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cyworld.com/view/20090422n00149?mid=n0410
음.. 뭐랄까요..
사교육에 대해서는 말이 길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 의견도 엄청나게 나오게 되고 말이죠.
다만, 제 스스로가 연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준비해온 만큼, 교육이라는 부분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뜩이나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공부하기로 맘먹은 만큼 제 2세가 될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들고 말이죠(아직 결혼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서 오늘 신해철씨 토론도 교육 얘기가 나올 때 주의깊게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묽은 X물 얘기가 가장 와닿더군요. 시스템 자체가 틀려먹은건 아닌가하는 감정적인 성급한 가정하에서 볼 때 분명 어찌 되었건 현재 공교육은 총체적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던 차에 소위 '손선생'의 인터뷰를 보고 나니 적어도 자식될 아이들에게 학원을 다니든 어쩌든 공부의 어떤 면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한지는 알게 된 것 같습니다(이 사람의 인터뷰가 그냥 자기 합리화의 절정인지도 모릅니다만, 뭐 그냥 보고 싶은 면만 잘보고 논리에 압도당하지만 않으면 되지 않나요^^?).
제가 왜 공부를 평생 하기로 맘먹었는가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보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사실 대학가기 전까지는 공부의 특정 전공에 구애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기에는 제가 아는 기반이 너무 적었으니까요..
전 소위 말하는 '대치동 아이들'의 한 원소였습니다. 남들 좋다는 학원도 다녀봤고, 링크의 주인공 '손사탐'도 고3 때 여름 특강을 들었었지요. 학원에만 의존하다보니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고등학교 때까지 즐거운 것 하나는 있었죠. 바로 공부하고 나서 시험 결과를 잘 받았을 때 느끼거나, 어려운 수학 문제를 고민 끝에(뭐 그렇다고 수학올림피아드 급의 천재는 아닙니다.. 걍 수능 예상 문제 중 어려운 문제들 말이죠^^;) 풀어내고 난 뒤에 느끼게 되는 성취감과 쾌감(변태같네요)이었습니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정도의 감만 가지고, 전 뭐가 좋은지도 모르고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의대 진학을 노리지만 실패하고 차선으로 자연과학부에 들어갑니다. MEET를 치라는 부모님의 권유를 생각없이 따라갔지요.
이제부터 시련이 시작됩니다. 생각없이 진학한 전공이 제 발목을 잡기 시작합니다. 일반생물학과 일반화학을 첫학기에 수강하는데 대체 내가 뭐하는건가 하는 의문만 끊임없이 들더군요. 공부가 재미없다고 느껴진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공부는 재미없었지만^^; 일종의 고등학생 시절 느꼈던 성취감마저도 기대되지가 않더군요. 아마 높은 등수, 높은 평균 점수, 반 등수... 이 자체를 대가로 생각하고 좀 더 넓은 고민을 하지 않았던 제 자신에게 느끼는 실망감이 결합되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 내용은 전혀 제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고, 출석보다 결석이 배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백지내고 금메달도 따보고요^^; 학고 정도는 아니었지만(대출해준 동기들 감사), 그래도 등록금 가져다가 허공에 뿌리는 짓을 내내 반복했었죠. 느는건 과외와 술, 허영심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전 3학기를 날려먹게 됩니다. 그러고나서 문득 생각이 들더군요. 진짜 재미있는 공부 그 자체에 빠져본 적이 있었나... 남들 좋다는 것만 따라가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놓친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죠. 그런걸 한번 찾아보자는 생각에 일단 제가 고등학교 시절 문제 푸는 것을 좋아하던 수학 과목과 이전부터 어렴풋이 관심을 가졌던 경제학 전공을 공부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공부가 무엇인지를 대학가고 2년만에 깨우치게 되었던거죠. 강의를 재밌게 들을 수 있고, 과제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진짜 공부의 재미를 알게된 거죠.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습니다. 그렇게 군복무 및 재수강 러쉬-_-를 끝내고 저는 올해 가을 미국으로 경제학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2년을 버렸던 가치가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학원이 제가 20대에 가야할 길을 막은 주체인 동시에, 공부하는 재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가르쳐준 은혜를 베풀기도 한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손선생이 언급한 바로 이 부분이 더 와닿았을 수도 있는 거구요.
손선생 인터뷰 내용 중에 교육의 목적을 '시험 잘 치는 것'이라고 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약간 찌릿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하고픈 공부를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강의를 들으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 잘 치는 기분은 정말 끝내줍니다. 인생 목표가 유학 및 평생연구가 되면서 그런 것들이 제 소소한 즐거움의 일부가 되어버린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사이코 완전체로 진화하는 중일지도 모릅니다-_-. 자기가 일단 하고싶은 분야를 찾기만 한다면, '시험 잘치면서' 느끼게 되는 성취감의 역할은 인생에서 막중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확신합니다. 그 시험은 학과 전공 시험들이 될 수도 있고, 직장에서 프로젝트 완성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손선생이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학생 본인이 진정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화, 무한경쟁이 되면서 정말 소위 특목고, SKY의 시대는 지고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SKY 나오면 뭐하나요.. 앞으로 교육개방이 된다면, 설사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 탑20~30 출신의 쟁쟁한 경쟁력을 갖추고 영어, 제2,3외국어로 무장한 인재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이미 '잘 나가는', '있어보이는' 여러 직장에서 SKY의 진출 비율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저는 온라인 교육이라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근거로 SKY의 시대가 지고 있다는 손선생의 관점과는 다르지만, 세계 경쟁이라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공교육의 좁은 틀이 결국은 사교육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결론 만큼은 찬성합니다.
손선생 말대로 공교육의 패턴이 어쩌면 주입식으로 완전 회귀하는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주입식의 효과는 정말 엄청납니다. 대학에서 전공 시험 준비해보시면 아시게 될겁니다. 암기가 얼마나 위대한 힘인지를... 전 수학 전공이지만, 전공 시험 전날까지 밤새면서 과제 모범답안을 싸그리 외워가서 시험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주입이 없으면 창의력도 없습니다. 암기 단계를 거치지 않고 응용 문제를 완벽히 풀어내는 사람은 극소수 신탁받은 분들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주입이 있어야 창의력, 응용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제가 수학 전공 과목 듣는 학생들에게 학점 잘받는 비법으로 '수학은 암기가 100이다'는 말을 반복해서 얘기합니다. 정말 그게 제 비결이었고, 그 덕에 시험장에서 처음보는 문제가 나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응용력을 기르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가진 손선생에 대한 인식은 사실 부정적입니다. 돈장사 냄새가 너무 많이 났거든요. 2001년 수능 이전에 손선생은 입버릇처럼 수업 내내 '이번 수능 더럽게 어렵게 나온다고 이 개XX들아~!'를 달고 다녔습니다. 근데 2001년 수능은 역사에 기록된 최저 난이도 시험이었지요. 고 조진만 강사를 포함한 논술반 패키지를 내면서 첫시간에 손선생이 오더니 이러더군요.."사실 수능 시험 전날에 올해 수능이 너무 쉬울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 급히 이 논술 특별반을 편성했다." ... 뭐 장사꾼이 무슨 말이든 못하겠습니까. 전 그 이후로 손선생 = 장사꾼이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 달고 다녔습니다(물론 손선생의 뼈아픈 과거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별개의 문제죠). 그래도 어떤 면에서 막연하게나마 공부와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에 공감이 있다는 사실에 오늘 좀 놀랐습니다.
토론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건 아닙니다. 쓰다보니 글이 좀 두서없게 되었네요. 요약하자면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손선생의 발언은 '내 사교육의 모토는 학생들 시험 잘 치르게 하는 것이다'는 부분입니다. 그 근거를 제시하는 부분이 제가 대학생활에서 느꼈던 희열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부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거든요(어쩌면 유학준비생 분들, 혹은 이미 유학가신 분들이나 연구직에 계신 분들은 공감해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닐 수도 있구요^^;). 교육이라는 면에 대해 제가 뭐 잘나가는 정치인, 행정가도 아닌 만큼 구체적인 제안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자식놈들에게 저런 재미를 느낄 기회를 어떻게든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기사였습니다. 그냥 중립적인 자세로 한번 인터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쓰다보니 더럽게 길어졌네요 -_-; 인터뷰만 읽어보셔도 될거 같습니다^^;
덧. 개인적으로 저는 미국식 교육 제도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들기보다 어느 사회에서든 적응해나갈 수 있는 뿌리를 길러주는 시스템 말이죠. 인문학 교육을 암기로 대체한 현 고등학교까지의 기초 공교육은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신 등급에 목매고 민감한 현 세태에서 이를 바꾸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내신 점수 및 수능 점수를 통한 학생들의 줄세우기로 대학에 진학하는 현 상황이 절대 객관적인 평가 기준도 아닐 뿐더러, 문제푸는 바보 양산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입학 여부 판정은 전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데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담임교사의 추천서 제도 역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어줍잖은' 수행평가 시스템이 절대 그 대안이 아니라는 것 역시 동의합니다. 오히려 사교육만 부추길 뿐이죠... 수행평가마저 점수화해버렸으니 말이죠. 문제는 신뢰성입니다. 각자의 주관에 맡기는 제도인 만큼, 입시 비리 역사를 겪은 과거가 있는만큼 이러한 방식이 사람들을 납득할 수 있을지는 저 역시 의문입니다. 담임교사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뿌리깊은 공교육 불신을 부채질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언급하고 싶습니다. 미국 대학으로의 유학 지원 절차에서 추천서 및 자기 소개는 필수입니다. 그리고 입학 허가를 주는 기준은 학교별로 천차만별이고 주관적이며 심지어 어떤 절차인지 공개되지도 않습니다. 근데 신기한건 정말 능력 있는 학생은 GRE 점수가 개판이어도, 학점이 낮아도, 영어가 개판이라도 기가 막히게 뽑혀서 갈만한 학교에 간다는 것입니다. 입학 허가 받은 학생들의 어드미션 결과를 주욱 보다보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평가하기에 정말 잘하는 사람은 좋은 대학에 가고, 그만 못해보이는 사람들은 조금 낮은 학교에 가게 됩니다. 제 앞의 선배들의 결과에도 그랬고, 제가 이번에 겪은 결과 역시 그랬습니다. 그냥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사교육 팩터를 제외한 객관적이고 투명한 학생 평가 기준을 만드는데 집착하다가 어쩌면 더 큰 걸 잃은건 아닌지 말입니다. 전 논리와 이성, 합리에 대한 집착이 어쩌면 더 비합리적인 귀결로 이르는 역설이 존재한다고 제 경험에 비추어 생각합니다. 뭐 어떤 논리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