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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3/13 15:57:24
Name santacroce
Link #1 http://santa_croce.blog.me/220638263614
Subject [일반] 혁신을 둘러싼 유럽의 고민: 왜 미국을 따라 잡을 수 없을까?

2016년 1월 ITIF(Information Technology & Innovation Foundation)가 전 세계 56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글로벌 혁신 지수 순위를 보면 상위 10위 내에 비유럽 국가는 싱가포르(4위), 미국(10위) 두 나라에 불과합니다. 

10위권 밖에도 일부 동유럽 국가까지 포함해서 유럽 국가들은 상위에 포진해있습니다. 

 

* ITIF의 글로벌 혁신 지수 순위(2016년 1월)


 

ITIF의 랭킹은 두 가지 부지표를 합하여 산출했는데 하나는 기술 혁신에 각 국가가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R&D 투자, 특허, 법인세 혜택 등으로 측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각 국가가 세계 기술 혁신을 얼마나 잠식하고 있는지를 진입장벽 구축, 보조금 지급, 지적재산 보호 수준 등으로 측정하여 나타내고 있습니다. 

ITIF는 글로벌 기술 혁신을 위해서는 각국에서 R&D 투자와 같은 적극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남의 기술을 몰래 훔치거나 또는 보조금을 지급하여 외국 혁신 기업의 수익성을 저해하는 것이 근절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웨덴 등 노르딕 국가는 기술 혁신 기여도와 잠식도 모두 최상위 그룹이나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후발 주자들은 기술혁신에 대한 높은 기여에도 불구하고 기존 선진국의 기술을 몰래 가져다 쓰면서 한편으로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기술 혁신 잠식도도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ITIF는 56개 국가 중 상위 국가들을 크게 8개의 카테고리로 나누고 있습니다. 

 

1. 슘페터주의: R&D 투자에 적극적이고 글로벌 기술 혁신을 방해하는 보호주의적 정책을 펼치지 않는 국가들로 핀란드, 스웨덴, 영국, 덴마크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2. EU 대륙국가: 기본적으로 슘페터주의 정신을 공유하고 있으나 그 정도가 다소 약한 국가들로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위스가 여기에 속합니다. 

3. 아담스미스주의: 자유방임적 정책을 펼치는 국가들로 기술 혁신을 위해 기업에 차별적 법인세 감면과 같은 특혜를 펼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보호주의를 앞세우는 것도 아닌 국가들로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가 이 그룹에 속합니다. 

4. 선진 아시아 호랑이: R&D 투자에 매우 적극적으로 글로벌 기술 혁신에 공헌하는 바가 크지만 반대로 자국 시장과 기업에 대한 보호주의가 강해서 글로벌 기술 혁신 잠식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 홍콩, 일본, 한국이 포함됩니다. 

이들 4개 범주 외에도 주로 동유럽 국가들로 구성된 EU 주변부 형(EU Up and Corners),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그리스, 이탈리아, 멕시코, 케냐, 페루, 남아공이 포함된 혁신 추종형(Innovation Followers), 터키, 브라질, 인도, 러시아, 태국, 중국, 베트남이 포함된 혁신적 중상주의(Innovation Mercantilists),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형적인 중상주의 국가들로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등이 있습니다. 

ITIF 랭킹을 두 가지 축으로 나타내서 그려보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노르딕 국가들과 서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1사분면에 포진되어 있으며 아시아 공업 국가들은 x축에 가까운 1사분면과 3사분면에 포진되어 있습니다. 

 

* 각국을 기술혁신 기여도(X축, R&D 투자, 특허, 법인세 등)와 기술혁신 잠식도(Y축, 진입장벽, 보조금, 지적재산 도용 등)로 표시한 산점도

 

가장 선진적인 유럽 국가들을 보면 제도적으로 정말 기술 혁신에 애를 쓰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이런 유럽 국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순위가 10위에 머무르며 기업들에게 기술 혁신을 독려하기 위해 대단한 혜택을 펼치지도 않고 있는 미국에 비해 슘페터주의를 내세우는 유럽 국가들의 실제 혁신 기업에 대한 성적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유니콘이라고 불리는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전 세계 신생 테크 기업 236개를 분석해 보면 이중 75%가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하였으며 베이징에서 28개, 뉴욕에서 17개, 런던과 상하이에서 각각 10개, 베를린에서 8개 탄생하였다고 합니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 출신 유니콘이 82%를 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유럽의 제도가 앞서고 있지만 아래 그림처럼 두 화분에서 키우는 테크 기업의 성장 속도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 미국과 유럽 신생 테크 기업의 육성 수준 차이를 묘사한 FT의 삽화 

Ingram Pinn illustration

 

유럽과 미국의 기업 성장 환경이 얼마나 다른지는 아래 그래프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기업 성장(또는 수축) 속도별 기업 수를 상대적으로 비교해 보면 유럽의 기업들은 성장 또는 수축이 별로 없이 정체된 상황에 놓여 있는 기업들의 비중이 미국에 비해 월등히 많습니다. 

반면 미국은 고속 성장을 하는 기업도 많지만 반대로 급격히 후퇴하는 즉, 망해가는 기업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미국의 기업들은 정체되어 있는 경우가 유럽에 비해 매우 적으며 크게 성공하거나 아니면 빠르게 도태되는 양자택일의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유럽과 미국 기업의 성장/후퇴 비율에 따른 상대 비교(The Scale-Up Report, by Sherry Coutu CBE 2014)

x축은 연간 성장률이며 y축은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상대적 빈도입니다. 즉 유럽은 -1~1% 성장을 보이는(거의 정체되어 있는) 구간에서 미국에 비해 훨씬 많은 기업들이 존재합니다. 



주요 국가들을 개별적으로 미국과 비교해도 비슷한 모양새입니다. R&D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핀란드나 덴마크 기업들 마저도 미국 기업들에 비해 정체되어 있으며 변화 속도가 느립니다.  

* 개별 국가별 미국 대비 기업 변화율 비교



유럽 국가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미국과 비슷한 정책을 펼치는 영국을 비교해도 이런 모습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 영국과 미국 기업의 성장/후퇴 비율에 따른 상대 비교



솔직히 기업들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것이 종사자들에게는 좋을까 생각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설사 성장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직장이라면 큰 불만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보장 수준이 높다면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술 혁신의 DNA는 이런 정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를 가장 극명하게 수용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며 이런 정글(잔혹하지만 성장 속도도 빠른)과도 같은 기업 환경은 노르딕 국가나 유럽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R&D 독려 정책 효과를 압도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한편 미국에 비해서는 많이 뒤떨어진다고 하지만 그럼 유럽 안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SEP Monitor from Unicorns to Reality'의 자료를 참조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나타납니다. 

SEP Monitor는 EU에서 가장 경제규모가 큰 5개국의 990개 스케일업 기업(기업 가치 1억 달러 이상)들을 5년간 추적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 스케일업 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는 독일이나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입니다.  

 
* 유럽 5개국 중 1억 달러 이상 스케일업 기업의 분포도



또한 이들 기업이 조달한 자금을 보면 전체 230억 달러인데 이중 절반에 가까운 111억 달러를 영국에서 조달하였습니다. 독일은 66억 달러, 프랑스는 31억 달러, 스페인은 18억 달러, 이탈리아는 4억 달러에 그치고 있습니다. 

* 자금조달 규모 비교

 

자금조달의 형태를 비교해 보면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공개는 36%를 차지한 영국과 규모 자체가 매우 작은 스페인을 제외하고 보면 10% 남짓에 머물고 있습니다.

발달된 자본시장의 유무가 신생 테크 기업의 성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자금조달 형태 비교(IPO 대 벤처캐피탈)


* 주요 자금조달 기업들 리스트 


한편 유럽 내에서 신생 스케일업 기업들의 영국 집중화는 사실 영국 내의 또 다른 집중화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바로 런던의 집중화입니다. 2014년 기준으로 영국 내 성장형 기업들의 절대 다수인 2,264개가 런던에 몰려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더 다루겠지만 테크 기업들의 육성에는 인재와 돈 그리고 협업이 빠질 수 없는 요건이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테크 기업은 스마트한 젊은이들이 서로 모여 금융가의 도움을 받아야 커갈 수 있으며 세계적으로 그런 클러스터 환경이 조성된 국가는 미국이 독보적이며 그나마 유럽 내에서는 영국 그것도 런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영국 내 성장 기업들의 분포와 2024년 목표

 

이런 테크 기업의 런던 쏠림은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런던이 영국 내에서 부와 인구를 점점 끌어모으고 그 과정에서 집값이 살인적으로 치솟는 현상과도 매우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 영국의 지역별 1인당 생산 비교(1997 vs 2013)

 

* 런던의 인구 추이

 

* 영국의 주택가격 평균 추이

 

정리해보면 유럽이 기존의 가치(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포기하지 않고 '모 아니면 도'식의 극한적 기업 경영과 탐욕에 눈이 먼 모험자본가들과 부자를 꿈꾸며 몰려드는 인재들을 반기는 정글과 같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혁신은 어쩌면 사회의 평등과 양립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결국 유럽 국가들이 아무리 혁신 기업을 육성하여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대서양을 사이에 둔 혁신의 간극은 서로 사회구조가 비슷해지지 않는 한 쉽게 해소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음은 미국의 기술 혁신의 이면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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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jyess
16/03/13 16:00
수정 아이콘
둘중에 하나 택했으면 반대는 포기해야 하는게 맞는듯요.
santacroce
16/03/13 18:43
수정 아이콘
양자택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수부왘
16/03/13 16:19
수정 아이콘
그와중에 그래프에서 독야청청하는 모 국가...
다혜헤헿
16/03/13 16:45
수정 아이콘
나는 내 길을 가겠다...
santacroce
16/03/13 18:46
수정 아이콘
본문에도 설명하고 있지만 아시아 타이거 국가들이 정도의 차이와 시간적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모두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주의적 속성이 강한 것 같습니다. 유럽 선발국의 입장에서 보면 반칙을 쓰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정공법만으로 기술 격차를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후발국들은 판단할 것 같습니다.
16/03/13 16:2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비욜롱
16/03/13 16:30
수정 아이콘
근데 지도가 검은 독일 외에는 묘하게 유로파의 국색과 매치하는군요;;
16/03/13 16:53
수정 아이콘
혁신지수는 고급학력 인재수준과 비례한다고 봅니다.
미국 상위 대학교 수준이 세계 나머지와 격차가 꽤 크죠.
실리콘밸리에서 나오는 인재들은 거의다 스탠포드 칼텍 버클리에서 수급하는데 여기서 격차가 벌어집니다.
구들장군
16/03/13 17:12
수정 아이콘
한동안 - 어쩌면 지금도 - 하던 이야기가 미국과 중국을 명/청에 빗대던 것인데,
아직은 그리 보기엔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16/03/13 17:2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금융과 인재풀이 가장 중요한 팩터인 것처럼 보이네요
세계화로 인해 접근할 수 있는 시장 규모도 거대해졌고
아웃소싱을 통해 생산, 물류, 관리 시설등의 소유 및 운영에서도 어느정도 자유로워진 점도
테크기업의 집중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재와 같은 자유&금융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바뀔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고 느껴져요
사족으로 우리나라도 영어권 국가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santacroce
16/03/13 18:50
수정 아이콘
결국은 벤처 생태계의 구축인데 아무래도 여기에는 인재와 탐욕적이고 모험적인 자본가의 결합이 필수적이긴 한 것 같습니다. 또한 시장 환경도 중요한 요소 같습니다.
16/03/13 19:51
수정 아이콘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국내의 양극화만 걱정거리가 아니라 세계레벨에서의 양극화가 더 근본적인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극소수의 기업이 전 세계의 부를 긁어 모으는 상황을 제어할 수도 없는데 개별 국가의 주권이란게 더 이상 의미가 있는지도 의문이고요
좋은 글 다시 감사드려요
홍승식
16/03/13 17:41
수정 아이콘
결국 자본의 속성은 방임주의에 가까운게 아닌가 싶네요.
santacroce
16/03/13 20:21
수정 아이콘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는 듯 합니다.
Jedi Woon
16/03/13 17:49
수정 아이콘
투자에 비례해서 혁신도 비례하지는 않겠죠.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기업활동의 자유도도 중요할테고
시장규모도 무시할 수 없을겁니다.
초기 스타트업을 영어로 하느냐, 독일어로 하느냐, 한국어로 하느냐에 따라서
초기 시장규모가 달라질테고 망해도 다시 할 수 있는 환경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면
몇번의 실패를 발판삼아 혁신을 이룬 기업도 나오는 거겠죠.
santacroce
16/03/13 20:31
수정 아이콘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생태계 구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HeavenlySeal
16/03/13 18:49
수정 아이콘
한국이 진짜 인상적이네요. 자본+물량공세라서 저런 위치에 있는걸까요
santacroce
16/03/13 18:52
수정 아이콘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anta_croce.blog.me/220485618798

정부와 대기업 중심의 R&D 투자가 큰 것 같습니다.
16/03/13 18:50
수정 아이콘
와 이정도 퀄리티의 글이라니..
도라에모옹
16/03/14 00:12
수정 아이콘
하루에 몇 번씩 pgr을 방문하면서 여러 글을 보곤 하지요.. 저의 지식에 대한 채찍질을 하기 위해서요ㅜㅜ..
이런 데이터와 분석하시는 글을 보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네요~..
오늘은 채찍질 하다가 하늘나라 갈 것 같군요..;
대단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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