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에 대해 평가를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어떤 측면에서 행위를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를 정해야 합니다. 같은 행위를 같게 인식할 수 있다고 전제하더라도 (사실은 여기부터가 불가능해보입니다만) 보려는 관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한 행위는 올바른 행위가 될 수도 잘못된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변호사가 연쇄살인마의 변호를 맡아 무죄를 이끌어내는 경우에 판단은 판사가 하는 것이고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극대화하여야 한다는 가치가 더 소중하다고 본다면 그 변호사의 행위는 정당하다고 평가되겠지만, 변호사가 의뢰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문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변호사의 행위를 비난할 수도 있겠죠. 사실은 이 세상은 수많은 가치가 작용하는 곳이기에 모든 행위에 대해 그것을 정당화할 근거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며 반대로 비난할 근거도 하나쯤은 있게 될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 스스로도 어떤 가치가 더 소중하고 여러 가치가 대립되는 순간에 어떤 선택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불편함이나 간절함 등의 필요가 있는 경우에서야 생각하게 되는데 따라서 아쉬울 것이 없는 순간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며 아쉬운 순간에야 문제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의 불편함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치 간의 우열관계가 즉흥적으로 정해집니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감정이 정당하다고 믿기 위해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결국은 한 행위에 대해 문제라고 느끼는 사람( 내지는 불편한 사람)은 그것이 왜 문제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그 행위를 통해 침해된 가치를 생각하게 되고 이러한 문제제기에 동의해주기 싫은 사람들은 그 행위를 통해 달성된 가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양식의 싸움이 주제만, 그리고 입장만 달리하여 계속하여 반복되는데도 끊임없이 사람들은 자기가 정당하다고 믿는데서 발생합니다.
물론 한 개인의 감정은 존중되어야 하고 그 개인이 한 순간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다른 순간에도 불편함을 느껴야할 의무는 없으며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이상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역시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어떤 가치가 더 우월한지에 대해 합의가 되지 않아 각자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사회에서 적어도 남을 욕하기 전에는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곧바로 논리를 짤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선택한 대립되는 가치가 무엇인지 한 번 쯤은 남을 위해 생각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는 결국 앞서 말씀드린 사람이 갖고 있는 자기가 불편할 때에 주로 생각하는 특징을 보완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으로 내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요하자는 얘긴데요.
제가 피지알에서도 논쟁을 하다가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은 한 사람을 ‘오히려’ 라는 논리로 비난하는 때입니다. 이는 그 사람의 사고 과정이 1) 자기감정의 정당화에 이어 2-1) 타인입장에서의 고려가 아니라 2-2) 타인을 어떻게 해서든지 비난하기 위한 고려로 이어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히려라는 말은 갖다 붙여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히려라는 말 자체에서 이미 부정적인 가치평가가 결정이 납니다.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행위인 밥을 먹는 행위, 돈을 버는 행위, 봉사하는 행위 등 모든 행위에 대해 오히려가 붙는 순간에- 밥을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봉사를 하는 것은 오히려~ 등 등 스스로의 감정이 정당화되기에 부족한 순간에 오히려를 붙임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비난을 정당화시키는 비겁한 논리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위해 한 번만 더 생각한다면 ‘오히려’가 붙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붙겠죠. 이러한 사고 과정은 너의 행동은 ~~부분이 인정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는 ~~가치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정당화되기 어렵다. 는 식의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왜 타인을 위해 한번 더 생각해야 하는가.
첫째는 일단 논리적인 부분에서 내가 타인을 비난함으로써 그 불이익을 타인에게 입힌다면 적어도 나도 약간의 생각을 더함으로써 얻는 불이익 정도는 감수해야 타당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가 정말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이고 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의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하자면 내가 남을 비난하기 위해서만 생각한다면 동서양 가치가 혼합되어 있고 공동체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가치가 혼합되어 있는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사실 모든 행위는 비난의 대상이 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기부를 한다고 했을 때도 우리는 이미지 세탁하려고 혹은 세금 아끼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이 가능하고 반대로 기부를 안 한다고 했을 때에는 사회에 기여할 생각이 없다고 비판이 가능한데 앞에서의 비판은 개인의 동기측면에서 그 동기가 순수한지 아닌지를 따지는 반면에 뒤에서의 비판은 동기가 아닌 사회의 효용의 측면에서 비판이 들어오기 때문에 사실 이 두 개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정당하게 불편하기 위해서만 생각을 해버리면 동/서양적인 가치 중에서 내지는 동기/결과적 측면의 가치 중에서, 개인/사회적 측면의 가치 중에서 스스로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를 판단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 둘 간의 대립되는 상태가 나타나지 않고 내가 불편한 상황을 해소하려는 순간에 그에 적합한 가치만이 선택되기 때문에요.
요즘 게시판에서 날 선 모습 보여드려 죄송하고.. 저 또한 많이 미흡하지만 서로가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을 쓰.렉 같다고 판단하여 대립되는 모습을 덜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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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분이 공감되네요. 특히 자신의 논리가 맞다고 생각할때 가질 수 있는 우월함으로 상대를 짓누르려고 하는 공격성을 내보일때 남을 배려하지.않는 부분이 특히요.
날선 논리로 무장하되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더 생산적인 논쟁이 될텐데요. 하긴 제 자신도 쉽게 흥분하는거보면 아직 많은 공부가 필요한거 같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