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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11/04 17:58:03
Name 강력세제 희드라
Subject [일반] 폴란드 여행기 4일차 - 비드고슈치, 포즈난 (data & scroll 주의)
비드고슈치에서 맞이 하는 일요일 아침입니다. 비록 개신교인이지만 비드고슈치와 같은 폴란드의 작은 도시에서 개신교회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아서 비드고슈치 대성당에서 드리는 미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루프탑에 다시 올라가봅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좀 원망스럽네요. 비 예보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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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루프탑에서 바라본 비드고슈치 대성당. 잠시 후 저기서 미사를 드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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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루프탑에 설치된 호텔 사인. 호텔이 4층 정도의 나즈막한 높이여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 볼 정도의 탁트인 시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를 느끼며 안락한 소파에 앉아 도시를 바라보는 잠깐의 순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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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미사 시간에 맞춰서 호텔을 나섰습니다. 19/20세기 전환기 옛 아파트먼트 건물들로 가득한 길 건너편 광장을 지나, 어젯밤 찾았던 술리미-카민스키에고 다리를 다시 건넜습니다. 아파트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첨탑 건물은 1602년에 완성된 클라라수도회 성당(Kościół Klarysek)입니다만, 보수공사 중인 관계로 내부를 살펴볼 수는 없었습니다.

비드고슈치는 한때 튜튼기사단의 차지가 되기도 했지만, 근세에 이르기까지 폴란드왕국의 주요 통상도시로 큰 영화를 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1626년부터 165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여러차례에 걸쳐서 스웨덴 군에 의해 파괴되면서 도시는 점차 쇠락의 길로 들어섭니다. 1772년에 있었던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제1차 폴란드 분할의 결과, 이 도시는 프로이센의 영토에 편입되면서 독일명 브롬베르크(Bromberg)로 이름을 고쳐달게 됩니다. 이후 150여년의 긴 기간 동안 독일인들이 집단적으로 이 도시로 이주해 들어왔고, 프로이센왕국과 독일제국 역시 이 도시를 자국의 중요한 도시로 발전시켜서 당대에는 '작은 베를린'(Klein Berlin)이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이 도시의 중심가를 차지하고 있는 19/20세기 전환기의 신고전주의 또는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이 바로 이 시기의 유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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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브롬베르크의 모습을 담은 우편엽서.(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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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의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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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다 강을 가로지는 '강을 건너는 사람' 조각상과 이 도시의 상징이라고 하는 세 동의 옛 창고, 그리고 저 멀리 m 뱅크 건물이 어젯밤보다 한층 더 또렷하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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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Stary Rynek)을 가로질러 골목으로 들어서니 비드고슈치 대성당의 모습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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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드고슈치 성 마르치나 이 미코와야 대성당(Katedra pw. św. Marcina i Mikołaja, 영어식으로는 성 마르틴과 성 니콜라스 대성당).

인구 34만명 정도의 중급 도시이자 주정부 소재지라는 비드고슈치의 규모를 감안했을 때 굉장히 소박한 사이즈와 겉모습의 대성당입니다. 폴란드에는 인구 1~2만 정도의 소도시에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당들이 즐비하니깐 말이죠. 비드고슈치에는 이 대성당보다 규모 면에서 더 큰 성당이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하나 더 있습니다. 구시가지 광장에 있었던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예수회 대학성당은 2차대전 때 파괴되었고, 도시의 외곽에 1차대전 이후 비드고슈치가 다시 폴란드 영토가 되었던 것을 기념하여 건축된 거대한 규모의 성 빈첸테고 아 파울로 바실리카(Bazylika Rzymskokatolicka pw. św. Wincentego a Paulo)가 이 도시의 가장 규모가 큰 종교건축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만, 주교좌대성당(Cathedral)의 지위는 여전히 이 아담한 미코와야 대성당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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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드고슈치 대성당의 내부. (아담한 규모지만 온통 보라색과 청색으로 채색된 인테리어가 독특한 신비감을 안겨줍니다.

폴란드어로 진행되는 미사는 당연히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낭송을 맡은 사제의 너무나도 감미로운 음성과 고풍스런 오르간의 따뜻한 사운드만으로도 내면의 신앙심이 뿜뿜 샘솟기에 충분했습니다. 미사 끝나고 참석한 성도들과 눈 맞추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좀 쑥스럽긴 했지만, 다들 밝은 얼굴로 환영해주시더군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약간의 헌금도 드렸습니다.

비드고슈치 대성당은 1466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502년 즈음 완성된 벽돌 고딕 양식의 건물입니다. 2차대전의 여파로 크게 훼손되었지만, 이후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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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과 벽면의 보라색, 볼트의 파란색, 그리고 제단의 황금빛이 독특한 신비감을 만들어냅니다. 제단 가운데 위치한 '장미를 손에 든 아름다운 사랑의 성모'(Matka Boska Pięknej Miłości z Różą) 성화는 과거 독일인 개신교도들의 지배하에서 상대적으로 핍박받던 폴란드 가톨릭 공동체의 신앙적 상징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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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대성당과 사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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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다 강변으로 나있는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 다시 호텔 쪽으로 향했습니다. 왼쪽 오페라 노바의 대규모 구조 공사 때문에 뷰가 영 만족스럽지 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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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대략 10시. 브런치를 먹기 위해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팬케이크 전문점인 마네킨(Manekin)으로 향했습니다. 왼쪽으로 '카르멘'의 공연을 알리는 오페라 노바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네킨은 폴란드 곳곳에 위치한 유명 팬케이크 프랜차이즈라고 하는데, 브런치로 적당할 것 같아서 이곳을 방문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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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케이크 2종과 샐러드 하나, 그리고 커피, 레몬에이드를 주문했는데, 가벼운 팬케이크 정도로 생각했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서 다 먹고 나니 부대낄 정도로 그 양이 푸짐했습니다.  식대는 음료 포함해서 33,100원 정도. 맛도 가성비도 다 괜찮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들러 11시에 체크아웃을 한 다음, 프론트에 트렁크들을 맡기고 홀가분하게 비드고슈치 시내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도시의 중심 관청가인 야기엘론스카 거리(Ulica Jagiellońska)로 향했습니다. 신고전주의 네오 바로크, 아르누보 등등의 다양한 건축양식의 건물들이 도열한 이 거리는 한때 작은 베를린이라고 불리던 이 도시의 과거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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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에 완공된 네오 고딕 양식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프로이센 국가 양식(Preußischer Nationalstil)의 대표적인 건물인 비드고슈치 중앙우체국(Poczta Główna). 건축 당시에는 브롬베르크 중앙우체국이었을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우체국으로 기능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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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엘론스카 거리의 인상적인 건물 중 하나인 네덜란드 보험 비드고슈치 지점(Oddział Nationale-Nederlanden) 건물. 이 건물 남쪽 전면에는 과거 프로이센 제국은행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유리벽 내부에 보존된 형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야기엘론스카 거리에서 브르다 강변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는 브르다 강은 동쪽으로 흘러 폴란드의 동맥인 비스와 강으로 연결되는 작은 강입니다. 프로이센 왕국이 이 도시를 지배하던 당시,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흔히 프리드리히 대왕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분)는 이 도시에서 오데르(Oder) 강의 지류인 노테치(Noteć) 강까지 길이 3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비드고슈치 운하를 건설함으로써 발트해 연안 평원의 두 젓줄인 비스와 강과 오데르 강을 서로 연결시켰습니다. 이후 비드고슈치는 상업도시로서 한동안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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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다 강 건너로 보이는 세 동의 창고 건물(Spichrze nad Brdą). 이 도시의 소박한 랜드마크로 현재는 지역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들입니다.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반에 걸쳐서 지어진 이 건물들은 원래 곡물저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다섯 동의 창고가 나란히 서있었지만, 1960년의 화재로 왼쪽 두 동이 소실되어서 현재 세 동만 남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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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 비드고슈치(브롬베르크) 사진. 원래 창고가 다섯 동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출처 비드고슈치 운하 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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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보이는 또 다른 인상적인 건물들인 m뱅크 건물(좌)과 로이드 궁전(Pałacyk Lloyda).(우) 로이드 궁전은 1886년에 완공된 건물로 원래 이 도시 유력 해운업자의 자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이후 로이드 비드고스키(Lloyd Bydgoski)라는 이름의 해운회사 본사로 사용되면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단스크 중앙역과 유사한 네덜란드 메너리즘(Dutch Mannerism) 양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아동용 가방 두 개를 겹쳐놓은 듯한 m뱅크 건물은 비드고슈치 곡물창고를 현대적인 양식으로 재해석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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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가까이서 본 로이드 궁전과 m뱅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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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브르다 강변 남쪽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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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다 강의 북쪽 강변에서는 1989년에 세워진 세 명의 그리스 여신 조각상(Pomnik "Trzy Gracje") 만날 수 있습니다. 매력, 아름다움, 기쁨을 의인화한 세 명의 여신들의 조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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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가까이서 올려다본 '강을 건너는 남자'. 바람에 조금식 흔들리면서도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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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다 강을 건너서 구시가지 광장 쪽으로 이동하면 작은 시계탑이 맞이합니다. 오른쪽에 곡물창고의 붉은 지붕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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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중앙우체국 건물의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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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m뱅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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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뱅크 옆에서 과거 이 자리에 있었다는 비드고슈치 성의 모형이 놓여있습니다. 이 성은 1346년 카지미에시 대왕(Kazimierz III Wielki)의 명으로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일대가 폴란드 왕국과 튜튼기사단국의 국경에 해당했기에 기사단을 견제하기 위한 최전선 요새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성은 17세기 중반 스웨덴에 의해 폴란드 전역이 유린당했던 대홍수 기간 동안 완전히 파괴되어서 지금은 성터의 흔적만 조금 남아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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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 왼쪽은 과거 예수회 대학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고, 오른쪽에 앞서 미사를 드렸던 비드고슈치 대성당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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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무렵 비드고슈치(당시는 브롬베르크) 중앙광장의 모습. 2차대전 와중에 소실되었던 거대한 규모의 예수회 대학 성당이 광장 서쪽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광장 오른쪽 모서리에는 지금처럼 비드고슈치 대성당이 보입니다.(츨처 www.inyourpocket.com) 교회는 사라지고 뒷편 대학 건물이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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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 광장 한 쪽에는 '비드고슈치 땅의 투쟁과 순교 기념비'( Pomnik Walki i Męczeństwa Ziemi Bydgoskiej)가 서있습니다. 1969년에 세워진 이 거대한 조각상은 1939년 나치에 의해 저질러졌던 비드고슈치 대학살의 60주년을 기리고 있습니다.

1772년 1차 폴란드 분할로 프로이센의 영토로 편입된 비드고슈치는 브롬베르크라는 이름으로 서프로이센 일대의 주요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원래 거주하던 독일계 인구에 더해서 독일 본토로부터도 많은 이주민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어왔고, 프리드리히 대왕이 건설한 운하와 그의 증손자인 빌헬름 4세 시절에 개통된 베를린-브롬베르크 철도노선 등을 통해 이 도시는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1919년 1차대전의 패배로 인해 브롬베르크는 다시 폴란드에게 귀속되어 비드고슈치라는 옛 이름을 다시 달게 되었지만, 독일인들은 여전히 이 도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1939년 9월 나치에 의해 이 도시가 점령된 이후, 히틀러는 이 도시의 완전한 독일화를 계획했습니다. 이를 위해 나치는 유태인 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많은 폴란드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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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에서 독일군에 의해 공개처형되는 비드고슈치 시민들.(출처 www.wikiwand.com)

1939년 한 해만 5,000여명의 폴란드인들이 이 도시에서 처형되었으며, 이후 1945년까지 최소 10,000명 이상의 폴란드인들이 비드고슈치 일대에서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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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 한 쪽 귀퉁이에 있는 '거위와 장난치는 아이들' 분수.(Dzieci bawiące się z gęsi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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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의 남쪽 방향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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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면 한 때 이 도시의 최고 번화가로 각광받았던 드우가 거리(Ulica Długa)가 나옵니다. 지금도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이지만, 일요일 오후여서 가게는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이고 거리도 꽤나 한적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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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우가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레온 바르치셰프스키 기념상(1939년 나치에 의해 공개처형되었던 당시 비드고슈치 시장)이 서있는 작은 광장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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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바꿔 작은 다리를 건너 므윈스카 섬(Wyspa Młyńska, 우리말로 방앗간 섬)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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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그대로 과거 큰 규모의 제분소(방앗간)이 있던 섬으로, 지금은 섬 전체가 공원으로 산뜻하게 조성되어 있어서 휴일을 맞아 많은 시민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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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한쪽에 있는 거대한 붉은 벽돌 건물인 로테라 제분소(Młyny Rothera)는 바로 이 섬 이름의 유래가 되었던 역사적 건물입니다. 브롬베르크를 곡물 유통의 중심지로 삼기 위해 1851년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세워진 이 제분소는 1990년대에 운영이 중지된 이후 한동안 방치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비드고슈치 시 당국이 이 건물을 매입하였고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거친 뒤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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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라 제분소의 정면 입구와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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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라 제분소의 내부. 3층에서 내려다본 1층 로비.

제분소 건물의 옥상은 브르다 강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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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바라본 동쪽 전망. 굴뚝 왼쪽에 비드고슈치 대성당, 오른쪽에는 성 안드레야 보볼리 성당의 뾰족탑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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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바라본 북동쪽 전망. 왼쪽 둥근 건물은 오페라 노바, 그 옆의 뾰족탑은 자유광장에 있는 베드로와 바울 성당(Kościół pw. św. Apostołów Piotra i Pawła), 그리고 오른쪽 끝에 비드고슈치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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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내려다본 로테라 제분소 안마당. 각양각색의 벤치와 푸른 잔디밭, 아기자기한 분수들이 어우러져 가족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제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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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라 제분소의 남쪽 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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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개울 너머 이 건물은 보트 클럽 건물이라고 합니다. 관광객들을 위해 보트를 대여해 주는 곳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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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다 강 지류 옆의 수변공원. 오른쪽에 보이는 계단식 건물은 2017년에 완공된 주상복합건물인 노르딕 뉴 헤이븐 아파트먼트.(Nordic Haven apar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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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변공원 쪽에서 바라본 오페라 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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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방앗간 섬.

포즈난 행 기차 출발 시간이 점점 다가오기에 호텔에 들러 짐을 챙긴 다음, 트램을 타고 비드고슈치 중앙역으로 향했습니다.

트램을 타고 역으로 향하는 도중에 창문 너머로 꽤나 인상적인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와서 사진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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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왕국은 1851년 브롬베르크-베를린 철도노선을 개통한 이후 독일 동부의 철도를 총 관할하는 프로이센 동부철도본부(Preußische Ostbahn)를 이 도시에 두었는데, 이 건물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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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시 50분 비드고슈치 중앙역에 도착. 원래 역 바로 앞의 나름 유명한 케밥 가게에서 케법을 테이크 아웃한 다음 기차 안에서 저녁으로 먹을 계획이었는데, 일요일이어서 가게가 휴무였습니다. 부득이 역사 안에서 구입한 프레첼과 비슷하게 생긴 폴란드 전통빵 오브바찬키(Obwarzanki)로 떼웠습니다.

비드고슈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들렀던 폴란드의 여러 도시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관광지로서는 그리 매력적인 도시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행계획을 짤 때 토룬의 숙박료가 유명 관광지답게 꽤나 센 편이어서 그 대안으로 비드고슈치에서 1박을 계획했던 것인데, 하루 정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나름 만족스런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나름 기대했던 자유광장 일대가 완전 공사판 천지였던 점은 두고두고 아쉽네요.

대합실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17시 55분 출발하는 포즈난 행 IC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일반실 요금은 1인 46즈워티.(대략 17,300원 정도)

기차는 약 1시간 30분 정도 달려 19시 20분에 포즈난 중앙역(Poznań Główny)에 정시 도착했습니다. 원래 계획을 짤 때는 비드고슈치에서 좀 더 일찍 출발해서 포즈난을 가는 도중 폴란드의 첫 도읍지였던 역사도시 그니에즈노(Gniezno)를 잠깐이라도 들릴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포기하길 잘한 선택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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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난 중앙역의 구역사 건물. 공산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콘크리트 상자형 건물입니다. 아직도 일부 노선은 이 건물 쪽 플랫폼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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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쇼핑센터와 결합된 형태로 확장 개편된 포즈난 중앙역 신역사 건물. 고가도로 밑에는 버스 터미널까지 있어서 유동 인구가 정말 많았습니다.

포즈난의 첫 인상은 대단히 좋지 않았습니다. 호텔로 가기 위해서 신역사 앞에서 한 백여미터 떨어진 트램 정거장까지 걸어가야 했는데, 그 도중에 건너간 육교 주위에서 지린내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코를 찔렀습니다. 폴란드의 공중화장실이 거의 대부분 유료이기 때문에 노상방뇨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지금껏 거쳐왔던 도시들이나 이후에 방문한 도시들을 통틀어서도 이토록 지린내가 도시 전반에 걸쳐서 심했던 도시는 없었습니다. 아무튼 엄청난 지린내를 뚫고 무사히 호텔에 도착.

선택한 호텔은 이 도시의 중심가 중 하나인 스비에티 마르친 거리(ulica Święty Marcin)에 위치한 '호텔 알투스 포즈난 올드타운'(Hotel Altus Poznan Old Town)입니다. 포즈난 관광의 핵심 지역인 구시가지 광장에서 한 7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며, 이 호텔 인근에도 돌아볼 명소들이 다수 있습니다. 구도심 재개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알파 컴플렉스 빌딩 내에 자리잡은 3성급 호텔로 트윈 룸 1박이 조식포함해서 107,200원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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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알투스 포즈난 올드타운의 로비.

호텔 방에 짐을 푼 다음, 탈진 직전의 아내를 호텔 방에 남겨두고 홀로 포즈난의 밤 거리를 누비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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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난의 마스코트는 한 쌍의 염소입니다. 뒤에 나오는 시청사 시계탑과 관련된 염소 이야기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도시 곳곳에서 염소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윗 사진은 호텔 인근 보도 위에 설치된 염소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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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시 무렵 저녁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는 스비에티 마르친 거리(ulica Święty Marcin). 이 거리 곳곳에 포즈난을 대표하는 근대 건축물이 여럿 자리잡고 있습니다.

포즈난은 폴란드의 발원지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이 나라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도시이지만, 1793년 폴란드 2차 분할의 결과 프로이센의 영토로 편입되어 1919년 1차대전 종전때까지 프로이센왕국-독일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독일이 지비해던 당시에는 포첸(Pozen)이라는 독일어 이름이 도시의 공식 지명이 되었죠. 스비에티 마르친 거리 곳곳에 위치한 19세기 건축물들 대부분은 바로 독일의 지배를 받던 시점에 건축되었습니다. 나름 치욕의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또한 이 도시 역사의 일부이기에 2차대전 이후 충실히 복원된 상태로 현재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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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난 대학교 경영학부 건물(Uniwersytet Ekonomiczny w Poznan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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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난 황궁(Zamek Cesarski). 독일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빌헬름 2세는 이 일대에 대한 독일의 지배권을 과시하기 위해서 1905년부터 1910년에 걸쳐서 자신의 지방 황궁을 이 도시에 건설하였습니다. 황제 스스로 가장 독일적인 양식이라고 여겼던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이 황궁을 짓기를 주문했고, 그 결과 중세의 성을 연상케하는 투박하고 직선적인 외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빌헬름 2세는 독일제국이 패망하기 전 딱 3번 이 황궁을 찾았다고 합니다. 2차대전 중에 크게 파괴되었는데, 전후 독일 침략의 상징과도 같은 이 건물을 철거하자는 주장도 상당했지만, 그럼에도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하기로 결정되었고, 현재는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센터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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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교(Uniwersytet im. Adama Mickiewicza)의 콜레기움 미누스(Collegium Minus). 황궁의 부속건물 중 하나로 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완성된 이 건물은 현재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교의 부속건물 중 하나로 용도를 바꾸었으며, 이 건물 안에 위치한 아울라 강당(Aula Uniwersytecka)은 뛰어난 음향으로 유명해서 현재 포즈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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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과 콜레기움 미누스 사이에 널찍하게 조성된 아담 미츠키에비치 광장(Plac Adama Mickiewicza).
왼쪽 거대한 석상은 아담 미츠키에비치 기념상(Pomnik Adama Mickiewicza), 오른쪽은 1956년 포즈난 봉기 희생자 기념탑(Pomnik Ofiar Czerwca 1956)입니다.

아담 베르나르트 미츠키에비치(Adam Bernard Mickiewicz, 1798~1855)는 폴란드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특히 폴란드가 세번의 분할에 의해 지도에서 사라졌던 시기에 활동하였으며, 작품을 통해 국민들에게 독립에 대한 열망과 민족 정체성을 고취시킨 낭만주의의 거장이자 애국적인 정치 활동가였습니다.

1956년 6월 28일 포즈난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처우와 노동환경에 대하여 폴란드 공산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참여자는 점차 늘어났고, 시위는 점차 격화되어 폭력시위로 발전하였는데, 폴란드 공산정부는 군대를 투입하여 이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습니다. 결국 최소 57명에서 100여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사망했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하는 비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만은 후일 폴란드의 자유화를 이룩한 자유노조 운동의 씨앗을 잉태했던 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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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기움 미누스와 아담 미츠키에비치 기념상을 한 컷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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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에서 한 블럭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폴란드 전후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이자 이 도시의 대표적인 20세기 랜드마크인 오그롱그와크(Okrąglak)(우리말로 번역하면 원통)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1954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획일적인 성냥갑 스타일로 동구권 전역을 지배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건축과 차별되는 특징적인 외관을 자랑합니다. 건물 로비에서 최상층까지 이어지는 내부 나선 계단의 조형미가 대단히 뛰어나다고 하는데, 너무 늦게 방문해서 내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외관만 사진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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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롱크와크에서 동쪽으로 300미터 정도 걸어오면 드넓은 자유광장(Plac Wolności)이 나옵니다.
이 광장은 프로이센왕국이 지배하던 시절 프로이센군의 열병 사열을 목적으로 조성한 광장이었으며, 당시의 프로이센국왕 빌헬름 1세의 이름을 따서 '빌헬름 광장'(Wilhelmsplatz)으로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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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서쪽 끝에 있는 아르카디아 홀(Budynek Arkadii) 앞에서는 야간 무도회가 한창이었습니다. 1804년에 처음 건축되어 187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된 이 건물은 2차대전의 와중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원형을 유지한 소수의 포즈난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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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동쪽 끝에는 2012년에 설치된 현대 조형물인 자유분수(Fontanna Wolności)가 있습니다. 분수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위로 LED 조명이 내장된 유리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시시각각으로 색깔을 바꿔가며 이 일대 야경의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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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가까이서 본 자유의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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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동쪽 끝에는 1828년에 완공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인 라친스키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앞의 조각상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건강의 여신 히기에아(Hygieia)의 조각상인데, 이 도서관과 포즈난 최초의 상수도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제공했던 라친스키 백작의 아내 얼굴을 본따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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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광장에서 구시가지광장으로 향하는 도중에 찍은 가로등 행렬. 꽤나 세련된 가로등의 외형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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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광장과 구시가지광장 사이에 자그마한 언덕이 하나 있는데, 그 언덕 위에 소박한 규모의 왕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1249년 비엘코플스카(Wielkopolska) 지역을 다스리던 프셰미슬 1세(Przemysł I) 공작의 거처로 건축되었습니다만, 그의 아들 프셰미슬 2세(Przemysł II)가 폴란드국왕으로 선출되면서 자연스레 왕궁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이후 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수차례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다가 2차대전 와중에 건물 대부분이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일부 건물이 복원되어 현재 응용미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왼쪽 탑 위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의 일대의 경치가 꽤나 볼만하다고 하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아쉽게도 직접 경험하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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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와 구시가지 광장 언저리에 접어드니 포즈난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인 구시청사(Ratusz)의 첨탑이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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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으로 채색된 포즈난 구시청사 전면. 오른쪽 앞에 프로세르피네 분수(Fontanna Prozerpiny)가 조그맣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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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청사 왼쪽으로 쭉 연결된 '상인들의 집'(Domki budnicze). 말 그대로 과거 시장이었던 이 광장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이 거주하던 주택들입니다. 마치 장난감 인형의 집처럼 알록달록한 색채가 눈에 띄는 명소지만 밤이어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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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청사와 상인들의 집을 한 컷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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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서북쪽 모서리에 있는 전쟁의 신 마르스 분수(Fontanna Mar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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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남서쪽 모서리 넵튠 분수(Fontanna Neptuna) 쪽에서 바라본 구시청사.

구시가지 광장의 네 모서리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네 개의 조각상이 각기 자리잡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프로세르피네 분수와 마르스 분수, 그리고 넵튠 분수 외에도 남동쪽 모서리에 아폴로 분수가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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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청사 앞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광장의 모습. 이때 시간이 거의 22시에 가까웠는데도 광장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야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것이 아폴로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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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청사와 상인들의 집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우물과 함께 물지게를 지고 있는 작은 여인의 청동상을 만나게 됩니다. '밤베르크 여인의 작은 우물'(Studzienka Bamberki)이라는 이름의 이 조각상은 이 도시의 아픈 과거와 관련된 유물입니다. 스웨덴 대홍수와 이후 들이닥친 페스트로 인해 이 도시 일대는 18세기 초반에 들어서며 쇠퇴일로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이 도시의 지도층은 이방인들의 이주를 적극 추진하였고, 1719년 독일 밤베르크 일대의 가톨릭신도들이 집단이주하면서 도시의 재건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 독일 이주민들은 신앙적 동질감을 기반으로 기존 폴란드사회에 어렵지 않게 동화되었고, 이후 포즈난이 프로이센의 영토로 바뀐 이후에 강압적으로 실시되었던 독일화정책에도 과감하게 맞설 정도로 이 도시에 대한 애향심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밤베르크 출신 이주민들의 헌신과 애향심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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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의 야경을 둘러본 다음 서둘러 호텔 건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시간은 22시 30분.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맥주와 군것질거리를 사러 자브카에 들렀습니다. 몇가지를 집어들고 계산대를 향했는데, 점원이 맥주를 옆으로 빼면서 'No'라고 하더군요. 'Why?'라고 물어보니 'Too Late'라면서 고개를 젓습니다. 폴란드는 야간에 음주판매 제한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도시들에서는 22시 이후부터 주류 판매가 금지라는 것이죠. 밤 늦게까지 술집은 영업하는데, 가게에서 구입하는 것은 금지랍니다. 뭐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죠. 혹시 폴란드 여행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포즈난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 편에... To be cont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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