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pgr에 글을 씁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는 10월에 친구가 결혼합니다. 뭐 제가 그리 어린 건 아닙니다만 요즘 전반적으로 결혼을 늦게 하기도 하고 친구들이 다들 바쁘거나 좋은 사람을 못 만난 바람에 나이가 같은 친구가 결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이번에 결혼하는 친구(편의상 A라고 칭하겠습니다)와는 고등학교 동창이고 같은 무리에 속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보통 같은 반에서 친하거나 성향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무리 지어 다니잖아요? 졸업한 이후에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만났던 사이입니다. 생일 같은 날이 있으면 연락 정도는 주고 받고요. 친하냐 친하지 않으냐를 묻는다면 친하다고 대답하겠지만, 가장 친한 친구 다섯 명을 꼽으라고 하면 거기엔 안 들어갈 정도 되는 것 같네요.

그리고 친구의 결혼을 앞두고 저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뭐 비교적 쉬운 것부터 이야기하자면 얘한테 축의금을 얼마나 해야 하나...식에 못 갈 가능성이 있는데 식에 못 가면 미안해서 어쩌나 뭐 이런 것들이고요, 정말 중요한 고민은 친구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인데요. 위에서 말했던 무리에서 A와 사이가 틀어진 친구 한 명(편의상 Q라고 칭하겠습니다)이 있습니다. 왜 사이가 틀어졌는지를 간략하게 쓰자면 남자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두 친구가 남자 한 명을 두고 싸운 건 아니고요. A가 Q에게 자기 남자친구의 친구를 소개해 줬다가 잘 안 되면서 둘이 관계가 틀어졌어요. Q는 A가 소개해 준 남자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애프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A가 Q에게 내 남자친구의 친구를 뭘로 보냐, 소개해 준 나는 뭐가 되냐, 사람을 무시하냐 하면서 역정을 냈다고 하네요. 저는 그 자리에 직접 있었던 게 아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친구들이 일제히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것을 보아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진 이유는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게 A가 화낼 일이냐고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봤고 다른 친구들은 하나같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A가 화를 내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고요. 혹시 Q가 소개받은 남자에 대해 무례한 말을 했나? 싶어서 소개팅 자리에 동행했던 다른 친구 커플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아니래요. A는 그냥 자기가 소개해 준 남자를 Q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 자체로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오 신이시여.

여럿이 어울려 만나던 친구들 사이에서 두 명이 소원해지면 내가 포지셔닝을 어떻게 해야 하나 헷갈리잖아요. 중재를 해야 하나, 한 명 편을 들어야 하나, 그냥 쟤네는 쟤네대로 살게 놔 두고 신경쓰지 말아야 하나. 처음에는 중재를 시도했습니다. 안 통합니다. A는 정말 고집이 세기로 학교 다닐 때부터 유명하던 친구였거든요. 말을 들어먹을 리가요. 게다가 제가 사건(?)을 모르는 사이에 Q가 A에게 사과를 했다지 뭡니까. 보통 저런 친구들은 사과를 받으면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가지기 때문에 말을 더 안 들어먹게 되는 거 아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믿습니다. 한 반 년 정도 중재를 시도하다 포기했습니다. 그 상태로 몇 년이 지났고요.

그런데 A의 결혼식이 다가오니까 Q가 은근하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냅니다. A는 Q에게 청첩장을 안 보낸 것 같더군요. 물론 보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만...그런데 Q는 A의 결혼식에 가서 축하해 주고 싶고, 이 기회에 화해해서 잘 지내고 싶은 것 같습니다. 뭐 화해는 좋은 일이죠. 다른 친구들도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을 거고요. 제가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오래 전부터 떠맡아 왔기 때문에, Q는 제가 뭔가를 도와 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러기가 싫어요. 지금까지 있었던 일로 봐서 A가 Q에게 사과하거나 화해를 청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잘못한 것도 없는 Q가 일방적으로 숙이고 들어가서 A가 못 이기는 척 받아 주는 화해라면 평생 안 하는 게 낫지 싶습니다. 물론 시간이 오래 지났기 때문에 A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을지도 모르고, Q와 화해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A를 떠 본 것은 아니니까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A와 Q 두 사람과 각각 대화를 해 보고 두 사람이 예전처럼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시겠어요, 아니면 그냥 니들이 알아서 해라 하고 제 갈 길 가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