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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1/13 14: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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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맥주의 기나긴 역사

Eduard_Grützner_Brotzeit_des_Klosterschäfflers_1912.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맨정신의 인간은 부정적이고, 차별적이며 매사에 불평한다. 취한 사람은 긍정적이고, 포용적이며, 매사에 대범하다."

-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




NCI_Visuals_Food_Beer.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맥주는 현대를 사는 우리도 흔하게 마시는 음료입니다. 



 전세계 연간 맥주생산량은 무려 1억 8,000만 톤이며 이는 대서양에 떠다니는 미세플라스틱 쓰레기의 총량(2억톤)이나 대한민국의 연간 쓰레기 배출량(2억톤)과 비슷할 정도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는 대신 미세플라스틱이나 쓰레기를 먹는다면, 대서양을 청소하거나 인구 5,000만이 사는 나라가 청정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맥주는 이렇게 오늘날까지도 많이 소비될뿐만아니라 그 역사도 유구합니다. 



Raqefet_Cave_rock_mortars.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고고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맥주였을 수 있는 증거는 무려 지금으로부터 15,000년 전에 발견됩니다. 나투프 인들은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임에도 반정주 생활을 영위했고, 동굴 속 잔치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보리죽이 발견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류 최초의 맥주일지도 모릅니다. 



 맥주는 인류가 가장 처음 마신 술은 아니지만, (과일이나 꿀이 자연발효돼 알콜을 함유하게 된 것은 원숭이들도 즐겨먹는 별미입니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술은 바로 맥주였고, 곧 문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Sheaf_of_wild_barley.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수렵채집사회와 농경사회 사이 과도기에 있던 인류는 수확한 곡물낟알들을 말려서 장기보관했고, 섭취할때에는 뜨거운 물에 넣어 여러 종류의 견과류나 생선들과 섞어 죽처럼 끓여먹곤했습니다. 그러나 건조가 언제나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고, 빗물이라든가 습기가 찼다든가 하여 곡식에 물이 스며들면 곧 발아해서 싹이 텄습니다. 인류는 그렇게 최초의 ‘맥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1280px-Crystal_Malt_80L.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몰트, 엿기름이라고도 부르는 이 맥아는 단 맛이 났습니다. 곡물이 물을 만나 당화 과정이 이루어졌고, 그를 통해 녹말이 당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물속에 오래 방치된 어떤 낟알들은 거품을 뿜어대며 요상한 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과일이나 꿀이 빗물에 젖어 오랫동안 방치되었을 때 나는 미묘한 톡 쏘는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마신 사람들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 걸쭉하고 보글거리는 탁한 액체가 바로 맥주의 조상이었습니다.



1084px-Göbekli_Tepe,_Urfa.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괴베클리 테페에서 출토된 돌로 만든 거대한 대야에서는 보리와 물이 섞여있던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이것이 맥주였을 것이라 말하지만 그저 보리를 물에 불려 먹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괴베클리 테페가 어떻게 건설됐는지를 생각한다면, 이 모호한 증거는 의미심장한 추측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괴베클리 테페가 지어질 당시의 인류는 아직 본격적인 농경사회로 접어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The_archaeological_site_of_Göbekli_Tepe_-_main_excavation_area_(rotated_270_deg).png 맥주의 기나긴 역사


 반정주의 수렵채집민들이 장기적으로 한 곳에 정착해 그런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특별한 동기가 있어야만 했는데, 현대의 몇몇 학자들은 그 동기가 종교적이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래의 가설, 즉 농경사회가 시작되어 한곳에 정착하게 된 인류가 종교적인 심성을 발달시켰다는 추측을 거꾸로 뒤집는 꼴입니다. 종교가 먼저 있었고, 농경은 그로인해 한곳에 과도하게 몰리게 된 인간집단이 해결책으로서 발명했다는 것입니다. 



Göbekli2012-16.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흥미로운 것은 많은 고대사회의 종교의례에서 맥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술은 신비로운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의 진심을 이끌어내 단합시켜주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돌 기둥 신전에서 꽐라가 된 채 널부러져 있던 사람들은 새벽녘 서로의 얼굴을 신들의 얼굴로 착각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태초에 맥주가 있었고, 그 뒤에 종교가 생겨났으며, 그로인해 문명이 시작된걸지도 모릅니다. (농경의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의 글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관개.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기원전 7,000년 경에서 5,000년 경 사이, 인류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생활양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있었지만, 대부분의 토양은 농사를 짓기에 비옥하다기보다는 건조한 편이었습니다. 


대규모건축노동.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이 곳에서 안정적으로 꾸준히 농사를 짓기 위해 고대인들은 수로를 비롯한 관개시설을 주기적으로 정비해야했고, 그것은 곧 많은 수 의 인원을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에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사회, 엄격한 위계질서를 통해 계급과 신분이 구별되는 사회를 탄생시켰습니다. 



계급사회.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기원전 3,000년 경의 수메르 사람들에게 맥주는 신의 선물이었고, 맥주를 마시는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기본 소양이었습니다. 




길가메시서사시.png 맥주의 기나긴 역사

엔키두.png 맥주의 기나긴 역사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폭군 길가메시를 벌하기 위해 신들은 점토를 빚어 엔키두를 만들어냈습니다. 엔키두는 온 몸에 털이 나있는 야만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들이 보낸 무녀와 2주간의 잠자리를 하고, 맥주를 마심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되었는데, “얼굴은 빛나고, 기쁨으로 노래를 불렀다.”고 묘사되어있습니다.



 2021년, 고고학자들은 이집트의 아비도스에서 5,000년 된 맥주 양조장 유적을 발굴했습니다. 



오시리스 신.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이집트인들은 오시리스 신이 맥주를 발견했다고 믿었습니다. 물에 넣은 곡식을 깜빡했던 오시리스 신이 뒤늦게 발견해서 용감하게 먹어보았더니 맛도 좋고 기분도 좋아져 인간들에게 나눠줬다는 전설이었습니다. 분명 맥주를 최초로 발견한 이집트인(이름이 오시리스였을 수도 있습니다)은 주위 친구들에게 신 같은 존재처럼 떠받들어졌을 것 같긴 합니다. 



Bappir.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문명이 더욱 발달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맥주를 맛과 향에 따라 종류별로 구분하며 브랜드화하기 시작했으며, 이미 기원전 3,000년 경이 되면 맥주는 색과 맛의 강도에 따라서도 구별되어 오늘날의 생맥주와 흑맥주처럼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때의 맥주는 죽 형태의 맥주를 굳히면 빵이 되고, 다시 그 빵을 물에 풀면 맥주가 되는 일종의 간편식이었습니다. 



우르.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기원전 2,000년 경, 오늘날 이라크 남부지역에 위치해있던 우르는 인구 6만 이상의 거대한 도시국가였고, 주로 여성들에 의해 운영되는 많은 수의 술집들이 있었습니다. 이 술집들은 오늘날 크래프트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가게 안에 파리가 좀 많이 날아다니고, 양조 과정에서의 위생수칙은 다소간 무시되었겠지만 말입니다.




맥주빨대.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에머밀 맥주, 달콤한 맥주, 향신료를 첨가한 맥주 등 다양한 종류의 맥주들이 팔렸고, 각각의 술집들은 가게 뒷편에 자신들만의 조그마한 양조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도시의 수많은 로컬 양조장 출신 맥주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특성과 풍미를 지녔을 것입니다. 이 맥주들은 반투명하고 걸쭉했으며 보리껍데기가 둥둥 떠 있었기에 밀짚으로 만든 빨대로 건더기를 피하며 마셔야했습니다.



 맥주는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사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음료의 지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빨대로 타인과 맥주를 나눠마신다는 것은 곧, 독살의 위험으로부터 안심시켜주는 우정과 친근함의 상징이었고, 잔을 부딪히는 ‘짠’의 의식은 이때부터 있었던 유구한 전통입니다. 종교적으로는 풍작을 기원하는 행사나 장례와 같이 길흉례 가리지 않고 성스러운 의미를 가진 음료로서 활용되곤 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많은 조각상들에는 맥주를 빨대로 마시는 고위 성직자들의 모습이 새겨져있기도 하며,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평범한 시민의 자그마한 무덤에 이르기까지 맥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들은 가장 흔한 부장품이었습니다. 맥주는 산 자뿐 아니라 죽은 자에게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당시의 맥주는 발효기간이 짧아 알콜은 적고, 발효과정에서 발생한 비타민B가 풍부했습니다. 또한 주거지 근처의 오염된 물에 비하면 마시고 탈이 날 확률도 훨씬 적었습니다. 수메르의 설형문자 점토판에는 의약품 대용으로 맥주를 처방한 일종의 처방전이 새겨져있습니다. 이집트에서도 맥주에 허브를 넣어 진정제로 쓰거나, 양파를 섞어 변비약올리브를 넣어 소화약으로 쓰곤 했습니다.



우루크의 백색사원.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우루크(Uruk), 우르(Ur), 라가시(Lagash), 에리두(Eridu), 니푸르(Nippur), 테베(Thebes), 멤피스(Memphis)와 같이 고대 세계의 가장 거대한 도시들 어디에나 맥주가 흘렀습니다. 잉여 농산물의 일종인 맥주는 거대한 농경제국이 대규모의 국가 프로젝트를 시행할 때, 일종의 자본 역할을 했습니다.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거대한 능묘(피라미드)를 건축해 권위를 세울 때, 노동자들에게 임금 대용으로 맥주를 지불하곤 했던 것입니다. 


이 때의 맥주는 분명 빵과 함께 화폐의 일종이었습니다. 


수도사.png 맥주의 기나긴 역사


 중세시대에도 맥주는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곤 했습니다. 늘상 규칙적으로 고된 노동을 해야했던 수도사들은 매일 4리터 가량의 맥주를 배급받았습니다. 사실상 물 대신(보다) 맥주를 마신 수준인데, 실제로 11세기 영국 수도사들의 라틴어 교재에는 “맥주가 없을땐 물을 마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Ælfric’s Colloquy) 


 이렇듯 중세시대 사람들은 남녀노소 어디에서나 맥주를 즐겨마셨고, 맥주 양조를 전담하는 수호성인도 당연히 존재했습니다.



홉.png 맥주의 기나긴 역사


 오늘날의 우리가 먹는 것과 같은 형태의, 홉을 넣은 맥주에 대한 기록은 적어도 822년의 카롤링거 왕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홉을 넣지 않은 기존의 맥주를 에일이라 불렀는데, 에일에 홉을 넣으면 맛과 더불어 보존성이 좋아졌습니다. 보존의 어려움은 저도수의 술이 갖는 고질적인 문제였기에 홉은 혁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맥주산업화.png 맥주의 기나긴 역사


 13세기 보헤미아에서 홉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자, 해가 바뀌어도 상하지 않는 뛰어난 보존성에 힘입어 곧 독일 전역에서 맥주 양조 산업이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14세기에 이르면 네덜란드와 브라반트 등지의 저지대 국가들에 홉이 전파되었고, 마침내 15세기 말에는 바다를 건너 영국 전역에 새로운 맥주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콘월과 랭커셔는 여전히 전통 방식의 에일을 고집했습니다. )



Eduard_Grützner_Drei_Mönche_bei_der_Brotzeit_1885.jpg 맥주의 기나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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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ttfried
+ 24/11/13 16:30
수정 아이콘
홉과 주니퍼베리가 없었다면 유럽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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