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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6/02 16: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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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안다는 것에 대하여
작년에는 하향적 인과를 중심으로 심리철학 이야기(https://pgr21.com/?b=8&n=51913)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올해는 인식론에서 중요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번 글은 그냥 도입..에 해당하는 이야기고 두세 번 더 써야 본론을 시작할 것 같아요. 잘못된 내용에 대한 비판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전문가 분들이 더 상세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더욱 좋고요.(저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크크)


안다는 것에 대하여, 그러니까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무난한 게 아마 지식이란 답변이겠지요. 무엇에 대한 지식이든 간에 지식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선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지식] 사이를 오가는 순환논증에 불과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식은 무엇일까요? 무엇에 대해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과거의 몇몇 철학자들은 JTB조건에 부합하면 그것이 지식이며,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JTB조건은 지식을 정당화된 참된 신념(justified true belief)로 정의하고, 이를 각각 신념조건(B), 진리조건(T), 정당화조건(J) 세 가지로 쪼개놓은 것입니다. JTB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지식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얘기인데, 이게 꽤 그럴듯합니다.

신념조건(B)과 진리조건(T)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식이라고 부르기 위해선 적어도 참된 믿음이긴 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참이 아니거나, 본인이 믿지도 않는 걸 지식이라고 부르진 않겠죠. 물론 진리조건이 결과론적이라고 비판할 순 있습니다. 이런 기준에 의하면 지식이었다가 지식이 아니게 되는 것에 대해 참이 아니니까 지식이 아니었다고 뻔뻔하게 말하면 그만이니까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지식이라면 참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이상하진 않습니다. 참의 기준에 대해선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지만요.

정당화조건(J)은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네요. 정당화조건이 처음 등장한 건 플라톤의 대화편이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테아이테토스에게 지식이 무엇이냐며 언제나 그렇듯 시비를 걸었다고 합니다. 테아이테토스는 진리가 ‘참된 신념’이라고 주장했는데 소크라테스는 역시 언제나 그렇듯 그런 주장을 뭉개버립니다. 요지는 운 좋게 참된 신념을 얻었다면 그게 지식이냐는 겁니다. 아래 예를 살펴봅시다.

“예컨대 내가 3월 첫째 주의 로또복권에 당첨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다고 해보자. 이러한 신념은 어떤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막연히 운이 좋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3월 첫째 주의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해보자.”
(정대현, 지식의 성장, 15p, 살림출판사)

여기서 내가 가진 신념은 참된 신념입니다. 하지만 지식이라고 부르긴 힘든 것처럼 보입니다. 막연히 운에 근거한 참된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운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식이 되려면 신념을 가지게끔 한 정당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이렇게까지 따져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얘기를 틀렸다고 말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참된 신념 정도면 무난하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인데, 정당화 조건까지 들어가니까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인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JTB조건을 충족하면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1963년 게티어라는 놈이 논문 같지도 않은 세 장짜리 종잇장 들고 오기 전까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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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love
15/06/02 16:33
수정 아이콘
음? 마지막 문장.. 이 글에 후속편이 있다는 뜻인가요?
15/06/02 16:38
수정 아이콘
네. 이거 포함해서 세 번 정도 써볼 생각입니다.
이번 글은 사전단계..같은거고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지막에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ohmylove
15/06/02 16:39
수정 아이콘
아, 글 맨처음에 이미 그러실 거라고 알려주셨군요. 기대하겠습니다.^^
15/06/02 16:41
수정 아이콘
재미없는 얘기인데 읽어주실 분이 적어도 한 분은 있을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크크
Nasty breaking B
15/06/02 17:00
수정 아이콘
끊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다음 편도 기다리겠습니다 흐흐
15/06/02 17:1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마지막 문장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크크
낙타의 되새김질
15/06/02 17:47
수정 아이콘
흐흐 인식론이네요. 저저번학기에 인식론 수업을 들은 게 기억나네요. 이제 다음 내용은 Gettier Problem 소개, 그 다음은 causal theory, tracking theory, reliabilism 정도 되려나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게티어라는 놈..은 사실 저희 학교 출신인데 정말 부러운 사람이죠. 페이퍼 발표도 많이 안하고 차일파일 미루다 기대도 안 한 세 페이지 짜리가 대박나고 그 이후로 발표한 페이퍼가 0... 인데 평생 교수하구요. 수업 하던 젊은 교수가 페이퍼 발표 압박이 심한지 이 얘기 해주며 정말 많이 부러워 하더라구요.
15/06/02 18:13
수정 아이콘
좋은데 다니시는군요! 그런데 그 좋은데에서 가르치는 교수라도 게티어 정도면 부러워 할만하긴 합니다 크크.

이번에는 게티어반례만 소개하고 끝낼 생각입니다. 게티어반례 이후의 문제들은 분석철학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긴 하지만 너무 지엽적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정도면 궁금하신 분들이 더 찾아볼 적당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기대하는 대신에 뒷부분을 좀 써주시면.. 그나저나 낙타라니 메르스가..
낙타의 되새김질
15/06/03 17:06
수정 아이콘
바빠서 이제야 봤네요. 저는 능력이 부족해서.. 기대만 하는 걸로.. 흐흐

안 그래도 요즘 메르스 때문에 괜히 바꿨나 싶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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