좀 더 공정한 관점에서 살펴보려면 문제가 되는 문장만 볼게 아니라 해당 문단, 아니면 적어도 전후 문장 정도라도 좀 같이 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문장 대 문장으로 보기에 명확한 오역이더라도 해당 내용이 전후 문장이나 아니면 문단에 포함되서 다른 구조로 번역됐을 수가 있습니다.
16/05/17 15:56
수정 아이콘
전 납득할만한 수준이라 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예시의 경우는 좀 더 다르게 풀 수도 있었겠다 싶지만, 사실 저런 표현을 영어로 한다는 게 쉽지가 않아서...
느낌만 살도록 번역가가 융통성을 보인 것이라 보고, 나머지는 오역이라고 할만한 껀덕지가 있나요?
번역을 잘 몰라서 이정도도 인정이 안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16/05/17 16:07
수정 아이콘
왜 이게 오역인가 설명을 하자면

1. '짧고'라는 수식어에서 와이프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연애시절을 언급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 브라 후크를 풀어버리는 것은 집 밖이 아니라 아마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푸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3. 실제로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영어 번역을 보면 누군가 있는 것처럼 써있죠. 명백한 오역입니다.

4. '안방에서 나오는 것, 질문, 다가오는 것'을 의식하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나의 아내'인데 영어 번역을 보면 '내'가 모든 것을 의식하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치명적인 오역입니다.

5. 아내가 식성이 좋은데 고기를 역겨워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는 내용인데 영역은 아내가 훌륭한 요리사였는데 갑자기 고기를 역겨워한다? 이해를 방해하는 명백한 오역입니다.

6. 김칫대를 씹는 주체는 그녀이지만 번역에 따르면 갑자기 '나'로 변했습니다.

7. 그런 것들은 하나의 질환일 뿐이지가 this kind of thing isn't even an illness로 의미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일들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었다'는 갑자기 '이러한 이상한 상황은 나랑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로 뜬급없이 번역되었고요.
16/05/17 16:16
수정 아이콘
다른 문장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는데 1번 문장은 책의 거의 맨앞에 있어서 지금 찾아보니까 와이프와의 연애시절을 말하는게 맞습니다.
저 뒤에 오는 문장이 짧고 민숭민숭했던 연애시절에 와이프가 브래지어를 안해서 조금 흥분했다 이런 문장이 옵니다.
2번 문장도 바로 뒷장에 있어서 보니까 밖에서 후크를 풀고다녔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여름에도 조끼를 입고다니면서 그걸 가렸다 이런 내용이 나오네요.
16/05/17 16:17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걸 보니 4,6번은 분명 오역이 맞는 거 같네요. 대상의 주체가 변해버렸으니..
그럼에도 나머지 것들은 개인적을 충분히 허용가능 범위라고 보여집니다.
TheLasid
16/05/17 16:43
수정 아이콘
2번 부분에 관해서, 만약에 텅트님의 말씀이 옳다면 저자의 원문이 잘못되었습니다.

'결혼한 뒤 아내는 아예 벗고 지냈다. 여름철에 잠깐 외출할 때면 동그랗게 돌출된 젖꼭지의 윤곽이 드러날까 봐 할 수 없이 브래지어를 했지만, 일분 안에 호크를 풀어버렸다.'

라는 문장에서 (집에 오면) 부분을 생략시킨채로 문장 두개를 이어버린거자나요? 이러면 이 문장만 봐서는 의미를 정확히 알 수가 없죠.

그리고 애시당초 이 문장은 표현에 문제가 있어요. 잘 보시면 ' 여름철에 잠깐 외출할 때면 동그랗게 돌출된 젖꼭지의 윤곽이 드러날까 봐 할 수 없이 브래지어를 했지만' 이 부분의 주어는 '아내'로 추정되죠? 그런데 바로 뒷 문장에선 '일분 안에 호크를 풀어버렸다.'고 나오잖아요? 일분 안에 풀어버릴 브라를 애초에 왜 했나요? 어떠한 강요도 없이요? 이렇게 보면 이 부분에서 생략된 주어가 뭔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만약 역자가 이 부분에서 브라를 매게 하는 주체를 아내가 아니라 '나'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간신히 그녀가 브라를 착용하게 했음에도, 그녀는 나간지 1분만에 풀어버리곤 했다. 라는 해석이 가능해요.

이 부분은 역자의 오역을 탓하기 전에 이 문장이 기본적으로 해석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걸 간과해선 안됩니다.
Jace Beleren
16/05/17 15:59
수정 아이콘
문학이 아니라면 모를까 소설임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허용범위.
스타슈터
16/05/17 16:01
수정 아이콘
저는 개인적으로 원문의 뜻보다 더 중요한, 글의 뉘앙스를 옮기기 위해 의역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봅니다 (물론 오역도 있습니다).
약간 제 개인 의견을 넣자면:
1. 원본에는 없던 추가적인 정보가 들어감 (사춘기가 지난... + 내 와이프와)
근데 민숭맨숭을 어떻게 번역하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음. 고로 이렇게라도 그 느낌을 표현하지 않았나...
내 와이프와라는 말은 없었고 넣지 않는게 좋았지만 넣은건 역자의 본인 판단이므로 노코멘트.

2. "아내를 설득시켰을 때면"은 일부러 틀리지 않고, 그저 오역으로는 나올수 없는 번역.
글의 뉘앙스를 옮기기 위한 선택이였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1번에 비해 이건 좀 개인의견이 너무 많이 들어간게 아닌가 싶습니다.

3. 귀신이 버티고 있는듯 했다 -> 귀신이 된듯 했다.
멍하게 있었다는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한 의역, 귀신이 있었다 보다는 영어로 본래 있는 "were some kind of ghost"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는 선택. 개인적으로는 잘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4. "I had been"
이건 오역이 맞아 보입니다. 내가 아닌 아내가로 번역해주는게 맞아 보이네요.

5. "cook" 요리사라는 뜻, 식성이 좋다는 것을 competent cook로 번역했습니다.
식성을 "요리실력" 으로 번역한 부분에서 이건 오역이 맞다고 보여집니다.

6. 이것도 4번과 같은 류의 오역입니다. I sat in -> She sat in 이 맞겠죠.

7. 내성이 없었다 -> Nothing to do with me
이건 뜻만 봤을때는 "신경쓰기 싫다" 라고 번역한건데, 내성이 없어서 신경쓰기 싫다고 보는걸로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대충 날림으로 평가해 봤는데, 맞는거 틀린거 반반정도라고 봅니다. 근데 이런 의역과 오역들이 오히려 절묘하게도 문장의 맛깔을 살린 부분도 있고요. 결과가 좋았으니 번역본이 나쁘다 이렇게 평가할수도 없는 지경이 됐지만, 오히려 문학 작품이라 번역의 정확성보다는 역자의 문채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게 아닌가 싶습니다. 법률문서였다면 이게 문제가 될수도 있는데, 문학은 결국 받아들이는 청중이 좋아해야 잘된 것이니까요.
김성수
16/05/17 16:20
수정 아이콘
잠깐 해보려고 봤는데 1번에서 턱 막히네요. 근데 밍숭맹숭을 어찌 표현할까요? 크크
boring 하고 awkward한 시절?
Neanderthal
16/05/17 18:00
수정 아이콘
120% 공감합니다. --;;
cottonstone
16/05/17 22:45
수정 아이콘
mediocre 가 생각난..
세인트
16/05/17 16:25
수정 아이콘
업무특성상 한-영간 번역을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정말 우리말은 생략 가능한 게 많아서 (대표적으로 계약서들에 거의 대부분 주어가 생략되어 있지요) 오역도 하기 쉽고, 바른 번역도 어렵더라구요.
제가 보기엔 저 정도면 4, 5, 6 말고는 괜찮다고 보입니다.
뭐 근데 직업이 번역가라면 저같은 사람보다 훨씬 잘 하실 거 같아서 뭐라 코멘트하기 그렇네요 ㅠㅠ
TheLasid
16/05/17 16:27
수정 아이콘
네안데르탈님이 올려주신(혹은 퍼오신) 문장에 오타가 없다면, 그리고 데보라 스미스라는 번역가가 이 원문을 가지고 번역을 했다면 현실적인 고충이 상당부분 존재했을 것 같습니다....그러니 오역으로 지적된 부분이 설사 오역이라고 하더라도 참작의 여지가 충분한 것 같습니다. 윗댓글의 연장선에서 한번 설명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괜히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 같지만요. 가령,

첫 부분, 전후 문장을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애초에 '짧고 민숭민숭했던 연애시절'이란 표현이 아무런 전후 맥락 없이 나왔을 것 같지가 않아요.

두번째 부분, wear one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전문장에서 브라얘기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젖꼭지와 관련된 중요한(!) 묘사를 전문장에서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세번째 부분, : '마치 냉장고가 있는 자리에 내 눈에 안 보이는 사람이 - 혹시 귀신이라도 -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눈에 안보이는 사람이 전후 문장을 고려했을 때 she(=my wife)임이 명백하다면 저런 표현을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고요. 원문의 - 혹시 귀신이라도 - 라는 표현은 생각을 좀 해봐야하는 게, 저자의 의도가 '흡사 귀신이라도'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전후 문장을 고려할 때 이 표현이 냉장고에서 느껴지는 아내의 존재감을 묘사하는 것이라면(그리고 제가 볼땐 그런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애초에 원저자가 '혹시 유령이라도'라고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표현을 하였다기 보다는 '흡사 유령이라도'로 아내의 존재감을 섬뜩하게 묘사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봐요. 만약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if she were some kind of ghost라고 아내를 유령에 빗대어 표현한 것을 오역으로 볼 수 없습니다.

네번째 부분, '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안방에서 나오는 것, 질문,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까지 모두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은 명백한 오역으로 보입니다만 역시나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는게....앞 댓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한글은 문장 성분의 생략이 매우 자유로운 언어입니다. 반대로 영어는 문장을 쓸 때 반드시 주어가 필요하죠. 그렇기에 원저자의 '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라'의 생략된 주어는 한글 사용자인 우리가 보기에는 '그녀(my wife)인게 확실하지만 저자가 보기엔 명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이 부분의 주어가 뭔지 한참 고민했을 것이고, 앞문장과 뒷문장의 주어인 I를 이 문장에서도 주어라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의 생략된 주어를 I라고 생각한 저자는 이 부분이 무슨 의미인지 한참을 고민했을 것이며 다른 영국인들도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 이 부분에 사족을 왕창 달면서 말이 되게끔 번역한거고요. 국문으로 봤을때 너무나 단순한 이 문장이 영어권 저자들에겐 대단히 어려운 문장일 수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족이지만 이 문장은 원저자의 표현 자체에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한글은 분명 주어의 생략이 자유로운 언어이지만 전후 문장의 주어가 다르다면 뒷문장의 주어를 생략할 경우 오해의 소지가 농후합니다. 가령 '내가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뜻밖에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의 주어는 '내가'인데 뒷 문장인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안방에서 나오는 것, 질문,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까지 모두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 생략된 주어는 '그녀'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 "그녀는 다만 무시했을 뿐이다.' 에서는 오히려 너무나도 쉽게 생략이 가능한 '그녀는'을 생략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을 명확하게 표현하고자 했다면, 그리고 일정부분 주어를 생략해서 문장의 경제성을 살리려 했다면 '내가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뜻밖에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안방에서 나오는 것, 질문,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까지 모두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무시했을 뿐이다."라고 표현하는게 보다 명확했을 겁니다. 작가에겐 표현의 자유가 있고 특히 문학 작품일 경우에 그러하지만 번역가 입장에서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건 반드시 고려해야한다고 봅니다.

다섯째 부분, '결혼 전부터 아내는 식성이 좋았고'를 she had proved herself a more than competent cook로 옮긴건 명백한 오역으로 보입니다. 전후 문장을 보긴 해야겠지만요. 다만, 원문인 '처음부터 아내가 고기를 역겨워하는 체질이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를 보시면 애초에 문장이 좀 이상한걸 알 수 잇는데요. "처음부터 아내가 고기를 역겨워하는 체질이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을 표현하는게 아마 저자의 의도였을 겁니다. 그런데 저 부분을 그냥 '있었다'로 마무리했죠? 논리적으로 볼 때 이 부분은 애초에 비문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번역자는 이 부분을 then I could have understood it이라고 논리적 모순 없이 잘 표현했습니다. 이 부분의 오역이 있다고 하더라도 번역가가 잘 처리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할 것입니다.

(수정합니다. 마지막 부분인줄 알았던게 여섯번째 부분이고, 일곱번째가 있네요.)
여섯번째 부분, 오역인게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저로서는 애초에 원문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잘 안되네요. 그러니 이 부분은 판단을 보류하겠습니다.

마지막 부분, ‘그런 것들도 하나의 질환일 뿐이지, 흠이 아니야’라는 표현을 I told myself, this kind of thing isn’t even a real illness해서 질환을 noe even a real illness로 바꿔버렸는데요. 이건 분명 오역이에요. 그런데....애초에 원문이 무슨 의미인가요? 그런 것들도 하나의 질환일 뿐이다는 말은 질환이란거죠? 근데 질환이라고 인정을하면서 동시에 이것이 흠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나요? 전후 문장을 봐야겠지만 논리적으로 이해가 잘 안가는 문장입니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게 표현을 하려면 이 문장이 애초에 "그런 것들은 사소한 질환일 뿐이지, 흠이 아니야"와 같이 서술되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글만 봐도 벌써 어색한 문장이에요. 그런데 역자는 이걸 번역하려고 시도하면서 이 부분을 논리적인 모순이 없게 수정한 것 같습니다.

구질구질하게 길게 설명한 것 같지만, 저는 데보라 스미스씨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일정 부분 오역이 있다고해도 이분의 노력과 시도를 평가절하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몽키.D.루피
16/05/17 16:57
수정 아이콘
영어권 독자들 입장에서는 오역이 아니라 초월번역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일각여삼추
16/05/17 17:20
수정 아이콘
이정도면 훌륭한 것 같습니다. 번역가의 노력에 경이를 표합니다.
레드락
16/05/17 20:48
수정 아이콘
제가 영잘알은 아니고 그냥 한강 팬인데.. 한강의 문체와 주제의식의 느낌을 굉장히 잘 살린듯 합니다. 제 위 세분의 댓글과 의견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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