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특정질환만에 대한 명의(名醫)분들을 자주 뵙게 되죠
― 다른 사람의 저혈압을 고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들 말입니다.
이런 분들은 사회 도처에서 활약하고 계시는데, 저희 쪽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라성 같은 명의들이 포진하고 있죠.
그 분들의 처방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무능과 무책임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만으로도 능히 명의가 될 수 있는데, 두 가지 모두 극성까지 연마하여 강호를 주름잡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살펴보면, 불허는 민원을 부르고 나만 귀찮아질 뿐이라는 소신[이게 밖에서 좋아하는 규제개혁 등과 만나면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집니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허가해 줄 수 있는 건도 충분히 숙성시켜 처리한다는 여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상태야 말로 이분들의 노력의 결실입니다.
어느 명의 분은 사람은 좋습니다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언젠가는 입국심사를 하던 심사관이 특이사항을 발견했습니다.
여권감식 등 정밀심사를 위해 그들을 넘겨두었는데, 그 명의께서 그냥 입국시켜버렸죠.
그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을 털었습니다[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잡은 뒤 경찰에서 그 나라 대사관에 조회해보니, 그들이 사용한 여권은 위조여권이었죠.
한마디로 기관 망신이었는데, 그 명의만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습니다.
한동안 제가 그 분의 결재를 받을 일이 있었는데, 신청된 민원의 문제점을 설명해줘도 그냥 다 허가였습니다.
사람이 좋은 것도 있었겠지만, 불허하면 민원이 나고 그러면 골치만 아프다는 생각이었겠죠.
어찌되었건 권한은 결재권자에게 있으니 제가 어쩔 도리는 없고, 결재를 받을 때 이러저러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만 적시해두었습니다.
그게 나중에 감사에 걸렸죠.
그러자 제가 결재받을 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제가 적시해둔 것은 결재받은 뒤에 제 멋대로 쓴 것이라 주장했다는군요.
결국 감사관이 그 민원의 자료를 살펴보게 되었는데, 제가 적시해둔 의견에 그 명의가 무심코 밑줄을 그은 게 발견되면서 상황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와 그 명의 모두 다른 사무소로 떠난 뒤였는데, 제가 있는 사무소의 간부들을 찾아와서는 ‘저 자식 조심하라’면서 자신이 ‘당한’일을 알려줬답니다.
아마 지금도 저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이 윗 분들 사이에서는 돌고 있을 겁니다.
그 밖에도 일이 좀 있었는데, 말썽날 건도 있으니 이 쯤 해두겠습니다.
그래도 이 분은 명함도 못 내밀 명의들이 많습니다.
또 다른 명의는 평생을 이 분야에서 일해왔습니다만, 업무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한해 가까이 결재를 들어가면서, 그 분이 뭔가를 제대로 아는 건 두어 번 밖에 못 봤습니다.
초기에 결재 들어가서 가장 감명받았던 명언은, ‘이건 뭐냐’, '우리가 이런 것도 하냐'였습니다.
업무의 구체적인 내용이야 담당자가 아니니 모를 수 있다 해도, 그런 업무가 있는 것 자체를 모른다는 것은 참 신선하더군요.
그런데 이 분께서 자신의 면피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한번은 추석 때 직원들이 집에도 못 가게 대기지시를 하더군요.
물론 필요하면 한가위든 설이든 일해야죠. 저도 이 직장에 들어온 뒤, 한가위/설 쇠어본 것이 몇번 안됩니다.
하지만 그걸로 불만을 가지진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 건데 누굴 탓합니까.
그러나 단순히 소장의 면피성 지시로 직원들이 할 일도 없이 대기해야 하는 상황은,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오더군요.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건을 결재해야 하면, 담당자에게 ‘난 모르겠으니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결재권자가 결재를 거부하는 황당한 사태를 만난 담당자.... 참 어쩔 줄을 모르더군요.
다행히 잘 끝나기는 했습니다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그 밖에도 숱한 처방전을 남겼습니다만, 이쯤 해두겠습니다.
하지만 이 분도 전국구 명의는 아닙니다.
여기에 진상과 행동력까지 겸비해서, 말 그대로 그 이름 석자만으로도 저혈압을 완치시키는 마의(魔醫)의 반열에 오르신 분들도 계시죠.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특정 시점 이전 분들 가운데 저런 명의가 많습니다.
예전에 공무원은 인기가 없었지요.
당신께서도 교사셨던 저희 아버지는, 그 시절 ‘할 것 없으면 면서기하고, 면서기도 못하면 선생하고, 선생도 못하면 순사했다’고 하실 정도로.
저희 쪽에서도 예전 분들은 300명이 들어와서는 200명이 사표쓰고 나가고, 90명 들어와서 70명이 사표쓰고 나갔다고 합니다.
문제는 무능한 순서대로 나간 것이 아니라, 유능해서 다른 길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나갔다는 것이지요.
갈 곳이 없어서 남아있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저런 명의로 되었구요[그래서 공직사회에서도, 젊은 사람들은 정년연장에 대해 반대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저분들의 활약으로 국가 정책이 꼬이는 상황도 꽤 됩니다.
아마 여러분의 저혈압이 깔끔하게 완치될 수 있겠지만, 이런 곳에서 할 이야기는 못되니 접어둡니다.
다만 요즘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가끔 신진기예들을 봅니다.
이들의 독문무공을 보고 있자면, 우리 의학의 맥이 끊길 일은 없구나 싶어요.
아마 저도, 제 뒤에서는 저혈압치료의 오의(奧義)를 깨달은 자로 꼽히고 있겠습니다만.... ^^;;
개인적으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저희 쪽 인력수급이 옛날 상황으로 돌아가서 명의가 쏟아져 나오면서,
이주노동자에 관심과 애정이 많은 교수/변호사/시민운동가 등의 유명인사가 저희 조직의 장으로 오시는 것입니다[이 분들의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국가정책을 맡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그런 분이 하나 계셨는데, 지금까지 악명이 높죠].
아마 대한민국에서 저혈압이 퇴치되는 순간을 맞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 지웁니다. 무능한 현장과 이상론에 빠진 상부가 만나면 참 아름다운 사태가 벌어질 거란 뜻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기분나쁘실 분들도 많겠군요. 아직 뭐라 하신 분은 없습니다만, 지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