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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9/08 10:19:48
Name 은빛사막
Subject [일반] 그녀의 결혼은 오늘입니다.
사랑하던,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 역시 저를 사랑하고 있구요.

그런 그녀는 오늘 저와, 그녀의 지인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을 합니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과요.


처음 그녀를 만난 건, 신입사원 연수 때 였습니다.
특이하게도 저는 신입, 그녀는 저의 지도선배였지요.
위로 두 살 터울 누나가 있는 저로선, 연상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연애 상대였고
그녀는 저보다 두 살이 많았으니,
사실 관심이 없었어야 정상이었죠.

그러나 연수 기간 도중 그녀의 눈물을 처음 봤을 때,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린다는 걸 느꼈습니다.


연수 후, 처음 다 같이 모인 술자리에서
서울의 끝과 끝에 걸쳐 있어, 저의 집과 완전 반대 방향인
그녀의 집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계속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전
술집 찾아 가던 길에 추워하는 그녀에게
제 목도리를 빌려주었을 그 때부터 였을지도 모르죠.


동기들에게 비밀로 한 상태로
둘이 가끔 회사에서 몰래 만나며,
밤마다 전화를 하고,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건 아니라 자주 못보지만
매일 메신저로 대화를 할 때마다,

살아있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나날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즐거운 나날들은 항상
예상치 못하고, 원치 않을 때 끝나기 마련인가봅니다.
제가 그녀를 만난다는 걸 그녀의 부모님이 아신 이후부터
무언가 저희 사이는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니는 절의 스님에게서 보는 사주를
굉장히 중요시하시던 그녀의 어머님은
제 사주를 보시고선 '재물운'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와의 만남을 반대하셨습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집은 굉장히 잘 사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전 훌륭한 부모님 만나서,
학자금 대출도 없이 비싼 사립대학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고
항상 절약하는 모습 보여주신 부모님 덕에
많이 배우고 자란 사람이라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저는 그냥 직장인이고, 월급쟁이입니다.
심지어 그녀보다 후배이기 때문에, 현재의 월급은 적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도 저는 꿈도, 비전도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꿈을 위해 얼마간의 연봉도 포기해가며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옮긴 사람이라
앞으로 더 잘해나갈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녀를 크게 부족함없이, 편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입장에선 다르셨나봅니다.

저보다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집안끼리도 잘 알고, 그래서 선을 통해 그녀와 만나게 된
사주도 좋게 나온
의사인
그녀의 전 남자친구가 그렇게 좋으셨나봅니다.

이미 결혼적령기를 꽉 채우고도 조금 지난 그녀는
예전에 있었던 경험때문에
더 이상 집안이 반대하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 했고,
때마침, 불안정한 관계때문에 불안해하던 저와의 마찰과
부모님의 압박,
그리고 전 남자친구의 재연락 등으로 인해

저를 떠나갔습니다.


그게 올해 3월이었고...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건 5월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건 6월 제 생일 다음날이었으며,
결혼 소식을 처음 듣게 된 건 7월
우연히 다른 지인을 통해 청첩장을 보게 된 건 지난 주인 8월이었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연락을 끊었다가, 다시 했다가
만났다가, 만나지 않다가  
서로를 보고 싶어 하다가, 하지 않다가를 반복하며
그런 미적지근한 온수같은 사이로 지냈지요.

사내 메신저에서 그녀의 이름을 지우고
제 전화기에서 그녀의 이름을 지웠어도
아침마다 일부러 검색하여 그녀가 잘 출근 하였나 확인하게 되고,
외워둔 그녀의 전화번호를 매번 습관적으로 누르게 되는
그런 일상들을 반복하며

그녀 또한 본사로 오게 될 때, 저를 찾고
저와 그녀가 함께 속한 클래스 모임에서
재 얘기가 나올때마다 밤에 전화를 하며,


서로가 서로를 잊지 못하는
그런 나날들을 지내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도 사람으로 사람을 잊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서너번의 소개팅을 하였고,
착하고 저랑 잘 맞는 분을 만나
한 달 정도 연락을 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번주 월요일,
그녀의 결혼이 9월 8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소개팅한 분의 목소리가 맴돌더군요.
'우리 이만큼 만났으면... 뭔가 관계의 진전이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좋은 분을 만나, 즐거웠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만나는 시간에도 무언가 마음에 걸렸었어요.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걸까
그냥 그 사람 대신 내 옆에 있어주기에, 그 기분이 좋아서
사랑이란 감정과 헷갈리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마음 속엔 아직도 그녀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고
더 이상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그 분을 만난다는 건
그 분에게 큰 실례를 범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정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저는 두 번의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개팅으로 만난 그 분과
어젯 밤,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눈 뒤,
얼마 남지 않은 그 분의 생일 선물을 전해 드리고
그렇게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오늘 결혼하는 그녀에게는
금요일 날, 같이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내며
준비했던 책에
며칠 간 고심해가며 썼던 시를 적어 선물하며
그 동안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제 시를 읽고,
제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갑자기 쓰러지며 오열을 하였습니다.

저 또한 예상치 못한 모습에 당황하여
처음에 제대로 달래주지도 못했지만
결국 안고서 토닥토닥 해주며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네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야.
상황과 조건이 그렇게 만든 것 뿐이고,
그 누구라도 어쩔 수 없었을 문제였으니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자.'

라는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었습니다.


처음 그녀에게 흔들렸던 이유가
연수원에서 등돌리고 눈물 흘리던 그녀의 모습때문이었는데,
마지막의 그녀 모습 역시
저에게 눈물을 보였습니다.


상투적이고, 뻔한 드라마 같은 일은
살면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런 일이 일어날거라곤 생각했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저에게
일어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하였지요.


앞으로의 다른
해피엔딩으로 끝날 드라마 같은 사랑을 위해
지금은 잠시 사랑이라는 감정은
접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픈 마음 잘 치료하며 지내다보면
그녀를 잊게 해줄,
아주 좋은 분을 만나게 되겠지요.

삶과 사랑은 결국 드라마 같은 것들이니까요.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그녀의 드라마 또한,
행복한 드라마였으면 좋겠습니다.  


긴 하소연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PGR21회원 여러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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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펄팩이
13/09/08 10:30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은빛사막님!!!
정말 드라마 같은 연애를 하셨군요!!!
해피엔딩의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실 꺼에요!!!
카스트로폴리스
13/09/08 10:31
수정 아이콘
저도 4개월 반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결혼얘기만 꺼내도
아무 대꾸 없던 여자가 저도 그때는 신입사원이고 찌질할때라 크크크
헤어지고 8개월 있다 결혼 하더군요
예전일이라 이제 생각해도 별 느낌 없지만 그때의 느낌은 참....
이런글 나오면 항상 추천 하지만 500일의 썸머 한번 보세요
은빛사막님의 가을을 응원합니다 크크크 영화보시면 무슨 소린지 아실거 에요

ps.오지랖일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결혼하는 그녀에게는
금요일 날, 같이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내며
준비했던 책에
며칠 간 고심해가며 썼던 시를 적어 선물하며
그 동안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이 부분에서...아무리 깊었던 사이라도..헤어진 사인데..결혼을 하는 여자를 만나는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힘내세요
밀가리
13/09/08 10:32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그리거 서로를 위해 빨리 잊으시길..
13/09/08 10:34
수정 아이콘
하...
같은 회사의 여직원을 좋아하는 상황에서 엄청 공감이 가네요..
회사내 연애는 안된다고 못박은 상황..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번씩 밥도 먹고 술도먹고 연락은 하는..
그래서 더욱더 포기하기 힘드네요
차라리 안보이면 맘이라도 편하지, 회사메신저에는 보이지, 동료들과 얘기하면서 이름은 거론되지.
회사생활은 안힘든데 이것때문에 힘들어 죽겠는 아이러니한 회사생활..크크

글쓴분도 정말 힘드시겠네요
언젠가 이런 가슴아픈일을 덮어둘 행복할 일이 생기겠죠?
라는 마음으로 살길 바라겠습니다.
LenaParkLove
13/09/08 10:34
수정 아이콘
단순히 개인 취향이라고 하기엔 사주를 보거나 해서 그걸 철썩 같이 믿는 사람들이 정말 많더군요.
이런 모습을 보면 너무 짜증납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주를 봐서 궁합이 좋다고 나온 사람들이 다 잘 사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닌데.
뭐 결혼을 반대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일 수도 있겠지만.

여담인데... 최근에 제 사촌동생이 결혼을 했습니다. 근데 결혼 전 그집 시어머니가 이름을 바꾸라 하더군요. 자기도 시집올 때 바꿨다면서.
결국 어쩔 수 없어서 바꾸기는 했습니다만 보는 내내 짜증이 밀려오더라고요. 남편 놈은 뭐하는 자식인지 대체. -_-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힘드시겠지만 마음 잘 추스리시길 바랍니다...
13/09/08 16:15
수정 아이콘
경험상 말씀드리지만 '사주'는 핑계예요. 뭔가 꼬투리를 잡아야 할 때 흔히 잡는 거예요.
사주가 안 좋아서 반대한다, 이건 대놓고 반대할 꺼리는 없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나저나 이름을 바꾼 경우는 처음 보네요.
13/09/08 16:39
수정 아이콘
경험상 정말 목숨걸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13/09/08 10:4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힘내시기 바랍니다.
부기나이트
13/09/08 10:56
수정 아이콘
여자들이 보통 나쁜년(달리 다른 표현이 없군요)이 되고 싶지 않을때 자기 엄마를 팔지요.
눈물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一切唯心造
13/09/08 11:06
수정 아이콘
빨리 잊으세요 힘내시구요
13/09/08 11:07
수정 아이콘
인연이 아니였다고 생각하세요
더좋은분 만나게될꺼에요
치토스
13/09/08 11:46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좋은인연 생기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Nouvelle
13/09/08 11:50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어요. 좋은 사람 만나서 지치고 남루해진 마음을 치유받으셨으면 해요.
카서스
13/09/08 13:10
수정 아이콘
김돈규-단 과같은 상황이시군요...
힘내세요
水草臣仁皿
13/09/08 13:15
수정 아이콘
잘보내주세요 ....
스2LOL둘다흥해랏
13/09/08 13:26
수정 아이콘
제가 봐도 그냥 자기 엄마를 파는걸로 보이네요
얼씨구
13/09/08 13:36
수정 아이콘
지금은 상당히 많이 힘들겠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저도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는데요
10년전에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여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하였는데요

그때는 정말로 힘들었고 다시는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막막했는데요

지금은 뒤돌아 보니 잘 헤어졌다고 생각하고
더 좋은 다른 사람하고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마음을 열기 힘드실 것입니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십시요
*alchemist*
13/09/08 13:40
수정 아이콘
어찌되었든 잘 정리하시고 잘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

힘내세요
대답 안해?
13/09/08 14:09
수정 아이콘
감상에 빠지는 건 그 이야기가 해피할때.. 적어도 그 순간만이라도 행복할 때가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13/09/08 15:25
수정 아이콘
제가 보기에도 여자분이 좀 그렇네요 결혼날짜 잡고도 연락도 하고 만나고...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데 왜 님과 연애를 해서 아프게 하는지...
그냥 별로 맘 아파할 일도 아니라고 여겨지네요
많이 들으셨겠지만 시간 좀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을거예요!
호돈신
13/09/08 17:28
수정 아이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였다면 좀더 일찍 정리하시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만 그 상황에 닥치면 달라지겠죠...
아무튼 힘내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약이죠 뭐
13/09/08 19:17
수정 아이콘
이왕 보내는거 편하게 보내주는게 좋을것 같네요. 신부에게나 신랑에게나
냉면과열무
13/09/08 19:52
수정 아이콘
어쩌면 자신을 시험할 기회가 될 수도 있겠네요.. 연을 계속 붙잡고 있을 것인가, 힘들지만 죽어서도 보지 않을 사람처럼 아예 놓을 것인가..

어떤 드라마를 연출할 지는 은빛사막님에게 달려있겠네요. 화이팅입니다.
Love.of.Tears.
13/09/08 20:07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아스트란맥
13/09/09 15:24
수정 아이콘
아름답게 잘 마무리 하셨네요. 세월이 훌쩍 지난 어느날, 지난 그때를 떠올리며 살짝 웃음지을 날이 꼭 올 겁니다. 앞으로 더 펼쳐질 은빛사막님의 드라마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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