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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2/27 15:08:40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에베레스트에서의 죽음들...
1.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는 산악인들이 초록색 동굴(Green Cave)이라고 부르는 지형이 있습니다. 바위가 안쪽으로 쑥 들어가서 위를 덮는 듯한 구조로 되어있는 곳인데 이곳이 초록색 동굴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 바위 밑에 다음과 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은 인도 산악인 Tsewang Paljor 이라는 사람으로 그는 1996년 인도 원정대의 일원으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가 그만 대원들과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체력이 고갈된 그는 쉴 곳을 찾아 바위 밑으로 기어들어 옵니다. 하지만 죽음의 지역에서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고 그는 거기서 추위에 떨다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은 장소인 Green Cave는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을 오르려면 반듯이 거처가야만 하는 등반 루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게는 마치 이정표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아마 이런 두 가지가 아닐까요?

“정상이 이곳에서 멀지 않다.”

“당신들도 언제든지 나와 같은 신세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마라. 메멘토 모리”


2.
2006년 영국의 등반가 데이빗 샤프 역시 Green Boots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그 역시 정상을 향해 나아가던 중 그 유명한 Green Cave에 잠시 몸을 맡깁니다. 지칠대로 지쳐서 녹초가 된 그는 거기서 잠시 기력을 회복한 후 다시 정상을 향해 나아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부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고 그의 몸은 서서히 얼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정상에서 가까운 그곳에서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동안 약 40명이 넘는 등반가들의 그의 곁은 지나쳐 갔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가 이미 그 곁의 Green Boots처럼 죽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몇 명의 등반가는 그의 희미한 신음 소리를 듣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그를 돕는다는 것은 자신들의 목숨 또한 내놓는 일이었고 결국 데이빗 샤프는 Green Boots 옆에서 그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3.
Francys Arsentiev는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무산소로 등정한 미국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1998년에 있었던 그녀의 그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정이 그만 그녀의 마지막 등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녀는 그녀의 남편 Sergei Arsentiev와 함께 등반대의 일원으로서 에베레스트 등정을 했습니다. 정상 정복 후 Sergei가 치친 몸을 이끌고 캠프로 돌아오고 난 후, 그는 아내인 Francys가 캠프로 복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몸이라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인 Sergei는 다시 방향을 정상 쪽으로 돌려서 아내를 찾으러 나섭니다.

오던 방향을 되돌려 다시 정상 쪽으로 가던 중 그는 하산하고 있던 우즈벡 원정대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Sergei에게 한 미국인 여성 등반가가 탈진한 상태로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자신들이 그녀를 도우려고 했지만 자신들의 가지고 온 산소 마저 바닥이 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자신들만 내려오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남편은 그녀를 찾아 나섰고 그렇게 하루가 가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또 다른 두 명의 등반가들이 Francys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생존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요. 그녀 가까이에 남편인 Sergei의 것으로 추정되는 로프와 손도끼가 발견되었지만 아내를 찾아 떠났던 남편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그 두 명의 등반가가 그녀 곁을 떠나고 난 후 에베레스트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년 뒤, 남편 Sergei의 역시 아내가 죽었던 지점 아래쪽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두 부부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이었지요.  



Francys Arsentiev의 시신을 수습하는 동료 대원들...



에필로그...

1924년 조지 말로리가 속했던 영국 원정대가 에베레스트를 향해 가고 있을 때 그들은 히말라야 고산 지역의 한 토굴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티베트 승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근처 사원에서 가지고 오는 약간의 음식으로 버티면서 토굴 속에서 몇 년 째 홀로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쓸쓸하고 황량한 오지의 토굴에서 고행을 하고 있는 그 승려는 조지 말로리 일행에게 왜 이곳을 찾아 왔는지 묻습니다. 원정대는 자신들은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그 티베트 승려는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려고 하는 지 이해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가 보기에 그 산 꼭대기에 오르겠다고 애쓰는 것처럼 의미 없는 일은 없었던 것이지요. 이 일화를 기록한 원정대원 가운데 하나는 이 때의 묘한 경험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보기에는 진리를 찾겠다며 토굴 바닥에 참선하고 앉아서 수행을 하는 그 티베트 승려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 승려는 아무것도 없는 그 산꼭대기를 목숨을 걸고 올라가겠다고 하는 자신들이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겠냐는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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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nyDaddy
15/02/27 15:14
수정 아이콘
엄홍길 대장이 박무택 산악인 시신 수습하러 떠나던 '휴먼원정대'가 생각나네요. 여러 번 봤는데도 "무택아~! 준호야~! 민아~! 집에 가자, 집에 가자~!"하는 부분하고 엄홍길 대장이 시신에 엎드려 통곡하던 장면은 볼 때마다 눈물이 핑 돕니다.
눈뜬세르피코
15/02/27 16:36
수정 아이콘
엄홍길 대장은 원정대와 알파인, 등반주의와 등로주의 같은 부분 외에도...
너무 스폰서에 휘둘리는 경우가 있어서 맘에 안 들더군요. KBS와 손잡고 사상 최초 히말라야 칸첸중가 등반생중계를 시도했던 적이 있죠. 쉬운 산도 아니고 칸첸중가에 생중계라니... 물론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사망자가 2-3명 나왔죠(기자 1명 포함). 그래서 말씀하신 휴먼원정대 전에도 아마 이 시신들을 수습하러 갔었을 겁니다. KBS 기자 이름이 현명근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워낙 대표적인 산악인이다보니 이런저런 일에 얽매이게 되는 거겠지만요. 그것과 별개로 저도 휴먼원정대는 눈물 찔금하며 보긴 했습니다.
하심군
15/02/27 15:25
수정 아이콘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망자들이죠. 원래 망자는 판단하기 힘들지만 이 들에게는 애도하는 것 조차도 보기에 따라서는 망자에 대한 모독으로 보이는...지나치는 등산가들 처럼 손을 대기도 난감한 죽음들입니다.
달콤한 소금
15/02/27 15:40
수정 아이콘
치질대로 치쳐서 이 부분 오타같네요 얼마전 유게의 에베레스트 정상 사진이 생각나네요..
토니토니쵸파
15/02/27 15:55
수정 아이콘
웹툰 "죽음에 관하여"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15/02/27 16:15
수정 아이콘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라... 조난자를 그냥 놔두고가면 죽을걸 알지만 도와줄수 없을정도의 극한 상황이 어떤건지 잘 상상이 되질 않네요.
Neandertal
15/02/27 16:28
수정 아이콘
저도 처음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는데 진짜 저 죽음의 지역은 까딱 잘못하다가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그런 지역이더군요...조난자에게 여분의 산소탱크 하나 건네주는 것도 자신의 목숨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15/02/27 17:54
수정 아이콘
매번 좋은 읽을거리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15/02/27 18:35
수정 아이콘
https://pgr21.com/?b=8&n=42213
https://pgr21.com/?b=8&n=42304
https://pgr21.com/?b=8&n=42757

예전에 올려주신 글들과도 이어지는 내용이군요. 당시에 저 글들 읽고 나서 찾아봤는데 에베레스트가 다른 14좌에 비해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 편인데도 사상자가 많이 나오는 이유가 오히려 등산기술의 발달로 인해 등반경험이 적은 사람들도 많이 등정을 시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고 좀 씁쓸했었네요.
곧미남
15/02/27 18:52
수정 아이콘
몇일전 유게에 올라왔던 현재 에베레스트 정상의 모습이라는 사진이 기억나네요
The xian
15/02/27 20:44
수정 아이콘
언젠가 지인이 '에베레스트는 정복도 많이 되었고 등반한 사람도 많고 전문 패키지까지 생겼다던데 아직도 에베레스트에서는 왜 그렇게 사상자가 많이 나와'라고 하길래.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답한 적이 있습니다.

'자. 생각해 봐. 어떤 공격대 던전이 새로 나왔어. 처음엔 고생했지만 완전히 공략되었고, 가이드도 나왔고, 아이템도 좋아졌고, 너프 패치도 됐지. 그래서 이제는 웬만하면 모두 클리어할 수도 있고, 아이템 손님들 사장님들 모시고 가도 공략에 큰 문제가 없어 보여. 그런데 그렇다고 누가 부주의했을 때 눕는 사람이 없거나, 공대가 한 번에 전멸하는 사고가 없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겠니?'
Neandertal
15/02/27 20:52
수정 아이콘
어찌보면 저 본문의 티베트 승려의 생각이 맞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베레스트 같은 산들은 그냥 멀리서 보기만 해도 좋을 것 같은데 굳이 "정복"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갈 이유가 있을 지..."정복"이라고 하면 과연 무엇을 "정복"했다는 건지...

우리 종족은 이런 생각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멸종당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큘러스
15/02/27 20:54
수정 아이콘
시신 수습도 쉽지않은게 수분이 겹겹이 얼어붙어서 시신 무게가 수백kg 씩 나가는 경우도 있다더군요
Neandertal
15/02/27 20:56
수정 아이콘
그렇게 에베레스트 산에 남아 있는 시신들이 엄청나다죠?...그런 경우 무언가 국기 같은 걸로 덮어주거나 돌 무더기를 쌓아 놓은 정도가 최선이라고 하더군요...
눈뜬세르피코
15/02/27 22:27
수정 아이콘
엄홍길의 휴먼원정대도 찾으러간 사람 중 한 명 발견했지만... 결국 못 모시고 그곳에 돌무더기를 쌓는데 그쳤죠.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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