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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8/19 17:59:25
Name gjklwe
Subject [일반] '취존'의 허용범위는 과연 어디까지 일까요.
예전에 축구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이야기가 나온적이 있습니다.  올타임 베스트 11를 팬들끼리 선정할 때 항상 매번 나오는 이야기가 '과거와 지금의 환경이 다른데 어떻게 동등하게 비교를 하느냐'와 더불어 '자기가 좋으면 됬지 왜 굳이 우열을 나눠서 괜히 힘빠지게 싸우느냐'는 화두가 제기되곤 했습니다.

과연 '취향을 존중한다'라는 명제는 과연 어느정도의 효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 점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취향은 개인의 기호이자 선택의 영역이므로 행위 자체는 중립적인 가치로써 인정받지만, 그것이 곧 모든 가치의 우선순위에 서는것이 합당한 걸까요.

가령 간단한 예를 들자면 전 선수 개인적으로는 메시보다는 드록바를 더 선호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드록바가 메시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드록바를 메시보다 더 좋아한다는 것은 엄연히 제 개인의 취향이자 기호며 선택의 영역이니 그걸로 욕을 먹을 필요는 전혀 없죠. 다만 드록바가 메시보다 나은 선수라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취향이니까 다른 선수의 팬분들이 존중코자 할까요? 그건 아닐겁니다.

다만 제가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취존의 문제점은 단순히 메시가 더 좋네, 드록바가 더 좋네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선수간의 우열이나 기준 자체를 상쇄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면 됬지 선수간에 무슨 우열이 있느냐'란 식의 결론이 도출되는게 일반적이죠. 특히 시대가 다른 선수들간의 비교에서는 더합니다.

축구처럼 모든 퍼포먼스와 스탯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스포츠 분야에서도 저 난리인데, 음악,미술,문학 등 인문학이나 예술 분야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저기서 '취존'은 거의 절대적인 영역을 과시하고 있죠. 소위 명작의 기준이라는 것도 그저 다수의 취향이 일치해서 나온 결과로 치부하며 그 가치와 영향력을 상쇄시켜 버립니다. 예컨데 취존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한 작품간에는 '우열'을 가르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취향은 당연히 개개인이 다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작의 기준이라는 것도 취향의 영역에 포함시켜버릴 수 있는 걸까요. 가끔 그런 의문이 듭니다.

가령 영화나 음반계에서 아카데미나 그래미 어워드등을 시행하는 것(물론 순수하게 비평적인 측면보다는 쇼비즈니스적인 면모가 더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만)이나 다양한 문화 예술 평론가들이 활동하는 것 등은 취존에 따르면 전혀 설득력이 없는 뻘짓거리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리죠. 너는 뭔데 니 취향을 평론이랍시고 남에게 강요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하거든? 이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입니다. 뭐 저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하진 않겠죠. 저 사람 취향도 존중해야 되니까. '님 취향은 그러시군요. 제 취향은 아닌데요. 일단 님 취향은 존중해 드릴테니 제 취향도 존중받겠습니다' 란 식으로 귀결되겠죠.


예컨데 요새 인터넷에서 취존을 언급하는 경우의 상당부분은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측면에서의 취존이 아니라, 아예 기준 자체를 거세해버리는 절대자적 위치를 고수하는 점이 심히 부담스럽습니다. '명작 = 특정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에 마련된 기준에 합당한 분석절차를 거친 것'이 아니라 '기준? 그것도 결국은 취향. 고로 명작= 그냥 자기 취향에 맞는거'라는 극단적인 상대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귀결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불만스러울때가 종종 있네요. 취향에만 맞다면 괴테나 톨스토이 등의 고전문학과 양판소가 동등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일까요.당신에겐 괴체의 작품이 명작이듯이, 나에게는 양판소가 명작입니다' 라는 개인의 선택까지 부인할 수 없지만 취존의 잣대 아래 두 작품의 우열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셈이 되는건지.....우열을 가린다는 행위는 개인의 선택(취향,기호)를 침범하는 것과는 결코 동일시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부분은 가끔 동일한 것으로 환원되곤 합니다. 이것 조차도 제 개인의 '취향'이자 '주관'이 되려나요.


예컨데 취존의 허용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우열을 가리는 데 있어서 취존이 개입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인문, 예술 분야에서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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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1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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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결론부터 말해서 그냥 일상적인 대화나 인터넷에서의 의견교환 수준이라면 우리 아버지가 메시보다 축구 잘한다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취존의 영역이죠. 하지만 정말로 글쓴분이 원하는것처럼 우열을 가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단 우열을 따져볼 객관적인 기준부터 합의하는게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vs놀이에서 답이 않나오는 이유가 주관적인 취향에 따른 호불호 때문도 있지만 평가할 기준 자체가 없거나 제각각이라 그런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걸스데이 덕후
14/08/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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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시곡은 명작입니다. 취존요

이정도급만 아니면 되지 않을까 하네요
레지엔
14/08/1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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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우열 논쟁을 지인들하고 하다가(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어차피 다들 하드락으로 대동단결하는 이단아들이라-_-) 어떤 형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우열 논쟁 중간에 나오는 '취향 존중'이라는 얘기는 '왜 그런지 납득시킬 자신도 없고 열의도 없고 내 의견 굽힌다고 하기도 싫다는 태도의 반영일 뿐이다'라고. 그리고 저기에 다른 친구가 덧붙인 말이 '설사 바보같은 짓이어도 남한테 직접적인 해를 주는게 아니면 할 권리는 가지는게 이 사회의 룰 아니냐'라고 했고요. 저는 두 가지 의견에 모두 동감합니다. 우열은 어떤 형태로건 존재하고, 그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논리적인가 아닌가는 영원한 논쟁과 연구의 대상이며, 그 기준에 대한 통설 내지는 현 시점 가장 지지받을 수 밖에 없는 정설에 위배된 생각을 가지는 것 역시 자유라고요. '취존'의 의미를 하고 싶은 말은 하지만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닫힌 커뮤니케이션의 의미가 아니라, '난 이런 사람이다'를 어필하는 행위에 국한시킬때에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4/08/1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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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코어 취조너들에게 객관적인 기준을 따르게 하려고 에너지를 쓰실 필요가........ 저는 과학과 논리도 취향일 뿐이라고 하는 분들도 종종 봅니다. 이런 분들이 말씀처럼 '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임' 이러고 갑옷 입고 나오면 논파가 쉬운 것도 아니고요.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8/1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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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고전문학과 양판소가 판단하는 '개인'에 따라서 '동등'(하거나 고전문학이 밀리는......)한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개인들이 자신이 위치한 '맥락'위에서 '문학'혹은 '소설'에 대한 판단 기준이 '서로다르'기 때문에 가능해 지는 일이기도 하고요.

모두가 '작품'관련 전공자이거나 평론가라면, (혹은 교양, 문화적 지위 형태로 특정한 '취향'이 강하게 권장된다면), 판단'결과'의 광범위한 일치가 발생할 수 있고 실제 어떠한 작품들은 이러한 '일치'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모든작품에 판단 '기준' 혹은 '결과'의 일치가 나타나는 것도, 교양이나 문화지위 형태로 이루어지는 재생산이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것도, 항상 성공하는 것도 아니죠.

이런 상황에서 '(당신들은) 대단하다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다'식의 평가를 내리는 개인에대해 그 평가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일은 무척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봅니다.

애초에 '가치'라는것은 '인간'이 부여하는 것이지, 대상 자체에 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전이 일정시기이상, 특정사회에서, 특정한 계층에게 '평균적'으로 더 높은 가치부여를 받는다고 해서, 그 사회 내부의 어떤 개인이 고전보다 양판소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죠.

학술적인 접근으로 특정한 '기준들'을 세우고, 그 기준들에 대한 적합정도에 따라 '우열'을 나눌수 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이 경우에도 '기준'에 대한 불일치는, '결과'의 불일치를 야기할 것이라고 봅니다.
[god]휘우
14/08/1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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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분야들에 한해서 취향을 존중한다라는 것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납득할 명확한 기준, 예를 들어 야구의 여러 통계 지표들은 아주 명확하게 투수들간의 우위, 타자들의 우위를 나눌 수 있기에 취향을 존중하더라도 각잡고 서로간의 우열을 나눌 때에 있어서는 그다지 이견의 여지가 없죠. 그러나 축구 같은 계량되기 힘든 움직임들이나 드리블, 오프 더 볼 상태의 움직임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명확한 우위를 말하기 힘들기 때문에 취향 얘기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을 때 똑같이 33골을 넣었는데 한 명은 80번의 슈팅, 한 명은 120번의 슈팅을 했다면 한 명이 난사를 했을 지 언정 결국 골 수는 같기에 누가 더 명확한 우위에 있다고 말하긴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듯 명확하지 않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는 취향 얘기를 꺼내어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외모 역시 이 예시에 들어가겠군요.
소독용 에탄올
14/08/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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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합의에 있어서 보통 '관중동원력' 같은 '애매한' 부분에서 탈이나는지라.......
레지엔
14/08/1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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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뭐 논쟁 많이 보셨을텐데, 야구의 그 통계지표와 주관적인 임팩트 순위의 불일치로 인한 논쟁이 꽤 심해지고 심지어 이게 MVP 투표에도 반영되는게 현실이죠. 같은 솔로 홈런이어도 가치가 다르다/같다의 논쟁은 필연적으로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은 원래 객관적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주관적으로 취사선택하는 것을 본질적으로 타고난 생명체거든요. 그래서 사실 '개인'의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모호해질 수 있고 오직 나의 주관만이 오롯해집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8/1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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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데이터 라는 물건이 엄청나게 '최근'에야 겨우 나타난물건이라, 그 부분은 '익스큐즈'해야 ㅠㅠ
레지엔
14/08/1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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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WAR 순위로 MVP 줄 일은 없을 것이라(..) 투승타타는 영원합니다. 인간은 진화하지 않아요(..)
소독용 에탄올
14/08/1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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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20만년~200만년만 더 하면, WAR순위로 MVP를 주는 아종이 생겨서.......
레지엔
14/08/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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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제가 살아서 야구를 못 볼거라 크흑... 20만 년 후에 살아서 보게 되면 제가 쪽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4/08/1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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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존중과 우열과는 상관이 없죠

오히려 우월하지 않기 때문에 좋다는 기준이 있을 수 있기 떄문에
14/08/1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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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볼트 달팽이가 구냥 달팽이보다 빠르다고 하더라도 제 눈에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러니까 포스타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거 군대 안에서 이야기지 동네 아저씨 아닌가요? 취존해주시죠? 정도의 느낌입니다.
정육점쿠폰
14/08/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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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견해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는 걸 원치 않는다' 라는 뉘앙스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는 단어가 '취향'이라고 생각합니다.
14/08/1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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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글쓰신분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들었던 비유도 비슷하군요. 혼자서 깊은 고민끝에 답은 내리진 못했지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보편적일지도 않을 기준을 보편적이라며 특정 기준을 누군가에게 폭력적으로 강요할때, 강렬한 빛을 발하여 방어해주는 것이 취존일 것이다 라구요.
14/08/1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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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취향은 인정하겠는데 내꺼가 더 우월하다'죠. 취향은 결국 개인적 우위 기준인것 같아요. 나에겐 이게 분명히 우월한데 다른사람이 깎아 내리면 기분 안좋거든요. 그래서 '취향 존중'이라는 그럴듯한 표현으로 합의 보기로....
구밀복검
14/08/1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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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든 예술이든 과학이든 그 어느 분야든 간에, 완전히 동질적인 대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대상과 대상 사이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며 그에 따라 우열이란 것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진지하게 컨텐츠를 향유하다보면 그에 대해 재고 따지고 검토하지 않을 수 없고요. 이런 시도에 대해 <취존 만능론>을 들이대는 것은 모든 격과 급의 차이를 무시해버리며 어거지 평등을 논하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무분별하게 <민주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반지성주의>와도 맞닿아 있고요. 결국은 '나는 그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니까요. 취존을 무기로 삼는 사람들 중 상당 수가 해당 분야에 대해 라이트하거나 별 애착이나 열정이나 고민이 없는 것도 관련이 있는 것이고... 정작 한 분야와 장르의 매니아요 헤비덕후인, 정말 취향을 존중받을 만한 사람들은 취존을 말하기 이전에 대상 간의 질적 차이에 대해 고민하죠.
소독용 에탄올
14/08/1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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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문화예술'분야 전반에 투사할 에너지량이 적기 때문에, 라이트하고 애착없이 질적차이 같은거 고려안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뭐라고 하기도 참 그렇죠......
진지하게 컨텐츠를 '향유'가능한가?에서 일단 걸려버리니 ㅡㅡ;

하지만 잘모른다고 해서 '취향'을 존중받을 만 하지 않다는 관점은 반지성주의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구밀복검
14/08/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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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른다고 해서 취향을 존중받을만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로 현실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지간히 알아서 (비록 소극적인 형태일지언정) 취존해주죠. 해당 분야에 대해 별 관심도 이해도 열정도 없으면서 그릇된 주의주장을 관철하려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야 다짜고짜 타인의 취향을 공격할 배짱 넘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소독용 에탄올
14/08/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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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을 관철하고 있......
레지엔
14/08/1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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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공감합니다. 그리고 사실 그러한 반지성주의를 강화시키는 부분이 말씀하신 헤비 매니아들의 '통념'이 하나의 밈, 코드가 되면서 일종의 진입장벽이 된 측면도 크다고 봅니다. 예컨대 80년대 이후의 락/메탈 음악 입문 세대는 '왜 핑크플로이드는 위대한가'를 고민하는게 아니라, '핑크 플로이드는 일단 위대하다'를 배우고 시작한단 말이죠. 또 위에 나온 세이버 매트릭션의 사례처럼, 새로운 혁명적 관점의 도입으로 인해 그 매니아적 통념이 산산히 박살나면서 재구축되는 과정에서, '준 평론가적 지위'가 매우 하찮은 것으로 비춰지고 또 파편화된 소비를 권장하는 사회적 풍토랑 맞물리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매니아들의 통념은, 고뇌와 성찰이라는 점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지지만 막상 그 결과물과 논리적 구조는 놀랄 정도로 빈약해서 결국 영화 <머니볼>에 나온 것처럼 '인정합시다. (우리의 경력이 얼마나 됐건 간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놀랄 정도로 무지하지 않습니까'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구밀복검
14/08/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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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뭐 여기에 추가적으로 권위는 드높지만 실질적인 분석 수준은 질박한, 그리하여 스노비즘적인 매니아들과는 적대적인 반면 반지성주의적인 대중들에게는 거짓 진리 내지 나이브한 일반론, 선동적 수사 및 그에 따른 근자감을 부여해주는 상당수의 저널리스트들이나 강단 전문가들도 공격할 법 하고...
레지엔
14/08/1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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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듀나가 선견지명이 있어요(..)
14/08/19 18:54
수정 아이콘
일기 예보 존중해주시죠..?
그런데 제 생각에는 허리가 쑤시는 게 정확도 높다능..?
14/08/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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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논리랑 싸우기는 싫지만 내 의견이 맞는거 같아. 라는 용도로 취향을 쓰는 사람이 많아서..
내려올
14/08/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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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존은 그냥 혼자 좋아할 때 누가 간섭하지 않는 겁니다. 자기 취향을 밝히고 취향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으면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요.

그게 아니면 그냥 취향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면 됩니다.

그리고 like와 good은 구분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게 훌륭한 것은 아니니까요. 이걸 혼동하면 취존을 상대가 불편해할 정도로 밀어붙이게 되는 거지요.
소독용 에탄올
14/08/1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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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한테 훌륭한 것'과 '남한테 훌륭한 것'을 잘 구분해 낼 수 있었고 후자를 중요하게 생각해왔다면, 다양한 '다른종류의 분쟁'도 없었을 겁니다.

거기에 한국사회에서 like와 good은 엄밀하게 잘 구분되지 않는 '범주'를 지칭하는 표현들이라서요.......
COPPELION
14/08/19 18:48
수정 아이콘
굉장히 넓은 분야에 폭넓게 작용할 수 있는 관점인데 그것이 인물이든 창작물이든 '좋아한다' 라는 감정을 갖게 되면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논쟁이 붙었을 때 자신은 왜 그것을 좋아하는 지를 설명해서 납득시켜야 하는데, 정말로 해당 분야에 깊은 식견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좋아한다' 라는 감정을 객관화하여 여러 이론과 기준에 기반한 해설을 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듭니다. 물론 한 분야만 진득히 파는 것이 아닌 제너럴리스트들이 대부분인 만큼 그런 사람들이라고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평가하고 논쟁할 권리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선까지는 의견을 나누되 자신이 잘 모를 정도의 수준에 이르른다면 '취향을 존중하자' 라는 말로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는 편이 낫다고 보구요.
캡슐유산균
14/08/1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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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여러가지지만 공통적으로 유행하는 것은 있죠. 이런걸 살살 건들이면 엄청난 반발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가수 유행일때

"나 그거 하나도 안감동적이고 억지스럽다!"

이런말 한마디면 게시글 하나가 곧바로 콜로세움으로 가버립니다.

꼭 일부러 이런 주제를 꺼내드는 어그로 끄는 분도 계시고 또 그런 성향을 알고 미리 준비해놓고 과거 글까지 정성들여 찾아 읽어가며 전투에 참여하시는 정의에 사자님들도 계시죠.

90년대 문화를 향유한 청장년층이 많은 사이트에서 퇴마록을 주화입마류의 저질 소설이라 깐다거나, 소녀들이 많은 사이트에서 특정 아이돌을 깐다거나, 니르베 같은 곳에서 대통령을 깐다거나 등등

그런데 이런것 역시 취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나치지만 않다면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물론 대놓고 전투 하자 이런 사람은 없어야 겠죠.

사람들은 평화를 좋아한다 조용한게 좋다 어그로 사절 이렇게 말하지만 이런 작은 전투 조차 안 일어나는 각 사이트 (자유)게시판들은 주로 하향세더라구요.
14/08/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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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취존을 침범하지 않는 선 까지죠.

우열을 논하기 힘든 부분에선 결국 어느쪽 지지가 많냐에 의해 암묵적으로 갈리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결국 본인 취향을 설득 포장 강요(?)하는 단계가 오는데 그럼 이미 존중받을 선은 넘은거죠.
Judas Pain
14/08/1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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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존중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좋아하면 안된다'고 하지 말라 그가 그것을 좋아하게 두어라는 이야기지요.

애초에 취존은 무엇에 대한 다수와 소수의 호오 차이의 문제였고 그 폭력을 다루는 것이며, 개개인들이 무엇들의 우열을 가리는 정오의 문제에 낄 이유가 없습니다. 딱 하나 얽히는 지점은 취존 주장자를 포함한 논자들이 우등한 것을 좋아하고 열등한 것을 싫어해야 한다고 믿는 오해와 두려움의 영역이겠지요.
소독용 에탄올
14/08/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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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열을 가리는 정오의 문제와 호오의 차이라는 감정의 문제가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 영역이(혹은 그 영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는 일단 '그럴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해야 하며, 우열을 가리는 '기준'에 대해서도 정보를 획득해야 합니다.
우등하다고 '간주되는' 것을 좋아하고,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것을 싫어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찮가지로,
'기준'을 공유하지 않거나, 제한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것을 '우등'하거나 '열등' 하다고 '간주해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자원' 및 관심의 차이로 인해 이 과정이 상당부분 '호오'의 차이로 대체되버리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Judas Pain
14/08/1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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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신 이유로 대중문화와 스포츠 일반에서 하는 우열논쟁은 아직 준비가 안된 경우가 많습니다. 자본주의 아래 소비지향적 대중문화에서 그것이 역전되긴 매우 어려우니 미친놈들 내지 꾼들이 오기 전의 우열 논쟁은 대개 슈퍼맨vs헐크나 람보vs코만도 정도의 투표 놀이로 대하는 것이 유익하지 싶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8/19 19:25
수정 아이콘
사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슈퍼맨vs헐크나 람보vs코만도 급에서 유지가 되면 괜찮은데,
간간히 '우리아버지' vs '너네아버지' 급이 되버려서.......
Judas Pain
14/08/1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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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싸울 수 밖에요.
구밀복검
14/08/1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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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코멘트 쓰다가 생각난 이야기를 좀 하자면, 저는 이것이 굉장히 현대적인 특질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란 것이 정치 이념일 뿐만 아니라 생활윤리인, 말하자면 누구나 기호와 취향과 존재와 가치관을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된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랐죠. 때문에 대상 간의 우열, 나아가 특정 분야에 대한 각 개인의 견식의 우열을 인정하는 데에 심리적인 반발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때가 찾아올 수밖에 없는데, '나도 (남들만큼 잘났으니) 남들만큼 논할 거야!'라는, 태중에서부터 몸에 아로새겨진 관습적인 본능이 잠잠해지기는 쉽지 않은 법이라...10년 전 디워 빠들이 영화 매니아들과 격론을 벌였을 때가 좋은 예겠죠.

그런 면에서 <민주화>라는 어휘의 최근의 부정적인 용법들이 마냥 악의적이거나 뜬금없는 방식으로 오용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는 실재를 포착하고 있는 어휘에요. 무분별하게 모든 대상을 동등하게 간주하려는 태도는 결국 모든 것을 무화시킨다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진실을 예리하게 찌르고 있죠. 예컨대 이영도의 피를 마시는 새와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간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모든 문학작품의 평등성을 논하는 주장은 문학의 평가 기준과 비교 근거, 나아가 문학 그 자체를 박살내버릴 잠재적인 위험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흑화되면 사해x신주의, 낭만화 되면 위아더 월드로 빠지는 거고요. '내가 x신이라고? 그러는 너도 x신. 그렇게 우리 모두 평등한 하향평준화..' '나도 최고 너도 최고 우리 모두 훌륭해요 짝짝짝^^'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민주화>의 부정적인 의미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집단이 가장 민주화에 대한, 우열의 무화와 가치의 전도에 대한 욕망에 목말라 있으며 사해x신주의적인 태도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일 테고.
소독용 에탄올
14/08/1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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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학이 박살나는 원인중 하나는 "이영도의 피를 마시는 새와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간의 우열"을 가리는 것 이전에,
인구집단의 상당수가 그런게 있는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둘 중 하나만 알거나, 둘 모두를 모른다면 '우열'을 가릴 수 있을리 없죠.
거기에 더해서, 우열을 가리는 '기준'에도 사람들은 점점 '자원'을 투자할 여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해당하는 부분은 단지 <민주화>의 부정적인 그늘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국적인 변용 하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개인'조차 '사치재'가 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고전이 '문화적 가치'가 아니라, '지위의 표식'인 '사치재'가 되버린다면, 문학은 박살나는 대신에 '박제'가되겠죠.
14/08/1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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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단 이런 문제가 특정 기호와 관련해서만 문제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확장해보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문제죠.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에서 안성기의 대사 중에 "우리나라에 전문가가 어디있어요. 사기꾼 빼고" 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저는 이 대사가 국민의 정서에 어느정도 부응한다는 사실이 자체가 이 영화가 제기하고자 했던 문제의식보다 훨씬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성이 가지는 가치는 "상대적으로 더 잘 아는 것"인데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분야를 다 잘 알 수는 없죠. 따라서 결과적으로 상대적으로 더 잘 아는 누군가의 발언에 대한 레퍼런스로 앎을 축적해나가는 과정에서 실질을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인데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 앎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의미니까요. 이러면 문제가 되는게 전문성이 가지는 권위와 사이비와의 구분이 모호해진다는 것이겠죠. 마치 의사에 대한 권위가 무너지면 검증 되지 않은 민간요법이 판을 치는 것처럼요. 사실 일종의 역설 같지 않은 역설이지만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어떤 합리적인 프로세스로 기능하려면 전문성에 일정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에게 판단을 맡기겠다고 해놓고서 대중이 그 어떤 것도 판별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짓이니까요. 대표적인 사례가 5.18을 뭘로 볼것이냐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폭동이라 그러고 어떤 사람은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는데 재미있는건 양쪽 다 자기들만의 레퍼런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구밀복권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이 레퍼런스들이 민주화 되어버린다면 그냥 자기가 믿고 싶은걸 믿게 되는 확증편향이 발생할 뿐입니다. 어떤 레퍼런스가 더 권위가 있고 더 우월하다는걸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정치논쟁을 보면 대개는 "주장"만 있고 "검증"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가치관이 다른거지"하고 넘어가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대중에게 권한을 맡겨서 적어도 다수가 승인할 수 있는 합리적인 컨센서스를 형성한다는 민주주의에 가장 해가 되는 행동 중 하나죠.
소독용 에탄올
14/08/19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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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전문가'의 권위를 부정하고, 레퍼런스의 '민주화'를 선호하는 것은 사회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권위는 '신뢰'위에서 성립 합니다.

신뢰-권위의 연결은 한 영역에서 '전문가'가 만들어지는 재생산방식, 전문가가 사용하는 방법론, 노출됨으로서 대표되는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영역 내부에서 가지는 학술적인 성실성과 일관성, '전문가'가 대표하는 제도와 같은 다양한 학술적, 사회적인 '신뢰의 기초'위에서 전문가의 권위가 생기고, 발휘되는 과정 전체로 볼 수 있지요.

이 과정은 '재생산'되는 대중이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경험'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판단'으로 구성됩니다.
대중의 재생산 과정에서 전문가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요소중 일부가 '부족'하거나 없다면, 혹은 반례로서의 '경험'을 하게 된다면 대중은 전문가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기 어려워 집니다.

'레퍼런스의 민주화'는 전문가의 권위를 붕괴시키는 '독립변수'라기 보다는, '전문가'가 재생산되고 위치하는 제도에 대한 '신뢰'상실로 인해 '레퍼런스의 민주화'이후의 단계가 진행되는 '매개변수'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14/08/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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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저는 대중들이 무지해서 전문성을 인정 안한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시스템적으로 우리나라가 아직 그런쪽으로 미비해요. 물론 역사적, 사회적 원인도 있겠지만 그 동안 전문가 집단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자초한 측면도 크죠.
소독용 에탄올
14/08/1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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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의 전망도 우울해서 더욱 문제입니다.
'전문가 집단'이 신뢰형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도 ('안정된 양반'들은 현황유지를 목표로 하고, '신규로 진입하는 양반'들은 '재생산'이후 과정이 자기착취적인 형태를 더 견고하게 갖추어가고 있어서) 점차 낮아지고 있고, 대중이 신뢰형성을 위해 쓸 수 있는 자원이 줄면서 향후의 신뢰형성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어서........
종이사진
14/08/19 19:37
수정 아이콘
'왜 내 맘에 안드는 것을 네가 좋아하냐?'
만 아니면...된다고 봅니다.
14/08/19 19:43
수정 아이콘
Vs 놀이의 맹점이죠. 애초에 객관과 주관의 영역이라는 것은 엄밀한 잣대에서 이분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는 합의에 기반하고 있는지라 모두 공통으로 특정한 기준에 대해서 합의하지 않는한 결론이 날 수가 없죠. 이건 비단 vs 놀이 뿐만 아니라 철학의 역사에서도 꾸준히 제기된 문제기도 하고 현재 많은 학문들이 하나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치고박고 싸우는 이유기도 합니다.

사실 그래서 저는 결국 취존의 영역 같은 경우는 얼마나 많은 부분에 대해서 다수가 공통된 컨센서스를 갖느냐에 좌우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같은 경우는 경험과 관찰에 기반한 이론에 대한 합의가 잘 이루어져 있는 편이고 반증되는 이론은 항상 탈락하기 때문에 합의를 계속 유지할 수 있기에 더 객관적인 것이고 신앙 같은 경우는 사람들 여러 종교인들이 다들 각기 다른 기준을 갖고 있어 합의가 어려우므로 주관의 영역, 즉 취존의 영역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 vs 놀이에서 유의할 점은 최대한 모호함을 줄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가장 위대한 선수" 보다는 "데이터상 가장 뛰어난 플레이를 했던 선수"가 좀 더 취존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더 의미있는 논쟁을 진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겠죠.
14/08/19 20:03
수정 아이콘
제가 양판소에 대해서 취향운운 얘기 들을때마다 생각하던거군요..
이딴 나무야 미안해 수준의 책을 재밌게 봤다고 하는것에 대해서 '수준이 낮다'가 아니라 '취향'이라는 포장을 할수 있는가에 대하여 말이죠.
하지만 반대로 순수문학이든 뭐든 고상한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 내가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장르소설에 대해서 같은 잣대를 들이댈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은 안할려고 노력중입니다.
14/08/1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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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93437&cid=40942&categoryId=32856

모더니즘은 넒은 의미로는 교회의 권위 또는 봉건성을 비판하며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현대풍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14/08/1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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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97584&cid=41978&categoryId=41980

하버마스는 모더니즘을 반대하거나, 모더니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든지, 사회와 문화의 분열의 책임을 문화로 돌리고 탈현대를 주장하는 모든 논자들을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라고 비판한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모더니즘이 이룩한 경제적 성과는 수용하면서도 이에 따른 문화적 변화는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는 논자들이다. 하버마스는 미국의 탁월한 신보수주의자로 다니엘 벨(Daniel Bell ; 1919~ )을 든다.

벨에 의하면 모더니즘 문화는 합리화된 일상생활의 관행과 덕목을 비판하고 사회구조를 전복시킨다. 또한, 1960년대 모더니즘의 논리적 극치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했다고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삶에 대한 심미적 정당화를 본능적 정당화로 대치한다. 그리고 해방, 관능주의, 자유 등으로 일상행동의 가치와 동기에 대해 공격하고 합리적 우주관을 전복시킨다. 바로 이것은 모더니즘의 종말과 동시에 새로운 문화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벨은 자본주의와 친화성을 보여주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문화가 모더니즘을 거쳐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해체되는 과정 속에 자본주의 논리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생산과 소비는 분리되어 소비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해 쾌락, 낭비, 충동 등이 조장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을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적 문화를 파괴하고 자본주의적 사회구조와 모순되는 문화를 낳기 때문이라고 보면서, 이 새로운 문화를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하버마스는 벨이 현대사회가 자율성을 지향하는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했지, 이러한 사회가 비판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지는 못했다고 공격한다. (중략) 경제적ㆍ행정적인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정책, 문화적인 전통을 소멸시키는 정책 아래서 불안에 떨고 있는 현대인을 간과하고 신보수주의자들은 어떤 정신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모더니즘의 문화를 왜곡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즉 이들은 노동, 소비, 여가의 태도 변화에 연관된 사회ㆍ경제적 원인들을 해명하지 않은 채, 쾌락주의, 나르시시즘, 지위와 성취경쟁으로부터의 도태 등과 같은 부정적인 모든 현상의 원인을 문화의 영역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현대화 과정은 인간의 존재 속으로 점점 깊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하버마스는 이것을 일상생활에서의 의사소통의 하부구조가 뒤흔들리는 문제로 보았다. 즉 의사소통의 영역이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합리성의 기준에 의해 왜곡될 때 가치관과 규범의 전달, 재생산이 더욱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버마스가 취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8세기 계몽주의사상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모더니즘 계획은 객관적 과학, 보편적 도덕과 법률, 그리고 자율적인 예술을 각각의 내적 논리에 따라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이들은 일상 사회생활의 합리적 조직을 위해 전문화된 문화의 축적을 이용하고자 하였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콩도르세와 같은 [계몽사상가들은 예술과 과학이 자연의 힘에 대한 통제를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세계와 자신에 대한 이해, 도덕적 진보, 나아가서는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낙관주의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리하여 과학, 도덕, 예술의 각 영역은 전문직업에 상응하도록 만들어져 모든 문제가 특수 전문가의 관심사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문화전통이 전문적으로 취급됨으로써 세 가지 각 문화영역의 본질적 구조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인지적-도구적, 도덕적-실질적, 그리고 미학적-표현적 합리성의 구조들이 등장하여) 이 각각의 구조는 숙련된 전문가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런 유형의 문화적 합리화로 인해서 일상 세계는 더욱 궁핍화의 위험에 빠져들고, 전문가의 문화영역은 일상적 의사소통의 해석학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되고 말았다. 바로 이것이 미완의 모더니즘 계획에 대한 하버마스의 진단이다.]

하버마스는 베버(Max Weber ; 1864~1920)야말로 모더니즘(근대성)으로 이행해가는 과도기와 현대의 특징을 잘 파악한 인물이라고 하였다. 베버는 현대가 종교, 형이상학적 세계상 속에서 표현되던 이성이 분화되면서 학문, 도덕, 예술이라는 세 가지의 가치영역이 분화되어 나타났다고 보았는데, 이 각각의 영역은 전문화ㆍ제도화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의 인간은 고대의 종교적ㆍ형이상학적 세계상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들의 욕구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소수의 전문가가 지식을 독점하는 부정적인 측면이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에서 하버마스는 이성이 세 영역으로 분화된 점을 강조한다. [이성이 분화되는 현실을 막을 수는 없으며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현대의 계획만을 꾸준히 추진시켜 나가는 일뿐이다. 그러므로 하버마스는 현대의 전제 조건인 계몽을 강조한다. 그가 근대성을 옹호하는 이유는 현대가 아직도 인류에게 정의로운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이 계획을 "전통주의로 말미암아 궁핍하게 된 일상생활의 실천과 현대의 문화를 분화시켜 재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연결은 사회의 현대화 또한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는 조건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 일상세계는 자율적인 경제체제와 그것의 행정적 보완물의 내적 역동성과 명령에 한계를 지어주는 제도를 자체 안에서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영역들의 분화를 받아들이면서 베버의 합리성이론과 자신의 의사소통이론을 조화시켜 합리성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힘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비판 철학의 반성적 능력을 상실하지 않는 비판적 사회이론을 요구한다. 하버마스는 기술적ㆍ학문적인 지배 인식의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성적인 주체의 비판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버마스는 탈현대의 입장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반성의 기초로 삼을 수 있는 이념과 철학이 없다면 료타르가 주장하는 다양한 언어놀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철학이든지 사회에 대해서 비판적 반성을 하지 않을 때, 그것은 기존 사회를 옹호하는 권위주의적ㆍ보수주의적 철학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97585&cid=41978&categoryId=41980

하버마스는 계몽사상에 의해 대변되는 서구 모더니즘의 계획을 오늘날 현실세계에 맞게 재활성화시키려고 노력한다. 모더니즘이 보여준 모순과 병리현상을 비판하지만 근대성의 근본이념인 사회의 합리화와 인간해방의 가치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합리성의 개념을 규정하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토대를 해명하고 그 기초 위에서 사회의 합리화를 위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하버마스는 제시한다. 그는 이를 위해 보편화용론(universal-pragmatism)을 전개했고 그 후에는 이것을 더욱 발전시켜 '의사소통행위의 이론'을 개진했다(『의사소통행위이론』, 1981).

[이것은 개인 각자가 자유롭게 사회적 상호작용에 끼어들 수 있는 이상적인 대화상황을 목표로 하는 언어의 비판적 재구성을 목표로 한다.] 인간은 이성적 토론을 통해 부당한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이 합의를 근거로 인간은 모든 진술과 실천의 정당성을 판단할 기준을 만들 수 있으며, 인류의 해방이라는 목표를 공통의 가치로 내세울 수 있다. 이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해방이라는 목표를 향해 실천해야 한다는 윤리적 명령도 정당성을 확보할 것이다.

의사소통론에서는 합의를 통해 상호행동을 조정하면서 행위자들의 상황에 관한 공동의 이해에 이르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이다. 여기에는 의사소통 행위가 가장 합리적인 행위양식이라고 하겠다. [의사소통행위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제기된 주장을 검증하면서 상호이해와 합의에 도달한다. 상호이해, 공유된 지식, 서로간의 신뢰와 조화에 이르는 것이 담화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 네 가지 효력주장에 대한 담화를 거쳐서 합의에 도달한다.] 이것은 보편화용론에서 유래하는데, 보편화용론은 착취와 지배가 없는 해방된 삶이 우리들의 의사소통행위 안에 구조적으로 내재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상황은 우리가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 구조 안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지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하버마스의 의사소통론은 자유로운 대화를 통한 상호합의를 목표로 한다. 의사소통행위는 객관적ㆍ주관적ㆍ사회적 세계를 포괄하며, 상호주관적 의사소통을 위한 성찰의 매체로써 언어에 기초하고 있다.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통 인식을 목표로 할 때 의사소통행위가 창출될 수 있다. 이것을 정확히 해명하기 위해서는 하버마스가 제시하는 체계와 생활세계의 두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활세계는 사회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상호주관적인 삶의 맥락으로서 문화, 사회, 인격성으로 구성되며, 체계는 경제나 행정의 영역을 말한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발전해감에 따라 체계는 분화되고 생활세계는 합리성이 증대하여 간다. 또한 사회에 효율성의 원칙이 지배적인 가치로 정착함에 따라 체계는 의사소통에 수반되는 일상실천에서 더욱 멀어지고, 그 결과 체계에 의해 도구적 하위체계로 전락한 생활세계는 자율성을 잃게 된다. 이것은 체계와 생활세계의 분리로 인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로까지 나가게 된다. 하버마스는 이 과정에서 체계의 도구적 합리성이 생활세계를 침범하기 때문에 서구사회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현대의 병리라고 보았다. 즉 화폐와 권력으로 상징되는 하위체계가 생활세계의 상호이해라는 통합구조를 파괴하는 데에 바로 현대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버마스는 체계와 생활세계의 개념을 가지고 인간해방과 계몽을 지향하는 비판사회이론을 구성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생활세계의 식민지화에 저항하고 의사소통의 재활성화에 목표를 둔 것으로 우리는 서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보호운동, 반전ㆍ반핵운동, 여성운동 등에서 이 형태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특징은 바로 의사소통의 재활성화에 대한 희망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서구 모더니즘에서 제시된 이념과 현실 사이의 분열과 모순의 원인을 포착할 수 있고, 왜곡된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이해할 수 있다.

하버마스의 진정한 의도는 푸코나 료타르의 비판과는 달리 사회의 여러 담화들이 민주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찾는 데 있다. 이러한 하버마스의 모색이야말로 진정한 계몽실현을 위한 노력이자 미완인 계몽기획의 출발인 것이다.
14/08/19 21:28
수정 아이콘
3. 한줄 요약

하버마스에 따르면 언어 재구성을 통해 담화를 거쳐서 새로운 합의에 도달하면 됩니다.
하야로비
14/08/19 21:37
수정 아이콘
"당신에겐 괴체의 작품이 명작이듯이, 나에게는 양판소가 명작입니다"

음 괴체의 월드컵 결승골이 확실히 멋있긴 했죠
14/08/19 22:33
수정 아이콘
논쟁 가치가 있는 주제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인정해야 해..라는 중2적인 수준의 논쟁이 대부분이죠.
물론 반대급부도 마찬가지.

"취향"이라는 단어 자체는 우열관계나 가치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취향존중이라는 말은 논쟁 대상이 이미 "취향"이므로 객관적인 검증과 반박이 불가능할 터
논쟁이 의미 없다는 말이지요.즉, 그 가치에 대한 이해,입장은 명백히 다르되 논쟁 자체 시간
낭비이므로 넘어가자...라는 얘기입니다.

현실에선 논쟁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진심으로 자신이 중요시 여기는 가치면 현실에 힘을 쏟는데도 모자랍니다.

인터넷에선 그냥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로 화풀이 논쟁하는 거죠.
전 "아이고 의미없다"로 봅니다.
14/08/19 23:29
수정 아이콘
취향이라는 것은 보통 "나는 매운맛을 좋아해." "그래? 나는 매운맛은 별로."라는 식의 주관적 호불호의 영역에서는 크게 논쟁이 될 부분이 없습니다. 다만 글쓴분께서 느끼시는 바처럼 취향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과용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생각합니다. 특히 평가에 대한 부분을 취향의 영역으로 퉁쳐 버리는 것은 단순히 취미생활의 영역뿐 아니라 그 외의 영역까지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자면, 축구에서 '역사상 위대한 선수'를 뽑아보자고 누군가가 제안을 했을 때, '역사상 위대한 선수'를 뽑는 기준과 어떤 부분에 가중치를 둘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취향의 영역이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서 지금까지 있어왔던 과거가 정의가 되고, 현재의 선수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기며, 결국 앞으로의 축구 선수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 참여하거나, 훈수두거나, 혹은 관전하는 각 개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를 뽑고 싶겠죠. 그런데 그 때 느끼는 호의의 감정을 잘 살펴보게 되면, 각자가 뽑는 선수의 어떠한 점이 뛰어나다고 여기기에 호의를 가지는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좋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면식도 없는 스포츠 선수를 좋아하는 데에는 다른 수많은 선수들과 차별화되는 뛰어난 특질이 없으면 생기기 힘든 감정이니까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하는 말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소극적인 방어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취존'의 형태로 논쟁을 회피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지켜낼 수 있는 나름의 논리적인 설명 구조를 가지는 쪽이 좋다고 느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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